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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를 위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비용, 준비물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와 비용, 여행기

by 흑백필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다녀왔다. 뒷산 오르듯. 사흘 준비해서.

산속에서 보낸 6박 7일, 포카라와 카트만두 여행까지 12박 13일 동안의 여행기를 정리한다.



1. 여행 계기

지난해 11월 30일 중국 출장 중에 우연히 6개월 간 세계 여행을 다녀온 젊은 친구를 만났다. 어디 여행지가 인상 깊었냐고 물었더니, 에베레스트산이 첫 번째였고 다음으로 세렝게티, 이집트, 두바이를 꼽았다. 체력 문제로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가봐야 할 곳을 따져봤더니 에베레스트산이었다. 귀국 후 알아보니 에베레스트 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약칭 ABC) 트레킹이 더 끌렸다. 아내에게 함께 가자고 얘기했더니 흔쾌히 동의했다. 그때가 2024년 12월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마침 1월 말에 긴 설날 연휴가 있어 10일에서 14일 정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알아봤는데, 예상보다 비용이 비쌌다. 트레킹이라는 게 산만 오르면 되는 건데 따로 여행사가 필요할까 싶어서 우선 항공권만 예매해 두기로 마음먹었다. 대한항공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출발일과 도착일을 넣고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날짜를 골랐다. 1월 20일(월) 오전 비행기로 출발해서 2월 1일(토) 아침에 도착하는 12박 13일 일정이 적절해 보였다. 그렇게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뒷산 오르듯 아무런 준비 없이 항공권을 예매했다. 항공료는 1인당 170여만 원으로 상당히 비쌌다.



2. 여행 준비

연말연시라 회사일이 바빠서 도저히 여행 준비할 짬을 못 냈다. 못 냈다기보다는 귀찮아서 안 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안나푸르나 관련 책을 2권 사놓고 첫 장도 펼쳐보지 않았다. 아내는 틈틈이 당근마켓에서 등산화와 경량 패딩 등 준비물을 중고로 구입하고 등산 배낭도 쿠팡에서 사는 등 짬짬이 준비를 하는 거 같았다. 회사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1월 17일 금요일 퇴근한 후 주말 이틀 동안 제대로 트레킹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숙박, 트레킹 코스, 가이드 등 준비할 게 많았다. 우선 네이버 네팔 트레킹 카페에다가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쓰려고 접속했다. 하지만 카페 접속을 5회 이상 해야 하는데, 접속 회수가 3회에 불과해서 글 작성 권한이 없었다. 카페에 카톡 그룹채팅방 안내가 있길래 급한 마음에 그곳에 접속해서 다음과 같이 글을 남겼다.


"한 달 전에 네팔행 티켓을 예매한 후 일 때문에 아무것도 준비를 못 했는데, 출발일이 나흘밖에 안 남았어요. 뭘 준비해야 하고, 트레킹 코스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도와주세요."


선량하고 자비로운 두 분이 친절하고 상세하게 채팅으로 답변을 해 주었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포카라에 '윈드폴(Windfall)이라고 민박집이 있는데 그곳에 묵으면 모든 걸 도와준다고 그랬다. 윈드폴 상담 카톡 계정을 알려주길래 친구 추가를 해서 상담을 요청했다. 도착하는 날은 방이 만실이라고 그래서 그다음 날로 민박을 하루 예약했다. 포터와 가이드, 그 외 코스 등도 윈드폴 사모님 통해서 상담받을 수 있었다. 도착하는 날은 카트만두에서 하루 묵기로 하고 공항 근처의 자그마한 호텔을 부킹닷컴으로 예약했다. 이렇게 이틀 치 일정을 준비하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거실에 캐리어를 펼쳐놓고 침낭이랑 옷이랑 핫팩 등 짐을 챙기고 있던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쳤다.


"나만 믿어. 내가 알아서 만반의 준비를 다 할 테니까! 차근차근 잘 진행되고 있어!"


아내는 뭔가 수상하다는 듯 의심쩍은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기고만장했다. 이 정도면 거의 90% 준비는 끝난 셈이다. 다음으로 내 등산복과 등산화 등 개인물품을 준비할 차례다. 신발장을 열어보니 12년 전에 적립금으로 산 등산화 한 켤레가 있었다. 12년 전에 사서 딱 한번 뒷동산에 오른 후 그대로 신발장에 처박혀 있던 건데 몇 번의 이사에도 버려지지 않고 이날만 기다리며 신발장에 잘 버티고 있었다. 10년 넘은 등산화는 아웃솔이 곧잘 떨어진다고 아내가 우려를 했지만 만져보니 튼튼하고 신을만했다. 등산화까지 준비 완료.


쿠팡에 접속해서 로켓배송으로 필터를 건 후 기능성 긴팔 티셔츠, 방한장갑, 등산양말, 군밤모자, 등산배낭, 히트텍 상하복, 등산바지, 우모바지, 기능성 긴팔티, 플리스 티셔츠, 플리스 재킷, 경량패딩 등을 주문했다. 아내가 알려준 리스트였다. 사이즈가 애매한 건 사이즈별로 하나씩 주문했다. 입어보고 안 맞는 건 반품을 보낼 요량이었다.


아내가 네팔은 도착비자가 필요하다고 알려줘서 네팔 대사관 사전비자 신청사이트에 접속해서 나와 아내의 도착 비자를 신청했다. 블로그를 보고 따라 하니까 쉽고 간단했다. 마지막으로 카트만두에서 트레킹 출발점인 포카라로 이동하는 네팔 국내선 항공권을 예매했다. 자비로운 분이 채팅으로 알려준 정보에 따르면 붓다에어가 좋다고 그래서 붓다에어 앱을 다운로드해서 점심 시간대 비행기로 예매했다.


다음날 아침 약속 잘 지키는 우리의 쿠팡맨은 문 앞에 산더미처럼 내가 주문한 걸 던져 놓고 가셨다. 하나하나 뜯어서 입어보고 잘 맞는 건 캐리어로, 잘 맞지 않는 건 예쁘게 포장해서 문 앞에 내놓고 반품을 신청했다. 주문하다 보니 빠진 게 두세 개 더 발견되어서 일요일 도착으로 쿠팡에 추가로 주문을 넣었다. 그리고 창고에서 중형 캐리어를 꺼내서 차근차근 짐을 쌌다.


여권 만료일은 아직 여유가 있었고, 환전은 공항에서 하기로 했다. 쿠팡이 있는 한 항공권을 제외한 나머지 준비물은 나흘 전에 해도 충분하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이건 기말고사 벼락치기 공부나 여름방학 일기를 마지막날 몰아서 쓰는 것처럼 좋지 않으니, 당신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준비하시길.



3. 트레킹 코스

기내에서 책을 읽고 네팔에 도착해서 코스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직접 7일 동안 걸어보니 히말라야의 대략적인 윤곽이 잡혔다. 초보인 내가 쉽고 단순하게 파악하기로 히말라야 트레킹은 크게 3가지 지역으로 나뉜다. 히말라야 산맥 왼쪽부터 차례로 '안나푸르나', '랑탕', '에베레스트'. 이 중 나는 '안나푸르나'를 선택한 것이었다. 랑탕과 에베레스트는 다음에 혹시 다녀올 기회가 있으면 글로 남기기로 하고 안나푸르나에 대해서만 정리하겠다.


안나푸르나 지역에는 크게 4가지 코스를 주로 다니는 거 같았다. 제일 긴 코스가 안나푸르나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안나푸르나 서킷. 12일에서 13일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인기 있고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ABC). 4일에서 5일 정도 걸린다. 그리고 마르디히말 코스는 3~4일. 푼힐 전망대는 2~3일. 서킷을 제외하면 나머지 3개는 하나씩 골라서 트레킹을 하기도 하고, 2~3개 묶어서 트레킹을 하기도 한다. 나는 푼힐과 ABC를 묶어서 6박 7일 동안 다녀왔다.


