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늘 ‘기다림’ 속에 있던 아이: 한 교육자의 깨달음
나 자신의 대학 경험이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에 대한 믿음에 첫 균열을 냈다면, 아들 션의 초등학교 시절은 그 균열을 더욱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수습할 수 없는 파손에 이르게 했다. 션은 아주 어릴 때부터 세상 만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끓어오르는 아이였다. 단순한 반항심에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원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순수한 열정 때문에 끊임없이 “왜?”라고 물었고, 어린 시절 알버트 아인슈타인에게 푹 빠져서 성인도 이해하기 힘든 여러 가지 원리들을 열심히 들춰내는, 남다른 학구적 관심이 있었다.
션은 본래 불평하는 아이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인 내가 놀랄 정도로 인내심이 강하고 자기 절제가 뛰어난 아이였다. 이런 자질은 우리 온 가족이 시원이를 함께 키우면서 적극적으로 길러 주려고 노력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괜찮다고 생각하며 쉽게 불평하거나 좌절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동시에 농담을 건네 다른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일상에서 유머를 찾아내는 유쾌한 면모도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쉬는 시간에 함께 노는 등, 사회적인 관계를 즐겼으며 그런 소통의 순간들을 진정으로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학교가 학업적인 면에서 션에게 별다른 자극을 주지 못하고, 즐겁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여러 가지 행동과 지나치는 듯한 말에서 느낄 수 있었다. 교과 내용은 쉬웠고, 좀처럼 도전을 받는 일이 없었다. 션의 ‘기다림’은 단순히 친구들이 진도를 따라잡는 그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때로는 다른 아이들이 지시를 따를 때까지, 혹은 수업 분위기가 바로잡힐 때까지, 또는 자신이 이미 바로 이해한 지시 사항을 선생님의 반복적인 설명 아래 다른 아이들이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션은 구두 지시에 대한 정확도가 특히 뛰어났기에 어떤 면에서 션은 자신만의 ‘FM’대로 움직였다. ‘FM’은 마치 ‘야전교범(Field Manual)’처럼 규칙과 절차를 문자 그대로 따르는 사람을 한국 문화에서 일컫는 표현이다. 션의 경우는 자칫 고지식함이라고 여겨질 만큼 말을 통한 지시를 최고 효율로 처리하고 행동하는 타고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나의 가정환경에 깊이 뿌리내린 가치이기도 하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미리 앞서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칭찬해 주셨고, 효율적으로 과제를 마치면 얼마든지 당당하게 자신만의 자유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셨다. 하지만 학습 과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리듬이 학교에서는 존중되거나 실천되지 않을 때, 션은 빠르게 지루함을 느끼곤 했다.
배움의 강력한 동력이 되어야 할 션의 타고난 호기심은 그저 시동만 걸린 채 헛돌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기존의 교육 시스템은 그 사방으로 튀는 불꽃에 부채질을 해 주긴커녕 계속 불을 끄려고만 했다.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이 많은 학생들에게는 적합했지만, 스스로 가속화된 속도로 배우는 아이의 잠재력이나 행복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션의 경험은 조용하게, 하지만 강력하게 나의 어릴 적 좌절을 계속 상기시켰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신념을 조금씩 꺼내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성장하게 하려면 그들을 영원히 ‘기다리게’ 만드는 획일적인 틀에 억지로 맞추기보다는, 아이들 각자의 독특한 발달 속도를 존중해야 한다는 진실 말이다. 그런데도, 션은 타고난 그의 성격대로 큰 불평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4~5학년쯤 되자, 점점 그 조용한 인내심마저 바닥을 드러낼 지경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그때, 자신의 의지로 홈스쿨링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션이 처음에는 꽤 아무렇지 않은 듯이 홈스쿨링 이야기를 한두 번 정도 언급했다. 나는 진지하게 응답하기보다는 오히려 좀 건성으로 “션, 홈스쿨링을 하고 싶은 이유 열 가지를 말해 봐.” 하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션이 절대 열 가지를 다 말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데, 곧바로 션의 요청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했다. 역시나 션은 단지 세 가지 정도 이유를 말했지만, 내가 열 가지 이유를 다 말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자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그리고 어쩌면 약간 부끄럽게도, 나는 그 요청을 ‘못 들은 척’ 외면하고 말았다. 나는 이미 우리 학교에서 공부하는 수십 명의 고등학생들과 선생님들을 관리하고, 세 개의 주식회사를 동시에 운영하면서 온갖 과외 활동 및 기숙 프로그램까지 책임지고 있던 싱글 맘에 워킹 맘으로서, 일상의 많은 책임이 넘쳐 났다. 그런 내게 ‘홈스쿨 선생님’이라는 역할까지 더해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저 무난하고 조용하게 학교에 다니다가 우리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때가 되면 들어올 것이고 그렇게 다른 학생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럼 추가되는 업무가 아닌 이미 진행 중인 업무 중의 하나로 션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자녀의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과제 앞에서, 내가 느꼈던 막연한 두려움은 많은 부모들이 공유하는 흔한 감정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러던 중 학교로부터 5학년 학생들을 돕는 특별활동에 동참할 학부모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나는 학교에서 션이 어떻게 지내는지 몰래 살펴보고, 정말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에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그날이 되고, 션이 학습 환경의 변화를 원했던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션의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을 줄 세우고 그 줄을 유지하게 하려고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이미 많은 학생들을 관리하며 매우 버거운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션은 늘 그렇듯이 선생님의 최초 지시에 따라 마치 동상처럼 줄을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말을 듣지 않는 다른 학생들을 수습하기 위해 10분 넘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션은 다른 친구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그저 그렇게 두 귀를 막고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야 나는 깨달았다. 션이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이 언제나 그저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그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진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보통 가장 먼저 끝내고, 가장 먼저 줄을 서고, 가장 먼저 지시를 따르는 아이였지만, 결국 ‘착한’ 학생이라는 이유로 매일 아이러니하게도 벌을 받고 있었다. 비록 그는 ‘이달의 학생’과 같은 상을 받으며 종종 인정받기는 했지만, 좌절감과 불합리함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