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병을 고찰하며 변론해보자면.
인스타그램이나 타 커뮤 사이트들을 훑어볼 때, 종종 나타나는 글들이 있습니다. ' 나만 알고싶은 숨겨진 명소', '나만 듣고 싶은 playlist'. 마치 핫플레이스는 제외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특정 아티스트들의 내한 소식을 알리는 글에는 '학생 글 내려', '글 내려주세요', '콘서트 취소 됐답니다.' 등의 댓글들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종종 이러한 글들의 당사자가 되어보기도 합니다. 남들이 입지 않는 브랜드들을 알아보느라 서칭 기록에는 수 많은 키워드들이 도배 되기도 하고, 알고리즘의 힘을 빌려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을 찾아보느라 애를 쓰기도 하죠. 그러다가 진정한 '나만의 것'을 찾는 순간 '유레카!'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뿌듯함을 맛봅니다.
남들이 찾지 않는 무언가를 찾는다는 건, 이미 사회에 알려진 바, '홍대병'이 발병해버린 것 일지도 모릅니다. 나만 알고 있다는 희귀성과 그로부터 오는 소유욕과 쾌감이 복합적으로 작용 되면서 남들과의 차별감을 느낍니다. 더 나아가 그런 감정들이 극대화되면 타인과 다른 본인 모습에 심취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선호되거나 유행하는 것, 심지어는 유명해지는 것만으로도 무조건적으로 기피하게 되죠. '홍대병'이라고 부를만 합니다.
하지만 홍대병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저 '병'에 그치는 성향이 아닌, 어느정도 의미가 있는 '소신'으로도 한번쯤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미미한 증상을 겪어봤던 입장으로서, 홍대병을 변호해보는 관점을 여러분께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홍대병에 노출되기 좋은 필드는 아무래도 음악이라고 봅니다. 물론 맛집이나 플레이스도 해당될 수 있지만, 클릭 한번으로 본인 입맛에 맞는 걸 찾을수 있고, 별로 마음에 안든다면 바로 제외시켜 버릴 수 있기에 시간적, 물리적 비용이 현저히 덜합니다. 매달 유튜브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수정하기에 바쁘고, 알고리즘의 심연을 매번 헤쳐나가야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죠. 취향을 향해 무한정 여정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확 와닿는 아티스트를 찾는 것도 생각보다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유명하지 않으면 된다는 점 외에도 여러 기준을 통해 고심히 골라내야 합니다. 내가 선호하는 멜로디와 가사인지, 아티스트의 감성이 나와 잘 맞는지, 시간이 지나도 물리지 않은 음악인지 등 상당히 까다롭게 필터링을 해나가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아티스트와의 유대감이 형성되곤 합니다. 어쩌면 '나만 듣고 싶은 ooo'이라는 타이틀도 아티스트에게 생겨버린 정을 넘어서 '소유욕'으로 발전하며 생겨난 것이 아닐까요.
홍대에서 아는 사람들만 알았던 '혁오'. 혁오가 무한도전에 나오면서 기존 팬들이 혁오에 대한 정이 떨어져 버리는 일들이 발생했었는데, 밴드 혁오는 유명세를 탐과 동시에 기존 팬들의 이탈을 겪었죠.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유명해지는 건 좋은 거 아냐?'라며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분명 맞는 말이기도 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타인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에 드는 은근한 질투심이 더 앞섭니다. '정이 무섭다.'는 말처럼 나의 아티스트를 힘겹게 찾았던 기억과 그새 들어버린 정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중성이 높아지면, 본래 아티스트가 추구해온 정체성이 흐트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 경우가 내 아티스트에게도 해당된다면 더욱 마음이 떠나기 마련입니다. 자본의 힘으로 인해 본질의 색을 흐려지는 안타까운 케이스들을 종종 마주치곤 합니다. 물론 아티스트의 생계와 관련된 일이라 팬입장에서 왈가왈부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고심 끝에 딱 맞았던 그 감성이 점차 없어지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는 건 너무도 가혹합니다.
홍대병의 심리학 버전인 '스놉효과'. 어떤 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소비가 증가했을 때 오히려 그 상품의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을 일컫는 개념입니다. 다른 말로 '백로 효과'라고도 하죠. '까마귀 무리에서 혼자 고고하게 떨어져 있는 백로'라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스놉효과가 말하는 '차별화'를 뒤집어 생각해봄은 어떨까요. '고상한척 한다', '잘난체 한다'가 아니라 '남과 달라지고 싶다'고 해석해보면서 말이죠.
