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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Aug 07. 2022

이 시국 해외여행이 제대로 꼬이는 순간

다시, 캄폿

원래 딱 하루만 캄폿에 묵고 다른 도시로 이동해볼까 생각했던 우리는 아직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아 하루 더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지난번에 보코산도 올라가 봤고 여기서 가볼 만한 곳은 다 가봤으니 더 둘러볼 만한 건 없을 줄 알았는데 열심히 검색을 해 보던 A가 꽤나 흥미로운 곳들을 발견해냈다. '피시 아일랜드'로 불리는 섬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배를 탈 필요 없이 운전해 가서 둘러볼 수 있다는데, 나는 캄폿에 섬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지도로 확인해보니 캄폿은 그 섬을 포함해 크게 삼등분된 모양으로 도시가 형성돼 있더라.

두 갈래로 나뉜 강의 하류가 바다와 만나는 사이에 위치한 피시 아일랜드는 염전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내가 실제로 염전을 본 적이 있었나? 중학생 시절 사회 교과서에서 본 염전의 모습을 생각해냈다. 그런 새하얀 풍경과 캄보디아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그 풍경이 궁금해졌다. 하긴, 이렇게 더운 날씨라면 바닷물이 소금이 되고도 남긴 하겠다.


캄폿 시내에서 삼십 분 정도 떨어진 곳에 동굴이 있다는데 거기도 가 보기로 했다. 한국어로 '프놈 츠녹(Phnom Chngok Cave)'이라고 불리는 이 동굴은 사진을 찾아보니 꽤 괜찮은 동굴 같았다.


-몇 달러를 내면 현지인들이 직접 동굴 안쪽까지 가이드를 해준대. 동굴 안은 길도 복잡하고 험하니까 절대 가이드 없이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네.

구글 지도에 사람들이 남긴 리뷰를 찾아보던 A가 말했다.


-그래? 근데 우리는 그냥 안 들어가면 안 될까?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히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동굴 좋지. 근데 여기서 동굴에 들어갔다가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구하러 와주지? 위치상 딱 봐도 그 주위는 인터넷이 잘 터지지도 않을 게 뻔했다.


들어가지 않을 거라면 굳이 왜 가냐 싶기도 하겠지만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무서웠기에 우리는 동굴 입구까지만 구경하기로 했다. 혹시 걱정이 많은 나 때문에 동굴에 들어가고 싶은데도 아무 말 못 하는 건가 싶어 A에게 물어봤더니 동굴 안은 딱히 궁금하지 않다고,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오전 열한 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밖은 햇볕이 타들어갈 듯 뜨거웠다. 우리는 물과 선크림을 오토바이 안장 아래에 싣고 가벼운 몸으로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마음도 함께 가벼웠다.


피시 아일랜드는 시내에서 정말 가까웠다. 섬으로 들어서자 포장되지 않은 붉은 흙길이 익숙하게 우리를 반겼다. 이제 이 흙먼지조차 너무 친근해졌다.

염전이 있다길래 쉽게 흰 풍경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이때가 3월 첫째 주였으니 아직 수확 시기가 아닌 건지, 물은 차 있었지만 하얀 소금들은 보이지 않더라. 건기가 끝나기 전인 3월에 소금을 수확한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상관없이 마냥 즐거웠다. 붉은 도로 위를 지나다니는 차들도 드물 정도로 한적한 동네였다. 다시 시내 쪽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 멈춰 서서 풍경을 구경하는데 A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여기 차도 별로 없는데, 네가 운전해보자!