나는 코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사실 거의 알아보지 않은 상태)에서 온 탓에 처음에는 윈드폴 민박집 설명을 듣고 가장 대중적인 ABC만 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민박집에서 다른 여행객들 얘기도 듣고 일정도 따져보니 푼힐까지 가능할 거 같아서 푼힐을 추가했다. 먼저 ABC를 오른 후 푼힐 쪽으로 하산하려고 했는데, 네팔 현지 가이드가 푼힐부터 오른 후 ABC로 가는 게 동선상 더 효율적이라고 추천해 줘서 최종적으로 6박 7일 일정으로 푼힐-ABC 코스로 확정했다. 네팔은 처음이라 포카라와 카트만두 시내 관광도 각 하루씩 이틀을 잡았다. 누가 추천 코스에 대해 묻는다면 쓸 수 있는 기간에 따라, 5일이면 ABC, 7일이면 ABC+푼힐, 8일이면 ABC+마르디히말, 10이면 ABC+푼힐+마르디히말을 권하겠다. 나에게 다시 걷는다면 어떤 코스가 좋냐고 묻는다면 이틀 정도 더 시간을 할애해서 10일 동안 마르디히말까지 둘러보는 코스를 선택하겠다. 날짜는 체력에 따라 단축되기도 하고 늘기도 하는데, 이건 나의 비슷한 체력(저질 체력) 일 경우다.


블로그 글을 몇 개 읽지 않았지만, 읽은 글 중에 푼힐은 굳이 안 가봐도 된다는 글이 있었는데, 내가 가보니 푼힐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황홀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이 험난하긴 하지만, 그 이상의 광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푼힐도 추천하고 싶다.



4. 트레킹 준비물

아내가 사전에 알아보고 챙긴 것도 있고, 민박집에서 무료로 빌린 것도, 또 현지 가게에서 마련한 것도 있다. 각각의 물품에 대한 나의 주관적인 평가는 아래와 같다.


- 스틱 : 이게 없었으면 나는 중간에 등반을 포기했을 것이다. 민박집 앞 등산 매장에서 1세트당 1,300루피(한화 약 1만 3천 원)이길래 2개를 산다고 100 루피를 네고해서 총 2,500루피에 아내와 내 걸 구입했는데 정말 요긴하게 잘 사용했다. 스틱은 반드시 필요하다.


- 슬리퍼 : 필수! 샤워를 하거나 발을 씻고 난 후에 등산화를 신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롯지 슬리퍼가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본인 슬리퍼는 가벼운 걸로 꼭 챙길 것.


- 수건 : 아내는 물을 부으면 수건이 되는 압축타월을 준비했고, 나는 혹시나 싶어서 얇은 수건을 개인적으로 하나 챙겼다. 결과적으로 수건은 한 장 가져가는 게 낫다. 카페 글에 수건이 잘 안 마른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나의 경우 저녁에 빨랫줄에 늘어두면 아침에 뽀송뽀송 잘 말라 있었다. 롯지에서 수건을 안 주는 만큼 수건 한 장은 챙겨갈 것. 압축타월은 발 닦는 용도로 잘 썼다.


- 포터용 등산배낭 : 짐을 들어주는 포터가 맬 15kg 이상 들어가는 대형 등산배낭은 민박집에서 무료로 빌렸다. 좀 낡긴 했지만 돈을 아꼈다.


- 오리털 침낭 : 아내가 예전에 사뒀던 침낭을 창고에서 찾아서 가지고 갔다. ABC에서 1박, ABC에서 가까운 데우랄리에서 1박, 그리고 덜 춥긴 했지만 시누와에서 등산과 하산 시 각 1박, 이렇게 총 4박 사용했다. 2박은 따뜻해서 꺼내지 않았다. 만약 포터를 쓰지 않는 백패커라면 굳이 침낭을 챙길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오리털이더라도 부피가 있어서 꽤 무겁다. 고산으로 갈수록 롯지가 춥긴 하지만 두꺼운 옷을 입고 핫팩을 활용하면 버틸만하지 않을까 싶다. 돈이 많으면 가볍고 보온 기능이 뛰어난 비싼 침낭을 사면 될 듯. 포터가 있다면 침낭은 챙기는 게 낫다.


- 아이젠 : 일기예보에 눈비 소식이 없어서 안 가지고 가려고 했었는데, 민박집 사모님이 고산 지대는 예보와 다르게 날씨가 급변할 수 있다고 그래서 무료로 빌려서 가지고 갔는데, 날씨가 화창해서 결과적으로 쓸 일이 없었다. 포터가 있으면 만약을 대비해서 가져가는 게 나을 거 같고 백패커라면 이것도 무게를 더하는 만큼 일기 예보에 따라 판단하는 게 효율적일 거 같다. 만에 하나라도 날씨가 흐려지면 트레킹 중에 아이젠을 살 수 있는 가게가 몇 군데 보였다. 백패커 중에 아이젠을 갖고 온 친구를 만났는데 배낭 무게를 줄이고 싶은데, 버리지도 못하고 난처하다고 그랬다. 반면, 아이젠을 안 갖고 온 팀을 데우랄리에서 만났는데 예보와 다르게 다음날 눈이 내릴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 아이젠을 빌려주니 마니 그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다행히 다음날 눈은 안 내렸다.


- 날진물통 : 카페 글에 날진물통, 날진물통 이런 말들이 있길래 도대체 '날진'이 뭔지 궁금했다. 어감이 '칼날 진'처럼 들려서 뾰족한 물통인가 싶기도 했고, '후진'처럼 들려서 오래된 물통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날아다닐 정도로' 가볍다는 뜻인가 추측하기도 했다. 찾아보니 브랜드명(Nalgene)이었다. 가볍고 튼튼한 플라스틱 물병인데 의외로 보온이 잘 된다. 밤에 자기 전에 이 물통에다가 온수를 가득 담은 후 껴앉고 자면 이불속 온기가 오래 동안 유지된다. 꼭 필요하다.


- 핫팩 : 핫팩이 한두 개 일 때는 몰랐는데 여러 개 모으니까 은근히 무거워서 아내와 나는 각자 4개씩만 배낭에 넣었다. ABC 직전 롯지인 데우랄리에서 하나, ABC에서 3개를 썼다. 침낭 안에 핫팩을 넣어두면 내부가 후끈후끈하다. 추위를 많이 타면 핫팩을 좀 더 챙겨가는 게 좋을 거 같다. ABC 외에는 한 두 개만 넣어도 침낭 안이 따뜻하다.


- 전기방석 : 아내가 혹시나 싶어서 창고에 뒹굴고 있던 전기방석을 발견해서 가지고 갔다. 전기장판에 비해 가볍고 또 부피도 크지 않아서 혹시나 싶어 챙겨 왔다고 그랬는데, 이걸 침낭 안에 넣고 자니까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6박 중 ABC 근처의 2박은 전기가 약해서 사용을 못했고 나머지 4박은 전기방석 덕분에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하게 잘 지냈다고 한다. 추위 많이 타는 이라면 고려해 볼 만한 제품이다.


- 선글라스 : 우리가 갔을 땐 이상기온으로 눈이 내리지 않아서 선글라스가 필요 없었다. 눈이 많이 내릴 때는 선글라스가 필수라고 들었다. 아내는 사진 연출용으로 하루 이틀 썼고, 나는 배낭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 무릎보호대 : 평소 등산은 물론 달리기도 안 했던 나는 첫날 하루 걷고 둘째 날부터 다리가 뭉치고 무릎이 아파 고생을 했다.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무릎 보호대를 하면 좀 낫다고 롯지 사람들이 그래서 그곳에서 바로 구입했다. 그런데 사이즈도 맞지 않은 걸 비싸게 사서 오히려 더 불편했다. 무릎 맨살에 바로 끼우는 걸 샀었는데 옷 위에 착용하는 탈부착 무릎 보호대는 꽤 요긴하다고 등산을 즐기는 한 분이 얘기해 주었다. 무릎이 아픈 이유가 근육이 뭉쳐서 그런 건지 연골에 무리가 와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처음 2시간 정도 무릎 보호대를 찬 후 너무 불편해서 벗어버리고 아픈 무릎을 살살 달래가면서 겨우 완주했다. 옷 위에 착용하는 탈부착 무릎 보호대는 얼마나 도움이 될지 경험해보지 않아서 노 코멘트.


- 방한모자 : 고도가 낮을 때는 조금만 걸어도 덥지만, 고산으로 갈수록 추워진다. 그늘을 막아주는 모자와 더불어 고산에서 쓸 털모자가 필수다. 나는 쿠팡에서 귀까지 덮어주는 군밤모자를 1만 원대에 사서 가져갔는데 ABC 근처 3일 동안 따뜻하게 잘 사용했다.


- 방한 장갑 : ABC 오를 때쯤 되면 손이 많이 시리다. 손가락에 터치 기능이 있는 장갑을 사서 꼈는데, 사진 찍을 때 영 불편했다. 수려한 풍경을 폰에 담고 싶어서 손이 좀 시려도 대체로 맨손으로 다녔다. 해발 4천 미터가 가까워진 고산에서는 손이 너무 시려서 장갑을 끼고 있다가 사진 찍을 때만 벗었다. 고산에서는 장갑을 껴도 손끝이 좀 시렸다. 꼭 챙겨야 하는 물품이다.



