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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칸나 Nov 21. 2015

야생 고양이 #35  <아르헨티나> 추운계절

남아메리카 표류기 :: 배낭여행

리꼴라 화장터 Recoleta cemeteries

리꼴라 화장터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유명한 무덤이다. 오래된 무덤이 아름다운 조각들과 함께 그곳에 있다. 무덤 주위에 앉아 죽음을 생각한다. 구원받을 수 있을까. 죽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어떤 햇살이 비춰오는 걸까. 흐린 날 3월이 차차 끝나간다. 거미줄이 쳐지고 낡게 해진 묘지들이 지난 세월과 흔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덤들 사이를 헤매며 산 자와 죽은 자(살았던 사람들)가 공존한다.


  

나는 내일 세상의 끝으로 가

남극에 가장 가까운 땅에서

무엇을 보려고 하는 걸까


이제 꽃눈이 녹는 한국인데

나는 가장 추운 봄을 맞이하러  가려해

추운 계절을 견뎌오지 않고

지난 세월을 여행길 위해서

그저 뜨겁게만 무덥게만 지내온 그 날들을,

가벼웠던 시간을 모두 식히고
더 차갑고 무겁고 조용히

그곳의 하늘과 땅을 응시해야만 할 거야

그 혹독한 겨울을 나지 않았으므로

이 가혹한 봄을  나야할 것 같다고 느껴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 돌아갈 곳이 없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르헨티나는

왕가위의 해피투게더 같은 텅스텐 조명이 비춰오고
마음은 더 서글하고 서늘해질 거야

우수아이아에 가려해

야생 펭귄들이, 바다표범이
내게 속삭여 주길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는 비행기를 탑승한다. 피곤한 눈을 뜨면 세상 땅끝 마을이라 불리는 우수아이아로 향하고 있다. 남극에 가까운 남미 남쪽 설산 지대를 파타고니아 Patagonia라고 부른다. 그 가장 남쪽 마을 우수아이아에서부터 나는 파타고니아 여정을 시작했다.

 

파타고니아 Patagonia* 남아메리카 남부 콜로라도 강 이남 지역인 데어원은 1520년 이 지방을 탐험하던 마젤란이 원주민의 발자국을 보고 이름을 붙인 '커다란 발'이라는 뜻이다.



땅 끝 마을: 우수아이아 Ushuaia

우수아이아Ushuaia 는 산이 높지 않아도 눈이 가득한 남극에 가까운 곳이다. 작지 않은 도시 멀지 않은 곳에 바다표범과 펭귄이 살고 있고, 대부분의 공산품과 식료품은 타지에서 가져와 값이 비싸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 눈 쌓인 산자락에서 땅 끝이란 곳을 바라보면, 거대한 대륙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커다란 배를  물을 구경하는 투어를 한다. 펭귄이 살고 있구나.

이 땅끝 마을은 꽤나 유명하고 춥고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슬픔에 젖은 이들이 찾아와서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고도 한다. 비가 내린다. 나무집 안에서 발을 구르며 추위를 견딘다. 남극을 보고 왔다는 홍콩 친구와 여행 이야기를 하고, 빨간 머리 앤이 된 듯이 창가에서 겨울비를 바라본다. 조용하고 추운 곳, 코코아를 마시고 책을 읽다 따뜻하게 잠들면 좋을 만한 곳이다. 나는 비 오는 우수아이아에서 아름답던 설산이 자취를 감춘 흐리고 그 시린 도시를 헤매며 다시 왕가위의 영화를 떠올린다.



혼잣말: 겨울의 시작

이 혹독한 추위를 어떤 식으로든 견뎌야 한다. 배들이 정박해 있고 사람들은 걷지 않고 그저 차들이 돌아다니는 그런 남쪽 끝 마을이다. 이곳의 정체를 알 수 없다. 그들은 이곳을 남쪽 끝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남쪽 끝인지 북쪽 끝인지 서쪽 끝인지 아니면 적도에 있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이 추위가 가슴까지 몰려와 지금은 겨울임을, 이 여행의 겨울임을  이야기할 뿐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지면서 정신도 가난해지고 있었던 걸까, 돌아가서 현실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새벽부터 일어나 버스를 타고 빙하를 보러 엘칼라파테 El Calafate를 향한다.


유목민

장거리 버스 이동은 언제부터인가 내게 익숙한 것이다. 풍경이 지나 다니고 창가에 조금은 지루한 실험영화가 펼쳐진다. 그 영화를 보는 시간, 사색의 시간, 잠의 시간, 때로 멋진 풍경이 내 관심을 끈다. 늘 창가 자리를 선호했고, 맨 앞자리 아니면 거의 뒷자리에 처박혀 혼자임을 즐긴다. 버스 이동은 내게 대체로 싫지 않은 것이다. 글을 쓰거나 먹거나 좋은 동행인이 있다면 이야기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지난날과 다가올 날들을 생각한다. 몽상의 시간.


대 자연 엘 칼라파테 El Calafate(모레노 빙하)

초현실적인 푸른 빙하의 색 그리고 간간이 그 거대한 조각이 떨어지는 웅장한 소리가 들려온다. 고요한 곳을 응시하고 있으면 또 오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빙하 지대 근처는 생각보다 춥지 않아 침엽수도 자란다. 모레노 빙하는 다시 보고 보아도 너무나 아름다워 볼 때마다 사진을 찍는다. 크레바스 사이로 비춰 나오는 싯푸름과 거대한 빙하의 웅장함이 가슴에 박히지 않을까 비슷한 사진을 1,000장쯤 찍어 대고, 계속해서 감동한다. 해가 저무는 모레노이다. 하얀 빙하는 분홍색을 머금는다. 대 자연의 움직임이 들리는 곳, 그 마른 나무 파편 같은 모습 속에 오래된 차가움이 응집되어 있다.  말도 안되는 광경에 그저 입을 벌리고 작은 존재가 된다. 태곳적부터  계속되었을 것만 같은 그 푸른빛에 내 오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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