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자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300)
"좌우명이 뭐에요?"
솔직히 면접을 준비할 때 모두 한 번쯤은 준비해봤을 법한 질문이다. 소위 '단골질문' 시리즈에 포함되는 좌우명 질문은 "존경하는 인물" 질문과 함께 나를 늘 괴롭혀왔다. 아니, 이제 고작 스물 셋(그조차 이제 스물 둘이다) 나이에 인생을 살아가는 명확한 북두칠성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괜스레 삐딱해진 마음에 나는 늘 존경하는 인물 질문과 함께 답변 준비하기를 맨 마지막으로 미루곤 했다.
좌우명, 좌우명... 몇 번 되뇌이다가 좌우명의 어원이 궁금해졌다. 추측으로는 '인생을 좌우하는 계명'의 의미를 담았을 것 같았다. 음 그럼 좌우명(左右命)? 이런, 웃긴데? 혼자 이상한 사람처럼 웃다가 결국 민망해져 사전을 찾아보기로 했다. 솔직히 '명(命)'에는 확신이 없었지만 '좌우(左右)'는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좌우명의 어원은 내가 생각한 범주를 많이 벗어나 있었다. 한자사전을 참고해서 찾아본 좌우명의 어원과 의미는 다음과 같다.
좌우명(座右銘)
1. 늘 자리 옆에 적어놓고 자기(自己)를 경계(警戒)하는 말.
2.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文句).
소위 우리가 '무언가를 좌우하다'라고 할 때 사용하는 단어는 왼쪽과 오른쪽을 뜻하는 좌우(左右)와 동사형 어미 '~하다'의 합성어다. 비슷한 예로 '무언가를 좌지우지하다'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갈 지(之)자를 써서 '왼쪽으로 돌렸다 오른쪽으로 돌렸다 한다', 즉 어떤 일을 마음대로 처리하거나 다룬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나는 좌우명에서도 '오른쪽 왼쪽'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방향성을 지정해주는 어떤 명령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단어의 진짜 어원에 따라보면, 좌우명은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하는 계명이 아니라 내가 늘 곁에 두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말이 된다.
어원에 대한 나의 착오가 나 스스로에게 불러온 여파는 꽤나 컸다. 왜냐하면 어원을 제대로 알기 전 내게 좌우명은 좌우명(左右命)이었기 때문에 '내가 따라야 하는, 내 인생의 선택을 좌우할 어떤 것'에 가까웠다. 물론 좌우명을 정하는 것은 나지만 결국 내가 정한 좌우명에 의해 내가 좌지우지되는, 약간은 역설적인 상황에 거부감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좌우명이 좌우명(座右銘)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여기서 '나'는 완전한 주체로 변모한다.
그리고 좌우명은 나의 우측에 앉은 조력자가 된다. 하지만 이 조력자는 말이 없다. 나의 어떤 것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명(命)' 하지 않는다. 다만 내 마음 오른쪽에 새겨져(銘), 내가 나아감에 있어서 가슴에 새겨진 글자를 되뇌이기를 바라줄 뿐이다. 그러니 삶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를 선택하는 주체는 언제나 나다. 선택의 순간에 가슴 속의 글자를 상기하거나 상기하지 않는 것도 결국 나다. 나는 완전한 주체로 변모한다.
좌우명이 좌우명(左右命)이 아니라 좌우명(座右銘)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순간, 모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누군가는 무슨차이냐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극명한 차이였으니까. 그 시간부로 나는 언어에 의한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좌우명은 나의 소중한 우방이 되었다.
좌우명과 친해진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