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위, 다른 결과
한중일 전통공간의 차이를 설명하다가, 일본 전통주택이 공간을 모듈로 분할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19세기 이후 서양의 문화와 예술을 공부하다 보면 일본을 경유한 영향의 흔적을 종종 만나게 된다. 단순히 일본이 서양과 먼저 교류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른 문화권의 언어로 번역되기 쉬운 요소가 일본 건축 안에 있었을 것이고, 서양 건축이 당시 갖지 못했던 어떤 감각이 그 안에 있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모듈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둥과 보로 공간을 세우는 방식이 비교적 ‘눈에 띄는 방식’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물론 기둥식 건축 자체가 일본만의 발명은 아니다. 다만 일본의 주거는 기둥 간격, 바닥 단위, 미닫이의 작동이 맞물리면서 공간이 “반복 가능한 단위의 조합”으로 읽히기 쉬웠다. 이것은 근대 이후의 언어와 자주 공명한다.
한옥을 설명할 때 빈번하게 등장하는 용어가 칸이다. 네 개의 기둥이 만들어내는 한 구획을 한 칸이라고 부르고, 칸의 수는 집의 규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한옥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기둥–보–도리–서까래로 이어지는 목구조 프레임 위에 지붕이 얹히는 체계이고, 지역·계층·용도에 따라 구성 요소와 방식이 달라진다.
한 칸 한 칸이 모여 평면을 만든다. 하지만 한 칸을 구성하는 네 기둥의 간격은 “규격”으로 떨어지기보다, 대개 조정된다. 목구조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조율되고, 무엇보다 그 칸이 어떤 삶을 담느냐에 따라 비례와 성격이 달라진다. 온돌방은 바닥 아래 난방 구조와 맞물리고, 마루는 통풍과 그늘을 만들며 집안의 대소사가 이루어진다. 어느 칸이 ‘방’이고 어느 칸이 ‘비워진 마루’인지, 어디를 열어 마당과 연결할지에 따라 칸의 깊이와 폭, 여닫음의 방식까지 달라진다.
목구조의 제약, 난방 방식의 차이, 관계를 조직하는 공간 감각. 이 요소들이 겹치면서 한옥의 칸은 규격화된 모듈이라기보다 살림의 조건에 맞춰 조율되는 단위에 가깝다. 칸은 단순한 치수의 반복이 아니라, 생활을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의 반복이다.
일본 전통가옥을 이해하는 단위는 켄(間)이다. 켄은 본래 기둥 간격을 가늠하는 척도로 작동해왔고, 시간이 지나며 바닥의 다다미 단위와 맞물리면서 실내 공간을 격자식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래서 일본의 방은 절대 치수보다도 “몇 조(帖)”—다다미 장수—로 체감되고 설명된다. 물론 다다미의 규격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중요한 것은 “반복 가능한 단위”가 생활 속에서 강하게 작동했다는 점이다.
후스마와 쇼지를 열고 닫으면, 다다미 모듈 위에서 방의 경계와 성격이 즉각적으로 바뀐다. 공간은 고정된 ‘실’이라기보다 운영되고 조합되는 시스템이 된다. 벽이 공간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가 매 순간 공간을 편집한다. 이 결합은 입면에도 영향을 준다. 일정한 기둥 간격의 반복, 그 프레임 사이에 끼워지는 쇼지의 연속은 입면을 가로로 ‘눕혀진’ 리듬으로 만든다. 일본 집의 창은 “벽에 뚫린 구멍”이라기보다, 프레임 안에서 얇은 막(스크린)이 연속되는 인상이 강하다. 벽이 단단히 닫혀 있다가 창만 열리는 것이 아니라, 면 자체가 미닫이로 바뀌며 열리고 닫힌다.
근대건축은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표준화, 모듈화, 반복 가능한 구조, 장식의 제거, 대중을 위한 합리성 같은 특징을 갖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생산과 운영의 논리였다는 점이다. 공장에서 만들 수 있어야 하고, 어디서든 재현될 수 있어야 하며, 사용 방식이 명료해야 했다. 공간은 감상보다 기능과 시스템이 우선 요구되었다.
이 지점에서 일본 전통가옥의 다다미–켄–프레임 구조는 근대의 언어와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켄은 기둥 간격의 반복이고, 다다미는 바닥 단위의 반복이다. 반복 가능한 단위가 이미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셈이다. 공간은 절대 치수보다 조합 가능한 단위로 읽힌다. 이건 근대가 꿈꾼 “표준화된 삶”과 언어가 통한다. 여기에 미닫이의 작동이 더해진다. 후스마와 쇼지는 벽처럼 공간을 고정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공간을 확장하거나 분리한다. 방은 하나의 목적에 공정되어 있지 않고, 운영되는 상태로 존재한다. 근대건축이 “가변성”을 말할 때 떠올린 것—필요에 따라 변하는 평면, 유연한 프로그램—과도 결이 맞는다. 물론 근대의 가변성은 철과 콘크리트의 구조, 설비 시스템과 결합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공간은 고정된 방의 목록이 아니라 운영 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관점은 닮아 있다.
또 하나는 입면의 감각이다. 일본의 집은 벽에 작은 창을 뚫는 방식보다, 프레임 사이에 막(스크린)이 끼워지며 열리고 닫히는 방식이 강하다. 입면은 단단한 덩어리라기보다, 가벼운 면의 연속처럼 읽히기 쉽다. 근대건축이 덩어리의 장식 대신 면과 선, 반복과 리듬으로 건물을 정리해갔던 방향과도 접점이 생긴다. 그래서 일본 주거는 근대의 시선에서 ‘낯설지만 쉽게 번역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일본 전통건축은 근대가 선택한 언어—표준화, 모듈, 반복, 비장식, 운영—로 번역했을 때, 다른 전통건축보다 비교적 매끄럽게 번역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번역 가능성이, 일본 건축이 근대 이후 여러 담론과 실험에서 자주 호출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한옥의 칸과 일본의 켄은 둘 다 기둥 사이에서 출발한다. 둘 다 목조건축의 언어다. 그런데 한쪽은 규격으로 굳기보다 관계 속에서 변주되고, 다른 한쪽은 반복 가능한 단위로 정렬되며 운영된다. 한옥의 칸이 ‘살림에 따라 조율되는 단위’라면, 일본의 켄은 ‘반복을 전제로 한 단위’다. 같은 목구조인데도 공간이 다른 언어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쇼지는 얇은 목재 틀에 반투명한 종이를 붙여 빛을 부드럽게 들이면서 시선은 흐리게 가린다. 주로 외부와 실내 사이, 혹은 채광이 필요한 경계에 사용되어 실내에 확산광을 만든다.
- 후스마는 종이나 천을 입힌 불투명한 미닫이로, 방과 방을 나누는 실내 칸막이 역할을 한다. 필요에 따라 열고 닫아 공간의 크기와 성격을 바꿀 수 있으며, 장식적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두 요소 모두 벽처럼 공간을 고정하기보다, 공간을 ‘운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일본 공간의 유연함은 이 운영에서 나오고, 그 운영은 모듈 위에서 더 또렷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