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인생들

태양은 가득히 (번외)

by 달을보라니까


1. 아키코


폭탄이 터졌을 때 아키코는 히로시마를 출발해 쿠레를 거쳐 오카야마로 가는 완행열차에 타고 있었다. 전쟁만 아니었으면 고교 마지막 수학여행을 더 멀리 교토로 갔을 텐데 우리는 정말 운이 없다며 떠들어대는 동급생들에게 아키코는 앞으로 3일 동안은 밤늦게까지 공장에서 무기를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더 좋다며 재잘재잘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자 동급생들이 학병으로 자원하거나 차출되어 갔을 때만 해도 아키코는 전쟁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부터 미군 비행기가 히로시마에 나타나면서 뭐가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전쟁은 멀리 있다고 생각했었다.


늦잠을 자서 7:30에 출발하는 열차를 놓칠 뻔했던 아키코는 자신이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빨리 뛰었는지, 뒤에서 따라오던 미치코는 결국 열차를 못 탔다며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다들 어서 목적지에 도착해서 오래간만에 즐겁게 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열차가 히로시마를 벗어나 해안을 따라 쿠레로 향해 가고 있을 때 아키코는 창밖으로 뭔가 번쩍하는 것을 본 것 같았지만 움직이는 기차 안에 있던 다른 누구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해안 철길에 열차가 멈춰 섰다. 아직 쿠레도 못 왔는데 왜 멈췄지 싶었지만 곧 다시 출발하겠지 하며 아키코와 친구들은 하던 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선생님들도 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열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한 선생님이 차장을 찾았다. 마침 차장과 기관사가 기관실에서 나오며 모두 열차에서 하차라고 했다.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그들도 선로 신호가 꺼졌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다고 했다. 신호 체계에 문제가 있으니까, 이대로 있다가는 자칫 다른 열차와 충돌할 수도 있기 때문에 빨리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고 했다.


선로 옆에서 한참 있었지만 기차는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통신이 두절되었고 기차가 다니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무슨 큰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학여행 목적지로 가는 것은 위험하니까 히로시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교감선생님의 결정에 학생들은 실망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이 철로를 따라 히로시마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산모퉁이를 돌았을 때 모두가 처음 보는 광경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히로시마 한가운데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은 구름이 솟아나 있었다. 아무도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누구나 그 구름이 열차 운행이 중단된 이유임을 알아차렸다.


교감은 학생을 데리고 근처 마을에 있는 학교로 갔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운동장에 앉아 있는 사이에 그 학교 교장을 만나 허락을 받은 교감은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고, 학교와 교육청은 물론 신문사 같은 곳에 연락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려 노력했다. 수학여행비로 가지고 있던 돈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3일간 머물던 학교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교감은 도저히 못 참을 때까지 먹지 말고 참으라는 말과 함께 모두에게 벤또 하나 씩을 나눠줬다.


기차선로를 따라 도시에 가까워지면서 학생들은 한 둘 씩 집이 있는 방향으로 흩어졌다. 히로시마 역 앞에서 아키코는 일행과 헤어져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집이 있던 방향으로 갔다. 거리에는 죽은 사람들을 많이 있었다. 다친 사람은 더 많았다. 무서웠다. 자기 뒤를 따라오던 미치코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키코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도와달라는 사람들을 피해 달렸다. 가방 속의 도시락이 흔들렸다.


