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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May 23. 2022

캄보디아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돈

캄보디아 오토바이 생존기

우리는 캄보디아에 가기 전, 영국의 자동차 예능 프로그램 <탑기어-Top Gear>의 베트남 편을 봤었다. 출연진들은 오토바이로 베트남의 남에서 북을 종단했다. 그중 한 출연진은 그전까지 오토바이를 운전해 본 적도 없었다.


레전드 에피소드로 손꼽히는 베트남 편을 보면서 우리는 오토바이 엔진의 크기가 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산이나 비탈길에서 내려 오토바이를 끌고 올라가고 싶지 않다면 정말 적어도 100cc 크기는 되는 엔진이 필요했다. 두 명이 함께 타고 달릴 것이기에 50cc는 턱도 없었다.


우리가 굳이 배낭만을 가지고 캄보디아로 향한 것도 다 오토바이 때문이었다. 모든 이동을 오토바이로 할 작정이었으니 여행용 캐리어도 가져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몇 년째 사용하고 있는 적당한 크기의 배낭과 이번 여행을 위해 구매한 40리터짜리 배낭에 2인분의 짐이 다 들어가긴 하더라.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날

프놈펜에서의 첫날, 오토바이를 빌리고자 렌탈 업체에 찾아갔을 때 미리 우리가 프놈펜을 벗어나 다른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올 계획이라는 걸 밝혔다.


우리 얘기를 들은 대여점 직원은 여기엔 우리가 쓸 만한 바이크가 없으니 다른 대여점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해당 대여점을 찾느라 구글 지도를 켜놓고 주변을 빙빙 돌았던 우리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우리더러 오토바이에 올라타라는 것이 아닌가.


세 명이서 오토바이 한 대에 다 탈 수 있다고?

물음표와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얼굴로 서 있는 내게 A가 헬멧을 건네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직원이 먼저 오토바이 위에 타고 A가 가운데에 앉으니 내겐 진짜 한 뼘 정도의 공간이 남았다. 근데 또 이게 앉으니까 앉아지더라. 자길 꽉 잡으라는 A의 말에 그애를 꼭 잡고 도로를 달렸다.


내가 도로 위로 떨어질까 무서워하는 게 느껴졌는지 A는 내내 한 손으로 내 무릎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프놈펜 시내를 달린 지 한 5분 만에 다른 렌탈 업체에 도착했다. 엉덩이가 미끄러질까 무서웠던 것만 빼면  도로 위가 꽤나 안전하게 느껴진 걸로 미루어보아 직원의 오토바이 운전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다른 업체 직원들에게 우리 상황을 설명하자 직원들이 우리에게 이쪽으로 와서 오토바이를 골라보라며 손짓했다. A는 엔진 크기가 더 큰 바이크를 원했지만 125cc부터는 캄보디아 면허가 있어야 대여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곤 아쉬워했다.


캄보디아의 오토바이 대여점들엔 수동 기어 오토바이와 자동 기어 오토바이가 모두 있었다. 영국은 자동차도 수동 기어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A는 오토바이 면허시험을 수동 기어 오토바이로 치렀었다.


A는 수동 기어든 자동 기어든 상관없다고 했지만 이렇게 도로가 정신없는 나라에서는 자동이 더 쉬울 것 같아 자동 기어 오토바이로 빌리자고 했다.

오토바이 운전을 제대로 해본 것도 아닌데 쉬운 게 낫지!

내가 오토바이 대여점에 있던 강아지에게 한눈이 팔린 사이 A는 직원들이 추천한 자동 기어 오토바이를 한 직원과 함께 운전해보고 왔다.

너무 너무 귀여운 시루

직원이 먼저 시동 거는 법과 오토바이 조작법 등을 간단히 설명해주고, A가 운전을 하는 동안에도 주의해야 할 점이나 운전법 등을 알려준다. 직원들의 추천을 받은 오토바이는 빨간색 스즈키 어드레스.


아무래도 125cc 오토바이들보다 크기가 작아서 처음엔 얕봤었는데.


A는 자동 오토바이는 조작법이 정말 쉽고 간단해 자기가 딱히 할 것이 없다며 만족해했다. 이제 렌탈 계약서를 작성하고 돈을 지불한 후 여권을 담보로 맡기거나 보증금을 내면 끝이었다.

