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과 바다 그리고 원숭이, 캡
새로운 숙소로 옮겨간 날부터 A는 코로나에 걸리기 전으로 돌아간 듯 몸을 완전히 회복했지만 나는 정반대였다. 아플 때조차 열이 거의 없었던 A와 달리 나는 그날부터 밤마다 38도를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정말 설명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푹 자고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는데, 아파서 도통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된 후로 이렇게 아파보기는 처음이었다.
밖은 날씨도 끝장나게 좋은데 나는 열 때문에 머리가 핑핑 돌아 일어날 힘도 없었다. 자가진단키트로 검사 후 양성이 뜬 지 겨우 이틀 째였다. 이럴 때는 차가운 물수건을 대고 있어야 한다며 A가 수건을 물에 적셔 오더니 내 이마에 올려줬는데 제대로 물을 짜지 않았는지 배게가 금세 흥건해졌다. 으이그!
이불속에서 끙끙 앓고 있는 내가 안쓰러운지 나를 바라보는 A의 눈시울이 붉었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아픈데 왜 니가 우냐고 농담을 던졌겠지만 그럴 힘도 나오지 않아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사실 며칠 전 나도 아파서 누워있는 A를 보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아 울음을 참았기 때문에 그게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서로 밖에 없으니 더 애틋할 수밖에.
아무튼, 아픈 건 아픈 거고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원래 계획했던 출국날짜가 삼일 앞으로 가까워졌는데 아직도 비행기 표를 바꾸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표를 구매한 항공사 홈페이지에 코로나19 관련 항공권 변경 규정이 정확하게 잘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는 '격리 대상자'라면 20년 3월 10일부터 22년 6월 30일까지 발권된 항공권에 따라 재발행 수수료를 면제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항공사와 직접 연락을 해 보려고 해도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전화 연결이 되지 않다는 거였다.
그러니 우리는 표를 이용한 여행사에 문의를 해 재발권을 받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에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을 때에는 국외 전화라 통화 자체가 어려웠는데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휴대폰이 인터넷에만 잘 연결되어 있다면 해당 여행사 앱을 다운로드한 후 거기서 무료로 콜센터와 연결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걸 몰라 영국에 계신 A의 부모님께 부탁을 드렸었는데 이 상황을 들은 우리 엄마가 앱의 인터넷 전화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며 귀띔을 해 주셨다.
그렇게 여행사에 직접 우리 사정을 설명했다. 예정되어 있던 출국일이 곧이니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하지만 여행사와 통화를 한다고 모든 게 일사천리인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여행사 직원이 해당 항공사의 항공권 변경 규정을 이해하지 못해 오해가 생겼다. 그러니까, 공지된 바에 따르면 우리가 그렇게 어마무시한 수수료를 낼 필요가 없다구요!
통화를 마친 후,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양성 결과가 나온 코로나 진단키트를 여권 옆에 나란히 두고 사진을 찍어 메일로 전송했다. 그렇게 주고받은 메일만 총 일곱 통이나 되니, 적어도 여행사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일을 처리하는 중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제 날짜를 언제로 바꿀지가 관건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려면 PCR 검사가 음성이 나와야 하는데 코로나에 걸린 후 얼마나 지나야 PCR 검사에서 음성이 뜰 지 알 수 없었다. 몸이 다 회복한 후에도 죽은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양성이 뜰 수도 있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털어서 온 여행인데 100불이 넘는 PCR 검사를 몇 번이고 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 나라였다면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텐데 우리는 한 달짜리 관광비자를 받고 입국한 여행객들이었다. 프놈펜행 밤 비행기를 탔던 우리가 캄보디아에 입국한 건 2월 21일 오후 11시 45분. 거의 자정 직전에 입국 도장을 받았다. 올해 2월은 28일까지였으니 한 달짜리 비자면 만료일은 23일까지가 아닐까-하는 조그만 희망을 가져보았지만 여권을 다시 확인해보니 얄짤 없이 3월 21일까지라고 도장이 찍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비자가 만료되는 21일로 출국일을 미루기로 했지만 그때 만약 PCR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했다.
그 와중에 여행사에서 최종 메일이 왔다. 지금 우리의 항공권 상태가 'Airport Control'이라 항공사에 문의해 이 상태를 바꿔야만 여행사 측에서 표를 재발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현지 번호로는 통화 연결이 안 되던데, 진짜 골치 아프다. 그래도 우리가 예매했던 왕복 비행기가 우리나라 국적기였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부탁을 할 수 있었다.
솔직히 자가격리를 하느라 여행을 멈춰야 하는 것 정도는 이 시국을 감수하고 떠난 여행이니까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치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정말 많았다.
