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머스프링스에서 만난 '현자' 2

'선생님과 아우님과의 인연, 그리고 함께 한 저녁 식사.'

by 한나Kim

캡모자와 점퍼를 연두 형광색으로 깔맞춤 하고 달려오셨던 아우님은 과연 누구였을까?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인지 다음날 식사를 준비하는데 콧노래가 나왔다. '초대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두 분의 인연을 모른 채 넘어갈 뻔했잖아~'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요리를 했다.


선생님께 저녁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던 이유는, 산에 오르면 제대로 먹질 못하기 때문에 도시에 있을 때 단백질을 최대한 많이 먹어둬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일 저희 집에 오셔서 저녁 드시고 가세요."라고 말씀을 드리니, 처음에는 사양을 하셨다. 그런데 "삼겹살이랑 수육, 부추양파무침 해드릴게요."라고 말씀을 드리니, 눈빛이 흔들리다가 오신다고 하신 것이다! 수육이랑 삼겹살을 마다할 한국인이 어디 있겠습니까ㅎㅎ


...


다음날 오후 5시, 두 분이 시간을 딱 맞춰 오셨다. 선생님은 오시자마자 둥이 방에 들어가서 애들의 키위 인형을 보고 "너네 친구니?"라고 물으시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시작하셨고, 아우님은 거실 식탁에 앉아계셨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두 분이 도대체 어떤 사이냐고 여쭤보았다.


아우님: 저희 뉴질랜드에 같이 들어왔어요. 그러다 20일 지나서 헤어지고, 어제 다시 만난 거죠.

나: 어머? 왜 헤어지셨는데요??

아우님: 산이 너무 험해서 나는 하기 싫더라고. 죽을 수도 있는 이런 걸 이 나이에 뭐 하러 하나 싶어서 포기하자고 했지. 그런데 형님은 계속하신다고 하셔서 내가 먼저 내려왔어요. 그러다 귀국하려고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쉬고 있는데, 형님을 만난 거죠!

나: 웬일이야!!! 그래서 이제 귀국하시려고요?

아우님: 그러려고 했는데, 어제 형님이 이제 어려운 코스는 스킵하고 쉬엄쉬엄 갈 테니 끝까지 가자고 하셔서 다시 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식탁으로 오셨다.


나: 그럼 두 분은 뉴질랜드 트레킹을 하려고 만난 사이세요?

현자님: 아니. 우리 만난 지 35년도 넘었어요. 내가 젊을 때 잠실에서 살았는데 복잡해서 참 싫더라고. 그래서 근교에 집을 지으려고 땅을 샀어요. 그 땅에 집을 짓기 위해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때 허가를 주던 공무원이 이 사람이야. 근데 처음에는 허가를 안 해주대.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이었다고 ㅎㅎ"

나: 와 진짜 재미있는 인연이네요 :)

아우님: 형님이 그 땅에 손수 집을 짓고 사시다가 2년간 교환교수로 캐나다에 가게 되셨거든요. 그때 때마침 내가 결혼을 했다고. 그래서 선생님이 안 계신 2년 동안 형님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거기서 살았지요. 그래서 형님 집에서 우리 아이들을 다 낳았어요. 보통 인연이 아니죠~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아우: 그러다가 내가 40대가 되니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민을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다 정리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갔죠. 캐나다 생활한 지 25년이 넘어요. 근데 영어는 못해. 언더그라운드에서 생활을 했거든. 껄껄. 계속 열심히 일하다가 60대 중반이 되어서, 이제 은퇴하고 놀러 다니는 거죠.


...


두 분의 인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속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몽골몽골 피어올랐다. 뭐랄까, '깊이'보다는 '빠름'을 귀하게 여기는 '인스턴트 시대'에 모두가 꿈꾸는 인연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또는 며칠에 걸쳐 푹 고아낸 곰탕과 같은 구수함이랄까.


재미있는 건 두 분의 성향이나 겉모습이 극단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일단 10살의 나이차가 있고, 서로 사는 나라도 다르고, 풍기는 모습도 완전히 다르고(한 분은 산신령, 한 분은 꾸러기), 하는 일도 너무나 달랐음에도 이렇게 35년간 지속적으로 인연을 이어오셨다는 게.. 그냥 듣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이 일었다.


즐겁게 저녁을 먹은 후, 두 분은 내일 아침 8시에 출발을 하셔야 한다며 7시 반 정도에 일어나셨다. 그리고 앞으로 30일을 더 걸어서 트레일을 완주한 후, 3월 초에 귀국할 거라고 하셨다. 우리 가족도 뉴질랜드 일년살이를 마치고 곧 귀국을 한다고 말씀드리니, 선생님께서 봄에 한국에서 보자고 하시며 집주소를 보내주셨다. 자신이 손수 만든 집 마당에서 맛있는 바비큐를 구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말이다.


그때 옆에 계시던 아우님도 한 말씀하셨다. "아마 그때 나도 거기에 낄지도 몰라요~" 어? 캐나다에 가지 않고 한국으로 가시는 건가? 궁금했지만 그 질문은 다음에 만났을 때 드리려고 아껴두었다. 다 알아버리면 재미없으니까 :)


집을 나서면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얘들이 아저씨 얼굴 잘 기억해 둬. 아마 한국에서 보면 못 알아볼걸? 지금 10킬로 넘게 빠졌거든! 이 얼굴 잘 봐둬라ㅎㅎ"


...


강렬한 향기를 남긴 채 두 분은 그렇게 사라지셨다. 멀어지는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사히 별탈 없이 즐겁게, 그리고 가는 곳곳마다 좋은 인연을 만나며 남은 30일간 행복한 여정을 이어가시길 진심으로 기도했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동영상:

며칠 뒤에 보내주신 동영상이다. 선생님이 설명하시길, 다른 사람이 쉽게 건널 수 있게 물살 앞에서 버티고 있는 청년은 헝가리인이라고 한다. 이타심에서 우러나온 그의 순수한 행동과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나아가는 사람들. 이 원초적인 연대가 결국 사회를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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