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미국을 떠나던 날

연인처럼 찍힌 사진

by Hannah

밤늦게 주류 판매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남자는 문득 그녀를 떠올렸다. 지친 하루 속에서 가장 그리운 이름. 용기를 내 걸었던 전화에, 항상 일찍 자던 그녀가 환하게 전화를 받아주었다.

“힘들었지? 내일 아침 같이 먹자. 그리고 예배도 같이 드리자.”
그녀의 목소리는 늦은 밤의 피로를 단번에 씻어 내렸다.

다음 날, 두 사람은 작은 카페에서 아침을 함께했다. 따뜻한 커피 향과 소박한 빵, 그리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대화. 예배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짧은 만남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듯한 위로가 되었다. 바쁜 하루들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이렇게 한 번씩 마주 앉을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었다.


시간은 흘러, 그녀의 어머니가 미국에 방문했다. 남자는 어머니와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고, 어머니와 딸이 여행을 오갈 때마다 흔쾌히 라이드도 해주었다. 그녀의 세계에 조금씩 발을 들이는 순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미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

카페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남자에게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공항에 나와서 우리 딸을 마중하는 사람이 진국이예요. 그런 사람이랑 결혼해야 해요.”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남자의 마음은 이미 진심이었다. 바쁜 하루에도, 피곤에 절은 몸에도, 그는 기를 쓰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날만큼은 어떤 일정도, 어떤 피곤함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공항 로비에는 캐리어 끌리는 소리와 안내 방송이 뒤섞여 있었다.
사람들 틈에 서 있는 그녀의 어깨 위로, 작은 배낭과 커다란 트렁크가 무겁게 얹혀 있었다.
남자는 잠시 그 트렁크 손잡이를 대신 잡아주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보딩 게이트 앞에 서자, 전광판의 깜빡이는 출국 시간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점점 좁히는 듯했다.

그의 입술은 수차례 열렸다 닫혔지만, 끝내 말로 이어지지 못했다.
“가지 말라”는 한마디조차, 아직 준비되지 않은 현실 앞에서는 허공에 흩어질 뿐이었다.

“나 다시 꼭 돌아올 거야. 여행으로라도 올게.”
여자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속엔 남자를 향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남자는 순간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유학생 신분이었고, 영주권은 감감무소식이었으며, 생활은 아르바이트로 버티는 형편이었다.
붙잡는다는 건, 그 모든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그는 그녀를 잡지 못한 채, 사람들 사이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날 공항에서 단체사진을 한 장 남겼다.
일곱 명이 나란히 선 사진, 가운데에는 남자와 그녀가 서 있었고, 양옆으로 다섯 명의 여자들이 반원처럼 둘러섰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모였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두 사람은 사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사진이 훗날 결혼식 슬라이드에 다시 등장하게 될 줄은.
이미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은 하나의 그림 속 중심이 되고 있었음을.

그날 그는 알았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지는 사람이 더 외롭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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