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2일 수요일이었다. 가깝게 지내던 회사 대표와 함께 세미나를 듣고 돌아오는 길에 독서경영 관련해서 대화를 나눴다. 6개월 전에 독서 경영을 도입했는데 성장하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고 적극 추천했다. 진작부터 독서 경영을 도입하고 싶었는데, 이 날 마음을 굳혔다.
생각이 길어지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실행이 늦어질 거 같아 그 주 토요일에 교보문고에서 책을 쭉 훑어보고 월요일에 출근해서 직원들한테 다음 주부터 우리 모두 함께 책을 읽고 북토크를 할 거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해서 읽은 첫 북토크 책이 일본 작가가 쓴 『청소력』이었다. 안 쓰는 물건은 버리고, 일하는 공간은 깨끗한 공기로 환기시킨 후 감사하는 마음으로 청소를 하면 우주의 기운이 와서 행운을 준다는 다소 허황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책을 읽은 후 우리 회사는 좀 더 깨끗해졌다.
내가 북클럽을 운영하게 된 배경은 무자본 창업이 그 뿌리다. 2016년 화장실도 없는 3.3평 주차장에서 첫 창업을 하다 보니 직원 한 명 뽑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옆 건물 수위 아저씨가 없는 빈틈을 타서 몰래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직장을 선호하는 직원은 드물었다. 당시 우리 회사 입사 조건은 단 하나, ‘내일도 출근하는 직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초창기 입사한 직원들은 열정적이었으나 기초 지식이 얕았다.
직원 역량의 총합이 곧 회사의 역량인 만큼, 어떻게 해서라도 직원들의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을 하면 좋겠지만 이는 현실적이지 않았다. 외부 강연이나 컨설팅을 받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책이 제일 쉽고 효과가 컸다. 저비용, 고효율의 가성비가 가장 좋은 학습 방식이 독서라고 확신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매주 북클럽이 있는 금요일은 8시에 출근해서 한 시간 동안 책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금요일은 2시간 일찍 퇴근하는 복지가 있었기에 조기 출근에 따른 반발은 크지 않았다. 처음에는 의욕이 앞서서 2주에 한 번씩, 월 2회씩 북클럽 시간을 가지다가 벅차다는 의견이 많아 월 1회로 변경했다. 직접 책값 일부를 내면 완독률이 높아진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50% 도서비 지원을 했으나 나중에 100% 지원으로 바꾸었다.
도입 당시 북토크 진행 방법에 대해 알아봤었는데 ‘본, 깨, 적’ 방식이 쉬우면서 적절해 보였다. 책에서 본 것, 깨달은 것, 마지막으로 내 삶에 적용할 것을 차례대로 얘기하는 방식이었다. 한동안 이렇게 진행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책에서 느낀 점’, ‘인상 깊은 구절’, ‘업무에 적용할 것’ 등으로 변해갔다. 가끔씩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해서 북토크를 하는 건지 일상 잡담을 나누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책 선정은 연말에 다음 해 1년 치 책을 한 번에 선정한다. 전 직원들에게 1인당 1권씩 추천받아서 내가 최종적으로 고른다. 나 역시 추천 도서를 넣어서 신중하게 총 11권을 고른다. 1권을 비워 두는 이유는 신간 중 좋은 책이 나오면 그 책을 같이 읽을 수도 있고, 각자가 읽고 싶었던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서다. 책 선정 시 직무 간 균형을 고려한다. 브랜딩이나 마케팅 서적과 더불어 제품 개발, 디자인, 고객상담, 물류, 회계 등 전 파트에 걸쳐 도서를 선정한다. 실용서뿐만 아니라 소설, 에세이, 철학, 동화, 웹툰 등 분야별 다양성도 추구한다. 연초와 연말 등 시즌성, 그리고 책의 깊이와 재미도 도서 선정 시 감안한다. 무거운 주제의 책을 한 권 읽었으면 그 뒤에는 쉽고 재미있는 책을 한 권 배치하는 식이다.
북클럽은 1년 임기의 북클럽 리더를 뽑아서 전반적인 운영을 맡긴다. 그가 책 안내도 하고 중간중간 독서 독려 메시지도 보내고, 도서 구입과 정산도 맡는다. 조 선정과 저자 초청, 책거리 등의 행사도 기획한다.
