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워하는 걸 정말 무서워한다. 샤워하는 게 무서워진 건 중학교 때쯤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좁은 화장실에 맨 몸으로 혼자 있으면 관짝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물을 틀면 외부의 소리가 문에 가로막혀 전혀 들리지 않으니 깔끔한 하얀 타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고 오롯이 나 혼자다. 아무리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더라도 결국에 나는 이 순간 혼자다. 그래서 언젠가는 그 순간이 올 것이며 그 순간을 내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아주 딱딱하고 차가운, 피얼룩이 지고 무거운 내 몸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근데 불행히도 나는 지독한 지성 타입 피부다. 그래서 하루만 샤워를 안 해도 머리가 떡이 진다. 중학교 때 즈음에도 이 공포에 시달려서 5일 넘게 몸을 씻지 못한 적이 있었다. 옆자리 아이는 내 머리를 물끄러미 쳐다봤고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걸 느꼈다. 나를 한심하게 보고 “좀 씻어!”라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물론 가족들도. 거기에 나는 좀처럼 당당히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면 죽음이 떠오른다는 설명은 이해받지 못한다는 걸 그때부터 어린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설명하는 일은 상당히 고달프며 완전한 낭비라는 점도. 그러니 나는 결국에는 눈을 딱 감고 샤워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냄새가 나는 사람이 될 수도 없고 화장실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될 수도 없으니.
그래서 생각해 낸 묘책이 음악이었다. 다만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90년대 음악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서 공포가 커지니 안된다. 항상 뭔가가 사라지고 있으며 곧 그게 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아무런 생각도 떠올리게 하지 않는 음악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건 그때그때 다르다. 어떨 때는 이조차도 효과가 없을 때도 있다. 음악을 고심해 골라도 공포감이 사라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는 별 수 없이 넓은 우주에서 내가 먼지처럼 사라지고 내 존재도 사라지고 내 의식도 사라지는 진공 상태를 온몸으로 느낀다.
아, 그리고 물을 최대한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무슨 작용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면 따뜻함에 근육이 좀 더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공포감이 덜하다. 그렇게 몇 분을 버티면 좀 괜찮아져서 몸을 씻는 데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잘 씻고 나와 밖에서는 모든 일들을 까먹고 생활하고 하루 뒤에 이 과정을 반복하면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일상을 살 수 있다.
다만 매일 이 공포감을 이겨내고 애써 깨끗한 몸으로 마주한 하루는 너무 보잘것없어서 약간 힘이 빠진다. 모든 일상의 일들이 기본적인 틀의 변주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오로지 나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게 숨이 막힌다. 그러나 나는 그럭저럭 내 역할을 해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형체 없는 공포가 나를 완전히 휩싼 건 영국 드라마를 보는 와중에였다. 부인이 죽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였고 장르는 코미디였던 드라마였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이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는데 그걸 보고 효과적인 자살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조금 들긴 했다. 연출일지는 모르지만 편안해 보여서. 뜬금이 없어서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좀 더 개연성 있는 원인을 찾아보자면 이즈음 전쟁 관련 다큐를 많이 보기도 했다. 여하튼 나는 이주동안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고 잠도 자지 못했다. 내 안에서 가족과 친척, 친구의 시체를 눈앞에서 수십여구 보고 장례를 치러서다. 내 눈으로는 살아있지만 결국 시체가 되어 구더기에게 살점을 뜯긴 뒤 자아고 뭐고 다 사라져 버릴 인생을 계속해 보고 있었다. 그러니 그 뒤로는 하나하나 전부 다 납득을 할 수 없었다.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이게 “현실”이라는 건 맞는 건지. 자의식은 환각이 아닐까.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증거가 있는가. 인터넷을 뒤져보니 생은 우주의 티브이 채널 같은 거란다. 인간의 채널은 70년 남짓 되는 거고. 전쟁과 기아와 살인, 가난과 같은 온갖 폭력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인간을 만든 창조자는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지도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참하리만큼 무심한 방관자. 어쩌면 약간의 미소를 짓고 있을 수도 있는 그런 형상을 상상했다. 더 이상 저이에게 내 운명을 맡기고 싶지는 않은데 선택권이 없다는 기분. 밟혀버리는 지렁이 날개가 찢긴 잠자리 구더기가 뜯어먹은 토끼가 나 같았다. 그리고 보호받을 수 없다는 생각과 허허벌판에서 홀로 내가 맞이하게 될 온갖 것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걸 모르는 것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불안했다. 생으로 가득 찬 생명을 보면 더더욱. 팔짝팔짝 뛰는 강아지 같은 거. 흔들어서 알려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너는 곧 소멸해! 창조자는 널 신경 쓰지 않아! 불안해서 팔을 꼬집고 내 감각에 집중해 보려다가 과호흡이 와서 단기로 하고 있던 일에서도 잘렸다. 시간감각도 당연히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생이 정말 한순간의 일, 영겁 속 찰나이고 우주가 아주 조용한 걸 똑똑히 봤다. 인간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적막만이 가득한 우주를. 그 무심한 우주를.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도 극에 달했다. 가까스로 머리를 감을 수 있게 됐을 때 나는 머리카락이 하수구에 빨려 들어가는 걸 봤다. 그러고는 머리카락이 내가 알지 못하는 경로로 어딘가로 사라져 가는 걸 상상하면서 공포감을 느꼈다. 그게 나 같아서. 이상하게 들리겠지. 다만 정말 이 이주동안 나는 간단한 일상조차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내가 확실히 납득한 건 이 순간의 죽음과 70년 뒤의 죽음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거뿐이었다.
그러니 선생님, 제가 생각하는 자살이라는 결론은 이성적인 거 아닌가요? 다들 어떻게 살 수 있는 거죠?
원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평범히 살았던 때를 다시 떠올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