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테크는 '생존'의 문제가 되었나
‘벼락거지’ 공포와 ‘영끌’, ‘묻지마 투자’와 같은 현상들이 개인의 심리적 문제이기에 앞서, 구조적 불평등이 낳은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이제 그 불안이 어떻게 우리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재테크 공화국’의 민낯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15년간 재정 상담을 하며 한 가지 공통된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바로 ‘재테크가 국민운동이 된 사회’입니다. 과거에는 경제 신문이나 전문가들만의 영역이었던 재테크가 이제는 초등학생의 용돈 관리부터 노년층의 자산 운용까지, 전 국민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점심시간 회사 동료와의 대화, 명절에 만난 친척들, 심지어 아이들 학부모 모임에서도 재테크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마치 재테크를 하지 않는 것이 게으름이자, 미래에 대한 무관심인 것처럼 취급되는 분위기입니다.
이처럼 재테크가 국민운동이 된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개인의 삶을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첫째, 노동의 가치 하락과 저축의 무의미성입니다. 과거에는 성실하게 일해서 저축하면 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금리 기조와 자산 가격의 폭등은 이 공식을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2023년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자산 상위 20%와 하위 20%의 격차는 꾸준히 벌어지고 있으며, 노동 소득만으로는 이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축은 돈을 불리는 행위가 아니라, 가치를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졌습니다.
둘째, 불안정한 노후와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입니다. 연금 제도가 미래를 온전히 보장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전 세대를 관통하는 공통적인 감정입니다. 한때 국가와 사회가 개인의 노후를 책임져줄 것이라는 믿음은 사라지고, 이제 개인의 힘으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로 인해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을 넘어, 주식과 부동산 투자가 노후를 위한 필수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셋째, 삶의 모든 영역이 금융화된 사회입니다. 주택은 단순히 거주 공간을 넘어 투기 자산이 되었고, 자녀 교육은 고액의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한 투자로 변모했습니다. 심지어 결혼과 출산도 막대한 자산이 필요한 금융적 도전으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삶의 모든 영역이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면서, 재테크는 단순히 돈을 불리는 행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된 것입니다.
재테크가 국민운동이 된 사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저는 상담을 하면서 다음의 문제들을 목격했습니다.
끝없는 비교와 불안 : 모두가 재테크에 뛰어들면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수익률을 남과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서로의 수익을 인증하며 우월감을 드러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습니다. 재테크는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기보다, 더 불행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개인에게 전가된 책임 : 재테크가 생존 수단이 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재정적 문제를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는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 치환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저는 청년들이 빚을 지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구조적 현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재테크가 국민운동이 된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삶을 희생하는 사회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재테크는 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넘어, ‘왜 우리 사회는 모두가 재테크를 해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재테크 공화국을 공고히 만든 주체 중 하나인 언론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언론은 왜 주식과 부동산 기사에 집착하는지, 그 병폐를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참고 자료]
통계청. (2023). 『가계금융복지조사』.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장, '청지트'서 청춘의 빚 훌훌 날려요”, 『더리더』, 2019. 7. 15.
한국은행. (2023). 『금융안정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