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십시오. 무진읍입니다.

여덟 모금: 김승옥 <무진기행>

by yannseo
오 리에 걸친 저 짙은 속삭임들에 젖어드는 건 시간문제.


촉촉과 축축은 한 끗 차이다. 땅 위에 하늘이 떠있으면 촉촉, 땅 아래에 하늘이 묻혀있으면 축축.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어감은 촉촉이다. 이치도 촉촉의 손을 들어준다. 하늘은 땅 위에 떠있다는 순리를 어느 누가 반박할 수 있으랴. 싫은 소리를 가져다가 붙일 수 없는 촉촉에게 축축은 오늘도 그렇게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승기를 놓쳐버렸다.


축축에게 미안하지만, 나 역시 눅진한 공기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여름철이면 제습기 없이 살 수가 없고, 머리를 감고 나면 드라이기를 서둘러 잡아야 한다. 그래서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스스로 징크스를 걸어 찬다. 햇빛은 피부를 바싹 마르게 만들어서 모공까지도 다 드러나 거칠게, 그리고 가볍게 세상을 맞닿도록 한다. 나는 그 느낌이 좋다. 기름 덩어리들이 주름마다 낄 틈이 없는 그 느낌을.


하지만 안개는 피부 위에 기름 덩어리만이 아닌, 눅눅하게 무겁게 늘어진 공깃방울과 그 이상의 묵직한 무게감을 덤으로 끼얹는다. 마음까지 축축 쳐지는 날씨. 아뿔싸, 여기에도 ‘축축’이 들어간다.


하늘이 땅을 견디는 무게감이란 이런 것일까. 순리를 뒤집는 불쾌감. 그리고 좋은 말이 나올 수가 없는 흐리뭉텅한 답답함.


그래서일까. 쾌쾌한 안개 냄새로 가득한 이번 작품은 꺼내 들자마자 숨을 막히게 했다. 화자들이 내뿜는 습기는 뭉치고 뭉쳐져서 안구에 회색빛 수증기를 끼웠고, 이내 시야를 흐렸다. 그리고는 끝내 저들과 오리무를 기행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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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무진이었다. 광주 아래 전라도 애매한 한구석에 위치한 어느 도시. 애매하고도 너무 애매한 것이, 전라도 답지 않게 넓은 평야가 수평선을 이루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얕은 바다가 코 앞에 있는 것도 아닌 곳이었다. 다만, 두리뭉실해서 마음 둘 곳 하나 없어 보이는 이곳에도 확실한 고집하나는 있었다. 그건 안개였다. 안개만큼은 명산물이었다.


서울에서 무진으로 향할 때, 윤회중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그럴듯한 제약회사에 조만간 전무로 승진을 할 예정이라, 묵직한 책임감을 지기 전에 휴식차 무진으로 향한다 했다.



그 몇 차례 되지 않은 무진행이 그러나 그때마다 내게는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출발이 필요할 때였었다. 새출발이 필요할 때 무진으로 간다는 그것은 우연이 결코 아니었고 그렇다고 무진에 가면 내게 새로운 용기라든가 새로운 계획이 술술 나오기 때문도 아니였었다. 오히려 무진에서의 나는 항상 쳐박혀 있는 상태였었다.


윤회중에게 무진은 잉여로운 도피처였다. 무진을 가보니 알 것 같았다. 왜 이 사람이 무진으로 향했는지. 시끄럽지도, 거룩하지도 않고, 웅장한 물결도, 하늘과 맞닿을 숲도, 완고한 정체성이 없는 덕에 사람이 몰려들지 않는 무진. 그 안에서 그나마 뚜렷한 인간마저 실루엣으로 흐려버리는 안개는 그저 가만히 처박혀 있고 싶은 우리에게 딱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난 무렵, 저녁 식사를 다하고 그와 그의 중학교 후배 ‘박’이라는 사람 틈에 껴서, 어느 집으로 걸어갔다. 둘의 얘기를 들어보니 목적지는 그들의 동창, ‘조’라는 제법 성공한 사람의 집이란다. ‘조’ 댁에 도착하고 집주인과 서툰 인사를 나눈 뒤, ‘박’은 어느 가녀린 여성분을 보며 발그레 얼굴이 상기됐고, 그날 생전 처음 만난 이들의 술자리가 시작됐다.






