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서평
<작별하지 않는다>의 동네책방 에디션을 받아들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제주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평소에는 최대한 짐을 줄이고 싶어서 여행 가방에 책 대신 e북 리더기를 넣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꼭 제주에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들었을 맑고 쓸쓸한 파도 소리를 벗 삼아 <작별하지 않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었다. 허우적거리다가 마지막 문장이 끝남과 동시에 완벽하게 현실로 복귀하리라, 그렇게 다짐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마지막 문장은 끝이 났는데, <작별하지 않는다>와는 여태 작별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파도처럼 몰려와 이따금 의식 세계를 잠식하는 이 이야기는 잘 알려진 것처럼 제주 4.3사건을 다루고 있다. ‘서북청년단’과 ‘공산당원’으로 대표되는 두 세력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사라져간 수많은 제주도민들의 목숨을 차마 일일이 호명할 수 없어 두 개의 숫자, 4와 3으로 묶는다. 제주에 스민 그 많은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4.3을 소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작별하지 않는다> 속의 두 주인공은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제주의 아픈 역사를 소환하던 도중 고통을 겪는다. 작중 화자인 경하는 매일 죽음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었고, 경하의 꿈을 나무로 표현하던 인선은 손가락이 절단되는 큰 사고를 겪고 입원한다. 이 사건들은 결코 가볍게, 허투루 표현되지 않고 있고 덕분에 독자인 나 역시 그들의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간접적으로 겪을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이 제주 4.3 사건을 깊이 알아감으로 인해 겪게 된 직간접적인 고통과도 비슷한 것이리라.
경하는 입원한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 집에서 죽어가고 있을 지도 모를 인선의 앵무를 살리기 위해 제주도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야기의 무대가 서울에서 제주로 옮겨지면서 소설은 더욱 4.3 사건의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간다. 오늘날의 인물인 경하와 인선, 그리고 그들의 손에 이끌린 독자는 4.3 사건의 피해자였던 인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밧줄 삼아 마침내, 제주의 역사 깊숙한 어딘가에 발을 딛고 서게 된다. 앵무는 죽었으나 죽지 않았고, 인선은 분명 서울의 입원실에 있지만 동시에 경하와 함께 제주에 있다. 거기에는 시간의 흐름도, 공간의 제약도 없다. 오로지 그 사건 속에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생생한 고통, 슬픔, 아픔을 마치 손으로 만지듯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거기에는 4와 3이라는 두 숫자로 모두 묶기 버거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사랑이 있다. 작가인 한강은 이를 ‘지극한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극도의 두려움이나 고통조차도,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끊을 수 없었음을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 경하와 은선이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서로 만나 4.3 사건 당시의 조각들을 함께 더듬어 가듯이, 1948년부터 1949년 사이 제주 지역에서 일어났던 학살 또한 지금의 우리와 단절되어 있지 않으며, 끝나지도 않았다는 걸 이 소설은 알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어디서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여전히 모르는 사라진 사람들, 가까운 이들을 잃은 사람들, 산이나 동굴 어딘가에 숨어 가까스로 목숨을 지킨 사람들, 사람들. 그 모든 격동이 묻힌 섬 위로 눈이 펑펑 내리다 어느 순간 멎는다. 망각의 시간이 눈처럼 쌓여도 진실은 고고히 그 자리에, 누군가가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치지 않는 응시, 그리고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작별을 말할 수 있는 첫걸음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아직은 작별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작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