타인과의 차별화는 살면서 마주치는 수 많은 경쟁 속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사항입니다. 어딜가나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선택해야하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요?', ' 본인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설명해주세요.'와 같은 질문을 마주하고, 이 질문에 대한 참신한 답변을 생각해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서 부터 남과 다른 나만의 것을 찾아야하는 관문에 부딪히면서 '특별한' 나를 상징하기 위한, 대변하기 위한 대상에 대해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음악도 그 중에 포함됩니다. 음악으로 인간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요. 본인과 닮은 사람에게 끌리는 것처럼, 결국 좋아하는 음악과 아티스트도 취향의 반영물을 넘어, 본인 그 자체를 담은 존재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명해지면서 정이 떨어지는 것도 본인과 비슷한 특별함이 흐려지고, 가치가 저하되는 것 같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더욱 트렌드에서 벗어난 새로움을 찾고, 잠재적인 특별함을 발굴하려 합니다. 그래서 홍대병의 도움을 받는다면, 본인도 몰랐던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내리고 싶은 최후의 변론은 "알맹이가 있는 홍대병은 지향해볼만 하다." 입니다. 무조건적으로 대중성을 기피하는 게 아닌, 자신만의 취향 그리고 가치와 존재를 위한 홍대병이라면 그저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어 보이니 말이죠.
홍대병을 이정도로 변론한다는 얘기는 에디터도 역시 앓고 있다는 말과 직결되겠죠. 수 많은 트렌드들을 접하고, 좋아하기도 하면서 식상해하기도 했던 기억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일까.'라는 의문을 늘 던지며 계속해서 헤메고 있던 날들은 어느새 알려지지 않은 세계, 나만 아는 세상으로 발을 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상태입니다. 에디터는 과연 어떤 증상을 겪어 왔을까요. 한 때 아꼈던 아티스트들을 회상하며 그들을 짝사랑 했던 일화들, 그리고 여전히 나만 알고싶어하는 아티스트들이 있음을 허심탄회하게 고백해보고자 합니다.
8년 전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 커버 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잔나비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성가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들이 편곡한 노래가 마침 원곡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들 위주로 이뤄져 있어서 완전히 매료당했었죠. 소중한 데이터를 써가며 커버 영상을 한동안 무한재생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잔나비의 1집 'mokey hotel'을 접했는데, 하나도 거를 것 없는 제게 있어서 명반 그 자체였습니다. 모두에게 잘 알려진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앨범도 맛집이었지만, 1집이 잔나비를 그대로 담은 음원이라 봅니다.
물론 지금의 잔나비도 좋지만 2집 이후로 대중성이 더욱 두드러지면서, 본래 좋아했던 잔나비의 감성이 옅어진 느낌이 들었고, 최신 앨범보다 초창기의 노래들에 손이 더 가더군요. 수수하고 완성도도 완벽히 높진 않았어도 열정적이고 도전적이었던 그때의 잔나비에 향수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어릴 적 아빠차에서 듣던 노래가 곧 취향이 되면서 90년대 음악을 굳이 찾아듣는데, 유튜브를 파헤치며 발견한 아티스트, 박문치입니다. 그녀의 ' 널 좋아하고 있어'는 젝스키스, H.O.T를 연상시키는데, 재치있는 가사로 듣는 내내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cool한 42', ' summer love'와 같은 노래도 바로 플레이리스트에 추가시켰죠. '맛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 아티스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플레이리스트 순위에 상위권에 두고 있지만, 이런 그녀에게 찰나의 불안함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놀면뭐하니'에서 싹쓰리 프로듀싱 에피소드에 등장한 박문치를 보며 혹시나 너무 유명해지진 않을지 약간의 우려를 했었고 저도 모르게 질투를 하고 있던 걸 알아챘습니다.
홍대 벨로주에 넉살이 온다고 해서 갔던 공연이었습니다. 그 공연에서 만난 '김오키 뻐킹매드니스'. 그를 처음 본 소감은 '충격'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색소폰의 쇳소리, 아슬아슬한 삑사리가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냈고, 멜로디도 미친듯이 흥겨웠습니다.
평소 재즈를 들을 때 센치한 재즈보다 신나는 재즈를 더 선호했고, 일부러 신나는 선율을 골라들으려 했었죠. 여태 그 고생을 했지만 결국에는 찾지 못해 포기했었는데, 고생에 대한 해답은 '김오키' 였고 진심으로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언제나 그의 연주는 '사랑'의 메세지를 담는데, 오글거리는 사랑이 아니라 연주를 듣는 모든 이들이 한마음이 되길 바라는 메세지가 연주로 흘러나와,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은 너무도 힙합니다. 뻔한 재즈 선율이 아닌 독특하고 개성있는 김오키의 연주는 대중적이고 자본적이지 않아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홍대병의 근원지라 그런지 홍대에는 숨겨진 보물들이 많은 것 같네요. 김일두 역시 홍대의 한 뮤직바에서 접했습니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 연주되는 그의 음악은 투박하면서도 순수하고 담백했죠. 포크풍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김일두의 포크는 제게 유일한 포크가 될 것 같습니다. '곱고 맑은 영혼'이라는 모토에 맞게 음악을 듣는 순간 사람이 곱고 맑아지는 기분입니다. '여러분 덕에 먹고 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콘서트 말미에 나오는 그의 멘트는 온전히 자신의 음악에 집중하고 묵묵히 활동해온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는 듯 하죠.
특히 '문제없어요'를 들으면 김일두가 너무도 잘 느껴집니다. 여태까지 알았던 아티스트 중에서 가장 자신의 본질과 신념을 지켜온 아티스트이자 예술가라고 확신합니다.
Edit by. Yann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