게다가 정말 속상한 건 따로 있었다. 내일이 A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3년 가까이 만나고 있으면서도 장거리 연애를 하느라 A의 생일을 한 번도 함께 보낸 적 없었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A의 생일을 캄보디아에서 축하한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로 계획을 세웠던 건데, 나는 이렇게 아파서 골골대고 있는 데다가 외식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제발 내일은, A의 생일에 만큼은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한 게 무색할 만큼 나는 한밤중에 또 열이 펄펄 끓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어두컴컴한 새벽, 내가 얼마나 끙끙거렸는지 A가 잠에서 깼다. 내 이마를 만져본 그 애가 헐레벌떡 수건을 찬 물에 적셔왔다. 또, 또 물기를 제대로 안 짰지. 축축한 수건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계속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잠을 잔 건지 기절을 한 건지 모르겠다. 아팠던 탓에 제대로 잘 수가 없었던 나는 결국 오전 여섯 시 반에 침대에서 나와 입에 진통제를 털어 넣었다. 온몸이 타들어갈 것만 같았던 지난밤 보다야 열이 살짝 내린 것 같긴 했지만 아직도 38도가 넘었다. 그래도 괜히 괜찮은 척 아침을 먹으며 A의 생일을 잔뜩 축하해 주고 나니 항공사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21일 날짜로 재 발권된 항공권이었다!
아침에 엄마가 바로 항공사에 직접 전화를 해 주신 덕분에 변경된 비행기 표를 빠르게 받을 수 있었다. 엄마랑 전화를 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간신히 참았다. 엄마는 이제 빨리 낫기만 하면 된다며 다른 걱정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여행을 간다고 타국에 나간 딸이 이렇게 아프니 엄마도 어지간히 걱정이 되는 게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말해주는 게 너무 고맙고 미안했다.
만약 우리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프놈펜에서 A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을 텐데. 로드트립이 무사히 끝나 다행이었다고, 지난 일들을 함께 곱씹으며 신나게 보냈을 텐데. 그래도 A는 여행이 미뤄져 더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에 살짝 신이 난 것 같기도 했다. 발렌타인데이도 미뤘으니 생일파티도 조금 뒤로 미루자고 약속했다.
A가 부모님과 긴 영상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우리 숙소 옆에 심어진 식물들을 구경했다. 이곳에서는 망고도 자라고 두리안도 열린다. 떨어진 열매는 다람쥐와 새의 먹이가 된다. 발코니 난간에 걸터앉아 있던 A가 갑자기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어디론가 달려 나갔다. 과일을 먹으러 온 원숭이를 발견한 것이다. 숙소 위로 보이는 산에 국립공원이 위치해 있다더니, 원숭이들도 가끔 내려오나 보다. 부모님께 원숭이를 보여드리고 싶었는지 그 장면을 놓칠 새라 맨발로 달려간 것이 너무 그애답다고 생각했다.
땅에 떨어진 두리안을 집어먹으며 주위를 살피는 새끼 원숭이를 멀찍이서 관찰하는 A가 귀여워 나는 휴대폰으로 A의 모습을 담았다. 놀라우리만큼 생명력이 넘치는 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이곳에서는 나뭇잎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게 느껴진다. 뜨거운 햇빛 때문인지 식물들이 뿜어내는 색이 더 선명하게 눈에 박힌다. 서울에서는 이렇게 살아있는 것들에게 충분히 둘러싸여 본 적이 있었나.
늦은 오후가 되자 약기운이 좀 도는지 열도 37도 아래로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A의 생일인데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는 없다 싶어 오토바이 위에라도 오르기로 했다.
-멀리 나가자. 멀리. 응? 사람 없는 곳으로.
내 말을 들은 A가 오히려 신이 난 듯 속도를 높였다. 사람들이 많은 도로를 피해 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도로가 한가하다 못해 텅 비었다. 이곳이 얼마나 작은 도시인지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일렁이는 파도와 차분히 물드는 하늘이 예술이었다. 이곳의 해질녘은 매일이 새롭다. 매일 저녁 각기 다른 노을이 하늘을 붉히는 것 같다.
