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잘 알고 지냈던 언니가 프랑스에서 일하며 살고 계셨는데 한창 힘들었던 여름, 나를 그 언니가 사는 마을 디낭이란 곳으로 초대해 주셨다. 항상 일이 바빠서 놀러 오란 말을 들었어도 맘은 고맙지만 저는 한국의 직장인이라 흑흑 이랬는데, 그때는 뭐가 씌었는지 저 갈게요. 언니. 이래 버렸다.
계획은 있냐는 언니의 말에 없다고 했다. 언니가 있는 곳이 예쁜 시골마을이라면서 그냥 그럼 시골집에 놀러 온다고 생각하라고, 항공권만 사서 몸만 오랬다. 울컥했다. 내가 뭐라고.
사실 프랑스는 어릴 때부터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나라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욜로하곤 거리가 먼 종족이었다. 20대엔 진짜 서바이벌하느라 유럽여행은 생각도 못했고 말이다. 다만 보르헤스와 비올레타 파라를 무척 좋아했기에, 대학 때 교양 스페인어와 중남미 문화의 이해를 신청해 재미있게 들었다. 나중엔 스페인어 원어민 강의를 듣다가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져 라틴댄스도 추고 그랬었기에 혹시나 영국 다음으로 유럽에 간다면 스페인. 혹은 캘트나 아일랜드 음악만 나오면 이유도 없이 울컥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팬이었으므로 아일랜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 항공권만 사서 가면 된다고 하고, 그 언니랑 있으면 확실히 안전하겠다 싶어서 항공권을 샀고 어느새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서 테제베로 갈아타 언니가 사는 집 근처 도시인 헨느 역에 내렸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쫄보가 참... 나도 나를 이해 못했다.
언니는 날 픽업했고 디낭이라는 중세도시로 안내했다. 꼭 시간여행을 가는 듯했다. 모든 게 오래된 돌로 이뤄진 중세의 요새 도시. 사실 나는 외국인 친구들 남미나 스페인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놀면서 '프랑스인'에 대한 선입견이 좀 생겼다. 뭔가 차갑고 불친절하고 젠체하고. 그런데 막상 이 나라를 보니 그 나라 사람들도 그냥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고. 특히 그 디낭 사람들은 다정하고 성실하고 인심이 좋았다. 그냥 사람마다 다른 거다.
프랑스 디낭의 그 집에서 풀 냄새 잔뜩 맡고, 집안 정원에 있는 산딸기 따먹고 진짜 아무 방해도 없이 혼자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언니의 아주버님이 일 때문에 한 달간 집을 비우시며 내게 흔쾌히 내어주셔서 정원이 딸린 그 집에 홀로 머물 수 있었다. 정말 예쁘고 넓고 무엇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는 그 집은 그저 조용했다.
처음엔 무서워서 잠도 안 왔는데 사람이란 게 적응의 동물이더라.
기대를 하지 않으니, 모든 게 놀라웠다. 난 자매가 없다. 우리집 전체가 외가나 친가나 주로 남탕이다. 그래서 엄마가 항상 그랬다. 너는 진짜 자매같은 친구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그 언니가 내게 그랬다. 나에게 본인의 힘든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놨고, 너무 생각이 많은 나와는 달리 솔직하고 대담하면서도 무척 다정했다. 그 언니의 존재가 오늘도 참 고맙다. 또 기존 프랑스인에 대한 선입견을 확 바꿔놓은 성실하고 명철한 프랑스인 남편, 세상에서 제일 귀여웠던 아들(정말 크면 여자들이 줄을 설거다. 얼마다 스윗한 지)그리고 친척들까지 진심으로 잘해주셨다. 심지어 길과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내가 뭐라고. 어릴 때부터 계속 돈을 벌어야 했던 아무 힘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세상은 독하면 독했지 그리 친절하지 않았는데, 참 모르겠다 싶었다.
그렇게 어느 날 그 집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서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오전 10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Dijkdoorbraak tussen Maren en Alem (1855) by George Andries Roth.
콸콸콸. 슬픔인지 안도 일지 나도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몸의 모든 수분을 다 빼앗기는 듯했고. 언니가 차로 데리러 올 즈음되어서야 멈췄다.
Raffaello Sanzio(1483~1520), St. Michael Vanquishing Satan, c. 1518.
그렇게 디낭에서 3주를 지내는 동안 언니와 언니의 가족들과 함께 생 말로, 몽상미셸 등을 구경하고 나머지 한 주는 파리에서 지냈다. 베르사유도 보고 루브르에서 내가 어릴적 루브르 화집에서 보고 인상깊었던 라파엘로의 '성 미카엘의 승리'그림을 직접 확인하고는 좋아라했고... 그렇게 집으로 왔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노트르담 성당. 화재 전에 가서 내부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빨리 복구되길 바란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그때 내가 나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울고 비명을 지른듯했다.
