'생각보다 즐거웠던 만남.'
집구석에만 있는 나 자신을 탈피하기 위해, 사회생활을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근처 도서관에서 주 1회씩 열리는 Conversation Club을 방문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어서 왜 진작에 안 왔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모인 사람들은 나 포함 한국인 5명, 일본인 2명, 중국인 2명, 스리랑카인 3명, 독일인 2명, 이란인 1명, 베트남인 1명 그리고 키위 선생님 1명 이렇게 총 17명이 있었다.
방식은 대화를 이끄는 선생님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 자신의 의견이나 비슷한 경험이 있으면 관련된 말을 하는 것이다. 표현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동아시아의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은 이런 상황에서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선생님이 대놓고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대화의 흐름에 끼어들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삼국인'이 아닐까.
이야기는 정말 대중이 없었다. 좋아하는 요리부터 뉴질랜드 과일 등등 흐름 없이 산발적으로 이어지다가 어느덧 '크리스마스 산타' 이야기가 나왔다. 대화의 80%를 주도하고 있던 독일 부부가 자신의 첫째랑 둘째는 6살이 차이가 나는데, 첫째가 둘째에게 동심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산타가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나라에서도 아이들이 산타를 믿는지를 물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11살 둥이 아들이 있는데 얘들은 지금도 산타를 믿어. 왜냐하면 나는 산타는 있다고 믿는 사람한테만 존재한다고 설명을 해줬거든. 나도 산타를 믿어. 내가 평소에 착하게 살면 산타는 나에게 물리적인 선물은 주지 않지만, 그 대신 일상생활에서 좋은 에너지나 행운을 선물한다고 생각해."라고 대답을 했다. 그 이후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가 이어졌다.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어떤 날이니?
크리스마스는 가족보다는 커플이나 친구를 위한 날이야. 내가 보기엔 일본이랑 중국도 같을 듯!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 후, 독일 여인이 또 물었다.
그렇담 한국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명절은 뭐니?
음력 설날이 가장 중요할 듯싶어.
왜 음력으로 하는 거니?
우리는 예전에 태양력이 아닌 달력을 사용했기에 큰 명절은 여전히 음력으로 쇠는 거야.
독일남이 물었다.
너희들이 쓰는 음력에는 나쁜 날, 좋은 날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이니?
맞아. 우리의 음력 달력에는 좋은 날, 나쁜 날 등이 표시되어 있어. 그래서 예를 들면, 이사를 갈 때 좋은 날은 이사비를 2~3배 더 내야 하고, 나쁜 날에는 정말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
그럼 좋은 날과 나쁜 날을 어떻게 구분하니?
잘은 모르겠는데.. 음과 양이 조화로운 날과 아닌 날을 구분해 놓은 게 아닐까 싶어.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좋은 날, 나쁜 날, 음과 양 등의 이야기를 하니 20대 한국 남자 2명이 굉장히 난감해하며 서둘러 이야기를 시작 ㅎ
우리 세대들은 그런 것을 믿지 않아. 그치만 우리 윗세대나 엄마들은 믿는 편이라, 이사나 결혼 같이 중요한 날을 정할 때 좋은 날을 보는 게 꽤 있기는 해. 그렇지만 내 친구들이나 나는 하나도 안 믿어!라고 서둘러서 방어를 했음.. 이 아줌마가 무슨 후진국 얘기를 하는 건가 싶어 부끄러웠나 보다 ㅎ
짧고도 굵은 1시간이 지나고 자리를 일어나려고 할 때, 독일 여인이 나에게 다가왔다.
"너는 여기에 언제 왔니?"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자기 남편은 독일에서 고등학교 수학이랑 체육 선생님인데 1년의 휴식을 갖고 뉴질랜드에 아이들과 함께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9월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남편이 워킹 비자를 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지만 실패를 해서 지금 두 아이들의 학비로 월 200만 원이 넘는 돈을 냈다는 이야기도 술술 해줬다.
이렇게나 투명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나 또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쥬.
"내 남편이 독일인이야. 근데 나 독일어 못해. 1년 공부해 봤는데 실패했어 ㅠ 우리는 남편 프로젝트가 있어서 1년 워크비자를 받고 왔어. 그 덕분에 아이들 학비는 안 내. 한국으로는 내년 1월에 돌아갈 예정이야."
그러자 그녀의 남편이 다가와 기회가 되면 독일인 남편도 만나고 싶다며 이곳에서 또 보자고 다음을 기약했다.
덧붙여 그 모임에 일본인 중년 여성이 있었는데, 그분이랑도 따로 통성명을 했다. 자기는 결혼은 했는데 아이가 없어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생활하면서 모든 클럽에 참가한다고 이야기하며 시간이 되면 자기랑 같이 참여하자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
..,
대화 클럽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자주 참가하다 보면 훨씬 더 재미있어질 거 같은 느낌! 아무튼 내가 원하는 류의 모임을 발견했으니, 꾸준히 참가해 볼 예정이다.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여기서 공유하도록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