5. 네팔 음식

나이가 들어서 안 좋은 거 중에 하나가 몸이 한식을 더 고집한다는 점이다. 예전에 해외여행을 가면 현지식만으로도 며칠 동안 맛있게 잘 먹으면서 지냈는데, 나이가 들 수록 한식이 좋다. 아내가 김치, 깻잎, 김, 라면, 햇반 등 음식을 챙겼는데 예전 같았으면 뭘 그런 걸 챙기냐고 잔소리를 한마디 했을 거 같은데,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맛있게 잘 먹었다.


네팔 현지인들은 '달밧'이라고 한식 한상 차림처럼 나오는 걸 주로 먹는다고 한다. 조그마한 상에 밥이랑 국이랑 반찬이 나온다. 대체로 맛있었다. 네팔 속담에 '달밧 파워 24시간'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 '밥심' 같은 대우를 받는다. 다만 밥이 알랑미(안남미, 인디카쌀)라서 밥알이 붕붕 날아다닌다. 찰기가 적어서 우리나라 쌀밥처럼 쫀쫀한 맛은 없다.


모모라고 만두처럼 생긴 게 있다. 속에 따라서 야채 모모, 치킨 모모 등 메뉴가 다양한데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아내는 우리나라 수제비 같은 '뗌뚝'를 먹어보고 싶어 했는데,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못 먹었다.


롯지에는 나는 주로 볶음밥을 먹었다. 야채볶음밥, 치킨 볶음밥, 계란 볶음밥 등을 번갈아가면서 먹었다. 계란 프라이는 우리나라랑 맛이 같았다. 식욕이 없을 땐 찐 감자나 삶은 달걀을 먹었다. 고산에 오를 때는 고산병 예방 차원에서 갈릭 수프를 두 번 먹었고 커피 대신 레몬진저허니 티를 마셨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롯지에는 한국식 요리나 라면을 제공하는 곳이 있어서 네팔 음식이 물릴 때쯤엔 한국요리를 시켜 먹었다. 신라면이랑 김치찌개, 삼계탕이 내가 트레킹 중에 주문해서 먹은 한국요리다.


술은 네팔 맥주를 마셨다. '고르카'와 '에베레스트'를 주로 마셨다. '락시'라고 네팔 증류 소주가 유명하다고 그래서 한잔 마셨는데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았다. 트레킹 중 한 쉼터에서 네팔 막걸리를 판다고 적혀 있어서 '장드(Jand)'를 마셔봤는데 한국 막걸리 보다 좀 더 텁텁했다. 트레킹 중에 술을 마시면 고산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그래서 낮은 지대를 걸을 때는 맥주를 한 잔씩 했지만 지대가 높아진 후에는 락시 한잔이랑 장드 한 모금 정도만 맛봤다. 시내 여행 중에는 다양한 종류의 네팔 맥주를 즐겼다.


롯지에서 만난 나이 든 한 분은 '히말라야가 너무 좋아서 자주 오고 싶은데 음식 때문에 못 그러고 있다'라고 할 정도로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내도 롯지에서 먹는 네팔 전통 음식이 질리는지 피자나 찐감자 등 밥 외의 요리를 자주 시켰다. 나는 고산병으로 두통에 시달렸던 ABC에서만 식욕이 없어서 억지로 갈릭 수프를 먹었지 나머지 롯지에서는 냠냠 맛있게 잘 먹었다.



6. 포터와 가이드

포터는 짐을 들어주는 이를 칭하고 가이드는 말 그대로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이다. 전문 산악인들의 등반을 돕는 '셰르파'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다만 셰르파는 전문 산악인처럼 고소 적응 능력이 뛰어나고 체력이 좋고 등반 경험도 풍부한 반면, 포터와 가이드는 나 같은 일반인이나 등산이 취미인 이들의 짐을 들어주고 길안내 역할을 한다.


ABC처럼 유명한 곳은 등산로가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포터가 가이드 역할까지 하거나, 가이드가 포터 역할까지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우리 역시 나와 아내 각각 한 명씩 총 2명의 포터 겸 가이드의 도움을 받았다. 포터는 짐을 20kg까지 들 수 있다고 하는데 민박집에서 12kg가 적당하며 15kg은 넘지 않는 게 좋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맞췄다. 배낭 무게가 2kg은 나갈 거 같아서 실제 짐은 10kg 내외로 맞췄다.


트레킹을 하다 보면 중국인이나 다른 국가 사람들의 경우 포터가 20kg에 가까운 아주 무거운 짐을 들고, 가이드로 보이는 이는 가벼운 배낭 하나만 메고 다닐 때가 있었다. 이 경우엔 가이드가 여행객의 현지어를 꽤 잘했다. 아마 등산객이 기초 영어가 되지 않을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등산객의 언어가 유창한 현지 가이드를 별도로 고용하고 짐만 드는 포터는 두 사람 몫인 20kg가량의 배낭을 둘 수 있는 체력 좋은 이를 따로 쓰는 거 같았다.

포터를 써야 할지 직접 배낭을 메고 다녀야 할지는 나이와 체력 여부로 판단하면 좋을 거 같다. 30대 중반까지는 포터 없이 백패커로 트레킹을 하는 게 더 유익하고 재미있을 거 같다. 여행 가기 전 채팅을 통해 정보를 준 자비로운 분이 '맵스미(maps.me)라는 앱을 알려줬는데 상당히 유용한 오프라인 지도앱이었다. 히말라야 지역의 맵을 다운로드한 후 검색하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그날의 트레킹 코스와 고도, 난도가 높은 돌계단 구역 등 트레킹 정보를 한눈에 보여줬다. 롯지가 모여 있는 마을 근처에 가면 LTE 등 인터넷이 되는 만큼 구글맵을 통해서 롯지의 별점과 리뷰를 확인해서 숙소를 정할 수 있다. ABC 코스는 가이드 없이 혼자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게 환경이 잘 갖춰져 있었다.


실제로 이번 트레킹 중 길거리에서 만난 이들 중에 20대와 30대는 백패커가 더 많았다. 배낭이 무겁다고 포터 있는 이들을 부러워했지만, 혼자서 자신의 페이스로 자율롭게 걷고 자유롭게 의사결정을 하는 것과 가이드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과 경험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나는 이미 50대에 접어들었고 허리 컨디션도 썩 좋지 않아서 백패커의 꿈은 포기하지만, 혹시 주변에 20~30대가 이곳을 트래킹 한다고 그러면 백패커를 추천하겠다.


30대 후반부터 40대가 넘으면 포터나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게 낫다고 본다. 굳이 가이드까진 필요 없지만 우리가 들어야 할 짐의 무게를 확 줄여줄 포터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소개받은 포터 겸 가이드는 10여 년 넘게 이곳에서 포터 일을 해서 체력도 좋고 길 눈도 밝았으며 영어도 곧잘 했다. 포터들이 하나같이 영어를 잘해서 궁금했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네팔은 19세기 초반에 영국과 전쟁 후 친교 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그 이후부터 영어 교육 붐이 일어나 어릴 적부터 영어를 배운다고 그랬다. 대부분 기초 영어 회화가 가능해 간단한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안나푸르나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워낙 많이 찾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우호적이고 한국 문화에도 익숙해 보였다. 실제 우리 포터 중 한 명은 1년 후에 한국에 일하려 갈 계획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트레킹 중에 한국에서 8년간 일한 네팔 현지인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는 포터 겸 가이드 한 명당 하루에 3,000루피를 줬는데, 인터넷에 찾아보면 2,000루피 이하로 고용했다는 글도 있었다. 한국과 네팔의 물가 차이 때문인 지 3천 루피가 비싸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 금액이 전액 다 포터에게 지급되는지 수수료가 공제되는지는 모르겠다. 팁은 보통 하루 일당치 (3천 루피)를 주는 게 관례라고 그랬는데, 포터들의 선량함과 성실함에 탄복해서 우리는 이들 각자에게 5천 루피씩 팁을 줬다. 이러한 행동이 팁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다음 등반객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임을 인지하긴 했지만, 네팔 GDP에 가장 큰 비중이 히말라야 관광 산업이고, 여전히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에도 못 미치는 이 국가와 국민들에게는 이롭겠다는 생각에 별 고민 없이 팁을 드렸다.