여선생은 <목포의 눈물>을 부르고 있었다. <어떤 갠 날>과 <목포의 눈물> 사이에는 얼마큼의 유사성이 있을까? 무엇이 저 아리아들로써 길들여진 성대에서 유행가를 나오게 하고 있을까? 그 여자가 부르는 <목포의 눈물>에는 작부들이 부르는 그것에서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꺾임이 없었고, 대체로 유행가를 살려 주는 목소리의 갈라짐이 없었고 흔히 유행가가 내용으로 하는 청승맞음이 없었다. 그 여자의 <목포의 눈물>은 이미 유행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비 부인> 중의 아리아는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어떤 새로운 양식의 노래였다.


그 양식은 유행가가 내용으로 하는 청승맞음과는 다른, 좀 더 무자비한 청승맞음을 표현하고 있었고 <어떤 갠 날>의 그 절규보다도 훨씬 높은 옥타브의 절규를 포함하고 있었고, 그 양식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광녀의 냉소가 스며 있었고 무엇보다도 시체가 썩어 가는 듯한 무진의 그 냄새가 스며 있었다.


술자리는 엉덩이를 굳게 지키고 싶을 정도로 내 집착을 불러오진 못했다. 한 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하 선생이라고 불리는 가녀린 여성은 서울에서 음악 대학을 나와 현재는 음악 선생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아무래도 괜한 술모임에 걸려든 듯했다. 어릴 때 <나비 부인>을 카랑카랑하게 불러본 경력은 그들에게 전용 노래방 기계로 채용될 만한 이력서였다. 덕분에 나는 무료공연을 들을 수 있었다. 절규와도 같던, 것보다 더한 불쾌한 음율이었다.



“일부러 재미있게 하려고 하는 게 아녜요. 대학 다닐 때의 말버릇이에요.” “아하, 그러고 보면 하 선생의 나쁜 점은 바로 저기 있어. ‘내가 대학 다닐 때’라는 말을 빼놓곤 얘기가 안 됩니까? 나처럼 대학엔 문전에도 가 보지 못한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어요?” “죄송합니다.” “그럼 내게 사과하는 뜻에서 노래 한 곳 들려주시겠어요?”… 여선생은 머뭇거렸다. “서울 손님도 오고 했으니까… 그 지난번에 부르던 거 참 좋습디다.”


어떻게든 하 선생을 밑으로 부리려는 속물들의 자리. 기이한 앙코르 요청이 자연스러웠고, 불편한 구석이 안줏거리가 되었다. 거미줄에 걸려든 나비를 거미가 슬그머니 한 입 하려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때 딱 그 감정이었다. 이 자리는 나에게 무진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 자리는 무진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다리를 다 건넜다. 거기서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그 여자는 냇물을 따라서 뻗어 나간 길로 가야 했고 나는 곧장 난 길로 가야 했다. “아, 글루 가세요? 그럼……” 내가 말했다. “조금만 바래다주세요. 이 길은 너무 조용해서 무서워요.” 여자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나는 그 여자가 내 생애 속에 끼어든 것을 느꼈다.

겨우 술자리에서 벗어나 하 선생과 윤회중씨의 귀갓길을 뒤따라 걸을 때는, 그들의 발이 흙을 스치는 소리, 그리고 낯선 공기를 애써 환기해 보려는 속삭임을 남겨놓고 모든 소리들은 숨을 죽였다. 냇물과 다리, 밤하늘과 산자락들. 안개에 묻혀 서로의 경계가 불분명한 순간, 그 둘의 기류만큼은 확실했다.


“조금만 바래다주세요.”

하 선생이 넌지시 던진 용기는 듣는 귀도 간지러울 정도였다.



