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세상 있죠~ 피스 비 이스 마이 네트워크 아이디~' 웹의 초기 르네상스 시절 데뷔한 보짜르트님은 처음부터 반짝였다.그 회사를 떠난 다음엔 인쇄나 종이 쪽은 싹 다 잊고, 웹진 회사 그리고 SNS 쪽과 캐릭터, 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종합 홍보대행사에서 일을 했다.
내가 일에 투입되는 범위는 회사의 규모 절반, 그 회사에서 나를 채용할 때 기대하며 책정한 임금에 따라 달라진다.
그 부분을 파악하는 일이 내게 중요했다. 거기에 따라 제안 기획을 하면서 내가 실제로 제안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를 하든가 아니면 초기 프로세스를 세팅해서 실무팀에 전달을 하든가 그 부분이 달라지고, 그 '범위'가 확실해야 나도 다른 사람도 심지어 회사까지도 일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다.
모든 회사가 칼로 자른 듯 반듯하고 공정하지 않다. 그전에 참고 참고 참고하다가 쓰러지니 유난한 사람 취급받고 사약 길 걸었던 기억이 생생했다. 아무래도 큰 일 겪다 보니 사람이 조금은 변하게 됐다. 처음엔 서글펐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닌듯했다.
처음 웹진 프레젠테이션을 기획하고 발표를 했을 땐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 전처럼 이미 큰 회사에서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심사의원이나 발주업체의 담당자에게 정량적인 평가로 그게 어느 정도 인식이 되어 있다면 모를까. 그냥 그 자리에서 생짜로 회사의 수행능력과 나를 포함한 인력의 배치와 실제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 까지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심사위원은 여러 명이다.
세상은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제레팸들 다 만나고 오겠네 (출처 :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그분들은 뭐 처음부터 심사위원으로 태어났겠나? 그냥 그 분야의 실무자나 그 분야에서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다. 질의응답 시간이 관건이었다. 각자 전공에 따라, 그리고 그 심사에서 자신이 중점적으로 봐야 할 부분에 대해서 질문은 한다. 그게 반영이 되고, 또 정량적 부분. 회사에서 얼마큼 이 일에 돈을 쓸 수 있는지 그걸 얼마나 잘 활용할 건지 그런 부분까지 전부 계산하면 어느 정도 '수주'의 가닥이 나온다.
그래도 모르는 거다. 정말 입찰 하나로 모든 걸 결정하는 곳과 아닌 곳이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그 전의 홍보물 기획에선 그저 이 홍보물을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 하나만 집중하면 됐다. 그러나 웹 쪽으로 옮기고 나선 그걸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 혹은 인력 풀을 갖추고 있는가를 설명해야 했다. 시스템이야 하루 정도 설명을 들으면 소화시켜 발표할 수 있었는데 그놈의 인력 풀이 문제였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그 회사의 대표가 세팅해야 할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웹 쪽은 제안요청서(RFP:Request for Proposal)가 인쇄 쪽 이랑은 많이 달랐다.
각 시스템 요청사항에 당 회사가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가가 일련번호로 쫙 나와있고, 제안서 즉 PT자료에 그걸 다 때려 넣어야 했다. 확실히 기존 제안서보단 글씨가 많고 복잡했다. 사안에 따라 차이도 많이 났고.
그래서 기존엔 보통 워드나 한글로 원 라이너를 잡았는데, 이 제안서는 엑셀부터 시작했다.
엑셀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그런데 이게 나쁘지 않은 거다. 뭔가 콘셉트로 승부를 봐야 하는 큰 기업의 인쇄 제안서보다는 담백하게 갈 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글 못쓰는 쓰레기'가 문예창작과에서 죽비 맞아가며 배운 건 '기름기 잔뜩 낀 글은 지옥'이었다. 그냥 사실 그대로 RFP가 물어보면 답을 하면 됐다. 처음엔 용어 적응이 힘들었지만 기존 자료를 틈틈이 보니 익힐 수 있었고, 그냥 이거야 말로 블록 맞추기 그 자체였다.
물론 그걸로 끝나진 않았다. 그 바탕에서 기존 홍보물 제안서에서 수행했던 대로 콘셉트를 잡고 디자인 시안을 얹고 하는 프로세스를 더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 막상 발표 자리에 가고 나니 의외로 심사장에선 시스템에 대해 물어보는 심사위원은 없었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스타야 뭐 디아블로나 롤드컵까지 다 한국은 어나더 레벨이라... 최근 모 할리우드 배우가 한국 게이머 도발하는 게임 광고까지 찍을 정도면 말 다했다. 이미 웹진의 시스템은 아주 뛰어나지 않은 한, 대부분 잘 갖춰져 있었다. 기본 지식은 갖되 그리 겁먹을 일은 아니었단 걸 알게 됐다. 누리집을 구축하거나 시스템을 만드는 PT라면 모를까. 웹진은 이미 그 기반은 갖춰졌다는 정량적 평가가 난 상태에서 업체를 발표장에 세우는 거니까.
그래서 처음에 두 번은 물을 먹고, 한 달 뒤 큰 공공기관의 웹진 두 개를 수주, 모 기관장 앞에서 착수보고회 발표까지 하게 된다.
SNS 홍보의 경우 웹진 뿐만 아니라 각종 SNS 플랫폼들 그걸 아우르는 키 메시지와 실행방법까지 고려해야 했다.SNS 전반의 홍보 제안서는 이 웹진의 제안서와는 또 달랐다. 훨씬 복잡하고 세세했다.
당시 회사의 부서장님도 인정한 바였다. '이건 완전 논문이지'
그 전의 전설을 남기고 사라진 모 이사님이 그렇게 틀을 만들어 놓으셨고, 거기에 맞춰가느라 헉헉댔는데. 이 제안서가 내겐 많은 공부가 됐다.
그곳을 거쳐 친구의 사업을 도와주려고 제안 관련 일을 담당했는데, 거기서 그 논문 제안서를 톺아본 일이 큰 도움이 되었고, 시안까지 내가 그냥 다 작업해서
공공기관 SNS 관련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진행까지 마무리 지었다.
다양하다면 다양할 매체를 거치면서 결국
RFP가 무엇을 말하고 원하는지 파악하는 게 관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꼭 수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때 제대로 공부를 해두면
다음 제안서를 쓰고 발표할 때 크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심사위원, 발표장에 들어가면 그분들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는데
그분들도 사람이다. 처음부터 심사위원 종족으로 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결정은 정량적 서류와 결국 기관의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바로 그 기관이 RFP를 만드는 주체이고...
그리고 모든 일은 착수 전 기관이나 기업이 내놓은 RFP를 보고 이 입찰을
우리가 해낼 수 있는지 '각'을 재야 한다.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없이
언젠간 되겠지라고 마구잡이로 뛰어들면 결국 회사가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
지난 회사에서 고생을 하고 떠나왔지만 사실 그게 개인적으로 볼 때 나쁜 일로 마무리되진 않았다.
아마 거기 계속 있었으면 고인 물이 됐을 수 있었겠다 싶다.
안 좋은 경험은 분명히 있고, 상처도 남지만 본인이 어떤 각도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력을 바꿀 수 있다 생각한다. 물론 나쁜 놈들은 나쁜 놈들 맞다.
몸에 병이 생겼고, 수술을 해야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