7. 롯지

롯지는 등산객을 위한 숙소(lodge)를 칭한다. 사전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뒷산 오르듯 히말라야에 오다 보니 롯지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했었다. 출발 전에는 사전적 의미로 롯지를 산에 드문 드문 있는 산장으로 여겼다. 그래서 사전에 예약을 하지 않고 갔다가 혹시 그날 묵을 롯지가 만실일 경우 어떻게 밤을 보내야 하나 하는 우려도 들었고, 한 롯지에서 다음 롯지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서 하루 동안 걸어도 도착하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도 했다. 롯지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전기나 물 사용을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염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정보 부족으로 인한 오해였다. 롯지는 대부분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장이라는 개념보다는 마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낫다. 트레킹 중 머물게 되는 마을은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는 롯지 업을 하고 있다. 즉,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로 이동하면 그곳에서 적게는 수개, 많게는 수십 개의 롯지들이 몰려 있다고 여기면 된다. 간혹 트레킹 코스 중에 한두 개의 롯지가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을에 몰려 있었다. 우리나라 지리산으로 치면 수십 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청학동이나 뱀사골에서 대다수가 민박업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성수기 때는 모르겠지만 내가 산에 오른 1월 말에는 롯지가 한가했다. 어떤 롯지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었다. 그래서 백패커의 경우 내가 걷고 싶은 만큼 걸은 후 그 마을의 롯지 중에 가격이나 시설 등을 보고 당일에 골라서 묵어도 충분하다. 다만 비수기에 산에 오른 경험이니, 성수기 롯지 이용법은 따로 찾아보시길. 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윈드폴'이라는 민박집을 통해서 포터 겸 가이드를 소개받았기 때문에 이미 민박집과 계약된 롯지들에 예약이 되어 있는 거 같았다. 다른 롯지의 가격은 알아보진 않았는데 트레킹 중에 만난 백패커에게 들은 얘기로는 우리가 묵은 롯지 이용료와 식대가 다른 곳보다 좀 더 비싸다고 귀띔해 주었다. 하지만 그 차이가 몇 천 원에 불과해 네팔 현지에서는 그 갭이 있더라도 한국 물가를 생각하면 유의미한 금액차는 아니었다.


롯지의 가격은 고도와 비례했고 서비스는 고도와 반비례했다. 고산으로 갈수록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고 서비스의 질은 떨어졌다. 특히 전기와 온수가 심했다. 내가 묵은 롯지에 대한 간략한 평은 다음과 같다. 묵은 순이다.


- 고레파니(GhorePani) / 힐탑(hill top) : 힐탑이 맞다. 고레파니 마을 가장 꼭대기에 있으며, 전망이 정말 좋다. 화목난로가 있어서 밤에 몸을 녹일 수 있다. 화장실이 딸린 방에 묵었다. 공용 샤워장에서 온수 샤워가 가능하다. 방 안에 전기가 구비되어 있어서 충전과 드라이기 사용이 자유롭다.


- 츄일레(Chuile) / 마운틴 디스커버리(Mountain Discovery) : 잔디로 잘 가꾸어진 넓은 마당을 갖춘 훌륭한 롯지. 문을 열면 탁 트인 경관이 정말 수려했다. 화목난로가 있다. 산양과 말, 개 등 동물이 많았다. 온수 샤워가 가능한 공용 샤워장과 공용 화장실이 있다. 방안에 전기가 있다. 문 앞에 빨랫줄이 걸려 있어서 빨래 건조하기 좋다. 방 앞에 테이블이 있어서 석양 감상하기 좋았다. 이곳에서 심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 시누와(Sinuwa) 프리티(Preeti) : 등산 시 1박, 하산 시 1박으로 총 2박을 묵었다. 하산 시에도 이곳에 묵는다는 얘기를 미리 들어서 필요 없는 짐은 이곳에 두고 ABC로 향했다. 온수 샤워가 가능한 공용 샤워장이 있다. 하산 시 한번 더 묵을 때는 온수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이 딸린 방을 운 좋게 배정받았다. 방 안에 전기 콘센트가 있고 전기 공급이 되는데, 드라이기를 사용하니까 롯지 전체 전원이 나갔다. 휴대폰 충전은 가능하나 전력이 약하니 드라이기 사용은 금물. 한국인이 많이 찾아서 김치찌개, 신라면, 짜장면 등 한식 메뉴가 제공된다. 게다가 맛있다. 고산인 만큼 물가가 이전 롯지에 비해 조금 비싸졌다.


- 데우랄리(Deurali) / 호텔 뷰포인트(Hotel View Point) : 해발 3,200미터가 넘는 고산에 위치하고 있다. 방 안에 전기가 없고 식당에 있는 공용 콘텐츠에 충전을 해야 하다. 온수를 사서 샤워를 할 수 있으나, 포터 겸 가이드가 고산병 위험이 너무 커진다고 극구 만류해서 샤워는 하지 않았다. 알루미늄으로 된 온수통을 반통, 한통 이런 식으로 파는데, 한통을 사니까 양치, 세면 그리고 날진물통용까지 적당했다. 밤에 추워서 침낭에 핫팩을 넣고 잤다.


- ABC / 파라다이스 가든(Paradise Garden) : 해발 4,130미터. 온 사방이 절경이다. 뒤편으로 우리나라 산악인 추모비가 2개 있어서 숙연해지기도. 온수 샤워 제공 여부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전기는 주방 안에 있는 공용 콘센트를 이용해야 하고, 전력이 약한 건지 추워서 그런 건지 충전 속도가 아주 느리다. 나는 고산병이 심해져서 식욕을 못 느꼈다. 고산병에 도움이 된다고 그래서 갈릭수프는 2번 먹었다. 풍경은 정말 끝내준다. 고산병 때문에 머리만 안 아프다면 이런 곳에 1주일씩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풍광이 수려하다.



8. 비용

13일 동안 여행하면서 우리 부부가 총 쓴 비용은 약 650만 원이다. 이 중 항공료만 410만 원이라서 실제 현지 비용은 240만 원 정도. 이 중 140만 원은 히말라야에서 쓴 비용이고 100만 원은 시내 관광 및 기타 교통비 등이다. 젊은 친구들의 경우 경유 항공권을 사서 백패커로 다닌다면 1인당 총비용이 150만 원 이내로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네팔 물가가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라서 우리 부부는 그다지 돈을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사면서 트레킹을 했고 시내 여행을 다녔다. 되돌아서 보니 적잖은 비용을 쓰긴 했지만, 유럽이나 미주 쪽 여행보다는 훨씬 싸지 않냐면서 자기 합리화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50대 초반 부부라서 평균보다 조금 더 여유롭게 썼지만, 20대나 30대, 혹은 백패커들은 우리 비용은 1/3이나 절반 정도를 여행 경비로 쓰는 거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사치나 낭비를 한 건 아니다. 환율은 루피는 10.5, 달러는 1500으로 계산했으며, 끝자리는 반올림처리해서 큰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작성했다.


① 항공료 : 410만 원

국제선 왕복 항공료 (인천-네팔) : 350만 원 (왕복 170만 원 x 2명)

국내선 왕복 항공료 (카트만두 - 포카라) : 60만 원 (편도 15만 원 x 2명 x 2회)

*우리는 대항항공 직항을 타고 갔는데, 산에서 만난 한 백패커는 경유를 통해 왕복 45만 원에 티켓을 끊었다고 그랬다. 이 친구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 이동도 택시 합승을 통해서 4~5만 원밖에 안 쓴 거 같았는데, 그렇다면 항공료로 60만 원 정도밖에 안 들어서, 여기서만 1인당 150만 원가량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② 가이드비 : 55만 원

가이드 겸 포터 7일 : 42,000루피(3,000루피 x 2명 x 7일)

가이드 겸 포터 팁 : 10,000루피(5,000루피 x 2명)

*팁은 1인당 3,000루피는 적절하다고 들었다. 팁 관련해서는 위에 이미 적었다.


③ 7일간 숙박 및 식비 : 52만 원

평균 비용 : 3,500루피 x 2명 x 7일 = 49,000루피

*롯지 방값과 전기, 온수 등 이용료, 식비, 트레킹 중 마시는 커피 등 음료와 가이드에게 사준 음료 등 모두 포함한 평균 비용이다.


