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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Nov 11. 2024

카피라이터의 일: 카피라이터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오하림 <카피라이터의 일> 서평

출시가 늦어진 매트리스 브랜드는 ‘느리게 그래서 제대로’

시폰 소재는 ‘바람이 완성하는 하늘하늘함’

패딩 슈즈는 ‘겨울엔 겨울의 신발이 있다’


평범한 것에서 고유함을 표현하는 11년차 카피라이터 오하림이 생생하게 전하는 글의 맛과 멋, 그리고 한 줄의 카피를 완성하기까지의 뼈를 깎는 시간들에 대한 고찰.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글을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 이 고민은 사실 카피라이터 뿐만 아니라 언어를 통해 소통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이에 대해 11년의 시간 동안 차분히 쌓아 올린 내공을 저자는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굳이’에는 애정이 담겨있고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힘을 발휘합니다.
p.28
그래서 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카피를 발로 쓰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되어보는 일은 그 사람을 아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요.
p.65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의 디테일, TBWA와 같은 크리에이티브에 뛰어난 광고회사에서 제작 팀이 어떻게 일하는지도 엿볼 수 있다.



제가 경험했던 좋은 캠페인의 단초는 대부분 그 ‘빈 머리 회의’에서 나왔습니다.
p.53
이처럼 카피라이터들에겐 성우의 높낮이, 입모양, 미소, 끝음 처리 등이 메시지를 완성하는 재료입니다.
p.58



하지만 이 책이 정말로 특별한 이유는, 카피라이터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온 저자의 커리어 여정과 거기에서 오는 일에 대한 깊은 고민의 밀도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려면 덜 좋아하는 마음이 필요하더라고요. 이것을 깨닫는 건 온전히 저의 몫이었습니다.
p.96
모른다는 것이 이 업을 해나가는 데 결점이 아니라 사실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요.
p.126



특히나 저자가 나와 비슷한 연차여서 그런지, 오래 알던 친구와 조곤조곤 일과 삶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눈 듯한 여운이 남았다.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는 느낌이 아니라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독자 스스로 생각해볼 만한 제안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친절한 제안 중 이 두 가지가 특히 좋았다.



언젠가 눈에 보이는 글을 쓰고 싶다면 자신만의 표현 창고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 될 거예요.
p.31
카피라이터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직업에도 물음을 던져보세요. 한 직업만 하고 살기엔 너무 긴 인생이며 세상은 정말 넓으니까요.
p.92



마케터와 카피라이터는 공통 분모가 있다. 카피라이터가 ‘글’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좁고 깊게 고민하고 표현하는 역할이라면, 마케터는 넓고 얕게 ‘글’과 다른 영역까지 포함하여 고객에게 가닿을 전략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민하고 추진하는 역할이다. 마케터로써 상세페이지나 CTA 문구, 소셜 미디어 문구를 쓰는 일은 익숙하지만, 속도를 중시하는 스타트업 환경에서 마케팅을 했다보니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완성도 높은 결과물에 공을 들인 경험은 많지 않다. 그랬기에 하나의 카피가 나오기까지의 ‘정성’이 느껴지는 카피라이터의 일을 여러 각도로 들여다보는 일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더 좋은 표현 방식, 글의 맛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법하고, 반짝이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어떤 평범한 말도 자신의 자리를 찾는 순간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습니다.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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