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필요했다

Dancing with Monsters 1

by Dolphin knows

어릴 때다. 실제 눈에 비치지 않았던 것을 꼭 실제 본 것처럼 묘사할 때도 많았고

꿈과 현실의 경계가 어른처럼 단단하지 않아서일까 꼭 꿈에서 본 것이 현실에도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았다.

그리고 가끔 보이지는 않지만 그 큰 괴물의 손을 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길을 걷거나 한 적도 있다.

생각은 자유니까. 당시 내가 있는 물리적인 공간의 크기와 상관없이,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은 깡그리 무시하고 무척 큰 털북숭이 괴물이나 거대 파충류가 나와 같이 길을 점프 점프해서 가거나

혹은 내 위에 거대한 천둥새가 전봇대만큼 큰 깃털을 떨어뜨리며 내 위로 나와 눈을 맞추며 나는 등

적어도 그 생각을 할 때면 외로움이든 괴로움이든 조금은 달아났다.

그 괴물은 내가 봤던 텔레비전 다큐라든지, 타임라이프 텔레비전 동물 화보집에 나온 온갖 기이한 동물들을 조합한 모양이었고 가끔은 물에 살고 가끔은 하늘을 날고 가끔은 온갖 벽을 뚫거나 부수고 나타났지만 현실세계에서는 먼지 하나 날리지 않고 존재했다.


나는 그 존재들이 필요했다.

초등학교 1학년 나는 서울 중심부 상업지구로 이사를 오게 된다.

정확히는 광화문. 당시 강남 개발이 완료되어 정착된 상태였고, 좀 산다 싶은 아이들이나 집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당시 신 8 학군이던 강남이나 일산으로 이사를 갔다.

우리 부모 시절엔 꽤나 유명했던 초등학교들은 내가 그곳으로 이사했을 땐 매우 쇠락하고

인프라도 노후한 학교로 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매우 거칠었다. 원래 살던 그 동네의 분위기와는 사못 다른 뭔가 오래되고 음침한 분위기, 그리고 반 안에서 일종의 '갱'놀이를 하는 몇 아이들과 동조자들.

엄마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느라 여느 가정주부들처럼 날 살뜰하게 챙길 시간이 없으셨다. 거기에 원망은 없다. 어떤 부모든 자기 아이를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최선을 다하니까. 그리고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하고

똑똑한 엄마는 내 자부심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덕분에 먹고살았으니까. 그런데 나는 계속 우울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ADHD도 앓았던 듯하다.

제대로 뭘 챙기지 못하고 그렇지만 성적이 나쁘지 않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발표시간엔 발표하고 대답해버리니 또 그러면서 준비물도 잘 까먹고 늦으니 당연히 눈에 띄는 타깃이 되었다.

좋은 친구들도 꽤 많았지만 상업지구에서 보통 부모님 두 분이 장사를 하시느라 나보다 더 케어를 못 받은

아이들 중 마음의 빈자리가 큰 아이들, 더 거친 환경에서 큰 아이들은 반에서 아이들을 누르고 때리며 주도권을 잡았다. 하필 난 그 중 하나에게 미움을 받았고 전방위적인 괴롭힘이 시작됐다. 지금와서 보니 그 주도자 애는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문제가 상당한 부류였다. 나를 아끼는 친구 몇이 나를 도와줬지만 역부족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훨씬 분별없고 잔인하다. 그리고 지금 선생님들은 그럴 일이 없는데

당시 그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이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썩었다.

우리 부모님의 학벌이 나쁘지 않고 엄마 직장이 좋으니 촌지요구가 공공연했다.

엄마는 신앙이 있었고 또 모든 종교인이 그렇진 않지만 '불공정'에 대한 결벽증이 좀 있으셨다.

그래서 절대 촌지를 주지 않았다. 나도 엄마가 시켜서 몇 번 떡 같은 걸(그분이 기대했던 봉투따윈 없는 그냥 떡 그자체) 갖다 드렸다가 불호령을 맞은 적이 있다.