사람은 자기 몸과 맘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만약 그걸 무시하면 결국 몸이 비명을 지르며 파업을 한다.
갑자기 몸 한쪽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고, 혹이 여러 개 그것도 좀 위험한 쪽에 난 혹이 커져서 수술을 권했다. 좀. 화가 났다. 술 담배로 카르텔을 만들면서 사람 몰아가며 괴롭혔던 그 사람들은 멀쩡 할 텐데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지? 두 번의 응급실로 부족했나? 왜?
그래서 잘 다니던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입원을 하고 뭐 결국은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
수술은 잘 끝났다. 다행히도 1차 의원에서 좋은 병원을 소개해 주셨고, 알고 보니 내게 지정된 선생님이 그 분야의 명의였다. 실비보험과 암 보험이 큰 도움이 됐다.
보통은 자기 전에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를 뇌까리는데, 난 수술 끝나고 그랬다.
수술 후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기까지 후속치료를 받으며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는데 나라에서 무료로 정신건강 검진을 해주는 부스를 발견했고 바로 우울증 검사를 하게 됐다.
매우 위험. 이랬다. 그리고 주민센터에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게 됐는데, 소견서를 써주시더라. 오랫동안 앓아온 것 같다고. 그래서 친한 외국인 친구(이게 한국인 친구가 아니었다는 게 신기하다)가 자기가 다니던 병원을 소개해 줬고. 본격적으로 상담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술 닉자 체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담가놓은 술이 잘 발효됐는데 때마침 술을 거르는 체를 파는 상인이 왔네, 아싸 굿 타이밍 술 먹자 술술)"라고 황희 정승이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 타이밍에 아는 화가 언니가 미술치료 클래스를 여셨고 거기에 등록이 되어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됐다. 또 아는 분을 통해서 무료 상담까지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와중 나는 캘리그래피를 시작했고...
언제는 세상이 다 날 죽이려고 몰아가더니 이젠 치료하려고 여기저기서 약이 투입되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나서 1년 조금 지나 이젠 약을 곧 끊게 된다.
나에게 미안했다. 정말. 방구석에 틀어박혀 나한테 사과를 하고 울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을 쉬게 됐는데... 그게 또 마냥 쉬게 되진 않았다.
뜻하지 않게 외주일 러시가 시작됐다.
모 기업 면접 때 나에 대해 잘 봐주셨던 분이 자기가 있던 회사의 제안서 작업을 부탁하시면서 부터다.
또 옛 직장 동료가 공공기관에서 나오는 매뉴얼 북을 편집해 달라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주욱 제안서나 사업계획서를 쓰고, 때론 지자체장 앞에서 준 PT식으로 중간 브리핑을 한 뒤, 일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잡은 마이크가 낯설었는데, 일어서서 해야 하거나 경쟁 피티가 아니어서 부담은 덜했다. 이어서 단행본 편집일이 들어왔다. 단행본을 편집하고 카드 뉴스를 만들고 보도자료를 쓰고 그렇게 집에서 일을 했다. 최근엔 처음 PT를 배웠던 회사에서 요청한 작업을 두 어개 정도 완료하면서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간의 경험과 개고생이 전혀 쓸모없진 않았다. 이러다보면 나도 언젠가 '짬바(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그리고 작은 공모전들에서 좋은 소식들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글을 못쓰는 쓰레기인 것을 자각은 하고 있지만 말이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프레젠터가 된 것처럼 말이다.
마주하기 싫은 최악의 순간. 이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그때 난 집 근처 공원을 몇 시간이나 걸었었다. 서럽고 힘들었다. 그리고 좋은 기억이 간간이 떠올랐는데 그 좋은 추억이 다 끝나버려서 더 맘이 아팠다. 물리적으로 심장이 조여 오고 통증이 왔다. 그런데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거다.
좋은 일이 끝이 있으면, 나쁜 일도 끝이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건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고 '끝'이 있다는 거다. 그게 증명된 이치이고, 그 논리를 따라가면 이 나쁜 일과 기분도 끝이 날 거다.
원치 않게 시작되고 원치 않게 끝나고 그런 일이 반복되고, 수많은 사람과 사건이 나를 박살내고 아프게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정말 노답이다 싶었는데. 다 지나고 보니 끝이 났고, 그 과정에 나를 지탱해주는 사람과 기회, 사건들이 많았다. 내가 싫어했던 나의 성향이 의외로 나를 살렸고, 무엇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아끼고 도와주고 지켜봐 주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무엇보다 싫은 걸 끝까지 견뎌내다 최악의 방법으로 세상을 끝내지 않고, 때론 아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경고를 해준 나에게 앞으로는 좀 더 잘하려고 한다.
"뫄뫄야 나를 구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나를 돌봐 단단하게 만들면 언젠가 나도 내가 받았던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