언젠가 여름밤, 멀고 가까운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마치 수많은 비단조개 껍데기를 한꺼번에 맞부빌 때 나는 듯한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나는 그 개구리 울음소리들이 나의 감각 속에서 반짝이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청각의 이미지가 시각의 이미지로 바뀌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의 감각 속에서 일어나곤 했었던 것이다.
별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나와 어느 별과 그리고 그 별과 또 다른 별들 사이의 안타까운 거리가, 과학 책에서 배운 바로써가 아니라, 마치 나의 눈이 점점 정확해져 가고 있는 듯이, 나의 시력에 뚜렷하게 보여 오는 것이다.


여름밤의 무진은 윤회중에게 너무도 선명했다. 분명 안개에 흐린 날임에도. 하 선생이 그의 세계로 뛰어들며 윤회중의 무진은 맑은 날보다 더 맑았다. 자신과 어느 별, 그리고 또 다른 별들의 거리를 안타깝게 느낄 정도로 뚜렷했다.


그러나 그는 안개가 그을린 빈 공간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본 윤회중은 그랬다. 그가 남긴 발자국은 습해진 땅으로 묽어졌고, 뜨겁던 기류는 안개에 더 짓눌렸다.


서울은 도대체 어떤 곳이었을까. 서울에 두고 온 책임감이 이토록 그를 흐리게 만들었을까. 그의 아내조차도 그저 던져버리고 싶은 짐에 불과했을까.


그가 처음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은 무진에서 아무것도 안 한 채 집에 틀어박혀 있다고. 윤회중에게 무진은 진정한 무위였다. 어떠한 에고도 침범하지 않는, 뚜렷한 경계로 외부와 구분되지 않아도 되는 윤회중 그 자체를 보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무위를 오해하고 말았다. 그의 무위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는 무위가 아니었다.







사실 나는 나 자신을 알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감상이나 연민으로써 세상을 향하고 서는 나이도 지난 것이다. 사실 나는, 몇 시간 전에 조가 얘기했듯이 ‘백이 좋고 돈 많은 과부’를 만난 것을 반드시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내게서 달아나 버렸던 여자에 대한 것과는 다른 사랑을 지금의 내 아내에 대하여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구름이 끼어 있는 하늘 밑의 바다로 뻗은 방죽 위를 걸어가면서, 다시 내 곁에 선 여자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사랑은 바다 앞에서 깊어졌고, 함께 상경하겠다는 선언은 새끼손가락에 실려 서로 내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에는 사이렌이 왕왕 울려댔지만, 무위한 이곳에서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 바닷가에서 보낸 1년, 그때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 아침의 백사장을 거니는 산보에서 느끼는 시간의 지루함과 낮잠에서 깨어나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닦으며 느끼는 허전함과 깊은 밤에 악몽으로부터 깨어나서 쿵쿵 소리를 내며 급하게 뛰고 있는 심장을 한 손으로 누르며 밤바다의 그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의 그 안타까움, 그런 것을 이 굴 껍데기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나의 생활을 나는 ‘쓸쓸하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허깨비 같은 단어 하나로 대신시켰던 것이다.


윤회중이 표현한 ‘쓸쓸하다’는 수많은 책임감과 그것에 겨우 맞춰 살아가려는 알맹이 같은 스스로 간의 괴리를 채우고 싶다가도 그러지 못한 안타까움이 들어있었다. 그는 허전한 마음을 쓸쓸하다는 네 글자로 어떻게든 메꾸려던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에 하 선생은 가슴 벅찰 정도로 채울 수 있는 허상이었다. 그가 가진 공허함과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고픈 회피감, 그리고 이를 치유해 줄 유일한 하 선생은 무진에서는 낭만이지만, 분명 ‘바람둥이’라고 압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마음을 ‘쓸쓸하다’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럼에도 나는 방죽 위를 걸며 하 선생의 손을 꽉 잡은 저 힘줄 가득한 윤회중의 손을 바라보기만 했다.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는 수동을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를 용인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그가 느낀 쓸쓸하다를 나도 느껴봤으니. 무력한 전우애가 조금씩 생긴 것 같았다. 나 역시 무위에 점차 들어서고 있던 걸까.