누가 이걸 달랬냐고. 여덟 살짜리가 뭘 알겠는가. 그저 선생님이 소리지르니 무서워서 울었다. 돈을 달라는 말을 못 알아들은 내가 멍청했던 거다.

슬프게도. 그 초등학교 6년 동안 만난 선생님 중 3명이 왕따 주도를 하셨다. 엄마는 화를 누르시다가

그중 가장 심하게 한 한 분을 내 담임이 끝나자 내 손을 붙잡고 찾아가셨다.

그분은 아이를 낳고 회복 중이셨고, 엄마가 젖병과 아이 옷 몇 가지를 주셨던 것 같다.

그분이 울었다. 정말 말 그대로 울먹였다.

'00 엄마 내가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이게 엄마의 우아한 복수 방식이었다.
내 아이가 네 영향권 하에 있을 땐
너는 결코 나 때문에 어떤 이득도 못 보게 할 거고
내 아이때문에 누구도 손해 보게 하지 않을 거다.
난 그런 엄마의 자존심이 너무 좋았다.

나중에야 엄마가 상황을 설명해주셨다. 담임이 돈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계속 거절했다고 한다.

엄마도 어린시절 부잣집 아이의 부모가 선생한테 돈을 줘서 상과 발표기회를 여러번 빼앗겼다고 한다.

그 어린 시절을 겪으니, 생각이 많아지셨고 그때의 결심대로 실천을 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그 아픔을 아니까 가해자는 되기 싫으셨던 듯 하다.


그러니 상황이 이해됐다. 왜 갑자기 이유도 없이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주고, 이 반에 재수 없는 아이가 있다고 수업시간에 날 보면서 또 반의 몇 강한 아이에게 눈짓을 하면서 그랬을까. 싸인을 준거다.

왜 툭하면 바쁜 우리 엄마를 불러 나땜에 못살겠다 했는지.(사고를 친적이 없었다. 그럴 기운도 여력도 없었다. 애들한테 괴롭힘 당하고 무시당하느라 계속 멍한 상태였으니까) 왜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그 아이를 굳이 그렇게 감싸고 돌았는지 등등. 굳이 그럴 필욘 없었는데 싶었다.


여하튼 학교는 지옥이었고, 집에 오자마자 아빠와 고모가 잔뜩사서 책장에 넣어주신 온갖 책을 읽었다.

책이 좋았다. 나를 공격하지 않고 그저 자기를 펼쳐 보여주는 매우 안전한 친구였다.

그리고 집 옆에는 큰 공원이 붙어있어서 온갖 곤충과 동물, 식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아이들이 끌고 가 때리고 괴롭혀서 또 투명인간 취급해서 힘들었을 때

집 옆에 붙은 공원서 맘을 달랬다. 거기 내가 기대서 쉬던 큰 플라타너스 나무가 있었다. 내가 굳이 말을 안 해도 그냥 묵묵히 내 맘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렇게 나는 괴물을 만들었다.

사람형태는 아니어야 했다. 사람이 싫었다.

내 곁에 아무것도 안바라고 그대로 있어줬던 그 나무처럼 말없이 담담하며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처럼 거대한 무엇보다

필요할 땐 나를 괴롭히는 놈들을 밟아 터뜨리거나 날카로운 발톱으로 찢든지 혹은 이빨로 산산조각 내는 괴물을 말이다.


신기하게도 이 모든 괴로움은 그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라졌고

특히 중2 때부터 고등학교 땐 애들이랑 몰려다니면서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창 괴롭힘을 당할 땐

그게 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거기가 그랬던 거다.

그렇다고 난 내 괴물을 버리진 않았다. 언제나 괴롭거나 힘든 일은 있으니까. 난 그 괴물과 함께 먹고 자고 놀았다. 때론 온갖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접한 각종 특성을 주어 진화시키면서 함께 견뎌냈다.

약한 사람에겐 괴물이 필요하다. 괴물이 없으면 안 될 만큼 잔인한 환경이나 사람을 꽤 자주 만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