북클럽 진행은 전적으로 각 조의 조장이 맡는다. 매번 랜덤으로 조장이 선출되어 사회를 보고 진행한다. 북클럽 분위기는 너무 무겁거나 심각하면 안 된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이 터져 나오는 분위기면 좋다. 맛있는 간식을 먹으면서 책 내용에 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눈다.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매달 바뀌는 조원은 미리 선정되어 사전에 안내가 되지만 나는 당일에 어느 조에 참석할지 결정한다. 직원 중 한 명이 내가 속한 조와 그렇지 않은 조의 완독률 차이가 크다며, 당일에 어느 조에 갈지 정하는 게 더 효과적일 거 같다고 제안했는데, 일리가 있어서 받아들였다.
내가 조를 고르는 기준은 세 가지다. 최근에 입사한 수습 중인 직원이 있다면 그 조에 참석한다. 북토크 시간은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수습 직원이 없을 때 최근 고민이 많거나 상담이 필요한 직원이 있는 조에 참석한다. 책 얘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어떤 고민과 어려움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직원도 없을 경우엔 책을 추천한 직원이 있는 조에 참석한다.
책을 읽고 나면 간략하게라도 독후감을 남겨야 한다. 회사 내 협업툴로 사용 중인 '노션' 북클럽 게시판에 3 문장 이내로 각자 독후감을 남긴다. 북클럽 전날까지 남기는 게 원칙인데, 당일 아침에 올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책에 영감을 받은 직원은 장문의 독후감을 남기기도 한다.
책은 꼭 읽지 않아도 된다.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독서가 의무가 아니다. 책 표지조차 펼치지 않고 참석하더라도 제재나 벌칙은 없다. 나중에는 혹시 생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한 장만 읽고 와도 된다. 다만 책을 안 읽고 온 사람은 엉뚱한 주제로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책 읽는 걸 힘들어하는 직원들도 대체로 몇 장은 읽고 온다. 아니면 블로그 서평이나 유튜브를 보고 올 때도 있다. 북클럽 참여는 의무이지만 독서는 의무가 아니다. 팀장들한테는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얘기한다.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대부분 완독 한다.
사실 책 한 권 읽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직원들이 의무감으로 책을 읽기보다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가볍게 시작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한테 억지로 숙제를 내주기보다는 쉬운 문제부터 스스로 풀어서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북토크 시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책과 조금 더 가까워질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 만화책을 보더라도 서점을 데리고 다닌 것과 비슷한 이유다.
8년 넘도록 북클럽 문화를 잘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독서의 효능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서는 달리기와 비슷한다. 방구석에서 뒹굴거리다가 아내에게 이끌려서 동네 한 바퀴 뛰고 온 뒤 ‘오늘 괜히 달렸어’라는 말을 나는 해 본 적이 없다. 집밖으로 나가는 게 귀찮더라도 뛰고 난 후에는 언제나 상쾌함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독서 역시 힘들긴 해도 완독 후 느끼는 성취감이 꽤 크다. 더 성장하고 성숙해진 기분이다. 독서는 해악은 없으면서 효능은 탁월한 묘약이다. 다만 읽어야 하는 동기부여가 안 될 뿐이다. 좋은 게 확실한데, 누군가 머뭇거릴 땐 살짝 떠밀어도 된다고 나는 믿는다.
사내 북클럽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으로서도 독서는 도움이 많이 된다. 주변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구입한 모든 책을 다 완독 하려는 이가 간혹 있는데 그럴 필요 없다. 저자가 책 한 권을 썼다는 건 정말 위대한 일이다. 하지만 위대한 건 위대한 거고 그 책의 효용은 따로 따져 봐야 한다. 책 한 권을 읽으려면 꽤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얇은 책은 3~4시간이면 읽을 수 있지만. 제대로 읽으려면 6~10시간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그 시간만큼 책 내용이 유익해야 시간 대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서점 가판대에는 독자가 아니라 저자를 위해 출간된 책도 있고 수준이 낮거나 짜깁기한 책도 있다. 내용은 부실한데, 마케팅을 잘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있다. 때론 내용은 좋지만 내 상황과 맞지 않는 책을 구입할 때도 있다. 그런 경우 완독은 의미 없다. 그냥 쓱 한번 훑어보고 덮어도 된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세 가지 기준으로 내 방 책장을 분류해 놓았다. 읽은 책, 읽을 책, 그리고 인테리어 소품용 책. 인테리어 소품용 책장에는 내가 제목에 혹해 잘못 샀거나, 앞부분을 읽어보니 나와 맞지 않거나, 세미나 같은 곳에서 선물로 받았는데 내 취향이 아닌 책을 보관한다. 언젠가 이 책들을 버리겠지만 아직은 차곡차곡 모아 두고 있다. ‘아이의 학습 능력은 그 집의 책 권수와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를 어디선가 본 게 영향을 미쳤다.
