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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냥 Apr 27. 2020

끝없는 병원 行

엄마의 오지랖이 진단에 미치는 결과

2019년 1월 24일


세상 무쓸모 장롱면허 따위.. 올해는 꼭꼭꼭 운전연수를 받아야겠다. 두 아이를 데리고 혼자 3차병원까지 가는게 버거워서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가 늦은밤에서야 응급실에 다.


그러나 입원가방까지 싸짊어지고 갔음에도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큰아이 상태가 호전되서 집에 온 것은 아니었다. 우선, 작은 아이를 맡아줄 곳이 없었다. 며칠이 되던 간에 입원을 하게 되면 막둥이를 누군가 맡아주셔야 하는데 시어머니께서 폰이 없으신 관계로 연락이 되질 않아 입원을 할 수 없었다. 친정엄마는 조카들 보육을 맡고 계셔서 말도 꺼내보질 못했다.


다음으로.. 병원에서도 아이의 입원을 거부했다. 큰아이가 주사 맞기 무서워서 괜찮은 척 연기를 하기도 했고 소변검사에서 다량의 혈뇨와 단백뇨가 검출됐으나 항생제 장기복용으로 인해 원인균을 찾을 수 없다며 배양검사 결과가 나오는 화요일에 외래진료로 내원하라며 바난건조시럽 처방과 함께 우리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 이유일뿐,  소아병동에 자리가 없어서 입원을 할 수 없는게 실질적 이유였다.


그래도 처음엔 우리 아이가 입원까지 할 수준은 아니라서 돌려보냈겠거니 싶어 좋아했다. 작은아이에 이어 큰아이와 또다시 입원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39.2도라는 아름다운 체온으로 눈이 풀려 덜덜거리는 큰 아이의 모습과 처방약이 기존에 먹던 소아과 약과 동일한 사실, 다음주 내원이 비뇨기과가 아닌 소아과인 것에 뼛속까지 분노가 차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혈뇨와 단백뇨가 나왔다면 아이의 생식기나 방광쪽에 염증이 생긴거 아닌가? 비뇨기과로 입원하러 온 아이를 이렇게 소아과로 떠넘기다니. 열이 나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이렇게 퇴원시키다니. 이러서 무슨 3차 대학병원이라고, 경기서부 지역을 담당한다고, 당당하게 현수막을 걸어놓는거지?


오늘은 회사에 꼭 가봐야해서 계속 연락이 어려운 시어머니 대신, 친정엄마에게 오전시간만 양해를 구했다. 그 짧고도 귀한 시간동안 회사 연말정산, 자리정리 및 인사를 끝내고, 빌어먹을 병원에 다시 내원해서 소아비뇨기과 재 예약을 마친 후 아이와 함께 다시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비뇨기과에서 조차 발열원인을 알 수 없었다. 지난밤, 응급실에서 의뢰한 세균배양검사 결과를 더 기다리거나, 비뇨기과에서 초음파와 엑스레이로 간단 검사를 병행하거나, 신장과에서 혈관조영술(?)로 콩팥의 염증여부를 가리는 검사를 진행해야 정확한 발열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가뜩이나 주사 무서워 하는 아들.. 이제 드디어 발열도 잦아들고 좋아져가는데 내가 너무 과잉검사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겁이 많아 검사에 협조적이지 않은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롭기도 하고 해서 약식검사에만 동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왜 하필 연달아 아파서 원인도 못찾고 고생하나..? 요로감염이 맞을 것 같은데 병원에서는 왜 확답을 주지 않는걸까..? 그 누구도 속시원하게 결론을 내지 않는 사이 내 마음만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그럼에도 아이 상태가 전에 비해 호전되고 있어 지난밤에 비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종알종알 신비아파트 얘기로 1시간이 넘게 떠들어댔으니.


내일은 검사, 월요일은 비뇨기과, 화요일은 소아과. 진짜 아들들 덕분에 3주간 정말 다양한 세부전공으로다가 십수차례에 걸쳐서 15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지출했지 싶다.


그래. 이제 다 좋아. 다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 아프지만 말아다오. 제발~~~~~






2019년 1월 25일


이제는 노답이이다. 아프지나 말던가.


