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온 이민, 그러나 멈추지 않았던 발걸음
그 남자는 한국에서 누구보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스포츠를 좋아하고, 태권도를 사랑하며, 드럼 치기를 즐겼다. 교회에서는 청년부 회장으로 활동하며 열정적으로 공동체를 이끌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웃게 하는 순간에 보람을 느꼈다.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 1학년을 마친 뒤, 부모님과 누나의 늦은 이민으로 홀로 남겨졌던 그는 결국 가장 마지막에 미국 땅을 밟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삶은 한국에서의 일상과는 전혀 달랐다.
안락했던 한국집과 달리, 부모님은 정착을 위해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는 낯선 언어와 문화 앞에서 늘 긴장해야 했다. 의료 관련 직업이 전망이 좋다기에 등록한 해부학과 심리학 수업은 영어 장벽 앞에서 벽처럼 느껴졌다.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공부에만 집중해라.”
부모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그는 부모님의 고단한 삶을 두고 홀로 편히 공부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밤에는 슈퍼마켓과 음식점, 주류판매점 등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으려 자립을 택한 것이다. 건장한 청년이었지만, 지친 몸은 버티지 못해 어느 날은 코피를 쏟으며 쓰러지듯 하루를 마감하기도 했다.
앞으로 나아가려 애썼지만 변화는 더뎠다. 날들은 막막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히 버티면 언젠가는 빛을 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던 2008년 가을, 메릴랜드의 한 교회 수요예배에서 그녀를 처음 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시카고 교회 수련회에서 우연히 알게 된 그녀의 언니를 통해 인사했을 뿐이었다. 첫인상의 그녀는 차가워 보였다. 눈길조차 오래 주지 않았고, 대답도 짧았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왠지 까칠한데? 가까이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같은 셀에 배정되면서 다시 마주하게 된 그녀는 달랐다. 세 살 연상의 그녀는 올해부터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일한다고 했다. 언제나 단정했고, 교회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저도 늦게 유학 와서 기적처럼 직장을 구했어요. 정말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으니까 길이 보이더라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눈빛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저도 할 수 있었으니, 당신도 분명할 수 있어요.”
만남이 이어지자, 조금씩 달라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웃음소리는 은방울처럼 맑았고, 목소리는 따스했다. 밝은 웃음으로 늘 주변에 에너지를 전하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가슴속 답답함도 서서히 녹아내렸다.
가끔 힘든 하루 끝에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으면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점점 더 좋아질 거야, 힘내!”
그 말은 지친 그의 마음에 작은 등불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이 사람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지탱해 줄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는 몰랐다.
그때의 그녀는, 혼자만의 고단한 하루와 마음 깊은 외로움을 안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