집은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안에 들어갔는데 가족 중 누가 죽어 있으면 어떻게 하나 무서워서 망설이다가 잘 열리지 않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몰랐지만 문을 닫고 기다리기로 했다. 밤이 돼도 가족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배가 고팠다. 집에는 먹을 게 없었다. 엄마가 해 놓았던 며칠 된 음식은 8월 여름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가방에서 벤또를 꺼낸 아키코는 또 언제 먹을게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교감의 말처럼 도저히 못 참을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엄마 음식이 그랬듯 벤또에 있는 유부도 내일이면 못 먹게 될 것 같았다. 뚜껑을 열고 도시락 안의 유추초밥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아키코는 전기도 물도 끊어진 집에서 이틀을 숨어 있다가 바깥으로 나왔다. 너무 배가 고팠다. 그리고 엄마 아빠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거리에는 뜨거운 것에 덴 것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아빠가 일하던 탄광회사를 찾으려 가다가 길을 잃었다. 늘 다니던 길에 있던 건물들이 무너졌거나 없어져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녀도 아빠가 일하던 곳도 아빠도 찾지 못했다. 학교로 가려다가 혹시 엄마가 돌아왔을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집 주변에는 이웃 어른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아빠와 엄마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아키코는 아빠와 엄마를 찾아 히로시마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다. 폭발이 일어났을 때 아빠가 사무실에 있었고, 엄마는 아빠 사무실 옆에 있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시는 아빠 엄마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 되자 더 배가 고팠다.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 배고픔과 목마름을 참고 누워있다가 쓰러진 부엌으로 기어 들어가서 우메보시를 찾아 우걱우걱 집어 먹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반 통이나 먹었지만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문득 아빠와 엄마를 본 지 9일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은 아키코는 아빠 책상과 아빠가 돈을 숨겨두던 다다미 밑을 뒤져서 돈을 찾았다. 찾은 돈을 둘로 나눠서 한 뭉치는 가방에 넣고 다른 한 뭉치는 숨겨두고 아침을 기다렸다가 돈을 조금 꺼내서 주머니에 넣고 히로시마 역 쪽으로 갔다. 역까지 가는 동안 문을 연 식당은 하나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없었다.


그러나 기차와 전차는 다시 운행을 시작했고 건물더미로 가득하던 길도 치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아빠 엄마만 찾으면 되는데 생각하며 역 뒤편으로 가다가 짐보따리를 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같은 반 미에의 엄마를 만났다. 미에 엄마는 아키코를 알아보고서는 다짜고짜 왜 아직도 여기에 있냐며 얼른 멀리 가라고 소리쳤다. 미에는 벌써 떠났고 자신들도 멀리 친척집으로 가는 길이라며 빨리 가라고 손사래를 치며 멀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누가 있었다. 아빠도 엄마도 아니었다. 억지로 문을 밀고 들어와서 방을 뒤지고 있던 그들은 아키코를 보자 소리를 질렀다.


"네 아빠 어디 있어! 동포들을 지옥 같은 탄광에 팔아먹은 매국노 살인마 새끼!"


낯선 말이었다. 조선 욕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뒤에 있던 사람이 일본말로 아키코에게 아빠의 행방을 다시 물었다. 어른 여럿이었는데 아빠를 못 본 지 여러 날 되었다고 하자 화를 내며 한참을 집 앞에 서성이고 있다가 갔다. 무서웠다. 아빠는 조선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해서 어느 섬에 있는 탄광으로 보내는 일을 했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방학에 할아버지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키코에게 엄마는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학교친구들이 알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아키코에게 조선에는 아빠가 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앞으로 할아버지 집에는 갈 수 없다고 했었다.


저들이 다시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고 무서워서 촛불도 못 켜고 있는데 누가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누구냐고 말할 틈도 없이 눈앞이 번쩍했다.


숨이 막히고 무거워서 눈을 떴을 때 어떤 사람이 아키코 몸 위에 엎드려 있었다. 놀라서 비명을 질렀지만 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몸을 움직였다. 찢어질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다시 소리를 지르자 다른 손이 아키코의 입을 막았다. 빠져나가려고 몸을 비틀자 또 다른 손들이 아키코의 팔과 다리를 잡았다. 그 사람이 아키코에게서 떨어져 나가자 다른 사람이 아키코 몸을 올라탔다. 아키코는 그 사람이 길 건너 안경 낀 뚱뚱한 대머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다음에 식당집 아저씨가 다가서는 것을 본 후에는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이려 할 때마다 너무 아팠다. 간신히 몸을 웅크려 일어나려다가 다시 주저앉아서 한참 앉아 있다가 조금씩 조금씩 일어났다. 어른들이 다시 오기 전에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엉금엉금 기어 옷가지를 챙겨 입고 가방을 들었다. 가방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히로시마 역에서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멀리 가는 표를 샀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희미해지는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쓰다가 기차에 올라서자마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어떤 아줌마와 아저씨가 옆에 있었다. 아줌마는 어린것이 무슨 일을 당했길래 이 몰골이냐고 혀를 차며 아키코의 입에 물병을 갖다 댔다.


