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WEEKLY MOTIF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하 Jul 06. 2022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The Shape of Water

<주간 모티프/Weekly Motif> 1호 2022.06.20

그런 정확함은 오로지 저만 표현할 수 있어요.
어떤 경우에도 저만 할 수 있는 것이죠.
- Alexandre Desplat


# 이 주의 모티프

 : 영화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셰이프 오브 워터> Original Soundtrack 중 'The Shape of Water’  감상하기


기억의 성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감촉, 행복했던 날의 냄새, 함께 나눈 달콤한 맛이 녹아있다. 음악으로 각인되어, 마치 내 인생 어느 순간이 뮤직비디오 같다고 느끼는 기억도 있다. 영화를 볼 때 이런 순간은 더욱 명확해진다. 영상에 각인된 음악은 더 또렷한 기억으로 남는다. 영화 전체를 기억하지 못해도 가장 감동적인, 또는 무척 인상적인 순간에 흘러나온 음악과 장면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마음에 녹아들고 추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혹은 무심히 앉아있다 듣게 되는 영화음악은 우리를 영화를 보던 날의 그 감각 속으로 휙 끌어다 놓는다.
- 객석 Auditorium 1984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글 최재훈 


Editor

 흩어져 있었던 그간의 나날들이 하나의 실로 엮이는 듯한 느낌을 경험해본 적 있나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존재를 알았을 때 제가 느낀 감정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게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묻곤 했어요. 그때마다 색감이 예쁜 영화, 캐릭터가 독특한 영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영화 등의 대답을 건넸지만 그것들은 불완전한 대답이었습니다. 바로 '영화 음악'을 빠뜨렸기 때문이었죠. 어두운 영화관이 첫 씬으로 밝아지기도 전에 먼저 들려오는 도입부 선율, 인물의 발걸음에 맞춰 따라오는 테마 라인, 장면의 분위기를 색칠해주는 배경 음악, 귀를 간지럽히고 긴장감을 자극하는 악기 음색과 음향 효과들. 영화에 음악이 없었다면 제가 지금처럼 영화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오래도록 애정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가장 최근에 개봉한 '프랜치 디스패치(2021)' 뿐 아니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문라이즈 킹덤(2013)'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2009)' 등 다수 작품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사람이 다름 아닌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사랑한 건 웨스 앤더슨 x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조합이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요. 또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2004)'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 part 1(2010)' '킹스 스피치(2011)' '이미테이션 게임(2015)'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8)' '작은 아씨들(2020)' 등 수많은 명작들의 음악을 맡은 바 있는 현존하는 대가입니다.

 그 중 오늘의 음악은 골든 그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음악상을 수상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Original Soundtrack 중 첫 번째 곡이자 메인 테마, The Shape of Water 입니다. 



특징 ① 감정선의 청각화

 데스플라의 강력한 무기는 서사, 그리고 인물에 대한 완벽한 이해에 근거합니다. 시나리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의 음악은 영화에 새로운 색채를 불어 넣어주며, 또 서사를 전개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는 자크 오디아르, 질 부르도스, 웨스 앤더슨 등 여러 영화 감독들이 실제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에 대해 내리는 평이자, 기대하는 바이기도 하지요. 그의 음악은 영화 속에서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인물의 캐릭터성을 표현하고 감정선을 읽어내고 영화의 세계관을 규정 짓습니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가 시작한지 불과 3분만에 꿈결 같은 영상과 나레이션, 그리고 ost 'The Shape of Water'로 관객들을 완전히 사로잡듯이 말입니다.

