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크리스마스 카드

흐린 기억 속에서 엄마는 9

by 작은노래

엄마의 가방에 뭔가 들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데이케어 센터에서 미술활동 시간에 만드신 것이리라.


"잘 만드셨네요."

내 칭찬에 엄마 얼굴이 환해진다.

카드 안을 들여다보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걷는 것이든, 뭔가 만드는 것이든. 색칠이든 다 귀찮아하는 엄마가 정성스럽게 이 글을 쓰셨다는 생각을 하니.


**아,

올 즐거운 X-mas!

힘이 들지 고마워



단아하던 엄마의 글씨체는 이제 그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글자를 쓰는 것도 가물가물하셨을지 모른다. 내 이름에 들어가는 모음 ㅖ에서 헷갈린 흔적이 있다.


힘이 들지 고마워


엄마를 돌보는 나날들이 사실 힘이 들었다. 몸이 힘든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집에 계시는 동안엔 요양보호사가 함께 하고, 주말이면 형제들이 교대로 엄마를 돌보러 온다.

그러나 엄마 가까이 살면서 아침저녁으로 엄마한테 왔다 갔다는 일이며, 조금씩 무너져가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행여 아프실까 추우실까 더우실까 다치실까 힘드실까... 전전긍긍, 일비일희하는 나날들이 힘들었다. 스스로 이것저것 챙겨드시지 못해 아이처럼 챙겨드리는 식사 시간도 힘들다면 힘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일으켜 드리는 일도, 부축하는 일도, 화장실에 모시고 가는 일도, 뒤처리를 해드리는 일도 힘들었다. 반복되는 질문도 힘들었다. '애들은 다 갔냐?' '아무개는 어디 있냐?' '밥 먹고 어디 가냐?'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되신 거니?'


힘들다고 말하기엔 아직 엄마가 건강하시고, 걸으실 수 있고, 힘들다고 말하기엔 요양보호사의 도움도 받고, 힘들다고 말하기엔 엄마가 낮엔 데이케어 센터에 나가시고, 힘들다고 말하기엔 아직 엄마가 우리를 잘 알아보고……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안 힘들어요. 엄마가 너무나 잘하시는데 뭐."

엄마는 카드를 읽으며 눈시울이 벌개진 나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웃으신다. 칭찬받는 어린아이처럼……

나는 눈물을 그냥 흘리고 말았다.


카드 만드는 시간, 엄마의 마음에 떠오른 사람이 나였구나.

힘들어하는 나였구나!


죄송해요, 엄마.

오랫동안 이 자식 때문에 힘드셨죠? 태어나서 자라는 동안... 아플 때도.. 속 썩 일 때도... 때로 슬퍼할 때도...


(그리고 1년 뒤 엄마는 데이케어에서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또 한 차례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셨다. 그러나 속지에 글을 쓰지 않으셨다. 못 쓰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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