다시 정신을 잃었던 아키코가 눈을 떴을 때 열차는 타케하라를 지나고 있었다. 부부는 아키코에게 갈 곳이 없냐고 물었다. 전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아들 중 하나가 히로시마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을 찾으러 왔다가 못 찾고 마츠야마로 돌아가는 길이라며, 갈 곳이 없으면 따라와도 된다고 아저씨가 말했다. 아키코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날카로운 금속소리와 함께 열차가 옆으로 넘어갔다.


열차가 뒤집히면서 어딘가에 부딪쳤다. 열차 안은 사람들과 짐이 뒤섞인 채 비명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아키코가 몸을 가누고 출구 쪽으로 비틀거리며 움직일 때 누군가 발목을 잡았다. 아까 그 아저씨였다. 부서진 의자가 두 사람을 덮쳤고 아줌마의 배에서는 검붉은 피가 계속 나왔다.


안간힘을 다해 의자를 치웠지만 어딘가 부러진 듯 다른 승객과 함께 아저씨를 기차 밖으로 꺼낼 때까지 아저씨는 비명만 지르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전쟁으로 의사도 의약품도 모두 전쟁터로 보내진 병원에서 아저씨는 부목만 한 채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치료도 받지 못했다. 아키코가 열을 내리려 연신 수건을 적셔 이마와 몸을 닦아주는 게 치료의 전부였다. 그래도 다행히 열흘 정도 후에는 상태가 좋아졌다.


하지만 갑자기 아저씨의 잇몸과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설사와 함께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몸에는 보랏빛 반점들이 생겼다. 병원은 아저씨를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있는 곳으로 보냈고 면회가 금지되었다. 며칠 후 병원에서는 밀린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더 이상 병원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아저씨가 가지고 있던 돈은 이미 병원비로 다 썼고 아키코의 수중에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집에 따로 감춰 뒀던 돈이 생각났지만 집에 갈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렸다.


망설이고 주저하다가 아키코는 밤 기차를 타고 히로시마로 돌아갔다. 그날 밤 자신을 덮쳤던 동네 아저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사방을 살피며 집으로 들어갔다. 누군가가 집안을 다 뒤진 듯했지만 다행히 숨겨뒀던 돈과 아빠의 시계와 만년필은 그대로 있었다. 히로시마 역 간이 의자에서 밤을 새우고 아키코는 새벽에 다시 타케하라로 돌아갔다.


한 달이 지나는 동안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죽어 나갔다. 의사도 아저씨가 죽을 거라며 더 이상 병원비로 돈을 다 날리지 말고 아저씨를 데리고 퇴원하라고 했다. 더 이상 병원비를 낼 돈이 없자 아키코는 아빠의 시계와 만년필을 의사에게 내밀었다. 시계와 만년필을 한참 보던 의사는 만년필을 아키코에게 돌려줬다.


"병원비는 이 시계로 충분할 것 같군요. 이 만년필은 가지고 있다가 정말 필요할 때 팔아서 쓰도록 해요. 2주 전 미주리 전함에서 일본의 항복문서에 서명할 때 맥아더 장군이 사용했던 만년필이 바로 이 파커 듀오폴드예요.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겁니다."


아저씨는 살아남았다. 가을이 끝날 무렵 더 이상 병원에 머물 수 없어서 퇴원했지만 아저씨는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정신이 혼미했다. 정기선 운항이 중단된 마당에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을 마츠야마 근처의 어촌까지 태워줄 배는 없었다.


아저씨는 아키고에게 혼자라도 살 길을 찾아서 떠나라고 했지만 아키코는 혼자서 살 자신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났지만 누군가 불쑥 문을 열고 들어 올 것 같은 악몽에 시달렸다.


어느 추운 밤에 인력거에서 내리던 히키마유(引眉)를 한 여자가 음식점 담에 기대서 잠이 든 아키코를 흔들어 깨웠다. 갈 곳이 없다는 아키코에게 그 여자는 자신의 요시와라에 있는 창고를 열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 아키코는 여자를 찾아가 유곽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겨울과 봄이 지날 무렵까지 아키코는 해 질 녘이면 분을 바르고 나갔다가 아침이 돼서야 돌아왔다.


