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서양의 근대 건축이 철과 유리,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산업혁명과 함께 태어난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건축, 그것이 모더니즘 건축이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근대 건축의 형성 과정은 재료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재료는 가능성을 열었지만, 그 가능성을 ‘어떤 공간으로 쓸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기술이 문을 열었다면, 공간 감각은 일보 전진이 더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서양이 뜻밖의 참고서를 만났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바로 일본의 전통 주거 건축이다. 19세기 말 이후 일본이 서양과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집과 정원, 생활 공간은 서양의 많은 예술가와 건축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들은 일본 건축에서 “새로운 형태”라기보다, 자신들이 필요로 하던 새로운 공간을 읽었다.
서양의 전통 건축은 오랫동안 벽으로 공간을 나누고, 중심을 세우고, 장식을 더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말하자면 벽과 덩어리의 건축이었다. 물론 성당이나 궁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거 역시 방을 ‘고정된 기능’으로 분리하는 방식이 강했다. 반면 일본의 전통 주택은 결이 달랐다. 벽 대신 미닫이(쇼지, 후스마)가 경계를 만들고, 다다미가 공간의 비례를 잡고, 엔가와(툇마루)가 집 안과 밖을 잇는다. 장식을 덜어내고 재료와 빛의 변화를 전면에 놓는 태도는 서양의 눈에 “이상할 정도로 현대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브루노 타우트가 일본의 공간을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만 그 평가는 “일본이 근대를 발명했다”는 뜻이 아니라, 서양이 찾던 어떤 방향—장식의 과잉을 벗어나고, 공간을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조직하려는 욕망—과 일본 주거의 공간 논리가 맞닿아 있었다는 뜻에 가깝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역시 일본에 머무르며 설계와 수집, 연구를 병행했고, 일본 미술과 공간 감각을 자기 언어로 번역하려 했다. 일본 전통건축에서 ‘힌트’를 찾은 것이다.
일본 주택에서 서양이 특히 놀랐을 지점은 공간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닫이를 열면 방은 하나가 되고, 닫으면 다시 나뉜다. 기능이 벽에 박제되지 않고, 생활의 리듬에 따라 공간이 편집된다. 방은 ‘한 번 정하면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쓰면서 계속 바뀌는 상태가 된다. 이 감각은 근대 주거가 말한 “오픈 플랜”과 결이 닿아 있다. 물론 오픈 플랜이 일본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근대의 오픈 플랜은 철과 콘크리트라는 구조 재료, 그리고 설비의 시스템과 결합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공간을 방의 목록으로 보지 않고, 관계와 흐름으로 본다는 점이다.
일본의 가변성은 가볍다. 미닫이를 여닫는 행위로 변화가 일어난다. 반면 근대의 가변성은 대체로 무겁다. 구조는 고정하되 내부의 칸막이를 유연하게 만들고, 필요에 따라 프로그램을 바꾸는 방식이다. 하나는 운영이고, 하나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둘은 같은 방향을 향한다. 공간은 고정된 기능보다, 바뀔 수 있는 관계를 더 중요하게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전통주택에는 엔가와라는 공간이 있다. 실내도 아니고 완전한 외부도 아닌 중간 영역이다. 이 중간 영역을 통해 정원과 집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중요한 건 “경계를 없앴다”가 아니라, 경계를 얇게 만들지 않고 두껍게 운영한다는 점이다. 밖과 안은 끊어지는 게 아니라, 단계로 이어진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주택들이 자연과의 관계를 강하게 다룬 것도 이 지점에서 자주 이야기된다. 미국 중서부의 지평선, 대지의 수평성, 라이트가 가진 유기적 건축관이 함께 작동한다. “실내에서 외부로 이어지는 시선과 리듬”, “수평으로 길게 펼쳐지는 공간”, “자연을 배경이 아니라 조건으로 다루려는 태도” 같은 요소는 일본 주거가 던진 힌트와 공명할 수 있다.
* 프레이리 하우스(Prairie House): 20세기 초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주도한 주거 양식. 수평성, 깊은 처마, 내부 흐름, 자연과의 관계를 강조한다.
일본 건축에는 장식이 거의 없다. 대신 재료의 질감과 빛의 변화가 공간을 만든다. 나무, 종이, 흙, 돌 같은 자연 재료가 그 자체로 공간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다만 이것도 “장식이 없다”는 말로 끝내면 부족하다. 일본 주거는 장식을 없앤 자리에 비례와 반복, 여백의 규칙을 세운다.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덜어낸 만큼 더 정교해진다. 이 태도는 이후 서양 건축에서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읽힌다. 장식을 줄이고 구조를 드러내고 재료 자체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방식. 이것은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의 이동이었다. 장식이 공간을 설명하던 시대에서, 빛과 재료, 비례가 공간을 설명하는 시대로의 이행이다.
일본 주택은 다다미를 기준으로 방의 크기와 비례를 정한다. 물론 다다미 규격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핵심은 “반복 가능한 단위”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공간은 절대 치수보다 조합 가능한 단위의 배열로 이해된다. 이것은 근대 건축이 추구한 표준화, 모듈화, 반복 가능한 구조와도 결이 닿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직접적인 원인 관계가 아니다. 바우하우스가 일본을 보고 모듈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의 건축이 필연적으로 “표준”과 “반복”을 언어로 삼을 때, 일본의 주거는 그 언어로 번역하기 쉬운 사례로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 근대는 일본을 모방한 게 아니라, 일본을 통해 자기 언어의 가능성을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왜 한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었을까.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메이지 이후 서양과의 적극적인 교류가 빨랐다. 둘째, 서양이 관심을 가진 주거·정원·생활 공간의 표본이 비교적 선명하게 제시되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일본 주거의 공간 운영 방식—모듈, 미닫이, 중간영역, 절제된 재료—이 서양 근대가 벗어나고 싶어 했던 장식과 권위의 언어와 대조되는 대안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본 전통건축은 서양 건축에 형태를 준 것이 아니라 공간 감각을 주었다. 공간을 벽으로 나누지 않는 방법, 자연과 함께 사는 집의 방식, 재료를 존중하는 설계, 삶에 맞춰 변하는 공간. 이것들은 20세기 모더니즘 건축과, 21세기 친환경·미니멀 건축 속에서도 반복해서 호출된다. 그래서 일본 전통건축의 영향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번역되고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서양 건축은 일본 건축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일본 건축을 통해 자신이 가야 할 다른 길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길은 “더 많이 만드는 길”이 아니라, “덜어내고 운영하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