④ 지프차 렌탈비 : 17만 원

포카라 - 반탄티 : 8,500루피

지누 단다 - 포카라 : 7,500루피


⑤ 시내 숙박비(4박) : 약 30만 원


⑥ 포카라 패러글라이딩 : 30만 원 (15만 원 x 2명)


⑦ 시내 관광(포카라&카트만두) : 20만 원

입장료& 식비 등 : 20만 원 (10만 원 x 2명)


⑧ 기타 비용 : 30만 원

네팔 도착비자 : 30달러 x 2명 = 60달러

히말라야 트레킹 퍼밋 : 3,500루피 x 2 = 7,000루피 (500루피는 여행사 수수료)

포카라-민박 택시비 : 1,200 루비 x 2회(왕복) = 2,400루피

카트만두 일일 차량 렌트 : 7,000루피



9. 산에서 만난 사람들

나는 등산을 다니지 않아서 아직까지 산에서 맺은 인연은 없다. 이번 트레킹 중에 만나서 대화를 나눈 이들, 그리고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더라도 인상 깊은 이들에 면모에 대해 정리한다. 7일 동안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고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트레킹에서 내가 만난 이들은 아래와 같다.


신혼부부 A 커플 : 신혼여행 여행지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선택한 커플. 선남선녀였다. 네팔 전체 일정이 우리와 거의 일치해서 길에서는 물론 포카라의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했고 카트만두 공항에서도 만나기도 했다. 2명 모두 공무원인데, 신랑이 트레킹을 좋아해서 신부도 동의해서 오게 되었다고. 가이드와 포터를 각각 썼는데 중간중간 멈춰서 신혼여행 사진을 많이 찍는 거 같았다. 신혼여행지로 안나푸르나라... 유니크한 경험일 거 같다.


공무원 B 씨 : 트레킹 일정이 비슷해서 몇 번 대화를 나눴다. 해외 근무를 간혹 하는 공무원이었는데, 해외 근무지에서도 트레킹을 할 정도로 등산이 주된 취미였다. 영어가 유창했다. 칠레 파타고니아와 스위스 체르마트 트레킹 등이 아주 좋았다고 추천했다. 영어를 잘해서 그런지 트레킹 정보를 한국 사이트보다는 해외 트레킹 정보 공유 사이트에서 주로 얻는 거 같았다. 외국인을 만나면 먼저 영어로 말을 걸면서 대화를 잘 나눴다.


백패커 C군 : 지방에서 전기 관련일을 하는 30대 초반의 남자. 혼자서 배낭을 메고 트레킹을 하다가 만났다. 시간은 연휴와 연차를 모아서 왔고, 비용을 많이 아끼면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항공료의 경우 우리는 직항으로 170여만 원으로 왔는데, 경유를 해서 40만 원으로 왔다고. 포터와 가이드 없이 맵스미를 보면서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롯지를 잡을 때 3군데 이상 롯지의 가격을 비교해서 골랐고 비수기인 만큼 가격 흥정도 잘했다. 고산으로 갈수록 콜라 등 음료가 비쌌는데, 필터물만 마시면서 하산 후 콜라값이 싸지면 다시 마실 거라고 입맛을 다지는 게 인상 깊었다. 북인도 등을 트레킹 한 경험을 공유해 줬는데, 산을 좋아하는 열정적이고 젊은 친구였다. 비슷한 또래의 귀엽고 예쁜 여자 백패커를 만나서 연락처를 주고받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봤는데 잘 되었으면 좋겠다. 안나푸르나가 맺어준 연인이라면 좀 운명적으로 여겨지지 않는가.


터키 유튜버 D군 : 데니즈라는 터키 여행 유튜버( https://www.youtube.com/@deniztemzz/videos ) 구독자가 7천여 명. 길에서 몇 번 만나서 서툰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세계 여행을 시작한 지 서너 달이 되었고, 인도에서 네팔로 히치하이킹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한국에도 오냐고 물었더니, 중국을 거쳐서 몇 달 후에는 한국에 갈 수도 있다고. 우리 아들보다 나이가 많을 거 같아서 나이 얘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나이가 20대 초반으로 어렸다. 유튜버라서 그런지 에너지가 넘쳤다.


스님 E : 둘째 날 벤탄티(Benthanti)를 지날 때 한 쉼터에서 만나 꽤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스님. 한국의 정치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네팔로 왔다고 한다. 계엄과 탄핵 국면을 얘기하는 거 같았다. 한국에서는 경주 골굴사에 거처를 두고 전국을 떠돌다가 간혹 이렇게 인도와 네팔을 다니면서 수행을 한다고. 자그마한 체구에 몸이 아주 날렵해 보였다. 윈드폴에서는 히말라야에 암자를 지어서 머물고 있는 노 비구니를 만났다. 네팔이 부처의 탄생지이다 보니 스님들이 많이 찾나 추측해 보았다.


야행객 F 가족 : 30대 후반과 40대 초반의 장성한 아들 2명이 등산을 즐기는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아버지는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였다. 한국에 있을 때에도 아버지는 등산을 자주 해서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육체적으로는 가뿐했다고. 오히려 아들 2명이 체력적으로는 더 힘들어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체력 관리를 잘하면 얼마든지 등산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직접 확인했다.


중국인 G 커플 : 포토그래퍼인 열정적인 중국인과 좀 연약해 보였던 그의 여자친구. 길에서도, 쉼터에서도 3~4번 만났는데 운 좋게 이 친구가 우리 부부의 사진을 멋지게 찍어 주었다. 사진을 보니 직업 포토그래퍼가 맞았다. 중국말을 조금 할 줄 알아서 본의 아니게 둘 사이 대화를 엿듣게 되었는데, 여자친구가 너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는 걸 남자 살살 구슬려가면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중국인 H 모녀 : 대화는 나누지 않았지만 인상적인 모녀였다. 비만인 30대 좌우의 여자와 체력이 아주 허약해 보이는 60대쯤 되는 엄마가 아주 천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당시 나 역시 무릎 통증으로 힘들게 걷고 있었는데, 비만인 딸과 나이 들고 허약해 보이는 모녀가 끈기 하나로 천천히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하산할 때도 만났는데, 두 모녀 모두 말을 타고 하산했다.


중국인 I 모녀 :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씩씩한 엄마와 8살 난 딸이 힘차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8살(몇 살 인지 직접 물어봤다) 밖에 안 되었는데 안나푸르나라니. 어떤 사연으로 이곳을 오게 되었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이 딸은 어떤 역경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자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 J 모녀 : 환갑이 된 엄마의 버킷리스트를 위해 딸이 엄마를 모시고 이곳에 올랐다. 이분들은 산을 오르는 중이었고, 우리는 하산하던 중 같은 롯지에서 만났다. 그래서 ABC 트레킹에 성공했는지는 모른다. 산을 잘 타는 이는 2시간, 일반인의 경우 4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을 6시간 만에 겨우 왔다고 그랬다. 엄마가 아주 지쳐 보였다. 체력이 좋지 않아 보였던 엄마가 ABC 등반에 성공해서 버킷리스트를 실현할지, 중도에 포기할지 모르겠다. 다만 엄마가 평생 동안 품고 있던 버킷리스트를 더 늦지 않게 이룰 수 있도록 딸이 용기를 북돋아주고 함께 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고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ABC 등정 여부와 무관하게 여기까지 왔다는 자체가 이미 버킷리스트를 달성한 게 아닐까.


한국인 K 씨 : 같은 민박에서 묵고 같은 날 출발한 분. 이 분은 푼힐 코스 없이 바로 ABC로 향해서 우리는 등산, 이분은 하산하는 길에 롯지에서 우연히 만났다. 안타깝게도 ABC 등정은 실패했다고 한다. 체력적으로 괜찮아서 좀 빠르게 올랐는데 ABC를 앞둔 데우랄리부터 고산병이 너무 심해졌다고 한다. 마지막날 두통과 싸우면서 ABC로 향했는데 몇백 미터를 남겨놓고 심장이 너무 뛰어서 결국 포기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좀 더 천천히 올랐으면 성공했을 거 같다. 나는 본의 아니게 무릎 통증으로 천천히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분 사연을 듣고 나니, 무릎 통증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10. 역경과 난관

나의 첫 난관은 등산화에서 시작되었다. 신발장에 12년 넘게 묵혀 있던 등산화는 첫날 1시간쯤 산을 오르자 이내 창이 덜렁거리면서 아웃솔과 갑피 사이가 쩍 벌어졌다. 달거락 거리면서 좀 더 걷다가 한 쉼터가 나오자 가이드가 그곳에서 순간접착제를 사서 붙여 주었다. 마침 주변에 노끈이 있길래 끈으로 묶었더니 신을만했다. 마을에 있는 가게마다 접착제들이 있는 걸 보니 등산화 창이 떨어지는 건 드문 경우는 아닌 거 같았다. 첫날은 등산화 사건 외에는 순조로운 일정이었다. 다리가 좀 아프고 숨이 차긴 했지만 버틸만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둘째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걷기 힘들 정도로 무릎 통증을 느꼈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괜찮은데 조금만 걸어도 통증이 느껴졌다. 연골이 문제인지, 무릎 쪽 근육이 문제인지 둘 다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둘째 날은 새벽 푼힐 전망대 등반 일정이 있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출발했다. 새벽이라 너무 추울 거 같아서 옷을 겹겹이 껴입고 출발했는데 무릎은 아프고 거동은 불편하고 좀 걷다 보니 온몸이 땀에 젖고, 여하튼 푼힐 전망대까지 지옥을 경험하며 겨우 올랐다.