오락가락하는 정신이 돌아올 때면 아저씨는 아키코가 유녀가 되었다는데 화를 냈다. 전쟁에서 잃은 셋째 아들과 동갑인 아키고가 자신을 치료하고 돌보기 위해 매일 몸을 팔러 나간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아저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키코가 식사준비나 청소 같은 일들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몸이 많이 회복된 아저씨는 자신과 함께 마츠야마로 돌아가지고 했다. 여기서 있었던 일들은 다 잊고 자신과 고기 잡으며 살면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고 악몽도 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저씨가 배편을 알아보고 있을 때 아키코는 자신을 받아줬던 오이란에게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키코가 유곽에 오래 있지 않을 줄 알았기 때문에 이를 검게 물들이는 오하구로(歯黒)를 하라고 하지 않았다며, 바로 떠나라고 했다. 그리고 어서 아저씨의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 그래야 이곳이 잊힐 수 있다고.


일 년 후 유카와가 태어났다.

비로소 비극이 끝났다.




2. 진경철


경철은 15년 전에 리솦 연구소에 조인했다. 설립 멤버는 아니지만 그래도 초기 멤버였다. 리솦 같이 장기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연구소의 초기 멤버들은 고생만 하다가 떠나고 정작 과실을 따먹는 건 엉뚱한 사람들이라면서 다른 일 하면서 진행 추이를 살펴보다가 나중에 조인하라고 주변에서 말렸었다. 하지만 경철은 리솦처럼 스케일 크고 정치적으로 힘을 받는 프로젝트에 일찍 자리를 잡고 언젠가는 연구소장이 되었다가 과학기술 정책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위를 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당시의 연구소장에게 여러 차례 자신의 논문과 최근 연구 주제를 어필해서 연구소에 합류했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전력이 핵심일 것이라 예상하고 석사 과정 때부터 준비한 덕분에 경철은 수월하게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승진도 순조로웠다. 사실 무슨 일이든 정말 열심히 적극적으로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경철이 나중에 연구소장이 될 거라고 덕담을 하곤 했다. 무슨 소리냐고 웃어넘기면서도 기분이 좋았었다.


박이 조인했을 때 자신이 경철의 7년 후배라며 먼저 와서 인사를 했다. 재벌까지는 아니지만 큰 사업체를 하는 집 외동아들이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냐고 했더니 그냥 어렸을 때부터 천문학과 물리학이 좋았다고 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라서 그런지 모나지 않은 성격에 일도 잘해서 든든한 후배였고 박도 경철을 잘 따랐다.


문제는 몇 년 후 천박사가 리솦에 조인하면서부터 발생했다. 천박사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일 잘하고 스마트하기로 손에 꼽혔던 박이 며칠간 붙잡고 낑낑대다가 포기하고 ‘형, 난 밥이나 먹고 올게요’하고 나갔을 때 우연히 천박사가 연구실에 왔다가 박이 써놓은 수식 몇 개를 수정하고 자료 순서 좀 바꾸는 걸로 그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더니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가 버린 일은 연구소에 전설이 됐다. 나중에 공치사도 안 했다는 걸 알고 경철은 기가 죽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중국 국적인 천박사는 승진과 관련해서는 경쟁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경철을 짜증 나게 만는건 천박사가 계속 티 안 나게 박을 도와줬고, 그러다 보니 박의 인사고과가 경철 자신보다 좋아졌다는 것이었다. 후배로 잘 구슬려서 필요할 때 써먹으려고 했던 박이 경쟁자가 됐고 결국에는 경철보다 먼저 수석 연구원으로 승진했다. 리솦 전체를 위해서는 천박사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연구소장을 꿈꾸고 있는 경철의 입장에서는 계륵보다 훨씬 나쁜 존재였다.


입 밖에 내지 않던 불만이 책임급 이상의 연구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것은 리솦1 프로젝트 종료보고 때였다. 다들 열심히 했고 성과도 기대 이상으로 좋아서 다들 신나 있었다. 과기부 장관도 참석하는 자리라서 다들 한마디 씩 준비하고 예행연습도 했는데 장관의 전화 한 통화로 모든 게 바뀌어버렸다.


