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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백필름 Jul 23. 2023

라우드의 공개 입찰과 크몽의 수의 계약

입찰 마감이 오늘 자정이다. 입찰에 참여한 11개의 업체 중에 3군데가 마음에 들었다. 마감 시간에 임박해서 몇 군데 업체가 더 참여할 것이다. 공개 입찰 한 번으로 바로 마음에 드는 시안을 만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서비스다.  


얼마 전 신사업으로 여행용 캐리어 판매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름은 Chat_GPT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지었는데, 로고가 문제였다. 회사 내부에서 작업하기도 어렵고 마땅히 맡길 곳도 없었다. 우리 회사와 계약되어 있는 프리랜서 그래픽 작가에게 먼저 부탁을 드렸다. 30만 원에 작업이 가능한지 문의했는데 70만 원이면 작업이 가능하다고 회신이 왔다. 그래픽 실력이 뛰어난 걸 잘 알고 있었길래 흔쾌히 동의하고 작업을 맡겼다. 하지만 1주일 후에 온 1차 시안은 내 기대치에 못 미쳤다. 예쁘기는 한데 로고의 상징성이 부족했다.


회사 내부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올 초 화장품 브랜드를 신규로 론칭하면서 로고와 패키지 등 브랜드 관련 그래픽 작업을 회사 내부 웹디자이너와 패션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일회성 프로젝트로 진행한 적이 있다. 5명의 디자이너 중에 시안이 제일 마음에 들었던 한명의 디자이너와 디벨럽 작업을 계속 진행했는데, 아무래도 전문 로고 디자이너가 아니다 보니 작업 시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평소 그 직원이 맡아서 하던 업무가 밀리면서 팀 전체 스케일이 어긋나는 등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


브랜딩 전문 회사에 맡길 수도 있지만 비용이 문제였다. 테스트 삼아 가볍게 진행해 보는 프로젝트인데 잘하는 곳은 1천여만 원, 좀 저렴한 곳도 수백만 원 하는 회사에 맡길 처지가 못 되었다. '실패해도 상관없어'라는 마인드로 저비용으로 가볍고 빠르게 테스트해 보는 프로젝트인 만큼 이에 맞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달리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크몽에 맡겨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아는 동생이 공개경쟁 입찰 방식인 콘테스트 사이트를 소개해 주었다. 크몽은 가격은 저렴했지만 퀄리티는 평범했다. 단순 업무를 맡길 땐 만족스러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바랄 때 기대에 못 미쳤다. 운이 좋을 땐 꽤 좋은 결과물을 만날 수도 있었지만 가끔은 형편없는 결과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이러한 사정을 들은 동생이 본인도 최근에 비슷한 고민을 하던 차에 다른 지인의 추천으로 '라우드'라는 사이트를 이용해 봤는데 가격은 부담이 없는데, 만족도는 상당히 높았다고 추천을 해 준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지난 주말에 간단한 브랜드 소개와 함께 50만 원 상금으로 콘테스트를 오픈했다. 입찰 기간을 1주일로 했는데 오늘까지 11개 팀이 참여했다. 작업물은 만족스러웠다. 3군데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고, 2군데는 완성도는 높았으나 내가 원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나머지 6군데는 크몽에서 겪었던 나쁜 경험처럼 초보 수준에 급하게 찍어서 제출한 분위기다. 콘테스트라는 이름으로 공개경쟁 입찰을 진행함으로써 마음에 드는 3군데 중 어디를 최종적으로 선정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크몽을 정기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간단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할 때, 엑셀 매크로 작업이 필요할 때, 내부 업무가 많아서 외부의 웹디자인 도움이 필요할 때, 3D나 영상 편집 작업이 필요할 때, 일러스트 작업물이 필요할 때, 언어 번역이 필요할 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크몽을 활용하고 있다. 크몽에 등록되어 있는 업체들이 많다 보니 리뷰를 꼼꼼하게 살핀 후 신중하게 한 군데 업체를 선정해서 일을 진행한다. 


