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서의 수업은 보통 늦은 오후에 끝났다. 빅토리아 가정으로 돌아가는 유학생 그룹으로부터 빠져나와 교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저녁을 먹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게 되었다. 나는 그 시간을 활용하여 종종 혼자 대학교를 둘러보곤 했다. 내가 다녔던 빅토리아의 한 대학교는 원형으로 캠퍼스가 이루어져 있었다. 도심에서 조금 거리가 있어 버스로 등교해야 했던 청록의 캠퍼스는 언제 봐도 아름다웠다. 숲 속에 지어놓은 듯한 낮은 건축물들은 자연과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전체 캠퍼스의 부지가 넓어 평소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 캠퍼스와는 다른 한적함이 느껴졌다. 버스가 이동하는 길에 적지 않은 빈도로 사슴 가족이 발견되곤 했다. 그럴 때면 버스 기사는 그 무리가 안전히 도로를 건널 때까지 기다렸다. 자연을 존중하는 빅토리아 사람들의 태도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같은 반 안에 서글서글한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유독 윗사람들과 좋은 관계로 지내던 나는 그와 같은 반인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면 그는 자신의 인싸력을 발휘하여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었다. 나는 반 친구라는 이유로 그와 대화를 하다 의도치 않게 모임에 초대받곤 했다. 낯선 공간에 낯선 사람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나의 사고와 인간관계를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홈 파티라는 이름 하에 다른 반 친구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나는 대게 조용한 편이었으나 모든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같이 음식을 만들고 둥글게 앉아 옆자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진심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수업을 오고 가며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대학교 유학생들의 구성원 중에 가장 많이 차지한 비율의 국가는 단연 한국과 일본이었다. 그래서 모든 유학생들이 대화는 영어로 하지만 동양 문화가 알게 모르게 드러나곤 했다. 특히 홈 파티에서는 거의 일본인과 한국인이 주류를 이루어 겸손과 자중의 자세가 돋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국적의 유학생들이 소외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모두의 문화를 존중했고 캐나다 문화에 스며들려 노력했다. 대부분 유학생들이 홈스테이 가정에서 지냈기에 그렇게 하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러운 부분이었다.
단풍이 내려앉은 거리를 거닐며 사소한 것에 감사할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 식사를 챙겨주고 말동무가 되어주는 홈스테이 맘, 사람의 존재를 부각해 주는 대자연은 나의 곁에 있었다. 그 소중함에 가끔 흐르는 시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가을이 무르익었을 때, 나는 비로소 천천히 변화하는 빅토리아에 적응하게 되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사람들을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만의 루틴이 생겨 안정적으로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 학교, 캐나다 가정, 음식점, 친구의 집, 공원을 이동해 가며 일상을 이어갈 때 작고 소소한 행복이 느껴졌다.
‘빅토리아를 계속 지루하게 해’라는 SNS의 페이지를 홈스테이 아들이 보여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활발하고 에너지 넘치는 10대들에게 빅토리아라는 곳이 매력적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북중미 사람들에게 빅토리아는 은퇴 후 살고 싶은 우선순위의 도시지만, 젊은 층의 시민에게는 벗어나고 싶은 도시로 인식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빅토리아의 많은 10대들이 대학생이 되면 밴쿠버로 넘어간다고 했다. 더 높은 임금과 기회를 찾기 위해 대도시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이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