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은 생겨, 그래도 살아갈 순 있어
Dancing with Monsters 2
by Dolphin knows Sep 25. 2021
여중이라는 곳. 일단은 교복이란 걸 처음 입었고 복잡한 교칙이 좀 많이 답답했다. 그 말도 안 되는 교칙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납득하기 어려웠다. 또한, 내가 다닌 초등학교 교사들이 대놓고 썩었다면 중학교 교사들은 몇 분 제외하고는 비겁하고 권위적이라 좀 많이 힘들었다. 특히 그 학교가 워낙 오래된 학교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좀 폭력적이고 반을 휘두르려 했던 애들이 다른 학교로 흩어졌다. 확실히 달랐다. 애들이 폭력이나 욕을 거의 하지 않았다. 좀 노는 아이들이 있어도 지네끼리 뭐 담배 피우고 노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 모인 곳에 대한 불신이랄까? 뭐 하나 꼬투리 잡아 사람 하나를 바보를 만들고 말도 안 되는 말로 죽일 인간을 만들어 놓을 수도 있는 곳이었기에...
초등학교 시절 몇 년 동안 하도 괴롭힘 당하고 구석에 처박히다 보니 '응 너네가 날 미워하든가 죽이든가 맘대로 해. 나도 너네가 죽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쓸 거임!'이 마인드로 살게 됐고. 좀 사람이 꼬이게 됐다.
그래서 였는지 중학교에 들어와서 뭔가를 바꿔보고 싶었는지 실험을 한 번 해봤다. 아는 게 있어도 궁금한 게 있어도 다른 아이들처럼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보는 거다. 그 아이들이 만든 침묵 속에 대충 나도 잠겨보는 거였다. 이해는 안 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대로 몇 가지를 흉내 좀 내봤다.
신기하게도 이 실험 이후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나의 작은 실수나 결점을 미친 듯이 찾아내려던 핀셋들이 사라졌다. 낯설었던 학교가 또 아이들이 친절해졌다.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 피가 식었다.
아이들이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그 바뀐 태도가 너무 적응 안되고 좀 얄미워서 가끔은 일부러 밥을 혼자 먹었다. 반 애들이 보곤 '야 왜 혼자먹어!'하고 곧 데려갔지만.
초등학교 때 그렇게 밥을 같이 먹고 싶어도 나를 외면했던 아이들이 이렇게 달라졌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바로 그 아이들은 아니었지만 '패턴'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겨우 이거였냐? 이거 때문이었어?
그리고 초등학교 때 만든 괴물도 그때보다 더 다양한 매체, 예를 들면 과학잡지라든가 중학교 연령이면 볼 수 있게 된 좀 폭력적인 크리쳐 물이라는 걸 보면서 좀 더 정교해졌다.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 삼촌이 일본 출장에 다녀와 '메가드라이브'를 사다 주셨고, 그때부터 정말 다양한 게임을 했다. 일단은 소닉. 나는 이 쌩쌩 달리는 파란 고슴도치에게 매료됐다. 언덕이고 나발이고 신경 안 쓰고 링 먹으러 씽씽 달린다. 그 속도감이 속이 뻥 뚫리도록 좋았다. 파이널 판타지에 나오는 매력적인 소환수들, 공작왕에 나오는 그로테스크한 원령과 괴물들, 수왕기의 거대한 용과 괴물들, 그리고 슈팅게임 알 타입의 코스믹 호러급의 괴물 등등이 내 맘을 사로잡았다.
초등학교 시절의 괴물이 상처 입어서 더 거대해지고 파괴력이 센 괴물이었다면 중학교 시절은 나름대로 그 괴물에 서사랑 스토리가 붙었다.
중학교, 특히 여자중학교의 매일은 대부분 평화롭게 흘러갔다. 친구 집에도 놀러 가고 학교 앞에서 떡볶이도 먹고 어떤 친구는 자기 생일이라며 순대볶음을 쏘는데, 좀 얼얼했다. 어... 나쁘지 않은데 이러면서 적응했다.
또 원거리가 아닌데 편지를 받는 곳이었다.
처음 편지라는 걸 받았을 때 이해가 안됐다. 그냥 이건 말로 해도 될 안부인사 정도였는데 왜 이걸 편지지를 사서 쓸까? 일단은 받았다. 그리고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편지를 써준 친구가 화가 나고 삐쳐있었다.
왜 그랬냐고 묻자 답장을 왜 안 하냐고 하더라.
그 무언의 약속이라는 걸 내가 너무 몰랐구나 처음 깨닫게 된다. 효율보다는 서로 그게 맞다고 합의를 본걸 내가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다음부터 열심히 답장을 썼다. 그때부터 아 글 쓰는 게 나에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조금 알게됐다. 그리고 롤링페이퍼라는 게 등장했고 그때도 좋은 말들을 꽤 많이 써준 기억이 난다.
그렇게 친구가 하나 둘 늘어갔다. 음악 취향이 맞아서 같이 듣는 친구도 생기고 식성이 비슷한 친구도 생겼고, 뭐 그중에서도 좀 맘보 나쁜 애가 있긴 했는데, 그런 애가 휘두를 만큼 애들이 망가지진 않았다. 자정작용이랄까 그런 게 좀 있었다. 힘 있고 착한 아이의 존재가 그래서 꼭 필요하구나 라는 걸 알게 됐다.
그중 꽤 괜찮은 친구가 있었다. 이름에 '해'의 이미지가 들어가 있었다. 웃을 때 정말 햇살 같았다.