캄보디아에 가기 전 우리는 오토바이 대여 가격 시세를 대충 알아보고 갔는데, 그들이 제시한 하루 10달러라는 금액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격보다 꽤나 비싸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렇게 비싸리란 걸 생각하지 못하고 현금을 그만큼 가져오지 않은 터라 상황이 난감해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놈펜 안에서만 오토바이를 탈 때와 도시 밖으로 오토바이를 가지고 나갈 때의 가격이 다르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그럴듯한 이유다.


일단 문제는 우리에게 충분한 현금이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캄보디아에서 '어떤 지폐'는 현지인들이 돈으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렌탈 업체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니 캄보디아에서 2달러 지폐는 아예 사용이 불가능하다는데, 외국인으로선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아니면 우리만 몰랐던 거야????


캄보디아에 가기 전, 상인들이 가지고 있는 거스름돈이 부족해서 큰 지폐를 쓸 수 없거나 받아야 하는 돈보다 덜 거슬러 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되도록 10달러 이하의 지폐만 가져오려고 노력했는데….


한국에서 1달러와 5달러 지폐를 가장 많이 가지고 오긴 했지만 2달러짜리 지폐도 꽤 가져왔기에 우리에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2달러 지폐는 위조 지폐가 많아 정부에서 사용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A와 나는 전혀 몰랐기에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황당하단 표정으로 쳐다봤다. 이게 무슨 일이야... 돈이 있어도 쓰질 못한다니.


또 당황스러웠던 건 조금이라도 찢어진 부분이 있거나 손상된 지폐는 아예 받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에겐 아주 살짝 찢어진 20달러 짜리 지폐도 있었는데, 직원들이 이런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울에 있는 은행에서 받아온 돈인데... 직원들 말로는 이런 돈도 위조 지폐일 가능성이 있어 받질 않는다고 했다.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써보려 노력했지만 정말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가지고 온 돈이 캄보디아 현지에서 돈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니 황당하기는 했다. 사실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안 그래?


그렇게 되니 직원들이 총 렌트비에서 10달러를 깎아주었는데도 14달러가 부족했다. 난감해하는 우리에게 그들이 사장님께 연락을 해보겠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장님과의 통화 후, 그들은 우리에게 "오토바이를 반납하며 여권을 찾을 때 잔금을 치러달라"라고 했다. 잘된 일이었다.


무탈히 오토바이를 빌리게 된 우리는 A의 여권과 계약서를 넘겼다. 직원들이 우리에게 헬멧을 빌려주었고, 우리더러 오토바이 앞에 서라면서 사진도 찍어주었다.   

왜인지 웃긴 사진ㅋㅋㅋㅋㅋ 하하하


그렇게 오토바이를 대여했고, 나는 지도를 보고 A는 운전을 하며 프놈펜 도로 위를 달리게 됐다. 도심에서는 고작 시속 20-30km 속도로 운전하는데도 오토바이 위에서 느껴지는 체감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심장이 두근댈 정도였다. 직접 내 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도로 위에 있는 것이 처음이라 그렇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처음 오토바이를 빌린 후 숙소로 향하는 길에 A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는 무서운 티도 내지 않았다. 대신 잘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천천히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라고 말해줬다. 내비게이션처럼 길을 안내하는 와중에도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하자 A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A는 내게 침착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도 자긴 갑자기 로드 트립에 자신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했다. 처음으로 실제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 운전을 하게 된 A이지만 여긴 캄보디아였다. 솔직히 프놈펜 시내의 교통체증과 비교하면 서울의 교통체증은 아무것도 아니다. A는 걸음마를 떼자마자 마라톤에 참가하게 된 선수처럼 느꼈을 거다.


그래도 나는 A를 믿었다.

내 남자친구라서 무작정 믿은 게 아니라, 얘라면 캄보디아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섬의 시골마을에서 자라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등하교를 자전거로 했고, 다년간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도로를 달렸으며, 엄청난 반응속도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첫날인데도 이만큼 잘했으니 오토바이 운전 실력도 금방 늘 거라고 생각됐다. 정 못하겠다면 그때 가서 그만두면 되지 싶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우리가 걱정할 건 안전운전뿐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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