북클럽을 지속하려면 대표의 강한 의지가 필수적이다. 아주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표의 의지는 몇 달 지나면 흐지부지 될 수 있는 만큼 독서 경영은 조직 문화로 안착시켜야 한다.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현업에 닥친 이슈를 해결한다고 정신이 없는데, 북클럽 시간에 일과 무관한 에세이를 읽으며 시시덕거리다 보면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라는 ‘현타’가 올 수 있다. 매일 닥치는 장애물에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독서경영을 하려면 시스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북클럽을 정례화시켜야 하며, 그 어떤 상황에도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실무를 맡아서 진행할 담당자가 필요하며, 책거리 같은 이벤트를 통해서 재미를 보태야 한다. 가끔씩 가볍고 흥미로운 책도 포함시켜서 책 읽는 행위 자체에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은 한 접의 보약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조직의 체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저자 초청 특강을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저자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건 기대보다 신선했다. 그 뒤로 해마다 한 번씩 저자 초청 자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선정한 책 중 관심 있는 주제가 있으면 그 저자에게 연락을 취한다. SNS를 이용하기도 하고, 출판사를 통하기도 하고, 지인을 통해 알아보기도 한다. 제안을 거절하기도 하고 반기기도 한다. 강의료를 거절하는 분도 계시는데 유명한 분이 아니면 적절한 선에서 답례를 해 드리면 좋다.
책거리는 연말 이벤트성으로 진행한다. 첫 책거리는 시집을 읽고 각자 자작시를 써 보는 거였다. 그해 12월에 정호승 시인의 시 묶음집을 읽었는데, 학창 시절 기억이 떠올라서 함께 자작시를 써 봤다. 각 조별로 1, 2위를 뽑아서 연말 송년회 때 여섯 명이 자작시 낭송회를 가졌고, 운 좋게 등단한 시인이 심사위원으로 오셔서 수상자를 뽑고 시상을 했다. 마침 그날 바이올린 연주팀을 초대했었는데 직접 연주하는 BGM 속에 읊는 시는 감흥이 남달랐다. 당시 대상을 받은 시는 물류팀 팀장이 썼던 「알사탕」으로 기억한다.
그다음 12월에는 웹툰을 읽고 1단에서 4단짜리 웹툰을 직접 그려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우리 회사에서 출판업을 등록해 육아 웹툰 작가들의 작품으로 『오즈툰』이라는 웹툰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책거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력을 만든 것이다. 서른여섯 명의 직원들이 그동안 읽은 북클럽 도서 중에서 인상 깊은 문장 10개씩을 골랐고, 이 문장을 활용해서 365일짜리 일력을 만들었다. 매일 일력을 한 장씩 찢을 때마다 우리가 함께 읽었던 책의 문장을 다시 만나는 건 특별했다. 이 일력을 VIP 고객과 지인들에게 선물해 줬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올해에는 어떤 책거리를 할까, 아마 가을쯤 되면 멤버들과 논의해서 뜻깊고 재미있는 책거리 이벤트를 기획할 것이다.
북클럽에 참석한 직원들의 후기는? 당연히 ‘힘들다’가 제일 많다. 책 한 권 읽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특히 책 읽기가 훈련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상당한 고역이다. 하지만 이 힘든 걸 몇 년째 해내고 있는 직원들의 리뷰는 처음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육아맘인 한 직원은 ‘제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덩달아 책을 좋아하게 되었어요’라는 후기를 남겼다. 집에 실용서 3~4권 빼고는 책이 없었던 직원은 책이 조금씩 쌓이자 책장을 샀고 이제 주말에는 가끔 서점에 간다고 전해 주었다. 또 어떤 이는 ‘제가 책을 읽으면 엄마랑 아빠가 북클럽 주간이 도래했다는 걸 알고 응원해 준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책 읽기의 가장 큰 변화는 아마 ‘책을 전혀 읽지 않던 사람’에서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으로 본인의 정체성이 변한 게 아닐까 싶다. 정기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 이게 어쩌면 가장 큰 효능일 것이다.