"진박사, 이거 뭐야. 너무 하는 거 아닌가? 사람 많이 온다고 해서 기껏 강당에다가 음향과 스크린 다 준비하고, 귀빈들이 로비에 도착해서 강당까지 동선을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가길 것들 가리고 티 안 나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 배치하느라 생고생했는데 이 무슨 변덕이야."


"그러게 말이야. 시작 30분도 안 남겨두고. 기껏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뭐야."


"달랑 ‘진박사, 수고했어요’ 한마디가 뭐야? 오늘 같이 장관님 모시고 기분 좋은 보고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궂은일 다 도맡아 하는 진박사 데리고 들어가서 장관님하고 안면도 트고 하게 해 줘야지. 뭐야 박하고 천박사는 우리보다 한참 아래잖아."


보고 자료를 읽던 장관이 이 정도면 국가기밀급이라며 갑자기 내빈들을 다 내보내고, 극소수만 도청 안 되는 장소에서 대면회의 하는 것으로 바꾸라고 긴급 지시를 내려서 갑자기 내빈들에게 사과하고 장소 찾고 하느라 난리가 났었다. 경철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온 사방으로 뛰어다녀서 가장 안전할 것으로 생각되는 음향실험실에 필요한 세팅을 마쳤을 때 소장이 도착해서 짧은 시간에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회의에는 경철이 아니라 박과 천박사만 데리고 들어갔었다.


음향실험실 바깥에서 기다리면서 책임급들과 수석급들에게서 연구소장이 박을 차기 소장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경철도 이러다가는 계속 박의 밑에서 일하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혹시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곧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섣불리 자리를 옮기는 것도 리스크가 컸다.




그러던 중에 루머가 돌았다. 예상과는 달리 박이 리솦2 프로젝트 추진단장으로 보직을 받은 반면에 리솦1을 주도했던 천박 사는 뚜렷한 직책 없이 발사체 전략 연구위원으로 발령나자, 사람들은 천박사가 악역을 맡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연구소에서 진행했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 국적자인 천박사가 평생 한국에서 살지는 않을 테니까 리솦2차 프로젝트 과정에서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역할을 하는 대신에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 좋은 포지션을 약속받았을 것이라는 루머였다.


"소장이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려고 그러는 거야. 천박 사는 어차피 버리는 카드니까."


"그렇다고 천박사를 거기에 보낸다고?"


"어차피 한국이 발사체를 독자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딜을 치려고 하는 거잖아. 중국에게 발사체와 위성을 몰아주는 대신에 한국이 발전과 송전에 주도권을 가지는 거지. 그러려면 누군가가 우항연에서 하고 있는 엔진 개발과 향후 위성체 프로젝트를 줄줄이 취소해야 하는데, 두고두고 엄청 욕먹을 거거든."


"천박사는 어떡하라고 그러지? 더 이상 이 바닥에서 일하기 어려울 텐데?"


"무슨 소리야. 어차피 천박사는 중국인이잖아. 한국의 우주산업 통째로 가지고 금의환향하는 거지. 소장도 그런 생각으로 이 일을 맡겼을 거야. 천박사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거야."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엄청난 인력과 예산이 들어간 리솦 프로젝트가 죄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 백 톤에 달하는 위성과 솔라패널을 지구궤도에 올려야 하는데, 한국의 우주 산업은 그 정도를 소화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다른 나라와 공조해야 했다. 선택지는 미국과 중국밖에 없었다. 다른 나라들도 우주 산업에 투자하고 있고, 안정적인 발사체를 운용하고 있는 곳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수천 톤에 달하는 장비를 궤도에 올리고 유지보수 할 수 있을 정도의 스케일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천박사가 중국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이 천박사의 자신의 모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기조가 자국중심주의로 완전히 돌아섰기 때문에 장기적인 파트너쉽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는 한국에 국한된 조치가 아니라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근본적인 변화였기 때문에 오랜 기간 우방이었던 나라들을 당황시켰다. 특히 건국 이래 미국의 도움과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대한민국은 굳건한 동맹이자 파트너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노력했으나 수차례의 외교적 수모와 일방적인 경제적 압박을 거치면서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미국이 과거의 미국이 아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계속해서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예외를 허용하지 않았다.