황홀한 일출로 고통을 보상받은 후 롯지로 되돌아와 아침을 먹고 잠시 쉰 후 다시 둘째 날 트레킹 일정을 시작했다. 아픈 무릎으로 하루 종일 걸었다. 정말 끝없이 걸었다. 애플 워치로 밤에 확인해 보니 이날 총 이동한 시간이 9시간가량 되었다. 정말 정말 힘들었다. 밤에 잠들 때 내일 아침이면 무릎이 말끔히 나아있기를 네팔 신에게 빌고 잠들었다.


셋째 날 츄일레 롯지에서 아침에 눈 떠보니 네팔 신한테 우리나라 말로 기도를 드려서 못 알아들었는지 무릎은 더 아프고 게다가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까지 뭉쳐서 걷기가 더욱 힘들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 '비스타리'(네팔어로 천천히)가 있다고 여기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길이 헷갈리지 않는 원웨이라서 내 가이드에게 아내 가이드와 함께 셋이서 먼저 가라고 그러고 혼자서 천천히, 천천히 걸어서 겨우 롯지까지 도착했다.


넷째 날 시누와에서 일어나 보니 설상가상이었다. 근육 뭉침이 심해져서 걷기가 더 힘들었다. 시누와 롯지 1층은 침실, 2층은 식당이었는데 식당까지 밥 먹으러 이동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스틱의 도움으로 겨우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이날도 나는 나의 페이스로 걸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그러고 혼자서 거북이처럼 느리게 다녔다. 이날은 무릎도 아픈데 계단까지 많아서 숨도 찼다.


예전의 경험으로 볼 때 무릎 통증은 4~5일 후부터 조금씩 나아졌는데, 내일부터는 무릎이 좋아질 거라고 믿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돌계단을 올랐다. 그런데 해발 3천 미터가 가까워지자 편두통까지 찾아왔다. 고산병이 나를 피해 가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열외 대상이 아니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두통이 찾아와서 나를 괴롭혔다. 머리는 두통과 싸우고 심장은 헉헉거리며 산소 부족과 싸우고 다리는 무릎 통증과 싸우면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겨우 발을 내디뎌서 마침내 저녁 늦게 대망의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인간 승리의 기분을 느꼈다. 이제 하루만 더 걸으면 대망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였다.


다섯째 날, 일어나 보니 무릎 통증은 조금 나아진 거 같았고, 허벅지 근육 뭉침은 그대로였는데 종아리 근육이 심하게 뭉쳐서 결과적으로 이동이 더 힘들었다. 게다가 이날은 두통이 더욱 심해졌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조금이라도 숨이 차면 바로 두통이 찾아왔고 그러면 잠시 멈추고 좀 쉬었다가 천천히 걸으면 두통이 잦아들었다. 두통은 밀물처럼 찾아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다리도 아프고 숨도 찬데 두통까지 심해져서 막막했다. 레몬진저허니티를 마시면 좀 낫다고 그래서 쉼터에서 마셨는데 입안만 달짝지근할 뿐 효과는 못 느꼈다.


내 상태가 심각해 보여서 쉼터에서 만난 아내는 고산병 약을 권했지만 거절했다. 편견일지 모르겠는데 기내에서 나이 드신 분 6분이 ABC를 다녀온 여행기를 읽었는데 고산병 약을 먹은 사람도 고산병에 걸리기도 하고 먹지 않은 사람이 안 걸리기도 해서 사람에 따라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고산병 약으로 인한 손떨림이나 소변 마려움 등 부작용 증세는 확정적이라서 굳이 리스크를 안고 효과가 불확실한 약을 먹어야 하나 의문이었다. 아내는 포카라의 약국에서 산 고산병 약을 트레킹 후 사흘째부터 반알씩 먹었는데 평소 운동을 한 덕분인지 약효 덕분인지 고산병 증세를 겪지 않았다.


그렇게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고통을 이겨내고 마침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그때의 벅찬 환희는 잊을 수가 없다. 두통이 더 심해지긴 했지만, 이를 꾹 참고 기쁜 마음으로 ABC 주변을 둘러보고 마음껏 사진을 찍고 풍광을 즐겼다. 석양을 감상하며 등반의 성공을 자축했다.


두통이 계속되고 식욕이 느껴지지 않아서 저녁은 고산병에 좋다는 갈릭 수프를 먹었다. 먹었다기보다 마셨다. 이날 밤이 이번 트레킹 중에 가장 힘들었다. 두통이 너무 심해서 몇 번씩 잠이 깨면서 고통 속에 정말 힘든 밤을 보냈다. 잠시 잠이 들었다가 두통 때문에 잠이 깨고 몸을 몇 번을 뒤적이고 억지로 잠을 청해서 겨우 눈을 좀 붙이려고 하다 보면 곧바로 두통이 찾아와 잠이 깨는 식의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 와중에 새벽에 일어나서 별구경까지 했다.


ABC의 밤은 엄청나게 추웠다. 침낭 속에 핫팩을 3개를 넣어두었고 날진 물통까지 있어서 목 아래는 따뜻했다. 하지만 침낭 바깥에 있는 얼굴이 차가웠다. 머리맡에 휴대폰을 두었는데 새벽에 몇 시인지 보려고 휴대폰을 잡았는데 얼음장인 듯 차가웠다. 휴대폰이 얼지도 모른다는 비과학적인 판단을 하고 휴대폰도 침낭 안에 넣어 두고 잠을 청했다. 길고 힘든 밤이었다.


불면의 밤을 끝끝내 이겨내고 마침내 동이 텄다. 찬란하게 빛나는 일출을 벅찬 마음으로 감상했다. 장엄한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까 오르는 동안 겪었던 모든 고통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침을 먹고 배낭을 챙겨서 하산을 준비했다. 하산은 이틀에 걸쳐서 빠르게 할 계획이었다. 산을 오를 때는 고산병의 위험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하산은 빠르게 해도 무방했다.


이날 상당히 먼 거리를 하산했다. 두통은 여전했지만 다행히 무릎 통증이 나아졌다. 계단을 오르내리락 하는 것도 전날보다 편해졌다. 해 떨어지기 전까지 시누와에 도착해야 했는데 비스타리 비스타리 속으로 되뇌면서도 최대한 빠르게 걸으려고 노력했다. 5일 동안 통증을 겪다 보니 통증에 익숙해지는 기분이었다. 간혹 나와 비슷한 자세로 힘들게 걷는 이를 만나면 동병상련을 겪는 듯 공감이 되었다.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구나. 두통은 롯지에 가까워질 때쯤 말끔히 사라졌다. 고산병 증세가 사라지자 살 거 같았다. 이제 마지막 하루 동안만 무릎과 허벅지 통증만 이겨내면 된다.


마지막날은 내 무릎 통증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오전 내내 걸어서 점심 경에 지프차가 있는 간드락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점심을 먹고 지프차만 타면 이번 여정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졌다. 이제 모든 역경을 다 헤쳐나갔구나 여기며 편안한 마음으로 포카라로 돌아가기 위해 지프차를 탔는데 산중턱에서 미니버스를 만났다. 지프차끼리는 1차선이더라도 절묘하게 잘 빠져나가더니 미니버스는 차체가 길어서 옆으로 피해 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지프차 기사가 낭떠러지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도저히 공간이 나오지 않아서 다시 후진을 하려고 기어를 변속하는데 기어가 제대로 먹지 않아서 차가 앞쪽으로 미끄러지더니 갑자기 한쪽 바퀴가 낭떠러지에서 붕 헛돌았다. 다시 한번 기어변속을 하고 액셀을 밟으니까 윙윙 뒷바퀴가 몇 번 헛돈 끝에 겨우 후진에 성공했다. 더 넓은 곳으로 후진을 해서 서로 통과했다. 6일 동안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단번에 잊어버릴 정도로 아찔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일이 지퍼차 기사한테는 일상일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의 안전한 도로에서 20여 년 운전을 한 나에게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공포스러운 경험이었다. 옆에 아내가 겁에 질러 있길래 나는 겉으로 태연한 척했다.



