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 삶이 변하면 공간도 변한다. 공간은 시대를 담는다. 시대가 요구하면 공간은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한다. 조상님을 모시는 사당은 없었다가 생겼고, 다시 사라졌다. 마루와 온돌은 떨어져 있다가 붙었고, 대청마루는 반쯤 내부 공간이었다가 완전한 내부 공간이 되었다.
한옥의 공간 중에서 기능적 요구에 가장 충실하게 반응해온 공간을 꼽자면 마루일 것이다. 대청마루는 여름을 나기 위한 공간이기도 했고, 양반들의 제향 공간이기도 했다. 각종 행사와 모임 역시 마루에서 이루어졌다. 마루는 처음부터 있었고, 여러 필요에 의해 분화되었으며, 시대의 요구에 따라 그 성격이 크게 달라졌다. 전통한옥에서 근대한옥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재료와 공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대청마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반내부·반외부 공간이었던 대청마루는 점차 내부화되었다. 예전처럼 마당에서 농사를 짓지도 않고, 제사의 규모도 줄어들고, 무엇보다 더 많은 실내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열려 있던 자리에는 벽이 생기고 창호가 달렸다. 현대 한옥에서는 대청마루가 거실 겸 주방으로 변화하는 양상이 뚜렷하다. 한옥에는 대청마루 외에도 툇마루, 쪽마루, 누마루 등 기능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마루가 있다. 쪽마루는 기둥 바깥쪽에 설치되는 마루로,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을 매개한다. 마당과 기단, 대청 또는 거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자리다.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 외부 활동을 하다가 내부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도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내부에 있다가 완전히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외부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누마루는 예전에는 주로 남성들의 전용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휴식 공간이자 학문을 하는 공간이었고, 손님을 맞는 자리이기도 했다. 대개 일반 방보다 높게 설치되어 바깥을 조망하거나 감시하는 기능도 겸했다. 상당한 규모가 아니고서는 누마루를 두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 한옥에서는 사라진 경우도 많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집도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마루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단연 툇마루였다. 어린 시절, 마당은 부모님의 분주한 일터였다.
아버지는 연장을 손보셨고, 어머니는 텃밭에서 따온 채소를 다듬으셨다. 나는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뛰어들기보다, 툇마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기를 좋아했다. 맨발로 마루 끝에 앉아 허공에 다리를 까불거리면, 나무의 매끄러운 감촉이 종아리에 닿아 기분이 좋았다.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마당은 방 안에서 볼 때보다 훨씬 생생했다. “아버지, 그건 어디에 쓰는 거예요?” 내가 묻으면 아버지는 허리를 펴고 나를 올려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답해주셨다. 툇마루는 마당보다 한 뼘 높았기에 부모님과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마주쳤다.
툇마루라는 전이 공간 덕분에 우리는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서도 가장 가까운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툇마루의 진가는 이웃이 찾아올 때 더 빛났다. 뒷집 아주머니가 대문을 밀고 들어오면, 어머니는 굳이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오라 권하지 않았다. 아주머니 역시 마당에 서서 용건만 말하고 돌아서 법이 없었다. 아주머니는 툇마루 끝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은 채로 “오늘 고추가 참 잘 말랐네”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것은 격식을 지키되 거리를 좁히는, 한옥만의 환대 방식이었다.
신발을 신은 사람(외부)과 신발을 벗은 사람(내부)이 같은 높이의 마루에 앉아 머리를 맞대는 풍경. 툇마루는 무거운 문을 열지 않고도 서로의 안부를 건네는 낮은 문턱이었다. 그 시절 툇마루에서 까불거리던 나의 다리는 이제 바빠진 일상 속에 멈춰 서 있다. 가끔은 신발을 벗지 않고도 누군가와 나란히 앉아 햇볕을 쬘 수 있었던 그 경계의 공간이 그립다. 안팎을 가르지 않고 사람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던 툇마루의 여백이, 오늘날 우리의 주거 문화에도 한 뼘쯤 다시 생겨나길 기대하는 건 욕심이겠지만 그리운 건 그리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