지금? 하고 되물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A를 향해 씩 웃으며 앞자리에 타 핸들을 잡았다. 시아누크빌에서 처음 A가 운전을 가르쳐줬을 때보다 도로는 좋지 않았지만 여긴 사람도, 차도, 오토바이도 드문 곳이었기에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그냥 앞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

어느새 A를 뒤에 태우고 왔던 곳을 향해 운전해봤다.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뜨거운 땡볕 더위 속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은 꽤나 멋졌다. 재밌다. 물론 시속 30킬로미터가 될까 말까 한 속도로 달리긴 했지만 말이다. A도 뒷자리에 탄 게 즐거운 지 열심히 휴대폰으로 영상을 찍었다. 확실히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보다 신경 쓸 것도, 긴장할 것도 없으니 그 여유가 좋은 모양이었다. 나도 운전을 할 줄 알았다면 그에게 그런 여유를 더 많이 선물할 수 있었을 텐데. 괜히 고맙고 미안했다.


왔던 길로 돌아갈수록 도로 위가 혼잡해졌다. 나는 섬을 벗어나기 전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A에게 운전대를 넘겼다. A는 내가 다리를 건너는 것까진 혼자 할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했지만 나는 이걸로 만족했다.


우리는 시내를 가로질러 빠져나온 후 캡과 캄폿을 잇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동굴로 향하는 길로 방향을 틀었다. 비포장 도로가 얼마 전 내린 비 때문인지 엉망진창으로 파여 있었다. 그 와중에 또 햇볕이 너무 아프게 내리쬐는 거다. 이러다간 동굴에 도착하기도 전에 피부가 자외선 때문에 엉망이 되어 버릴 것 같아 우리는 잠시 오토바이를 갓길에 세우고 선크림을 덧바르기로 했다.   


A는 짧은 머리 아래로 드러난 뒷목이 늘 빨갛게 익었다. 이미 그을린 그의 뒷목에 선크림을 쭉 짜서 두껍게 펴 발랐다. 나는 어깨가 드러나는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나온 터라 등까지 꼼꼼하게 선크림을 발라달라고 A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더운 날씨 때문에 머리를 묶느라 드러난 목덜미에도 선크림을 잔뜩 덧발랐다.


얼마나 덥고 뜨거운지 방금 바른 선크림이 바로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아까 피시 아일랜드를 빠져나온 후 시내를 지나다 잠시 카페에 들러 커피도 한 잔 마셨는데 갈증이 가시질 않았다. 뜨거운 날씨 때문에 미적지근하게 덥혀진 물을 들이켜고 다시 동굴로 향했다.


프놈 츠녹으로 향하는 길은 시아누크빌과 캄폿을 잇는 도로만큼 험했다.

울퉁불퉁 패인 곳이 많은 데다가 근처에 공사장이 있는지 큰 덤프트럭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바람에 운전이 어렵긴 했지만 더 난처한 건 따로 있었다. 동굴로 가는 길이 없는 거다. 분명 지도가 여기로 안내했다면 길이 있어야 할 텐데, 왜 없지?


아하. 지도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른쪽으로는 도랑이 흐르는 정말 좁디좁은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내가 그걸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린 거다. 풀이 나 있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도로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오솔길 같은데 그게 길이었다니. 게다가 그 길 한가운데에는 어미 소와 아기 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일단 지나가려 시도는 해보는데 갑자기 소가 우리 쪽으로 움직이기라도 하면 도랑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는 거였다. 사실 여기 소들은 오토바이에 꽤나 익숙할 거다. 문제는 길이 너무 좁아 자칫하면 우리가 소를 피하려다 굴러 떨어질 수 있다는 것. 그래도 어찌저찌 침착하게 상황을 잘 벗어났다.


동굴 입구로 올라가는 길목에 도착해 오토바이를 주차하니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던 남자들 중 한 명이 일어서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동굴로 올라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며 5달러를 요구했다. 입장료가 있는 줄은 몰랐지만 내라고 하니 별 수 있나. 여기까지 왔으니 동굴 입구는 꼭 봐야 했다. 나중에 프놈 츠녹을 검색해 각국의 여행자들이 남긴 후기를 찾아보니 몇 년 전까지는 인당 1달러가 입장료였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입장료가 두 배 이상 뛰었나 보다.


