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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Nov 17. 2023

글로벌 시대의 핵심 키워드, 정체성(Identity)

'덧붙임: 여행을 하면서 느낀 3가지'

  머리는 아직 딱딱하지 않고, 위험부담을 감수할 정도의 호기심과 두근거리는 심장이 살아있는 20대 때,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경험했다. 36개국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3가지라고 답할 것이다.


  첫째, '지구는 하나'이다. 우리가 각기 다른 인종으로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각기 다른 나라의 각기 다른 문화 안에서 서로 다른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갈지라도, 결국 우리는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 안에서 '같은 인간'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주 생소한 나라를 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비슷한 사람들이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결국, '같은 지구' 안에 살고 있는 '같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험난하고 힘든 상황일지라도, 나를 향하는 따뜻한 도움과 미소 그리고 스치듯 만난 사람들의 한없이 투명한 진심들이, 다시 말하면 인간다운 그들의 모습이 나를 더욱더 여행의 세계로 빠지게 만들었다.


  지금 한국과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극단적으로 쪼개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구를, 내 나라를, 내 주위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이념이 아닌, 이념을 위한 이념으로 갈라지고 있는 세상을 보는 게 너무 힘들다. 온통 헤이트 스피치로 얼룩진 댓글을 읽는 게 너무나 고역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놈들은 모두 악마다.'라는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흑과 백의 논리로 세상을 쪼개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따뜻한 인류애보다는 가슴에 칼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분들에게 타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여행을 하면서 자기 스스로 인류애를 경험해 본다면, 이 지구는 여전히 살아볼 만한 곳이고, 또 인간은 기본적으로 착하다는 것을 반드시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행복은 꼭 돈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랄까, 이건 순전히 나의 주관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필리핀의 빈민가의 골목에도 삼삼오오 모여 신나게 공차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고, 또 서로를 바라보며 박장대소를 하는 어른들이 있다. 그 사이를 지나가며 인사하는 나에게 거리낌 없이 손을 흔들어주던 그들의 웃음은 과연 거짓이었을까? 아니면 편견이었을까..


  내가 미국에서 일할 때, South carolina의 Hilton Head Island의 창립자의 딸의 아들을 가끔 돌봐준 적이 있다. 창립자의 딸은 유태인계로 많은 유산을 물려받고, 고급진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다녔지만, 내가 6개월간 주 1~2회씩 그녀의 집에서 아들을 돌봐줄 때,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는 물론 그녀의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들 때문이었겠지만...  그 가족에게 내가 제육볶음과 직접 만든 쌈장, 된장찌개, 상추를 대접한 적이 있다. 근데 이리 감정 없이 맛있다고 얘기하는 외국인은 처음 보았다. 그녀가 나를 향한 칭찬은:


  "배가 부른데 기분이 나쁘지 않아. 건강하게 배부른 느낌이다."였다. 물론 그녀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으리. 근데 그 칭찬조차 너무 드라이해서, 이건 과연 칭찬인 것인가, 욕인 것인가 싶은 느낌이었달까 -_- 아무튼 그녀는 좋은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기품 있고, 고상했으나 뭐랄까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웃는 게 웃는  아닌 것 같았고, 즐거운 게 즐거운 게 아닌 것 같은 느낌. 인간으로서의 근원적인 감정이 약간 결여되어 있는 느낌이었달까.


  과연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천국이었을까?


  여행을 통해 이런 경험을 무수히 하면서,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해서는 많이 초월한 편이다. 솔직히 말하면, 돈에 관해서는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ㅎ 인간은 결국 가진 것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게 나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셋째, 글로벌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뿌리, 다시 말하면 정체성(Identity)이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다가오는 외국인들의 반절은 모두 태권도를 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아니 태권도가 이리 유명해?' 하면서 어안이 벙벙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나는 한국인인데 태권도도 안 배우고 뭐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세계에서 이리 대우받는 태권도를 한국에서는 왜 모르고 있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뭐 지금이야 아메리칸 갓탤런트에서도 인정을 받아 모두가 알겠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그저 올림픽의 한 종목이라는 것 외에 태권도의 위상을 떠드는 언론이 없었던 것 같다.


...


  싱가포르에서 근무할 때 나는 한국 교회에 다녔다. 싱가포르는 국제적인 도시답게 그곳에는 아주 유능한 한국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주재원의 아이들로, 삼성이나 LG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유럽, 미국, 아시아 등을 오가며 한국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 중 하나였던 고2 여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니 저는요, 솔직히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한국인인 건 아는데, 솔직히 저는 한국인은 아닌 거 같아요." 생각해 보면 이 오묘한 말에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내가 그 아이에게 했던 조언은, "너는 4개 국어를 하고 다양한 국제적인 경험을 가진 유능한 아이이지만, 네가 정말로 성공을 하고 싶다면 대학은 일단 한국으로 가면 좋을 거 같아. 한국에서 너의 정체성을 먼저 찾고, 그다음에 미국의 대학으로 가던지, 유럽의 대학으로 가봐."


...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을 하면 할수록 어렴풋이 그렇지만 확고하게, 글로벌 시대가 도래할수록, 정체성(Identity)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뭐, 지금도 명확하게는 설명을 못하겠다. 그렇지만 내가 여행을 하면서 늘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힘의 90프로는 '나를 강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한국인으로, 또한 아시아인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나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부끄러움 없이, 위축됨 없이 솔직하게 표현했기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의 근원은 한국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생각을 늘 한다.


  음, 조금 정리해 보자면.. 모두가 비슷해지는 글로벌 시대에서  또는 나만의 것을 알고, 그것을 사랑하면서 사는 게 큰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음, 어찌 보면 '정체성 = 긍정적인 소속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 이유로,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나는 무조건 태권도를 시켜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독일인이랑 결혼을 한 것이다. 아이가 혼혈이네. 한국인들이 가진 정체성의 2배는 더 심어줘야지. 그래서 사물놀이도 시키는 중이다.ㅎㅎ


  둥이야 너희는 한국인인 것이다. 혹시 훗날 독일에서 살게 된다면 뿌리 깊은 한국인으로 사는 거다. 그래야 어떤 풍파가 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독일에서 한국인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태권도 사범을 하면서 보람차게 보내는 것도 좋고 말이지. 너희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


  참고로 독일의 아이덴티티는 독일인에게도 입히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나치 시대로 말미암아, 독일인의 마음속에는 깊은 수치심과 창피함이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을 하기 전까지는, 문밖에 독일 국기를 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자국 국기에 대한 프라이드를 갖지 못했기에... 역사를 반성할 줄 아는 그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나는 오늘도 우리 둥이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마음껏 주입하는 중이다 ㅎㅎ 얍얍!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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