11. 걸으면서 한 생각들

생각이라는 걸 정말 많이 생각했다. 7일 동안 하염없이 걸으면서 가끔은 무상무념에 빠지기도 하고, 가끔은 쓸데없는 잡념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했지만, 대체로 맑은 정신 속에 온전히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트레킹 중에 문득문득 떠오르면 한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절경 : 롯지에서 만난 부부 중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산새에 몸이 얼어붙어서 그곳에 그대로 멈춰 있었어요.' ABC에서 만난 한 분은 이런 표현을 썼다.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지 알 거 같아요. 이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 아름답네요.'


히말라야의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산의 장엄한 풍광은 왜 전 세계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증명해 준다. 산등선에 가려진 태양이 빛을 쪼개며 떠오르는 일출, 해무가 흐르듯 계곡 사이를 스며드는 구름 무리, 산을 붉게 달구는 석양, 그 어떤 인위적인 빛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별빛만 빛나는 밤하늘까지 히말라야는 매 시간마다 황홀한 광경을 우리에게 선물해 준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모하게 이곳에 오른 나는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 어떤 고충도 이곳의 절경에 무게추를 달아보면 한없이 가벼울 뿐이다.


트레킹 : 돌계단이 많다. 아주 많다. 영원히 이어질 거 같은 돌계단을 마침내 다 오르고 나면 다시 아래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오르기도 힘들고 내려가기도 힘들다. 돌계단을 오를 때는 숨이 차서 힘들고, 돌계단을 내려갈 때는 무릎이 아파서 힘들다. 오직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비스타리'. 천천히, 천천히 언제 도착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떼었다.


이 산길은 수백 년 전 과거의 선조들이 생존을 위해서 걷고 뛰면서 만들어진 길일 것이다. 현세의 우리는 나를 만나고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선조들이 만든 길을 이어서 밟고 있다. 수백 년이 지나 후세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을 오를까? 우리처럼 나를 되돌아보기 위해서 걸을 수도 있고, 이곳에서 희귀한 자원이 발견되어서 경제적인 목적으로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걷지 않고 하늘을 나는 간편한 미래의 이동 기기를 타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끈의 중앙점에 위치는 나는 어쨌든 이곳을 걸으면서 온전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과거의 선조가 올랐고 지금의 내가 오르고 있고, 미래의 누군가가 오를 이곳에서.


추모비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뒤편에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 팀원의 추모비가 있다. 그 근처에는 여성 산악인 지현옥 님의 추모비가 있다. 데우랄리 가기 전 계곡을 지난 지점에는 2020년 자원봉사 교사들의 추모비가 서 있다. 그 앞에서 잠시 서서 묵념을 했다.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안나푸르나는 매혹적인 만큼 그 뒤편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잠들어 있었다.


산 동네 : 산에는 산의 삶의 있고 도시에는 도시의 삶이 있다. 해발 2천 미터는 기본이고 3천 미터가 넘는 고산에서 사는 이들에게는 이들만의 삶이 있다. 자체 수력 발전기로 전기를 만들고 있는 해발 2천 미터대의 삶과 오직 태양열로만 전기를 공급받는 해발 3천 미터대 마을의 환경은 많이 달랐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해서 더 이상 문명의 혜택인 줄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이용하던 게 여기서는 귀했다. 전기가 그랬고, 온수가 그랬다. 난방은 특히 그랬다. 도시인에게 산속의 삶은 단기적으로는 아름답지만 장기적으로는 수많은 불편함을 감내해야 하는 생활이다. 낭만과 현실은 다르다. 다행히 선이 필요 없는 무선 통신은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이 정상에서도 동일하게 와이파이가 되고 스마트폰으로 세상 소식을 다 들을 수 있었다.


ABC 트레킹 코스 중 가장 큰 마을인 촘롱을 걷는데 학교 문이 닫혀 있었다. 가이드에게 폐교한 거냐고 물어보니, 촘롱 마을에 있는 3개 학교가 진작에 폐교되었다고 한다.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는 다른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 도시인 포카라로 아이들을 보낸다고 그랬다. 산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았고 아이들은 드물었다.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보냈는데, 여자 24명에 남자 4명이 졸업을 했다. 남아선호 사상이 있던 그 당시 우리 마을에서는 딸은 시골에 두더라도 아들은 읍내에 있는 학교로 보냈다. 우리 집은 그럴 형편이 못된 덕에 나는 경쟁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초등학교 6년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는데, 히말라야의 산속에서 40여 년 전 우리나라 시골에서 일어난 현상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가축 그리고 동물 : 히말라야에는 가축 보다 동물이 많았다. 가축과 동물을 정의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가축은 식용을 목적으로 하고, 동물은 공생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닭, 소, 돼지는 모두 가축이다. 먹기 위해 키운다. 공장식 사육을 하는 공장식 축산의 폐해는 유튜버나 구글링을 하면 얼마나 심각한지 금방 알 수 있다(이 진실을 알고 나면 육식이 불편해질 수 있으니, 신중히 찾아볼 것).


히말라야에서 만난 소, 말, 양, 염소, 개 등 대부분의 동물은 자연 방목이었다. 어떤 개도 목줄을 하고 있지 않았으며, 소 역시 코뚜레를 하지 않았다. 말이나 당나귀가 혼자서 다녔다. 히말라야에서 만난 동물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도망치지 않았고 짖지 않았다. 같은 동족을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산업화가 덜 된 덕분일까. 언제까지 이러한 공생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사람과 동물이 함께 어울려 사는 히말라야의 모습은 정말 '자연'스러웠다.


트레킹 중에 얼굴이 새까만 원숭이를 2번 만났는데, 가이드가 '몽키'가 아니고 '랑구르'라고 알려주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몽키는 신세계 원숭이고 랑구르는 구세계 원숭이라고 한다. 몸은 갈색인데, 얼굴은 새까만 랑구르가 나뭇가지를 타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신기했다. 네팔 도시인 포카라와 카트만두에서는 곁에서 원숭이를 만날 일이 잦았는데, 원숭이 역시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했다. 마치 우리나라 비둘기처럼 느껴졌다.




12. 포카라 여행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로 다시 내려오니까 산 사람에서 도시 사람으로 되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포카라와 카트만두 여행에 2.5일을 썼다. 트레킹에서 만난 사람들과 가이드에게 시내 여행지로 어디가 좋은 지 정보는 꽤 파악한 상태였다. 무릎과 다리도 회복이 되어서 시내 여행은 할만하다 싶었다.


폐와 호 : 트레킹 마지막날 민박집에서 삼겹살로 목에 기름칠을 하고 밤에 걸어서 폐와 호로 갔다. 좁고 영세한 민박집 주변과 달리 폐와 호 강가 술집들은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구글 리뷰가 좋고 운치 있는 곳에 앉아서 맥주와 칵테일을 마시면서 야경을 즐겼다.


패러글라이딩 : 포카라 사랑곶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탔다.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예전에 보트가 이끌어주는 패러세일링은 해 본 적이 있는데 그것보다 훨씬 멋진 경험이었다. 숙련된 기사가 동반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준다. 스릴도 있다. 15분에서 20분 정도 탄 거 같은데 주변 얘기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서 타는 거보다 오래 태워주는 거라고 한다. 넓은 나대지 같은 곳에 착륙했는데 그곳에서 파는 리얼 오렌지 생과일주스맛이 일품이었다.


품디 붐디 시바사원 : 힌두교 사원. 좀 무섭게 생긴 시바신의 얼굴이 입구에, 좀 더 올라가면 시바신 전신이 보인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포카라 시내와 폐와 호가 한눈에 펼쳐진다.


월드 피스 파고다 : 흰색 돔 형태의 불교 사원. 재력가였던 한 일본 불교 신자가 지었다고 한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불탑이라고 하길래, 신발을 벗고 올라가서 우주 평화와 지구 공존을 빌었다.