천박사는 독이 든 성배를 받은 것이었다.




루머는 삽시간에 리솦 연구소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퍼졌다.


경철은 말을 아꼈다. 누가 천박사에 대한 루머와 가십을 옮길 때 아무 말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았다. 천박사가 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경철은 자기 자신의 입지와 앞으로의 커리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솦2 월례 보고를 위해 주요 담당자들이 모였을 때 우항연과 우주산업을 담당하는 참석자들이 천박사와 데면데면한 것이 경철의 눈에 띄었다. 천박사의 요약 보고서도 천박사답지 않게 허술하다는 것을 보자 대략 어떤 상황일지 짐작이 갔다.


점심식사를 같이 한 로켓 개발을 총괄하는 우항연 연구위원로부터 비록 자신은 예전부터 천박사와 같이 일했고, 천박사의 인품과 지식을 존경하지만 예전처럼 대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비록 천박사가 악의를 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국제 공조를 통해 리솦 프로젝트에 필요한 발사체를 확보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커리어를 완전히 끝장 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예산 관련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천박사의 국적과 천박사 부모님의 직업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천박사를 도와줬다가는 대한민국의 우주발사체 산업을 통째로 중국으로 넘기려는 음모에 일조하게 된다는 말이 연구원들 사이에서 돈다고 했다.


일종의 사보타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연구원들이 대놓고 천박사의 요청사항이나 지시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규정을 좀 더 철저히 지킬 뿐이었다. 우항연 입장에서는 천박사는 외부인이기 때문에 천박사가 요청하는 정보는 담당자와 책임자가 2중으로 검토하는 프로세스를 거친 후에 다시 정보보안 담당자의 승인을 거쳐야만 제공할 수 있었다. 기밀로 간주될 수 있는 정보는 따로 취합하여 별도의 승인 절차를 거치야 했고, 반출 승인이 되는 경우에도 최종 자료를 다시 확인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규정에 정해져 있거나 규정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수적으로 일이 처리되었다.


천박사가 여러 차례 항의하고 상위 기관과 책임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정보보안 수식과 업무 규정에 따른 것일 일처리라는 답변만 거듭될 뿐이었다.


경철은 다시 한번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나서지 않았다. 천박사가 발사체 관련 일에 매달리느라 더 이상 박을 사이드에서 지원하지 못하는 것도 경철로서는 나쁘지 않았고, 근래에는 박이 자신을 찾아와서 ‘형은 이거 어떻게 생각해?’하며 조언과 도움을 구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한동안 소원했던 연구소장에게 자신의 기여도를 자연스럽게 어필할 기회도 자주 생겼다.


베이징에서 있었던 천박사 동생의 결혼식을 전후로 해서 한중일의 공조가 급물살을 탔다. 예상대로 발사체는 중국이 주도하게 됐지만 루머처럼 한국의 우주산업이 통째로 날아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천박사가 한국의 우주 관련 업체들을 중국과 일본 업체들과 잘 연결해 주고 심지어 서로 간의 역할까지 조정해 준 덕에 결과적으로는 예전보다 일의 규모와 시장이 몇 배로 확대되었다. 경철은 속으로 잘 됐다 싶었지만 티 내지는 않았다. 자칫 천박사가 지금 일을 잘해서 그 공로로 리솦의 높은 자리로 오게 된다면 연구소장의 꿈은 영영 날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해저 인공 지진으로 야기된 일본의 재해가 극적으로 수습되어 갈 무렵 경철은 실험실 사고로 천박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게 되었다. 경철도 잘 아는 실험실이었기에 어떻게 거기서 사망사고가 날 수 있었을까를 조사하다가 천박사의 사망이 사고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뒷처리가 워낙 비밀스럽게 진행되는 바람에 조문도 하지 못했던 경철은 천박사의 부모가 시신을 인도받아서 출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공항으로 달려갔다. 천박사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규정과 규칙을 이유로 돕지 않았던 자신이 천박사의 죽음에 일부라도 책임이 있는 것 같았다. 연구원들 사이의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천박사를 모함하고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트릴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비겁함이 후회되었다.


