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출판사 대표의 불면과 설렘의 기록
"예언을 들은 사람은 자신이 진정 바라는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 위대할지도 모르는 존재가 보여준 미래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소중히 여기기에 더욱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고, 싸우게 됩니다."*
마우스 커서가 마지막 큰따옴표에 턱 걸린 채 멈춰 섰다. 내 입도 '떡'소리 나게 벌어졌다.
미치겠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쓰지? 팔이 미친 듯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사실이어도 어쩔 수 없지만-어떤 분이길래 저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쓰는 건지 왠지 모를 갈급함에 입술을 잘근 깨물며 발을 동동 구른다. 호박이 넝쿨 째 굴러들어 왔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1년 차에 겨우 접어두는 1인 출판사 대표로서의 나의 서툰 업력이, 굴러온 호박을 실수로라도 툭 차버릴까 전전긍긍한다. 망치고 싶지 않다. 잘하고 싶다. 이토록 멋진 글을 써내는 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법을 모르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지독한 짝사랑에 빠져있었다. 단행본으로는 두 번째, 단체작으로는 첫 번째 출간이다. '내가 다시 한번 책을 출간하면 손을 지진다.'라고 생각했는데, 진득이 지져야 할 때가 바야흐로 돌아온 셈. 1인 출판사의 체력은 망각에서 오는 법이다. 크라우드 펀딩을 사흘 앞둔 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이불을 뒤척이다, 두서없는 글을 써 내려간다. 작고 소중한 나의 출판사 이야기를, 누군가 귀 기울여줄까? '낮말은 새가 들어주고, 밤말은 쥐가 들어주겠지.' 옛말을 제가 좋을 대로 해석하며 흥얼흥얼 다시 잠을 청해 본다.
*『마주치면 돌이 되는』 이백록 작가_『붉은 점』
작가 인터뷰 中 발췌
『붉은 점』 _ 이백록
저기 붉은 점이 또 지나간다. 붉은 점이 장례식장 건너편 인도를 걸어간다. 나는 늘 점심을 먹는 대신에 이 자리에 선다. 지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내 카페 유니폼을 힐끗 보았다. 나는 붉은 점을 본다. 붉은 점은 붉은 겉옷을 입은 여자다. 초가을에 나타나 초겨울인 지금까지 매일 같은 인상착의로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말을 걸 타이밍을 재고 있다. 귀가하면 공책을 펼쳐 폐기된 대본들을 훑어보고 새 대본을 쓰기 시작한다. 첫인사가 가장 중요한데 가장 어렵다. 힘주어서 ‘저기요.’하고 일단 부르는 것부터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저 사이비 아닌데…’까지 다양한 후보가 있다. 붉은 점이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라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차선책이 있다. 곧바로 하고 싶은 말을 뱉고 도망가는 것이다.
“그 사람 죽이면 너도 죽어!”
이것도 여러 후보 중에서 결정된 말이다. 만약에 붉은 점이 정말 까다로운 성격이라면, 그래서 아무리 눈치를 보고 기어도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지 않다면, 최대한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도록 불길한 음색으로 크게 말해 마음을 흔들어놓아야 한다. 그렇게 나쁜 사람인 붉은 점이 흉기를 치드는 데까지 가더라도 ‘그래, 사람을 죽이지는 말자. 그 여자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어’라고 생각하면서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붉은 점이 아주 착한 점이라서 내 과거를 들어줄 유일한 사람이 되어준다면, 하고 생각도 했다. 그런 상황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준비해 두지 않았지만 잠들기 전에, 어딘가에서, 붉은 점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내 옛이야기를 해주는 상상을 한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귀신에게 나를 바치고 도망갔다. 슬픈 운명이 나에게 미뤄진 것이다. 아주 흐릿한 점의 얼굴이 잠시 표정을 바꾸려는 듯 보였다. 심장이 곧 멈출 것처럼 뛰어 일어나 물을 마시고, 공책을 뒤적이며, 영상을 틀어놓는다. 화면 속에서 여자가 밥을 먹거나 남자가 여행을 떠나고, AI 보이스가 충격적인 사건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새벽 네 시쯤에 졸음이 공포를 이겨낸다.
일곱 시에 문자가 왔다. ‘토요일 오후에 나와 줬으면 좋겠어. 데이비드가 병원에 가야 한대.’ 그러면 ‘네’ 말고는 할 말이 없다. 그러고 보면 이런 일이 자주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쉬운 일일 줄 알고 데이비드를 기억해 보려 한다.
나는 데이비드에게 일을 배웠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짓지 않았다. 매장에 있던 명찰을 그대로 자기 가슴에 붙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렇게 이름을 정하라고 했다. 그렇게 정해진 내 이름은 ‘엠마’다. 데이비드에 관한 기억은 이것뿐이다.
그만 생각하자. 당장 오늘이라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붉은 점이 중요하다.
...(후략)
이후의 이야기는 출판사 인스타그램 및 텀블벅 사이트에서 11월 28일 목요일에
공개됩니다.
-<빵과 장미와 나비> 출판사 인스타 계정 : @inkrebels_brc
-작가, 대표 '김하녹' 계정 :@hanokdraw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