하지만 일이라는 건 해봐야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결제를 하고 막상 일을 해보면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주나 열심히 하는 것과 실력이 좋은 것 사이에는 큰 간격이 존재한다. 포트폴리오와 리뷰로는 검증되지 않는 '진짜 실력'이라는 게 있다. 이는 결과물을 받아봐야만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한때는 그래픽 작업물이 급하게 필요해서 크몽에서 3군데 업체에 동시에 맡겨서 최종적으로 한 팀의 작품을 쓰고 나머지 2팀의 결과물은 작업비만 지불하고 사용하지 않은 적도 있다. 


공개 입찰 방식인 '라우드'는 이 문제를 콘테스트라는 방식으로 단숨에 해결했다. 우승할 자신이 있는 팀은 입찰에 참여해서 상금을 타 가라는 거다. 사실 이 방식을 처음 들었을 때 '작업만 하고 탈락한 대다수의 업체들은 어떡하나? 작업은 하고 보상은 받지 못해 상실감을 크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력은 있는데 조직력이나 마케팅 능력이 부족한 '진짜 실력자'한테는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무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콘테스트는 일종의 '후불제' 시스템이다. 먼저 물건을 제공한 후 사용한 고객이 만족하면 그때 돈을 받는다. 내가 판 제품이나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돈을 못 받는다. 실력 있는 사람은 더 많이 팔고, 실력 없는 사람은 하나도 못 판다. 크몽은 자기소개를 그럴듯하게 해 놓으면 실력 없는 팀도 운 좋게 계약을 따낼 수 있다. 하지만 라우드는 냉정하다. 퀄리티가 따라오지 못하면 그대로 탈락이다. 즉 콘테스트는 공개경쟁 입찰 방식이고 크몽은 수의 계약 방식이다.


결과물 평가를 통한 공개경쟁 입찰 방식과 레퍼런스 체크를 통한 수의 계약 방식은 대학 입시 제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정시 모집과 수시 모집이 그것이다. 정시 모집은 공개 입찰 시스템이다. 1년에 한 번 경쟁 PT를 통해서 합격자를 선발한다. 시험이라는 결과물이 좋으면 합격이고 결과물을 망치면 탈락이다. 반면 수시 모집은 과거의 사용자 리뷰인 학생부를 통해서 선발한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인재를 한 가지 잣대로만 평가할 수 없기에 입시 제도에서는 경쟁 입찰 시스템과 학생부를 통한 수의 계약 시스템이 공존한다. 


회사의 채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회사는 서류 전형을 거친 후 복수의 후보를 대상으로 채용과제를 통해 가장 결과물이 좋은 후보를 최종 채용한다. 반면, 중요 보직이나 공개 채용이 잘 안 될 경우엔 지인이나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그 인재의 레퍼런스를 체크한 후 채용할 때도 있다. 공개경쟁 입찰 방식과 수의 계약 방식을 직급과 직무별 상황에 맞춰 사용하는 셈이다.


선거판에서도 이러한 두 가지 시스템이 공존한다. 국회의원을 뽑을 때 공개경쟁 입찰인 지역구 의원과 내부 추천을 통해 선별되는 비례대표 의원 제도가 모두 있다. 비율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한 가지 방법만 취할 경우 생길 수 있는 민의의 왜곡을 막기 위해 2가지 제도가 적절하게 섞혀서 사용되고 있다. 


최근에 우리 회사가 짓고 있는 사옥의 경우엔 공개 입찰 방식을 통해서 진행하고 있다. 잘 아는 분 중에 실력 있는 건축사도 있고 믿을 만한 시공사도 있지만 나는 공개 입찰 방식을 선택했다. 경쟁을 통한 선정은 에너지는 많이 투입되지만 리스크는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일이 잘 못 되었을 경우 남 탓을 하며 원망할 일이 적다. 지인이나 주변 소개를 통해 일을 하다가 잘 못 될 경우 상대방을 비난하기도 하고, 추천한 사람한테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개 입찰 방식은 제대로 선정하지 못한 나 자신의 미숙함을 반성할 뿐 타인에게 그 탓을 돌릴 필요가 없다. 완벽하게 내가 일의 주체가 된다.