공항에서 천박사의 부모를 찾을 수는 없었다. 공항직원에게 물어보고 여기저기 전화해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경철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때 국화꽃을 들고 공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낯이 익은 몇몇이 보였다. 우항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눈이 모두 붉었다.




3. 에이샤


아이샤 아니고 에이샤. 다시 해봐요. 에이샤~

네 반갑습니다!!

نيابةً عنك

Piacere di conoscerti!!

Ravi de vous rencontrer!

很高兴认识你!!!!

Приятно познакомиться!!!!


에이샤는 마그레브 지역 진출을 노리는 한국과 일본의 화장품 업체들이 보내주는 샘플을 주변 사람들과 테스트해 보고 그 결과를 포스팅하는 것으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품을 몇 개 받는 정도였는데, 에이샤의 꼼꼼한 설명과 철저한 준비 그리고 때마침 인기가 급상승한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 덕분에 팔로워가 점점 늘어났고 화장품 판매 수익이 급격히 늘어났다.


주변에서 인플루언서라고 추켜세웠지만 정작 에이샤는 ‘인플루언서’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누구든 자기 일은 자기가 판단하는 것이라며 팔로워들에게 자신의 포스트는 스스로의 판단을 위한 참고일 뿐이라 말하곤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기도 하고, 가끔은 정치적인 의견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나온 마크롱 대통령의 선거구호인 ‘당신과 함께 Avec vous’를 비틀어서 ‘너는 말고 Pas avec toi’라는 스티커를 만들어서 나눠 주기도 했다.


대놓고 정치질하고 물건을 팔아먹으면서 자신만 깨끗하고 똑똑한 척한다고 에이샤를 쫓아다니면서 욕하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에이샤의 인스타그램은 특별했다. 다른 사람의 인스타그램에는 존재하지 않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공감과 행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샤는 유럽과 가장 가까이 있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 푸른 바다 건너로 스페인이 보일듯한 모로코 최북단 탕지어 선착장 (Port de Tanger ville)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카스바와 메디나가 그녀의 고향이었다.


메디나의 좁고 꼬불꼬불한 길들이 교차하는 곳에 들어선 가게 옆으로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고, 좁은 뒷길까지 작은 상점과 가판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연결되면서 만들어진 전통 시장 숰(souk)처럼, 형제들이 많은 부모의 밑에서 태어난 더 많은 형제들로 구성된 에이샤의 대가족은 같은 집에 살지는 않았지만 세포와 혈관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 같았다. 올드 메디나를 뛰어다니는 모든 아이들은 제각각 유기체의 한 부분이었고, 누군가의 누구로 불리며 자랐다.


할아버지가 그런 대가족을 이끌었지만 실질적으로는 할머니가 이맘(imam)의 역할을 했다. 할머니는 가족들을 불러 모아 같이 식사를 하도록 하고, 결혼식처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누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장성한 자손들과 의논하고, 아이들 중 어떤 아이에게는 공부를 더 하도록 하고 어떤 아이는 친척의 식당에서 일을 배우도록 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계절이 되면 할머니는 이번에는 누구의 집을 비워서 관광객을 받을 것이며, 그동안 그 집에 살던 가족은 어디에서 지내고, 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잠시 그만두고 청소와 식사를 하는 것이 좋을지를 결정했다. 아이들은 따로 모아서 리더를 정해주고는 누가 손님들에게 접근해서 빈 방이 있다고 말하고, 누가 그들을 집으로 데려올 것인지는 리더가 결정하도록 하도록 했다. 다만 할머니는 리더가 된 아이에게 절대로 여자 아이는 혼자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해마다 다짐하곤 했다.




에이샤의 인스타그램이 달라진 것은 건축용 모래를 채취하는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서 서사하라로 떠났던 에이샤 아버지와 삼촌 두 사람이 모래를 싣고 마라케시에 갔다가 대지진으로 실종되었을 때였다.


구급차도 경찰도 없었던 지진 직후에 에이샤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켰다. 실종자 가족들과 연락하고 구호 물품을 필요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매일 정해진 시간에 복구 상황을 포스팅하고, 라이브로 필요한 물건과 새로 발견된 생존자 뉴스를 했다. 가끔은 긴급 수혈을 위해 필요한 혈액형인 사람을 찾기 위해 밤을 새우기도 했다. 에이샤의 목소리는 같이 재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주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에이샤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다.


