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홀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고래상어'와 '안경원숭이'를 보고 싶어 육상 투어를 신청했다. 고래상어 투어는 별도로 신청하지 않고, 드라이버한테 '리라 고래상어 입장하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만 했다. 그곳으로 직접 가면 별도의 투어비 없이 입장료 1500페소만 내고 들어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walk-in 손님으로 방문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깊은 바다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또 고래상어가 무섭다며 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로버트도 어차피 둘 중 한 명은 아이들이랑 같이 있어야 하니 자기가 있겠다고 하여, 나 혼자만 참여하게 됐다.
리라에 아침 9시 반 조금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투어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래저래 입장권 사고, 옷 갈아입고 해서 대략 2시간은 기다린 듯하다. -_- 고래상어 투어를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전 8시에 맞춰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대기 없이 바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희한한 것은 나는 walk-in guest인데도 내 국적을 보더니 나를 한국인 팀으로 넣었다. 어느 국적이든 전혀 상관없다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은 무조건 한국인 팀으로 가야 하는 듯하다.
대기하는 곳에 앉아서 멍하니 배가 오기를 약 1시간 반 정도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특이하다 느낀 것이, 뭔가 큰 고래상어라 하면 바닷가 멀리 나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알고 보니 대기하는 곳의 바로앞에 있었다. 그냥 작은 나무배를 타고 노를 저어 5~10분 정도만 나가면 되는 거리. 이리 편리할 수가 없다.
슬렁슬렁 노를 저어서 고래상어가 있는 곳에 도착하면, 가이드가 사람들한테 바다에 뛰어들라고 한다. 나는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호기 있게 가장 먼저 들어갔다. 그리고 재빠르게 고래상어가 있을만한 곳으로 영차영차 수영을 해서 간 후, 혹시 있나 싶은 곳에 쑥 들어갔는데...
아.. 내 앞에 버스만 한 고래상어가 떡~하니 있었다. 준비된 마음 없이 그 큰 얼굴을 보고 패닉이 왔는데, 딱 여기까지면 럭키하다 할 수 있겠다. 근데 뭔 일인지, 갸가 나를 보더니 입을 쓰윽 벌리는 것이 아닌가ㅠ_ㅠ 뭔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적인 느낌... 그리고 심장이 멎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으면서, 뭐랄까... 나 여기서 죽는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진심이다.
짧은 순간, '내가 만약 저 입으로 들어가면 어쩌지.. 물론 다시 뱉어내겠지만, 나 기절해서 죽을지도 모르겠네.. 내 주위에 로버트도 없고, 가이드도 없는데... 나 기절하면 누가 살려주지..' 등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고 그놈한테 멀어지려고 죽을힘을 다해 수영을 했다.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서 그랬는지, 온몸이 하얘졌다. 심지어 손바닥도 새하얘졌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고, 토가 나올 것 같은 기분. 진짜 딱 기절할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냥 물에 大자로 누워서 둥둥 뜨기를 하며 하늘을 보고 심호흡만 한 듯하다. ㅠㅠ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되어, 다시 용기를 내어 스노클링 안경을 끼고 바다로 들어갔는데... 이번엔 내 바로 밑에 버스만 한 고래상어의 등이... 너가 왜 거기 있니? 밟을 뻔했다 얘.. ㅠ_ㅠ
그걸 보는 순간 또다시 심정지가.. ㅠ_ㅠ 놀라서 파닥거리고 있으니, 같은 배에 탔던 한국인 가이드분께서 다가오시며 "괜찮아요?"라고 물으셨다. 저 여자 뭔가 이상하다 싶어 계속 지켜보다가 심상치 않다 느끼셨는지 급하게 오신 듯하다.. ㅠ_ㅠ 이러다 진짜 일 나겠다 싶어서 가이드님께 조금 무서워서 그렇다고 말씀드리고, 바로 배 위로 올라왔다.
그렇다. 알고 보니 나는 쫄보였던 것이다 -_-
이 경험을 통해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돈을 조금 더 내고 가이드랑 같이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혹은 가족끼리, 또는 남친이나 남편이랑 같이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혼자서는 들어가지 마세요.. 진심 패닉이 올 수 있습니다. 저 진짜 겁도 없고, 수영도 잘하고, 물도 좋아하는 인간인데, 정말 공황발작(패닉 어택)이 올 뻔했어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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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허무하게, 내가 학수고대하던 고래상어 투어가 끝이 났다... 10분 보고, 10분 바다에 누워있다가 바로 배로 올라오기 -_- 배 위에서도 몸이 너무 답답하여 중심을 잡기가 어려웠고, 계속 토가 나올 것 같아 많이 괴로웠다.
