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암흑기
90년대 말,
'토익 점수가 신발 사이즈예요'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이공계열 학생들의 토익 점수는 처참했고, 당시만 해도 800점만 넘으면 교수님이 바로 취직을 시켜주겠다고 하실 정도로 토익은 필수 시험 종목이었다.
각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영어 공부를 시키기 위해 실제로 학사 규정에 존재하지도 않는 커트라인 점수를 과별로 지정해 놓고 학생들이 점수에 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독려하는 제도가 성행했다.
1학년 때는 신입생의 자유를 즐기는 것인 임무인 양 매일 술 마시기 바빴고, 2학년 말쯤부터 토익시험을 봐야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너도나도 토익 시험을 치르기 시작했다.
우리 과 커트라인은 650점.
나는 간신히 400점을 간신히 넘겼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함께 다니는 친구들 모두 부끄러움 없이 점수를 공개할 만큼 대한민국 정규 코스를 밟고 중위권 대학에 들어온 90년대 학번들의 토익점수는 거기서 거기였다.
650이라는 점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방학마다 종로의 토익학원에 앞다투어 등록했고, 나를 비롯한 여러 학생들은 토익 점수를 만들고 졸업을 해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 하에 일 년이나 휴학을 하고 주야장천 종로의 토익 학원을 다니는 어리석은 짓을 하기도 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내 친구들만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학연수 갈 형편들은 안되었으니 종로로 연수를 갈밖에.)
그렇게 열심히 토익 학원을 다니고, 매월 토익시험을 봤지만 우리의 점수는 쉽게 올라가지 않았다.
Part 별로 자주 나오는 단어는 절대로 외워지지 않았다.
대신, 문제 푸는 요령을 열심히 익혔다.
파트 1은 그림을 보자마자 무슨 물건들이 있는지 미리 스캔해 둘 것.
파트 2는 의문사를 살짝 문제에 적어둘 것, 긴 문장은 답이 아닌 경우가 많음.
파트 3, 4는 문제와 보기를 잽싸게 먼저 읽어두어야 함.
하지만, 아무리 요령을 익혀두면 뭘 하겠는가.
파트 1은 그림을 스캔해 놓은들 사진에 있는 사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를 모르고, 파트 2는 의문사 뒤에 문구가 하나도 안 들렸다. 파트 3,4는 문제와 답을 빨리 읽지 못하니 문제 읽다가 듣기를 다 놓쳐셔 모조리 찍어야 했다.
오디오에서 들려주는 선택지 4개 중 수험생이 가장 많이 고개를 숙이는 번호가 답이라는 요령만 배운 대로 열심히 실천했다.
Part 3,4,5,6는 자신 있게 이게 답이다 라고 확신하는 것이 열 개도 안되었다는 것을 이제야 고백할 수 있다.
문제를 끝까지 푼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시간이 모자라서 찍기를 3번으로 통일할지 4번으로 통일할지 의사결정을 한 후 정성껏 답안에 동그라미를 균일한 농도로 칠하는 데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렇게 종로 학원 어학연수를 1년간 마쳤으나, 600점이 넘을랑 말랑 한 채로 복학을 하고 말았다.
복학 후에도 열심히 토익 문제집을 풀었지만 말만 열심이지 듣기 평가 Part3 이후부터는 백지상태인 문제집이 몇 권이나 집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만만한 Part 1,2를 책장이 까매질 때까지 공부하고, 지겹고 어려워서 어떻게 문제를 푸는지조차 모르는 Part 5,6 부분은 또 그대로 넘기고, 그나마 뭔 소리인지 짐작은 할만한 독해 Part 7의 쉬운 부분만 공부한 채로 매월 3만 원 상당의 토익 시험을 치르러 다녔다.
서울 시내의 중, 고등학교의 시험 환경이 어떤지 정보를 입수했다. 스피커 상태와 의자의 편안함이 가장 좋은 학교 위주로 신청이 마감되어 갔다. 집 근처 학교에 자리가 없으면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학교까지 새벽밥을 먹고 가서 토익을 치르고 오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시험장에 들어가 매번 태반을 찍고 나왔다.