인싸는 아니고 그저 평범한 친구였고 공부는 나름 열심히 잘했었다.
쇼트커트에 외모엔 별로 관심이 없어도 감정표현도 풍부하고 여느 중2답지 않게 매우 긍정적이고 세상을 희망적으로 보는 친구였다.
그 친구를 관찰하면서 참 신기했다. 금수저도 아니었고 때론 외로울 수도 있을 텐데 세상에 대한 불만이 없는 건가? 아니 있긴 있어 보였는데, 자존감이 좀 튼튼하고 밝은 미래를 예상하고 계획을 짤 줄 알았다.
그때 한창 중2 때였고 가끔은 납득할만하지만 대부분은 이유도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까대며, 심지어 수업시간, 특정 교사수업에 보이콧 비슷하게 하는 무리들이 좀 있었다. 그런 애들이 주도해서 몇 교사를 찍어 수업진행상 필요한 질문에 어떤 대답도 안 하고 수업시간 자체를 싸늘하게 만드는거다. 대충 보였다. 분명 자기가 잘못해서 지적받고는 이게 그 교사때문이라고 징징댔고 거기에 동조하는 비슷한 아이들. 그리고 행동계획을 세워 유치한 짓을 했다.
나는 이도 저도 다 싫었기에 그저 방관했다. 기본적으로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미얀하지만 내 친한 친구 빼고는 리터럴리 죽든말든 뭘 하든 신경쓰기도 싫었다.
그런데 그 와중 그 햇살 같은 친구가 어떻게든 그 교사를 도와보고 분위기를 좋게 해 보겠다고 대답도 하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솔직히, 존경스러웠다. 용기. 특히 사람을 믿는 용기가 말이다.
그렇게 몇 번의 롤링페이퍼가 이벤트처럼 돌아갔고 나는 그냥 멍하니 졸고 있는데
그런 그 친구가 내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 내용이 좀 많이 아팠다.
00야. 요새 힘들다
나는 별 뜻 없이 누구한테 아부하려는 게 아니라
수업시간 분위기라도 살려보려고 대답도 하고 참여도 하는데
애들이 너 나대지 마라. 튀지 마라. 등등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때론 쪽지를 쓰고 그런다. 속상하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 화가 났다. 다시 괴물을 불렀고 그 아이들, 그 분위기 주동자들을 초음속으로 들이받고
불로 지져버리고 거미줄로 칭칭 감아서 교실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비겁했다.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답장을 쓰는 거였다. 엄청 화가 난 상태에서 써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 못 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정말 걔네들 웃긴다. 비겁한 것들
너는 맞는 일을 한 거고, 꼭 그런 것들이 있다.
자기네들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남 비난하는 것들
걔네들 말 신경 쓰지 마라.
너는 옳았고. 너를 지지한다. 뭐 그런 말...이었다.
뭔가 그 이후로 그 친구와 더 가까워졌다. 어느 휴일이 생각난다.
둘이 교보문고에 가서 책도 실컷보고 파파이스에 들러서 치킨을 먹었는데 그때 비스킷이 맛있어서 따로 싸갔다. 너무 조용하지만 평화롭고 맘이 나아진 순간 같았다. 그 친구도 그랬을까?
그러고 집에 왔는데 영화 '바그다드 카페'가 집에서 하고 있었다.
두 여자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그 우정과 'Calling you'라는 명곡. 아직도 그 영화를 보거나 노래를 들으면 그 친구가 기억이 난다. 학창 시절 몇 안 되는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는 순간
그 이후로 우린 각자 대학교에 합격하고 나서도 우리 집에서 숙제도 함께 하고 그랬다.
십대는 그 중 대한민국의 십대는 거의 피곤하고 대부분은 힘들고 싸울 것들도 많다. 그러나 그걸 상쇄할 만한 신기한 경험과 만남의 순간도 조금은 있다.
2011년 스티븐 스필버그와 J.J. 에이브러함스가 만든 '슈퍼 8'에서 기억이 남는 장면이 있다.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 그리고 아내를 잃은 사실 때문에 이웃과 불화하는 아버지
무엇보다 인간에게 잡혀와서 계속 고문받고 고통받는 외계 생물체, 뭐 시쳇말로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은 너무 괴로운 나머지 사람들을 잡아서 혼쭐을 내려하고 결국 주인공에게 까지 닿는데
주인공이 그런 말을 한다.
"I know bad things happen. But you can still live."
나쁜 일은 생겨. 그래도 계속 살아갈 순 있어
미친 듯이 마을을 때려 부수고 사람을 잡아 죽이려던 괴물, 외계 생명체는 그 말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소년을 풀어주고 자신을 괴롭혔던 자들의 땅을 떠난다. 자신에게서 강탈했던 특별한 재료와 그 땅의 고철더미를 싹 다 가지고 말이다.
괴물에게 건넸던 말. 사실 주인공이 자기에게 여러번 해줬던 말이었을거다. 바로 그 말이 모든 소동을 끝냈다. 공장 사고로 엄마를 잃은 소년의 진심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괴물에게 최선의 위로가 됐다.
내가 유년기에 겪었던 일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고, 좋은 경험이라고 미화될만한 일도 아니었다.
또한 그 친구는 '어린 꼰대들이 부린 말도 안되는 몽니'의 피해자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겪었던 엿같은 일들이 그 친구와의 연결고리가 됐다.
길게도 짧게도 살진 않았지만 아무것도 예측할 수도 또 지금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겪는 모든 일이 앞으로 나와 세상에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