고열원인은 계속 미궁으로..  혈관조영술(?)이 가장 정확할 듯 싶으나 주사라며 질색하는 저 녀석의 협조를 구할 길이 없다. 초음파상으로는 별다른게 안 보이나보다.


오늘도 치과에 흔들리는 이를 뽑으러가서는 어찌나 반항하던지. 양손을 붙잡고 머리를 붙들어매도 입을 안벌리고 온몸을 흔들어대는 통에 애 입이 찢어질 뻔했다. 이도 부서졌다. 보름내내 앓고 있는 큰아이가 짠하고 안쓰러워서 한껏 품어주려다가도, 이렇게 병원진료를 거부하고 난리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버린다. 입을 벌려야 목구멍을 보고 진단을 할텐데 그 쉬운 동작 하나를 거부하는 바람에 병을 키우고 키워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아이를 향한 미움의 싹마저 싹트는 기분이다.  속좁은 애미는 치과에 다녀온 후로 아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붙이지 않았다.


아들~!! 엄마가.. 너에게 잘못된 방법으로 훈육한거 알아.. 그런데 엄마는 지극히도 평범하고 그래서, 이런 상황들을 더는 못견디겠어. 잘해줘야 하는데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생기질 않아. 어쩌면 좋으니..  엄마 마음 언제 쉬게 해줄래..? 있잖아. 병원에서의 일상적인 진찰같은 거는 우리 좀 편하게 받아주지 않을래?






2019년 1월 28일


오늘 검사결과가 나왔다.

아무렇지 않습니다~ 열도 안나니 다 끝난 것 같아요~ 원인은 모르겠지만 그냥 넘어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 라는 말들을 기대하며 찾아갔으나 새로운 시작이었다.


소변검사 : 대장균 검출, 항생제 안듣는 녀석, 균 배양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로 간주, 혈뇨와 단백뇨 관찰됨, 추적검사 필요

초음파검사 : 한쪽 신장에서 과거 신우신염의 흔적 발견. 추적검사 필요


우리 아들이 언제 신우신염이었지? 생각해보면 다소 소변을 자주 누긴 했지만 이번처럼 원인없는 고열이었던 적은 없었는데? 내가 울아들 증세를 언제 놓친거지? 머릿속이 다시금 복잡해졌다. 신장에 염증이라고?


생각해보면 큰아이가 소변을 볼 때 늘 거품이 있다고 이야기 하고, 나도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 왈, 남자들은 소변볼 때 낙차가 있어서 다 그래. 라는 말에 여자인 나는 무심결에 넘겼었다. 소변색이 다소 어두워도 물을 자주 안마시는 편이라 그런가보다 했었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내 속마음과는 달리 병원 외래는 2달 뒤로 잡혔다. 별 거 아니니 지켜보라는 교수님의 표정에서 귀찮음이 엿보였다. 작은아이의 귀두포피염을 치료할때 보였던 정성과 헌신은 온데간데 없고 유난 떠는 환자 보호자를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듯한 표정에서 이 병원에 대한 신뢰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단백뇨랑 혈뇨 아직도 나온다면서 왜 예약을 2달 뒤로 잡아주는거지?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동네 맘카페에 털어놓으며 신세한탄을 하는데 댓글로 한 회원분이 말씀하셨다. 본인 아이도 그렇게 아팠었는데 신우신염로 요관역류가 발생해서 신장에 손상이 갔었단다. 우선 급한대로 가톨릭병원에 가서 진찰 받아보란다. 2차 병원이지만 경인지역 유일 소아신장을 담당하시는 교수님이 계시단다.


우울한 마음을 떨치려 백화점에서 일부러 아주 비싼 학교가방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애써 달랜 마음은 그 댓글에 다시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신장에 손상? 생각지도 못한 분야였다. 떨리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고 전화로 병원예약을 잡았다. 바로 이틀 뒤다. 생각해보니 정맥조영술인가 뭔가 하는거로 신장염증여부 알 수 있댔었는데 그걸 왜 안했을까. 주사 무섭다고 병을 더 키울 뻔했구나라는 생각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별일 없겠지? 만성 뭐 이런거 아니겠지? 눈물이 자꾸 난다. 내 잘못 같다. 아니 왜 신우신염 걸린줄도 몰랐지? 그렇게 병원 쫓아갈 용기로 왜 검사진행은 강행하지 않았지? 왜 아이 탓만 했던거지? 마음이 너무 괴롭다.. 