 그럼 함께 감상해볼까요. 노래가 시작되면 잔잔한 하프 사이로 금속판을 진동시키는 듯한 음향이 옅게 깔리고 그 위로 높고 몽롱한 휘파람 소리가 머리 위를 날아가는 듯한 음악이 펼쳐집니다. 전체적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우리가 물 속에 깊게 잠겨 있을 때 몸이 무겁고 느리게 움직이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낮은 현악기가 화음을 더해주면서 플룻이 메인 멜로디를 연주할 때에는 저멀리 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무언가의 실체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 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조심스럽죠. 그리고 다시 도입의 리듬이 반복될 때엔 전보다 선명하게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고, 손을 뻗어서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마침내 아코디언의 따뜻한 음색이 더해지면 이제 차가운 물속의 기운은 옅어지고 온전한 교감을 나누는 두 존재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합니다. 그들 중심으로 파랗기만 하던 물의 색감도 점차 붉게 퍼져 나가는 것만 같아요. 이것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그린 물고기와 인간, 그 사랑의 모양이 아닐까요. 



특징 ② A부터 Z까지, 우리 시대 인상주의의 후예

데스플라는 mainstream 영화 음악 감독들 중 가장 유럽적인 성향을 지닌 작곡가로 알려져 있어요. 실제로 그는 프랑스 출신으로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했고, 2004년에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탄생>으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기 전까지 이미 유럽 영화 씬에서 수십 편의 영화를 맡았습니다. '유럽스럽다'는 표현은 비록 부정확하지만 그의 음악에는 확실히 그만의 색채가 강하게 드러납니다. 흔히 쓰이지 않는 악기의 음색이라도 기필코 찾아내는 그의 집념 때문일 수도, 그만의 관현악 화음 구성 기법 때문일 수도, 지극히 서정적인 라인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평론가는 그를 '가장 낭만적인 멜로디를 만드는 작곡가'라고 평하기도 했으니까요.

알렉상드르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그리스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 일찍이 다양한 문화권의 소위 월드 뮤직을 접했습니다. 본인 자신은 훌륭한 플룻리스트이기도 하죠. 여러 장르와 형태로 체화한 풍부한 음악이 밑바탕이 되어주었고, 그래서 그는 오케스트라 외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재즈나 포크 밴드 등의 음악까지 전부 직접 작곡합니다. 특히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2009)'의 블루그래스 풍의 음악들은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이에요. 이것이 제가 알렉상드르의 음악 세계에 깊이 빠지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의 두번째 테마 곡 'You'll Never Know'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팝페라 가수 Renee Fleming이 부른 재즈 발라드 풍의 보컬 곡으로, 아름다운 리메이크 곡이죠. 주인공 엘라이자(샐리 홉킨스)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로, 이 곡이 등장하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면이라고 꼽을 수 있는데요. 엘라이자와 이웃집 화가 자일스가 즐겨 보던 1930년대 TV 뮤지컬 영화 <헬로, 프리스코, 헬로> 속에서 앨리스 페이가 부르던 'You'll Never Know'가 우리의 샐리 호킨스에 의해 어떻게 변주되는지 주목해 보세요. 



특징 ③ 따로 또 같이, 작업 스타일

1년에 평균 6, 최소 4 이상의 다작을 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과정 속에서 그가 별다른 팀을 꾸리지 않고 자신의 작업실에 홀로 모든  해낸다는 점인데요.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셰이프 오브 뮤직: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모든 작곡 작업을 여기서 혼자 한다는 걸 믿기 어려워 하더군요. 음표 하나하나를 그리는 것과 악기 편성의 세세한 부분을 구성하는 일까지 모두 여기, 제 작업실에서 하는 게 좋아요. 참 재미있어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대부분 이런 질문을 받거든요. 저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냐고요. (...) 팀을 이뤄 작업한다면 가족도 더 자주 만나고 휴가도 더 많이 가겠지만, 음표 하나하나를 제 손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건 생각도 안 해 봤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곡을 쓰지 못한다면 정말 괴로울 거에요. (...) 하나의 멜로디에 어떤 악기의 소리를 덧입히는 경우 다른 악기로 바꿔서 음색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따라 영상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요. 그래서 제가 영상에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건 아주 정확해야 하죠. 그런 정확함은 오로지 저만 표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알렉상드르는 자신을 음악인이기 이전에 영화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영화 음악 감독이라는 자리가 본질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죠. 뮤지션이라면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음악을 만들 수 있지만, 영화 음악 감독이라면 하나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각자의 역할을 하는 수많은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며 영화의 일부가 되어야만 합니다.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영상과 맞지 않다면 그 음악은 쓰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알렉상드르는 작곡 과정을 전부 홀로 맡는 철저함과는 달리, 영화 감독들과 교류하고 실제로 녹음하는 과정 속에서만큼은 다른 이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고, 정확하게 이해하여, 순발력 있게 해결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타인과 자신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는 오로지 음악 감독의 역량에 달려있죠. 