동굴에 들어갈 거냐고 묻는 남자들의 질문에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가리키며 저걸 따라 올라가면 동굴 입구가 보일 거라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사원에 간다면 쉽게 볼 수 있는 뱀 모양의 '나가' 장식이 역시나 여기도 있더라.


우리는 길도 모르고 가이드도 없었지만 그냥 계단을 따라가면 되겠지 싶어 무작정 계단만 따라 걸었더니 동굴 입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세상에. 동굴 입구가 이렇게 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동굴 쪽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동굴 입구가 더 훤히 보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큰 동굴의 규모에 감탄하고 있는데 앳된 얼굴의 캄보디아 소년들이 다가와 동굴 가이드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내가 멋쩍게 웃으며 괜찮다고 고개를 젓자 그들은 어깨를 으쓱이곤 사라졌다.

입구를 구경중인 A

그새 A는 동굴 입구에 난 계단을 따라 더 안쪽으로 들어가 구경 중이었다. A가 여기에 박쥐도 있다며 내려와서 구경하라는 거다. 안 그래도 왜인지 섬뜩한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아 소름이 돋았는데 그게 박쥐였나 보다. 으악.


-내려와 봐! 여기까지는 괜찮아!

A가 동굴 초입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나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박쥐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시는 거다. 박쥐가 무섭다기보다는 사람에게 많은 병균을 옮길 수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찝찝해서 가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정말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


혹시 가이드를 써서 동굴 안쪽까지 둘러보고 싶은 거면 밖에서 기다려주겠다고 말하니 A가 혼자서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예상보다 동굴 입구의 규모가 엄청 크고 멋졌기에 만족스러운 구경이었다. 동굴로 향하는 중간중간 돌아본 풍경이 예쁘기도 했다.


다시 시내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공사장에서 나온 덤프트럭이 바로 앞에서 붉은 흙먼지를 흩뿌리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때 갑자기 비가 찔끔찔끔 내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험한 길에 먼지와 비가 합세해 버렸다.


A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트럭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잠시 오토바이를 세웠다. 더워 죽겠는데 비까지 오고, 길은 험했다.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A도 그랬을 거다. 둘 다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탓을 하며 툴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우리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야, 너 얼굴 뭐야!


트럭이 흩뿌리고 간 먼지가 비 때문에 얼굴이며 몸, 헬멧에 고스란히 달라붙어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둘 다 헬멧을 쓰고 있어 입 주위와 턱 부분만 붉은 흙으로 얼룩진 게 진짜 웃기긴 했다.

어쩔 수 없이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다 부랑자 행색이 됐다. 이 몰골로 밥을 먹기에는 찝찝했기에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헬멧까지 깨끗하게 닦은 후 또다시 전날 갔던 인도 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A랑 나는 둘 다 음식 하나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것만 먹으려는 것도 닮았다.


프놈 츠녹에서 돌아와 씻고 식사까지 하고 나니 오후 네시가 다 됐다. 이후 일정은 비우고 숙소에서 다음 일정 계획을 세우며 쉬기로 했다. 분명 캄폿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게 목적이었는데 왜 또 고생한 것 같은지. 직접 운전을 하니 외곽에 위치한 관광지에 다녀오는 것도 녹록지가 않았다.


각자 노트북을 하며 나름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A가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 어제부터 아프던 목이 어째 더 아픈 것 같은데.


피곤해서 편도가 부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내가 눈을 크게 떴다.

-얼마나?


A가 목이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어제보다 훨씬 더. 음식 삼킬 때도 아파. 아까 밥 먹을 때도 그랬어.


갑자기 문득 불안함이 스친다. 설마.


나는 이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그 애도 표정이 복잡했다. A에게 물었다.

-검사해볼래?