우리가 건축 공개 입찰에 사용한 서비스는 '하우빌드'다. 사옥 부지의 지번과 설계 시 희망 사항을 적어서 하우빌드에 건축사 입찰 공고를 냈다. 34군데의 건축사 사무소가 입찰에 응했고 나는 이들의 회사소개서와 레퍼런스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했다. 34군데 중 서류 검토를 통해 우리와 핏이 맞는 8군데를 고른 후 하루에 4군데씩 이틀 동안 이들과 전무 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3군데로 압축했다. 그리고 외부에서 전문가를 초대한 후 우리 회사에서 공개 PT를 진행했다. 2팀의 평가가 엇비슷해서 결정이 어려웠는데 결국 '나랑 잘 맞는 느낌'의 건축사 사무소를 최종적으로 골랐다. 그곳과 현재 원만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다.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는데 이 역시 비슷한 절차로 진행될 예정이다. 


만약 건축사나 시공사 선정 등 중간에 번복이 힘든 계약을 내가 아는 인맥 내에서 수의 계약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내 시간은 절약되고 일은 더 빠르게 진행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성격상 일이 진행되는 과정 내내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한 의문 말이다. 가격에 대한 미련도 남을 수 있다.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진행할 수 있었는데, 아는 관계라서 그러지 못한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1만 원짜리 컵을 하나 사더라도 3개 이상 비교해 가며 사는 세상에 상당히 큰 금액의 의사결정을 수의계약 방식을 취하는 건 아무래도 내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다. 


다만 공개경쟁 입찰 방식은 한 가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사용자의 에너지가 끊임없이 투입된다는 점이다. 하우빌드를 이용할 때 34군데 업체에서 1군데를 고르기까지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했다. 라우드에서 결과물을 최종 선정할 때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3군데 중에 가장 나은 시안을 고르기 위해서 내부에서 미팅을 진행하고, 본인이 고른 안이 탈락한 참석자에게는 양해도 구해야 한다. 모든 의사결정에는 에너지가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인터넷쇼핑몰이나 매장에서 고객들은 늘 힘들어한다. 수많은 결과물 중에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선택은 언제나 어렵다. 쿠팡이나 네이버쇼핑에 접속해서 검색을 하면 공개 입찰 경쟁에 참여한 수많은 제품들이 나를 골라달라고 열심히 장점을 어필하고 있다. 모든 물건이 다 좋아 보인다. 처음에는 제품을 비교해 가며 즐겁게 쇼핑을 하던 고객들도 빈도가 잦아지면 제품 고르기에 지친다. 그러다 보니 그냥 사용 경험이 좋았던 곳, 어디선가 들어본 브랜드 제품을 습관적으로 사게 된다. 공개 입찰 경쟁 방식에서 수의 계약으로 거래의 방식이 전환된다. 이 시점이 바로 브랜드가 기억되는 시점이다. 브랜딩은 선별 과정에 낭비되는 에너지를 절약해 주면서 리스크는 헤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다. 


내가 다녔던 깡촌의 초등학교에는 남자 졸업생이 나를 포함해서 4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13살 때 이 3명의 죽마고우와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명은 사고로 이미 죽었고 나머지 2명도 각자 사는 길이 달라서 이제는 인연이 끊겼다. 중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사회에 나와서도 나는 공개 입찰 방식을 통해 사람을 만났다. 그들과 잘 사귀면서 관계를 이어가기도 하고 끊기도 했다. 오랫동안 인연이 이어지는 친구도 있고, 오해 속에 안타깝게 끊어진 인연도 있다. 공개경쟁 입찰 방식을 통해 만난 사람들 중에 운좋게 나와 핏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수의 계약을 맺고 관계의 밀도를 업그레이드 시켰다.


대학 입시에서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집을 지을 때도,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첫 단추를 낄 때 공개경쟁 입찰 방식은 올바른 선택지를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옅게 맺어진 관계가 서로에게 유익하면 그 관계는 지속되고 어느 순간 깊어지면서 수의 계약 단계로 넘어간다. 공개경쟁 입잘 방식을 거치지 않더라도 되는 단계, 그것이 바로 브랜딩이다. 고객이 우리 제품을 기억해 준다면 그것은 제품의 브랜딩에 성공한 것이고, 이름 석자만 들어도 미소와 함께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사람의 브랜딩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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