끝으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1961년생으로 올해 61세의 나이입니다. 약 100편 정도의 영화를 거치며 세워진 그의 음악적 세계는 무척이나 견고하고 독보적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확장 중입니다. 그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영화 속에서 어떤 캐릭터를 통해 만나볼 수 있을까요? 너무 늦지 않게 LA 혹은 파리에 가게 된다면 그에게 직접 그가 쌓아올린 음악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 추천 링크 1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속 'You'll Never Know' 장면 감상하기

+ 추천 링크 2 :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의 영화음악 오케스트라 협연 감상하기




## 이 주의 스토리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The Shape of Water>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인생 영화로 꼽는 <셰이프 오브 워터>. 예술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역치가 높다고 자부하는 저의 눈에도 상당히 기괴하고 잔혹스러운 장면도 많이 보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적인 평가를 넘어,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떤 요소가 작용했을까요? 아마 영화의 줄기를 이루는 '모든 것을 초월한 낭만적인 사랑 서사'가 정확하게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외에도 1960년대를 중심으로 한 빈티지스러운 배경,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전쟁을 뼈대로 한 스토리 전개와 스릴러적인 요소, 차별 - 배척 혹은 신격화 - 을 상징하는 지구 반대편에서 건져올린 물고기 생명체의 존재, 전반적으로 푸른 색채 위에 붉은 색채로 포인트 컬러를 준 팔레트, 그리고 주요 인물들 각자가 지닌 역사와 미래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신비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멋지고 커다란 이야기가 완성되었죠.

 한마디로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머릿속이 굉장히 궁금해지는 영화랄까요. 실제로 그는 장르와 매체, 시대를 불문하고 방대한 취향과 관심사를 가지며 그것을 자신의 영화에 표현해내는 거침 없는 결단력까지 지닌 독창적인 감독이라고 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가 마음에 든다면 이 영화에 영향을 준 '해양괴물(1954)' '갓 앤 몬스터(1998)' '헬로, 프리스코, 헬로(1943)' 등 수많은 과거의 작품들, 그리고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2006)' 등을 감상해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독창성, 그것은 누구 한 명의 머릿속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닐 테니까요.



### 이 주의 발굴 : 캐릭터

 엘라이자의 이웃 아파트 주민이자 가장 친한 친구, 자일스

자일스와 엘라이자

 자신의 사랑을 따라 너무나 먼 곳으로 떠나가버린 엘라이자, 그리고 그녀의 뒤에 남은 자일스. 영화가 끝나면 엘라이자보다는 오히려 자일스에게 더 짙은 여운이 남곤 합니다. 그가 우리의 모습과 차라리 더 가까운 쪽이니까요. 하지만 그가 겪은 모진 시련들 때문에 영화 크레딧이 오른 후에 홀로 자신의 아파트 방에 돌아갈 그의 모습이 괜시리 서글퍼보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과연 자일스는 엘라이자의 사랑을 본 후에 어떤 심정의 변화를 얻었을까요? 그는 엘라이자처럼 용기 내어 무언가를 쟁취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혹은 자신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현실과 일상에 보다 충실한 삶을 살았을까요? <셰이프 오브 워터>에 후속작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엘라이자가 아닌 자일스의 이야기가 될 것이에요. 




2022. 06. 20

글 한시하

매거진의 이전글 음악 매거진 <주간 모티프/Weekly Motif>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