바라이 사원 : 월드 피스 파고다에서 호텔까지 빙 둘러가기가 번거로워서 폐와 호 남쪽 부두까지 걸어서 내려가 배를 타고 호텔까지 바로 질러갈 생각에 들렀던 곳. 작은 섬에 여신 바라이를 모신 힌두교 사원. 밤에 구경했는데 섬에 있어서 그런지 신비로웠다. 규모가 작아서 한 바퀴 둘러보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


교통과 숙박 : 포카라에는 우버, 디디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패타오라는 앱을 주로 쓴다고 그래서 가입하려고 했더니 외국인 휴대폰으로는 가입 불가. 민박집에 물어보니 인드라이브(Indrive)는 한국폰으로 된다고 그래서 그걸 깔아서 택시를 이용했다. 품디붐디에서 택시가 잘 안 잡혀서 버스를 탄 적이 있는데,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호텔은 템플 히말라야 호텔(Temple Himalaya Hotel&Spa)에 묵었는데 문명의 시대로 복귀한 기분이 들 정도로 좋았다. 수영장 앞에 바가 있는데 잘생긴 바텐더가 말주변이 좋아서 서툰 영어로 아내와 함께 농담을 해 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3. 카트만두 여행

- 가든 오브 드림스 :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정원이다. 청설모인지 다람쥐인지 모르겠는데, 귀엽게 생긴 동물이 많이 뛰어다닌다. 사진 찍기 좋다. 일본과 한국 등 외국에서 멋지고 큰 정원을 많이 봐서 규모가 아쉽기는 했지만 타멜의 번잡한 도심 속에 작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이라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았다.


- 타멜 : 네팔의 명동 같은 곳. 근데 무질서하고 정신이 없다. 이곳을 떠올리니 지금도 귓속으로 자동차와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저녁에 걸어서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는데 옷 가게, 잡화점, 기념품 가게를 지나, 시계, 주얼리 상가들이 몰려 있는 곳을 넘어서, 주방용품들이 몰려 있는 곳을 건너가면 야채 가게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게 된다. 그 끝이 더르바르 광장이었다. 돌아올 때 보니 야시장 좌판이 새롭게 깔리고 있었다. 복잡하고 정신없고 어지러운 곳이다. 내가 20대 중반이면 이런 곳을 즐겼을 거 같다.


- 더르바르 광장 : 밤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고 야시장이 활기차게 형성되어 있었다. 낮에 가보니 전 세계에서 온 여행객들과 여행객에게 입장료를 받으려고 하는 경찰들, 단체 관광객들, 그리고 네팔 현지인들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같은 광장인데 한국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좀 지저분하고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 쿠마리의 집 : 살아있는 여신이라는 쿠마리. 오전 11시에 가면 볼 수 있다고 그래서 시간에 맞춰서 갔다. 11시가 가까워지자 수십 명의 여행객들이 몰려들어서 쿠마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면 웅성거렸다.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라고 한 남자가 안내를 했다. 쿠마리의 동생으로 보이는 3~4살 되는 남자아이가 3층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서 사람들이 놀라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잠시 후 근엄한 표정으로 얼굴을 내민 쿠마리는 10살 남짓한 앳된 여자아이였다. 동양과 서양의 중간쯤인 네팔, 인도계 외모라서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쿠마리가 가만히 내려다보자 어느 순간에 숨소리마저 안 들릴 정도로 고요해지는 묘한 경험을 했다.


- 하누만 도카 왕궁 박물관 : 더르바르 광장에 있는 역사박물관. 네팔의 역사에 대해 사진을 곁들여서 설명해 놓았다. 이번 네팔 여행 전에는 네팔에 대해 전무했는데, 역사박물관을 통해서 어렴풋하게나마 배우게 되었다. 영국과의 전쟁에서 일부 영토를 내주기는 했지만 자주국을 유지했다는 그 용맹함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 시민운동을 통해 왕정을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한다. 정치적 불안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 스와암부나트 (몽키템플) : 원숭이 사원으로 불릴 정도로 원숭이가 많다. 배낭에 간식용으로 갖고 있던 바나나와 사과를 쪼개서 손바닥에 올려서 줬는데 슬그머니 손으로 가져가서 먹는 게 꼭 사람 같았다. 원숭이 무리에 주면 그중에 힘센 놈만 먹고 약한 애는 못 먹길래 멀리 숨어 있는 원숭이들에게는 던져줘서 최대한 공평하게 먹이를 줬다. 흰색 돔 위에 눈 그림이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마인크래프트 캐릭터 느낌이 났다.


- 부다나트 스투파 : 세계 최대 규모의 티베트 불교 스투파 중 하나. 한 바퀴 돌면서 기도를 하고 공덕을 쌓는 코라(Kora) 후 신발을 벗고 올라가서 스투파를 살펴봤다. 앞쪽으로 비둘기가 엄청 많다. 한 바퀴 둘러본 후에 전망 좋은 루프탑 카페에 올라가서 다시 한번 구경했는데 스와암부나트에서 봤던 부처의 눈은 아무리 봐도 마인크래프트 캐릭터 눈처럼 보였다. 지팡이처럼 생긴 코는 네팔어로 숫자 1을 뜻한다고 한다.


- 파슈파티나트 사원 : 포카라와 카트만두를 통틀어서 시내 여행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 바그마티 강변에 위치한 네팔에서 가장 신성한 힌두교 사원이라고 한다. 시바 신을 모신다. 가물어서 그런지 강에 강물이 적었다. 사원은 여느 장소와 비슷했지만 이곳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강가에서 수십 개의 화장터가 있고 이곳에서 공개적으로 화장을 한다는 점. 근처로 가면 자욱한 연기에 매캐한 사람 살타는 냄새가 전해진다.


장작을 쌓아서 미리 준비해 놓고 있다가 사람들이 시체를 들고 이동해서 장작 위에 올린 후 휘발유 같은 걸 뿌리고 장례 절차를 진행한 후 태웠다. 상주가 시체 주변을 몇 바퀴 도는 게 상례 중 하나인 거 같았다. 10대 초반의 어린 상주가 울면서 그 주변을 도는데 가슴이 짠했다. 강 위쪽일수록 사회적 직위가 높은 사람들의 화장터라고. 죽음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목도하다 보니, 삶에 더 애착이 느껴졌다.


교통 : 카트만두에는 인드라이브를 서비스하지 않아서 공유택시 이용하기가 불편했다.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할 때는 공항에 대기 중이던 택시를 탔고, 호텔 근처에서는 도보로 다녔다. 둘째 날 카트만두 시내를 투어 할 때는 호텔에 얘기해서 1일 렌터카를 이용했다. 7천 루피였는데, 네고해서 6천 루피로 카트만두 전체를 편리하게 다녔다. 밤 비행기로 귀국 일정이라서 캐리어도 싣고 다녔다. 기사 서비스가 좋고 아주 편리하게 해 준 덕분에 공항에서 500루피 정도 되는 잔돈을 모두 기사에게 팁으로 줬다.


슈베타라 스위트 (Shuvatara Suites & Spa, Thamel) 호텔 : 슈베타라 호텔은 타멜에 있는 6만 원대의 가성비 호텔이었는데 직원들이 친절하고 방이 깨끗했다. 밤에 분위기 좋은 바를 찾다가 바로 옆에 있는 3성급 호텔인 메이필드 바이 메리어트 카트만두 1층에서 맥주를 한잔 했다. 알아보니 이곳의 방값은 슈베타라보다 2~3만 원 비쌌지만, 호텔 컨디션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웠다. 다시 이 근방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슈베타라도 좋지만 아마 메이필드에 묵지 않을까 싶다.



14. 여행을 마치며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느낀 게 많아 다소 글이 길어졌다. 여행 준비 전 잘 정리된 한두 개의 글로 정보를 취합하고 싶었는데 막상 텍스트 문서는 그런 곳을 찾기 힘들었다. 유튜브나 카페 검색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안나푸르나에 대한 글과 사진과 영상은 이미 넘쳐날 정도로 많다. 다만 산발적인 정보를 취합하는 게 번거롭다 보니 나처럼 게으른 이는 제대로 안 알아보고 여행을 올 수도 있다. 준비 없이 다소 무턱대고 안나푸르나에 오른 왕초보의 글이긴 하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처럼 체력적으로 전혀 준비 없이 와서 지옥을 맛볼 정도로 고통을 겪기보다는 한 달 전부터라도 조금씩 계단을 오르거나 달리기를 해서 체력을 보강해서 오는 게 히말라야를 느끼기에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히말라야에서 많은 걸 배웠다. 무턱대고 온 탓에 고생을 꽤 많이 했다. 그래도 고루한 표현으로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하지 않았다. 뜻한 바대로 ABC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뼛속 깊이 나의 한계를 깨달았고 무력함에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웅장한 산맥 앞에서 어린 새처럼 나는 한없이 작고 약한 존재였다. 그래서 더욱 나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의 영혼은 무한히 고결할 수도 있고 한없이 천박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라는 욕망의 아가리에 내 영혼이 집어삼켜지지 않도록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축복임을 깨닫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안나푸르나는 나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더 나은 내가 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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