회사에서 전 직원이 같은 책을 읽는 만큼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이상한 책 고르지 않기다. 베스트셀러 중에는 ‘대충 살아’라는 책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책들이 심신의 위로와 영혼의 안식에는 도움을 줄지 모르겠다. 하지만 ‘더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고, 지금 이대로 좋다’라는 마인드는 성장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에는 알맞지 않다. 조직의 북클럽은 ‘개인의 성장’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 그래서 ‘현실 안주’를 추구하는 책은 걸러 내야 한다.
북클럽을 하면 좋은 점이 많다. 직원 개개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대표와 직원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같은 책을 읽은 ‘사람 대 사람’의 관계로 직원을 대하게 되었다. 몇 년씩 근무한 직원과도 일 이외의 주제로 대화를 나눌 일이 의외로 적은 게 현실이다. 책 덕분에 매번 새로운 주제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직원들의 가치관과 개인적 고민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이 같은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점도 효과 중 하나다. 책에 나오는 단어는 북토크를 통해서 입에 붙게 되고 이를 모두가 함께 사용하면서 친밀감과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애자일』 책을 읽으면 ‘애자일’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고 『OKR』 책을 읽으면 ‘OKR’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다. 책을 통해서 멤버들이 비슷한 단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원팀 마인드가 더 강화될 수 있었다.
독서는 분명 학습과 성장의 문화를 조직 내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게 도와준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조직의 DNA로 자리 잡는데 분명하게 기여한다. 그리고 이는 꼭 지적 영역뿐만 아니라 개인의 사고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책을 통해 사색하고, 깊이 있게 사고할수록 우리 뇌의 생각 근육은 강해진다.
이렇게 책이 많은 효능을 가지고 있지만 책 읽기가 힘든 건 분명한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 그 어떤 훌륭한 계획도 실행이 따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실행하는 자가 세상을 바꾼다. 책 읽기 실행을 도와줄 팁 몇 가지를 공유해 본다.
우선 다양한 종류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게 꽤 도움이 된다. 아침에 읽고 싶은 책이 다르고 저녁에 읽고 싶은 책이 다르다. 휴일에 읽고 싶은 책과 월요일에 읽고 싶은 책이 다르다. 비 오는 날과 맑은 날 읽고 싶은 책이 다르다. 내 기분에 따라서도 읽고 싶은 책이 또 다르다. 어떨 때는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책에 빠져들고 싶고, 어떨 때는 흥미로운 소설책을 잡고 싶다. 또 어떨 때는 회사 실무에 직접적으로 도움 되는 책을 읽고 싶고, 사람에 대해 고민일 때는 심리학 책에 이끌릴 때도 있다. 그래서 책상에 3~4권 정도 다른 분야의 책을 펼쳐 놓으면 그때마다 내 상황에 맞춰서 책을 고를 수 있어서 독서 습관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밥상에 다양한 반찬을 올려놓으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먹고 싶은 반찬을 골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더 직접적으로 독서에 도움을 주는 팁도 있다. 책을 읽으려면 필요한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책을 읽고 싶을 만큼 ‘심심’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은 재미있는 게 넘쳐나는 세상이다. TV와 스마트폰에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독서의 느린 재미는 TV와 스마트폰의 발 빠른 재미와는 대적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취하고 있는 방법은 다음 두 가지다.
우선 거실을 책 읽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우리 집에서 TV는 아이패드를 통해서 방에서 보는 게 원칙이다. TV가 거실이나 안방에 있으면 TV 보는 게 우선시되고 책 읽는 사람이 다른 공간으로 피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은 책 읽기에 너무 불리하다. 거실의 서열을 매길 경우 책이 우선이고 TV와 스마트폰이 그다음이다.
다음으로 스마트폰과 거리 두기다. 내 스마트폰의 집은 차다. 퇴근할 때 스마트폰을 차에 두고 내린다. 그러면 집에서 책 읽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아내와 대화를 좀 나눈 후에 샤워를 하고 나면 이내 ‘심심’해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으로 손이 간다. 스마트폰을 집에 갖고 오는 순간 유튜브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카톡이 끊임없는 재미를 나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모두 인스턴트 재미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순간의 쾌락 속에 평온한 밤 시간은 모두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도 폰을 차에 두고 퇴근할 때가 잦다. 폰을 집에 가져오지 않을 때의 효능은 실행해 보면 바로 안다.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을 한번 느껴 보고 싶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