때는 토요일 저녁. 근처에 문을 열었다고 뜨는 약국이 곧 7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는 걸 확인한 우리는 서둘러 오토바이 위에 올랐다. 사실 한국에서 캄보디아로 오기 직전 무리하게 밤낮을 바꾸려 한 탓에 귀와 목을 잇는 부분이 살짝 부었었던 A였기에 비슷한 이유로 아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히 코로나는 아닐 거라고. 그치만 그냥 혹시 모르니 확실히 하는 거라고.


약국에 들어가서 코로나 진단 검사 키트를 찾으니 7달러였다. 7달러라. 한국에서 진단 키트가 오천 원 정도였으니 한국과 비교했을 때도 더 비싸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의 소득 수준과 비교하면 정말 미친 가격이나 다름없었다. 혹시 몰라 약국에 들어오지 않고 오토바이 옆에서 나를 기다린 A에게 가격을 말해주니 그도 경악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A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바로 진단키트로 검사를 진행했다. 사실 이때까지도 불안한 마음이 반, 별일 아닐 거라는 믿음이 반이었다. 몇 분쯤 흘렀을까, 검사 결과를 확인했는지 A가 나를 불렀다. 양성이었다.


잠깐, 양성이라고?


우리 둘 다 어이가 없어 서로를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고 서 있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디서?


이 로드트립 중 다른 여행객들과 대화도 나눈 적 없고 사람이 많은 술집에 놀러 나간 적도 없으며 이 여행이 시작되고 밥을 함께 먹은 것도 오로지 서로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갑자기 문득 며칠 전 시아누크빌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 섬에서 빠져나온 후 겨우겨우 숙소를 잡아 밤이 늦어서야 체크인을 했던 날, 그날 밤 A는 정말 몸이 좋지 않았다. 속이 너무 좋지 않다며 화장실에서 변기를 잡고 앉아 있는 탓에 내가 정말 걱정했었다. 열이나 기침은 없었다. 나는 단순히 A가 그날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늦게 먹은 첫끼가 얹힌 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하길래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는데.


미스터 본이나 그 섬의 숙소 주인, 아니면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던 툭툭 기사들 중 한 명에게 옮은 걸까.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이 시국에 해외여행을 한다는 건 이런 가능성까지도 안고 떠나는 거지만 그래서 더 조심했기에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나도 양성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A가 음성일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진단키트를 하나만 사 왔었기 때문에 우리는 7시가 되기 전에 다시 부랴부랴 약국으로 향했다. 이왕 또 진단키트를 사는 김에 A도 다시 검사해보라고 여러 개를 샀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아직 코로나 확진환자가 직접 약국에 약을 받으러 가거나 병원 진료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확진자일지도 모르는 내가 약국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정말 죄스럽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머리가 띵했다. 호텔로 돌아와 손을 박박 씻었다. 진단키트는 한국에 있을 때도 괜한 걱정에 여러 번 해봤기에 익숙했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A가 양성인데 나는 음성이라니, 이게 더 어이없는 결과였다. 여태껏 밥도 같이 나눠 먹고 물도 같이 마셨다. A가 누군가에게 옮았다면 나도 그 순간 함께 있었을 거다. 모든 걸 함께 했는데 왜 나는 음성이지?


그럼 우리 둘이 따로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건지,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건지,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A도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검사를 해도 한 줄이고 A는 다시 검사를 해도 두 줄이었다.


-많이 아파?

내가 물었다.


-아니, 목이 아픈 거 빼고는 딱히 아프지 않아. 그래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거라고는...

A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자,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시작했다. 나도 양성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지금 상황으로는 6일 뒤에 한국으로 출국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 음성인 나는 혼자 오토바이 운전도 못하는데.


확실한 건, 비행기 표를 미루고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거였다.

-내일 캡으로 가자.

누가 먼저 말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머지 한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캡에서 자가격리를 하자.

 

그렇게 이 로드트립을 떠난 지 13일째, 갑작스럽게 여행이 잠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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