에이샤를 놀라게 했던 것은 정말 많은 모로코인이 외국에서 에이샤의 뉴스와 라이브를 듣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족을 남겨두고 좀 더 높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를 찾아서 혼자 유럽이나 걸프 국가들에서 일하면서 매달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마라케시에 남겨둔 가족들이 대지진에서 무사한지를 알아볼 길이 없던 그들은 에이샤가 인스타그램으로 전하는 소식에 기뻐하고 슬퍼했고 또한 좌절하고 분노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로코의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 때문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외국으로 일하러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에이샤는 파리로 가서 공부를 좀 더 하라고 하는 할머니에게 자신은 모로코에 남아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가족들 중에서 한 명이라도 안정적인 환경에 자리를 잡아야 이번 대지진 같은 사태가 발생할 때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이라며 에이샤를 설득하려 했지만 에이샤의 뜻을 굽힐 수 없어다.




본격적으로 인스타그램을 뉴스와 토론 채널로 확장하면서 에이샤는 꾸준히 전문가들을 채널에 초청했다. 패널로 참석한 사람들에게 왜 모로코에서는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지를 물었고, 외국으로 일하러 간 사람들과 남겨진 가족들은 결국 행복해졌는가 그리고 지진이 났을 때 왜 사람들은 맨 손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워야 했는가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에이샤는 모로코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는 석유나 천연가스 같은 화석 연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부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확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이 역시 상당한 투자가 필요했기에 늘 적자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시도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패널로 참석했던 한 대학생이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합작해서 우주에서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어 지구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리솦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면 될수록 에이샤는 한중일이 너무나 부러웠다. 모로코가 리솦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면, 에너지를 사 오는데 들어가는 돈을 줄일 수 있고, 그 돈을 산업에 투자하면 사람들이 가족을 떠나지 않고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이샤는 인스타그램 포스트와 라이브에서 여러 차례 자신의 고민을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했고 계속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을 찾았다.


"에이샤, 잘 지냈어? 삼촌이야. 네가 하는 인스타 라이브 봤어. 네가 말하던 우주태양광 발전 말이야. 그거 반도체가 엄청 많이 들어가는데, 특별한 모래가 꼭 있어야 한대. 지금은 미국이 그 모래를 독점하고 있어서 한국이 반도체 만드는데 어려운가 봐. 우리가 그걸 주고 프로젝트에 일부라도 참여하게 해달라고 하면 어떨까?"


지진으로 실종된 에이샤의 아버지와 같이 일하던 삼촌들 중 한 명의 전화에 에이샤는 뛸 듯이 기뻤다. 건설용 모래를 채취하던 그 삼촌은 서사하라 사막에서 좀 특별한 모래를 발견하고 혹시 돈이 될까 알아봤었다고 했다. 그 모래는 반도체 웨이퍼를 만드는데 필수 재료인 고순도 석영이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반도체 산업이 없는 모로코에서는 쓸모가 없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에이샤는 매일 라이브에 지질학자, 탄광업자, 화학자, 전기기사 가릴 것 없이 반도체와 웨이퍼 그리고 고순도 석영에 대해 뭐라도 알 것 같은 사람들을 초대했다. 서사하라에 있는 모래더미가 어쩌면 모로코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으니, 누구든 꼭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에이샤는 관공서와 대학의 연구소에도 수시로 연락하고 모로코 국왕에게도 편지를 썼고, 청원을 위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면서 에이샤의 포스팅을 열심히 퍼다 날랐다. 혹시라도 도움이 될 누군가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에이샤가 시작한 모로코 국왕에 대한 청원 운동에 서명했고, 포스트를 퍼다 날랐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에이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제 초고순도 석영과 우주태양광 발전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모로코 국왕이 에이샤와 친구들을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국왕은 에이샤가 말한 곳에 매장된 고순도 석영은 미국의 스프루스 파인보다 순도가 높고, 실제로 반도체 생산에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흔해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모래가 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 준 에이샤와 친구들에게 국왕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얼마 후 모로코는 초고순도 석영을 한국에 제공하겠다는 외교 공문을 한국 대사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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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줄 혹은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셀 수 없이 많은 인생들이 여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