우리는 정말 목적지 없이 도로 위를 달리기만 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도시에 노을이 내려앉자 모든 게 다 신비로웠다. 그러다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을 지나가게 됐다. 무작정 길을 따라 들어갔다가 마주친 촌락은, 아무래도 도시의 중심가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먼지가 날리는 흙길 위에 나무판자로 대충 지어진 집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저녁 때라 음식 냄새와 장작 타는 냄새가 함께 풍겼다. 마을 앞으로 보이는 바다에는 고기잡이용 쪽배들이 떠 있었다. 외지인이 여기까지 들어온 게 이상한지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멀뚱히 서서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곳이었다. 마치 도시가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일부러 숨겨놓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시내 쪽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빌라와 호텔, 식당들 뿐 캡에서 주민들이 사는 곳을 본 기억이 아예 없었다. 오토바이를 세우지 않고 달렸기 때문에 금방 그 촌락을 가로질러 나왔지만 왜인지 그때 그곳이 마음에 자꾸 걸렸다. 시끌벅적한 시장과 아기자기한 카페들, 레스토랑과 호텔들이 이곳의 전부는 아닐 텐데. 관광 관련 수입이 대부분일 이곳에서, 퇴근을 하고 난 후 사람들은 어디로 돌아갈까 궁금해졌다.
마을을 지나쳐 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비포장 도로가 우리 앞으로 끝없이 펼쳐졌다. 문득 뒤를 돌아봤는데 산 너머로 동그랗게 해가 지고 있었다.
-뒤에 노을이 너무 멋져!
내 말에 A가 흘긋 뒤를 돌아보더니, 잠깐 여기 멈춰서 노을을 보고 갈까? 하고 물으며 오토바이를 세웠다.
넓게 앞뒤로 이어지는 이 길 위에는 노을과 나, 그리고 A 뿐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산 너머로 해가 모습을 감출 때까지 우리는 한참을 서서 일몰을 감상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생일 저녁이니 특별히 밖에서 포장을 해 와서 먹기로 했다. A의 생일이니까 생일 주인공이 먹고 싶은 걸 고르면 좋겠는데 A는 자꾸 내가 행복해야 자기도 행복하다며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겠다고 떼를 썼다. 결국에는 이탈리안 아저씨가 운영하는 피자집에서 파스타를 포장해 먹었는데 웃기게도 누가 먹고 싶은 걸 먹은 건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식당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어 주문만 미리 해두고 A가 나를 숙소에 먼저 데려다 주기로 했다. 저녁이 되니 초여름밤처럼 바람이 선선했다. 몸을 완전히 회복한 A는 생일이라 더 신이 난 건지,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계속 실실 웃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게, 믿어져?
A가 이렇게 묻는데 코끝으로 시원한 바다 냄새가 쏟아져 들어왔다. 멋지다. 몸은 아직도 아팠지만 갑자기 마음이 들떴다. 자금 우리가 함께 여기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웃음이 났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았다.
사실 고되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늘 이곳에 있는 순간순간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믿기지 않는다고 들뜬 목소리로 대답한 내게 A가 행복하다고 했다.
-너랑 이곳에 함께 있어서 너무 행복해.
나도 그래-하고 답하며 A의 어깨에 턱을 올렸던 그 순간은 정말 예쁘고 벅찬 추억으로 남았다. 우리를 둘러싼 오토바이 엔진 소리, 흘깃흘깃 뒤를 돌아보며 행복을 꾹꾹 담아 말하던 A의 목소리, 노을이 진 후 푸르스름한 어둠까지 모든 게 어우러져 영화처럼 세세하게 기억이 난다. 선물도 케이크도 없는 생일이지만 적어도 네가 행복하다니 다행이다.
물론 코로나에 걸려 예상에도 없었던 자가격리를 하면서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만 있었던 건 당연히 아니었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항공권이며 비자며 걱정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고, 여행을 와서 이렇게 아파야 한다는 게 속상했다. 처음 함께 맞는 A의 생일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도 슬펐다. 하지만 오히려 나보다 담담하고 긍정적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어서 도움이 됐다.
노을, 바다, 그리고 원숭이. 반짝이는 햇살에 싱그럽게 몸을 흔들대는 야자수들.
넷플릭스로 영화를 틀어놓고 함께 깔깔대던 순간들. 불을 끄고 누우면 들려오는 도마뱀 울음소리.
지저분한 도로와 해산물 냄새. 시원한 바닷바람.
사실 나는 그렇게 아픈 와중에도 먼 훗날 이 순간이 얼마나 그리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걸 눈에 담고 하나하나 기억하려 애썼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행이 잠깐 멈춤으로써 얻은 심심한 평화가, 아픈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곧 그리워질 테니 미리 감사하자고.
그날의 나는 그 하루를 '조용히 완벽한 하루'라고 표현했다. 아무래도 미래의 나도 그날을 그렇게 기억하길 바랬나 보다.
이날 바다에 일렁이는 오후의 햇빛을 담으려 찍은 사진엔 귀여운 하트 모양 구름이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