아내의 전보가 무진에 와서 내가 한 모든 행동과 사고를 내게 점점 명료하게 드러내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이 선입관 때문이었다. 결국 아내의 전보는 그렇게 얘기 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라고 아내의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 번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 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서 전보의 눈을 피하여 편지를 썼다. “갑자기 떠나게 되었습니다….” 쓰고 나서 나는 그 편지를 읽어 봤다. 그리고 찢어 버렸다.


어느 늦은 아침, 하 선생과 흐린 약속을 하자마자 그에게 안개가 걷힌다는 예보가 찾아왔다. 소리 없이 찾아온 맑은 소식은 비보였다. 전보 앞에서 비참하게 무진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긍정해 보겠다는 약속은 매몰차게 무너졌다고 한다. 안개는 그런 것이다. 언제쯤 거둬질까 하면서도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지는 존재가 안개다. 그래서 안갯속에서 영원히 살겠다는 다짐은 어리석다. 품어보겠다고 한껏 안아버리면 사라질 한 줌 수증기만 잔뜩 폐에 들어차게 된다. 결국 윤회중의 안개는 걷혔다. 그에게 남은 건 축축한 옷과 눅눅해져 너덜너덜해진 마음가지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서울행 버스를 탔다. 나는 그를 배웅하고 싶었지만, 결국 같이 몸을 싣고 말았다.






안개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자는 몇이나 될까.



“그렇지만 내 경험으로서는 서울에서의 생활이 반드시 좋지도 않더군요. 책임, 책임뿐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서류에 조의 도장을 받아 갔고 더 많은 서류들이 그의 미결함에 쌓여갔다. 그의 얼굴은 그 바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바쁘다. 자랑스러워할 틈도 없이 바쁘다. 그것은 서울에서의 나였다. 그만큼 여기는 생활한다는 것에 서투를 수 있다고나 할까? 바쁘다는 것도 서투르게 바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서투르다는 것은, 그것이 무슨 일이든지 설령 도둑질이라고 할지라도 서투르다는 것은 보기에 딱하고 보는 사람을 신경질 나게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서울을 반추할 때면, 거북한 공감이 몰려들었다. 나 역시도 서울에서 서투르기만 하다. 저녁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퇴근을 하는 그들 사이에, 하루의 책임을 다하고 돌아가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서투르게 목적지가 있는 사람인 척을 한다. 어딘가에 막중한 책임을 지겠다는 남부러운 동경심, 별 볼일 없는 하루살이에 온갖 의미를 가져다가 붙여야지만 풀리는 직성, 누구도 뭐라하지 않는 이 부끄러움에 서툴러서 지하철의 그들과 같은 발걸음을 흉내 낸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하나의 책임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 스스로를 영위해야 한다는 겉 바른 책임감이라고.


그래서 나도 그에게 공감이 갔다. 하지만 거북한 공감이라고 한번 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나도 윤회중처럼 무위에 무너질 사람인지 공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이 무진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무위를 저지른 것이 아닐지. 무진의 안개가 익숙히 들이마셔진다는 사실이 윤회중에게 도덕적 잣대를 감히 들이밀 수 없게 만든다.



무진을 기행 하며 내내 떠올랐던 성경구절이 있다.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윤회중이 무진에서 저지른 불륜은 명백한 잘못이다. 아무리 낭만으로 포장을 하려고 해도 나는 그 현장을 보면서 가슴이 저렸다. ‘분명 바람인데.. 아내는 어떡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하지만 나라고 해서 그를 정죄할 자격이 있을까. 나 역시 몇 번이고 무위를 품어본 적이 있었다. 바람이라면 치를 떠는 내게도 그만큼의 수치를 가질 결함이 있었을 것이다.


무진을 떠돌며 계속해서 돌을 던져봤지만, 안개에 돌이 부서지는 일은 없었다. 돌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고, 안개는 잠깐 돌의 궤적을 따라주긴 했지만 금방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포기했다. 돌을 던지기보다는 내 무진이, 내 안개가, 그동안의 무책임에 무사히 안녕을 외칠 수 있길 희망이란 걸 품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무진읍에서 떠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