2019년 1월 31일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그 어떤 증상도 없지만 소변의 거품과 왼쪽 신장의 신우신염의 흔적이 정말 못내 신경쓰여서 재검을 신청했다. 3차 병원에서의 진료내역이라던가 검사내용이 있었으나 해당 2차병원에서 모든 검사를 다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도 역시 순탄한 진행은 아니었다. 당일검사와 입원검사 중에서 입원검사를 선택했다. 주사에 대한 공포가 심한 큰아이를 위해 수면검사를 요청했고, 그러기 위해선 입원이 필요한데 가족들과의 그 어떤 협의도 진행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검사라 생각하고 내 뜻대로 강행해버렸다.


역시나 오늘도 시댁과 연락이 닿질 않았다. 입원짐도 싸야하고, 작은아이도 하원시켜야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입원가방 싹 싸들고서 낮잠자던 막둥이까지 하원시킨 후, 셋.이.서. 병원으로 향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이번에는 6인실이다. 보아하니 비감염 환자들로 구성된 듯 하다. 1명 열나는 아기가 신경쓰이지만 열외. 검사만을 위한 입원임에도 수액주사가 들어갔다. 굉장히 걱정했지만 간호사의 노련함과 큰아이의 용기로 수액주사는 진짜 놀라울만큼 쉽게 끝났다!!


집에서부터 주사에 대한 공포감으로 인해 말수까지 급격히 줄어들정도로 굉장히 긴장했었던 큰아이는 생각보다 주사가 덜 아팠는지 자부심 뿜뿜하며 다시금 수다쟁이로 되돌아왔다. 나 역시 이런 큰아이가 너무 이쁘고 자랑스러워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기세를 몰아 핵의학 검사 때도 비수면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30분간 얌전히 누워있을 수 있겠지.. 설마ㅋ



현재는 발열이라던가 그 어떤 증상이 없어서 그런지 엑스레이라던가 소변 7종검사(가 뭐지?)에도 그 어떤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가장 중요한 소변검사와 핵의학 검사 소견에 따라 설연휴 내내 붙잡힐 수도 있습니다. 라는 회진쌤의 말씀때문에 입원검사를 선택한 것을 조금 후회할 뻔했다. 그러나 핵의학 검사를 초반에 거부한 이후, 이 모든 것은 부모의 책임이라며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던 의료진을 보면서 보호자인 내가 스탠스를 확실히 하고 케어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후회하지 않을거다. 입원검사 잘 받을거다.


어제는 폭탄주 회식, 내일은 충남으로의 새벽 제사로 인한 새벽운전, 글피에는 장모님 생신으로 너무 고단할 남편이 오늘 밤 작은아이와의 잠자리로 인해 잠을 못자는게 미안할 뿐. 이 모든 것들도 내일의 검사결과로 보상 받을 수 있을거다.


검사결과들이 모두 좋아 진짜 홀가분한 마음으로 설날을 맞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2019년 1월 31일


원래대로라면 오늘 검사 종료 후 퇴원이나 붙잡혔다. 단백뇨가 다량 검출됐단다. 24시간 소변검사 시행.

 

아이는 현재 신우신염도, 요로감염도 아니며 사구체신염의 가능성이 있을 경우 조직검사도 필요하지만, 현재 육안상 붓기가 관찰되지 않아 당장 할 필요는 없고 검사결과에 따라 처방약을 주신단다. 신우신염이 끝났음에도 장기간 소변에 검출되는 단백뇨가 있을 경우, 신장에도 염증이 있는게 확실하기에 계속 외래로 검사를 해야하고 단백뇨의 증감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1회성 소변검사도 내일 재 진행 예정이다.


아이가 당장 아프지 않아서 굳이 입원검사가 필요했을까 싶었는데 어머니 의견대로 입원검사 받기를 너무 잘하셨다는 교수님의 말씀과 달리 내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친다. 나의 극성맞음이 의료진도 알아채지 못한(?) 아이의 병을 발견했다고는 하나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나는 오늘 집에 가서 작은아이를 하원시키고 다 같이 행복한 설 연휴를 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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