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태양은 가득히 빛났다

태양은 가득히 (12/12)

by 달을보라니까


#12. 태양은 가득히 빛났다


미령이 사라진 리솦3 프로젝트는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했다.


비록 미령이 있었다고 해도 모든 문제를 척척 해결하지는 못했겠지만 사람들은 미령을 그리워했다. 남들이 칠판과 책상들을 가득 채운 공식과 숫자 그리고 보고서와 논문에 질려서 나가떨어질 때 미령은 몇 시간이고 그 앞에 앉아 있다가 슥슥 순서와 위치를 바꾸고 몇 가지를 수정하거나 추가함으로써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곤 했었다. 그냥 끈기와 인내심일 뿐이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미령은 말하곤 했지만 그런 끈기와 인내심을 그 정도로 뛰어난 지적능력과 같은 몸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이슈는 초기부터 지적되었던 발열이었다. 특히 위성 쪽의 문제는 심각했다. 저궤도에 서 사용하는 태양광패널은 일반 태양광 패널과는 차원이 다른 민감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변환 수율은 탁월하지만 경계점을 넘는 순간 전손될 가능성이 있었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태양의 흑점이 이상 활동이 지속되는 경우였다. 스포츠 중계나 국제전화를 방해할 정도의 강력한 이상 활동은 몇 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정도라서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이상 활동이 8일 이상 연속으로 지속되는 경우에 지속적으로 분출되는 고에너지 입자가 저궤도에 넓게 펼쳐져 있는 솔라패널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가능성이 높았다. 지상이라면 패널의 방향을 살짝 돌리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피해를 막을 수 있지만 우주에서 그런 일을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수행하기는 매우 어렵고 복잡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위성과 솔라패널을 지구 반대쪽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로켓이 있어야 하고 많은 연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부피와 무게와 많이 늘어나게 되고 고장 가능성도 높아지는 등 모든 면에서 일이 커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위성을 이동시키는 방법은 다른 대안이 모두 불가능할 때만 고려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고 자칫 전체 프로젝트의 효율성과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정도의 큰일이었다. 추력기와 관성모터를 이용한 방법이 그나마 나은 대안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션 파트가 많아지기 때문에 고장으로 인한 수명 단축 등의 위험을 피할 수 없었다. 다들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때 귀령에게서 연락이 왔다.


"흑점활동으로 인한 온도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리솦 인스타그램 뉴스를 학생들이 봤어요. 작년 수학여행 이후에 애들이 꾸준히 팔로우하고 있었거든요. 학생들과 의논하다가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립니다.


위성체와 솔라패널을 사용하는 40년 동안 연구소에 걱정하는 상황의 발생확률은 극히 낮은 확률이잖아요. 그래서 완벽한 설루션보다는 일회성 솔루션을 생각했어요.

솔라패널을 고정하는 프레임 한쪽은 보통 영구자석을 넣고 다른 쪽은 특정 온도에 반응하게 맞춘 초전도체를 쓰는 겁니다. 솔라패널이 흔들리듯 살짝 움직일 수 있도록 아주 약간의 공차가 있는 것처럼 정밀설계되어야 하고요. 온도가 특정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면 한쪽 프레임에 있는 초전도체가 떠오르니까 거기에 붙어 있던 솔라패널은 반대쪽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각도가 약간 달라지고 솔라패널이 태양을 정면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발전 수율은 낮아지겠지만, 온도 상승 속도가 현격히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온도가 위험 수준까지 오르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고 결과적으로 전체 시스템이 다운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습니다. 변경된 각도를 복원하는 것은 패널에서 위성으로 오는 전기의 방향을 잠시 역전시켰을 때 발생하는 자기장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희 학생들하고 실혐한 결과는 예상과 유사하게 나왔습니다만 학교에 있는 장비가 정밀하지 않으니 연구소에서 재검증하셔서 가능성을 확인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전화 통화를 하던 소장은 무릎을 탁하고 쳤다. 역시 그 언니에 그 동생이라며 거듭 감사를 표한 소장은 바로 회의를 소집해서 귀령의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다들 왜 이런 간단한 생각을 못 했을까 실험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곧이어 귀령과 학생들의 아이디어로 리솦 프로젝트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는 소식이 리솦 연구소의 인스타그램에 학생들 사진과 함께 업로드되었다.




동북아시아의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을 겨냥해서 미국은 계속해서 항모전단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하는 한편 비상식적인 관세를 부과하고 특정 물품의 수입을 금지시키는 방법으로 공조를 흔들고 프로젝트 진행을 늦추려고 했다. 바바라가 상원 청문회에 나와서 완성단계에 들어선 한중일의 우주태양광발전은 전적으로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환경을 파괴하고 미합중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는 사이 유럽 ESA에서 일부 솔라패널을 궤도에 올려줄 수 있다며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돈을 낸 만큼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나눠서 사용하고 사용한 만큼 비용을 나누자는 슬로건은 직접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는 나라들을 동참하도록 했다.


미국의 수출 금지 조치와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인해 반도체 제조를 위한 폴리실리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을 위해 모로코는 미국의 스프루스 파인의 고순도 석영(quartz) 보다 훨씬 순도 높은 초고순도 석영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인도는 실리카 함량이 높은 모래를 찾아내서 전 세계 어디에서 만든 유리보다 더 투명하고 탄성 있는 솔라패널 유리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아무것도 보탤 게 없었던 콜롬비아는 커피를 보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미사일도 전투기도 날아오기 어려운 네이멍구 사막 위로 로켓이 날아올랐다.


태양은 하늘 가득히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