육지에 올라와 쓰러질 것 같은 몸을 다잡으며 사력(?)을 다해 아이들과 로버트한테 갔다. 그러자 아이들이 "엄마 왜 이리 하얘? 너무 이상해. 완전 하~얘 졌어"라고 묻는 것. 그래서 깔끔하게 "엄마 죽을 뻔했어. 고래상어가 엄마 앞에서 입을 벌렸거든 ㅠ_ㅠ"이라고 설명해 줬더랬다.
그걸 들은 세 남자는 앞으로도, 그리고 영원히. 고래상어 투어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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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장엄하고 아름다운 고래상어였지만, 입을 벌리는 녀석의 모습은 나를 처절하게 무너뜨렸다. 뭐든지 감정의 끝을 건드린 트라우마의 극복은 쉽지 않은 듯하다. 그것이 설사 고래상어라 할지라도 말이다. 사실 나도 이 놈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고래상어의 고자만 들어도 경기가 날 것 같은 느낌 -_-
너무 놀라서였는지, 나는 뻗어버렸다. 점심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먹는 것도 생략하고 그저 달리는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쉴 뿐.
그래도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는 안경원숭이를 보러 가야지. 남자 3마리는 나를 기다리는 동안 컵라면을 2개씩 먹었다며 자랑을 했지만, 뭐를 먹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고, 그저 빨리 다음 목적지로 가고 싶을 뿐이었다.
...
위 부분까지는 사실 2월 초, 필리핀에 있을 때 작성했었다 -_- 근데 뒤에 안경원숭이랑 초콜릿동산 후기도 작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올리지도 못하고, 또 한국에 와서 정신없이 지내느라 쓰지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다가는 영원히 못 올릴 거 같아, 안경원숭이랑 초콜릿동산 후기는 아주 짧게쓰도록 하겠다.
육상투어의 하이라이트, 둥이가 가장 보고 싶어 하던 안경원숭이를 보러 갔다. 안경원숭이 보호구역은 생각보다 작아서 한 20분 정도(?) 걸으면 다 볼 수 있었다. 보호구역이라 칭하지만, 그냥 동물원 같은 곳이다.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나무에 매달려 잠을 자고 있는 안경원숭이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들이 어찌나 작고 귀여운지,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계속 눈을 못 떼고 보게 되었다. 보면 볼수록 더 귀여운 안경원숭이가 아닐 수 없다. ㅎ
울창한 숲 길을 걸으며 '어느 나무에 안경원숭이가 붙어 있나~'를 찾는 맛이 나름 재미있었다. 하여 우리는 한 바퀴만 돌고 나가는 게 아쉬워서 두 바퀴를 돌고 나왔다. 중간에 우거진 나무 밑에서 쉬면서 간식도 먹고 말이다. 다음에 보홀에 또 가게 된다면 안경원숭이 보호소는 다시 방문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보홀의 명소인 '초콜릿동산'에 갔다. 우리가 갔을 때는 우기였기에 동산들이 갈색이 아닌 초록색이었지만, 그래도 그 나름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자연이 참 신기하다~'라며 넋을 놓고 수천 개의 초콜릿 동산을 보고 있는데 로버트가 한 마디를 했다.
"저 동산들을 보면 어떤 건 민둥산인데, 어떤 건 나무가 울창해. 내가 보기에는 일부로 저 동산들을 다 민둥산으로 밀어놓은 거 같아. 안 그러고서야 저리 될 수가 없다."
-_-
아. 정말 초치는 소리 참 잘해. 여보세요, 인생이 왜늘! 그렇게 의심과 비판의 연속입니까? 그냥 자연이 만든 신비로움이구나 하고 보고 느낄 수 없어? 꼭 그렇게 따져야 되는 거야? 응? 초치는 소리 좀 하지 마!!!
나의 버럭에도 불구하고, 로버트는 자기는 이런 걸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웹서핑을 하기 시작.
어머나.
근데 그가 맞았던 것이다 -_-
초콜릿 동산은 일부로 민둥산으로 만드는 것이 맞았다.내 무수히 많은 블로그를 봤지만, 그걸 언급하는 분은 한 명도 없었고, 또 그걸 찾아본 사람도 없었는데... 내 옆에 계신 독일인의 비판적인 사고방식 덕분(?)에'참으로 경이롭다!'라고 느끼는 순간, 그 현장에서 이를알게 된 것. -_-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면, 동산의 약 50프로는 민둥산이고 약 50프로는 우거져 있다. 그 이유는 정부 소유의 산은 민둥으로 밀고, 민간인이 소유하고 있는 산은 밀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