씁쓸하게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남자 친구를 만나서 신세한탄을 한바탕하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가는 행위를 대학교 내내 지속했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인지 그렇게 열심히 시험을 치러 다닌 나는 막판에 역사적인 점수 675점으로 간신히 커트라인을 넘기고 기쁘게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럼 대학 생활 내내 토익공부를 했으니 영어 실력이 좀 늘었을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실생활 영어 실력은 참담한 수준이었다.
어느 해 우리 과에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생겨 핀란드 여학생이 우리 학교에 와 기숙사에 머문 적이 있었다.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외국인 여학생과 말이라도 섞일세라 멀찌감치 떨어져 다녔는데 어느 날 강의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 여학생과 어쩔 수 없이 단둘이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외국에서 온 손님인지라 뭔가 친절한 인상을 주고 싶었지만, 단 한마디도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나이나 남자 친구 유무 같은 것을 물어보면 실례라는 것은 어디서 주워 들어서 그걸 물어볼 수는 없고, 가족이나 전공을 물어보고 싶어도 머릿속으로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아 아무 말도 못 하고 머리만 굴리고 있었다.
가족이 패밀리 인건 알겠지만 패밀리가 몇 명인지 물어보는 문장은 못 만들었다.
'전공'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뭔지 아예 몰랐다.
그 친구도 이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갑자기 어젯밤에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예스터데이... 나이트... 마우스...
대충 어제 기숙사에서 엄청 큰 '빅 마우스'를 봤다는 말인 것 같았다.
'마우스' 중학교 1학년 때 도그랑 캣과 함께 배웠던 단어 마우스 (mouse).
그런데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왜 스머프에 나오는 거인 '빅마우스' (mouth)가 떠올랐던 걸까.
mouse는 생각이 안 나고 mouth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무슨 단어를 들었을 때 그 단어가 이런 뜻이라고 꽂혀버리면 다른 생각은 안 나고 그쪽으로만 이해하려고 할 때가 있다. 문장 구조도 익숙하지 않으니 유추도 불가능하다. 그냥 가가멜이 무서워하는 빅마우스만 동동 떠다니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눈치는 있어서, 분명히 이 친구가 그 '빅 마우스(mouth)'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건 알겠는데, 대체 이게 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미소를 띤 채로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난감했다.
이 친구는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는가. 기숙사에서 큰 쥐를 봤다는 놀라운 사건을, 손짓 발짓까지 하며 말해주었는데 이 한국 친구는 별다른 반응 없이 미소만 짓고 있으니...
다행히 그때쯤 기숙사에 도착했고, 우리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후 각자의 방을 향했다. 그 친구와 인사를 하고 돌아서자마자 꿈에서 깬 듯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빅마우스!!! 기숙사에서 쥐 봤구나... 이런 바보.'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쩌면 이렇게 센스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입이 큰 사람을 봤어도 그 친구가 기숙사에서 '큰 입'을 가진 사람을 봤다고 그렇게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을 리가 있겠느냔 말이다. 그것도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왜 쥐 생각이 안났을까.
'내가 마우스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한국 기숙사에서 쥐 정도는 흔히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자기가 요란을 떨어서 내가 기분이 안 좋았다고 오해하면 어쩌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지만, 다시 쫓아가서
"아까 빅 마우스 봤다고 했지? 정말 놀랐겠다. 내가 마우스(mouse) 랑 마우스(mouth)를 헷갈렸어. 나도 기숙사에서 쥐 본 적 있어. 너도 봤구나. 오 마이 갓."
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다시 만난다고 해도 저 문장들을 영어로 만들 수도 없었다.
그 빅마우스 사건은 이후에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se와 -th 발음을 구분 못한 것은 둘째 치고, 그 대화에서 스머프의 빅마우스를 떠올렸다는 얘기는 어디 가서도 할 수 없었고 믿어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결국 그 오랜 시간 나의 영어 공부는 '토익 잘 치기 요령 습득'이었지 영어를 사용하기 위한 공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