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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하 Jul 06. 2022

Moonchild의 2번째 앨범 Voyager

<주간 모티프/Weekly Motif> 2호 2022.06.27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을 축하합니다!

Spend the love we saved, soon. Win the waiting game, soon.
우리가 모은 사랑을 쓰게 될 거야, 곧. 이 기다림의 게임에서 이기게 될 거야, 곧.
Moonchild - '6am' 중



# 이 주의 모티프

 Moonchild [Voyager] 감상하기


Editor

 음악은 순간의 예술입니다. 고정된 형체가 없고, 오직 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한번 시작하면 완전히 끝이 날 때까지 절대로 멈출 수 없죠. 멈추는 순간 예술이 아니게 되어버리니까요. 음악은 우리가 지나치는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특정한 리듬을 발견해내는 일이고, 그 리듬을 신처럼 섬기는 일이자 동시에 단숨에 통제해버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음악 안에서는 종종 음이 아닌 숨, 그 짧은 순간들의 정확함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숨을 제압했다면 이미 게임이 끝난 것과 다름 없습니다. 이제 아주 작은 날갯짓만으로도 상대방의 가슴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 수 있죠. '우아한 나비'라는 단어가 아주 잘 어울리는, 캘리포니아 출신의 소울 재즈 밴드 Moonchild처럼 말이에요.

 여전히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어요. 저는 다니던 대학교 어느 연습실에서 혼자 노래 연습을 하다가 지쳐있었고, 잠깐 환기를 위해서 유튜브에 들어갔다가 이 빨간 앨범 커버를 마주했습니다. 눌러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상하게 매력적인 표지였어요. 클릭과 함께 앨범의 2번 트랙, 'Cure'가 흘러나왔어요.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제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저로 하여금 음악을 하도록 만들어준 음반들이 몇 개 있어요. 제가 정확하게 꼽을 수 있는 것들이고, 그것들은 이 『Weekly Motif』를 창간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Voyager]는 그 중 첫 번째로 소개되는 앨범이에요.

 물론 Moonchild의 가장 최신 앨범 [Starfruit]와 2019년의 [Little Ghost]도 존재하지만 제겐 [Voyager]가 가장 애틋합니다. 섬세함, 몽환함, 포근함, 나른함, 유연함의 정수를 보여준 앨범이에요. 많은 평론가들이 소개하듯, 이 앨범의 타이틀은 'Cure’와 'The List' 두 곡이기는 하나, 어느 한 곡을 선택해서 듣기보다는 앨범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틀어놓고 그들이 당신 주변의 분위기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게 좋은 감상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낮이든 밤이든 - 짧더라도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고, 창문은 반 틈 정도 열려 있는 것을 추천해요. 



① 그들이 음악의 항해자라면

 [Voyager] 앨범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요. 바로 1번 트랙 Voyager(Intro)의 아름답게 펼쳐진 마지막 화음 위로 기다란 현악기가 옅게 깔리면서 자연스럽게 2번 트랙으로 넘어가는 부분입니다. 그 대목을 들을 때마다 몸에 소름이 돋아요. 눈 앞에 어떤 신비한 세계가 천천히 - 그러나 장엄하게 - 그 모습을 드러내는 듯 하거든요. Moonchild의 음악은 마치 맑고 얕은 물이 몸을 적시고 흘러가는 것처럼 촉촉하고 희미한 느낌이죠. 그런데 알고 보면 그들의 음악을 이끌고 가는 것은 음(tone)이 아니라 리듬입니다. 잔잔한 수면 위에 베이스와 드럼의 그루한 박자감이 먼저 어떤 하나의 길을 개척하면, 피아노의 화성과 앰버의 보컬은 구름처럼 그 위에 잠시 머무르기도 하고 때로 바람에 날아가버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계속해서 흐릅니다.

 이미 만들어진 커다란 흐름 위에서는 코드 보이싱 또한 자유를 얻습니다. 보이싱(Voicing)이란 화음의 구성음이나 텐션이 수직으로 쌓인 배열 형태를 이르는 말인데, 보이싱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따라 같은 코드라고 하여도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이싱에 대한 고민은 뮤지션의 숙제와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Moonchild의 부드러운 사운드는 - 악기 음색과 믹싱에 더불어 - 보이싱에서 코드 컬러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살짝 숨김으로서 느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음들의 여정은 결국 음악이 시작된 이후 끝나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는 리듬 섹션에 근거합니다. 그러니 Moonchild가 음악의 항해자라면, 그들이 탄 배는 음색이자 보이싱이고 그 배가 타는 파도는 리듬이자 그루브일 거에요.



② 각자 무슨 악기를 맡고 있나요? 세 멤버 이야기

 Moonchild는 앰버 나브란(Amber Navran), 맥스 브릭(Max Bryk), 그리고 안드리스 맷슨(Andris Mattson) 세 명의 멤버로 구성된 밴드입니다. 그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USC Thonton School of Music's Jazz Studies program에서 만났고, 비슷한 음악 취향을 공유하며 함께 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Be Free]입니다. 특히 주목을 받았던 'Back to me'는 처음에 등장하는 하이햇과 클랩(clap), 뒤이어 쌓이는 베이스 기타와 금관 악기, 그리고 앰버의 보컬까지 새콤달콤처럼 쫀득한 곡이에요. 연주 장면을 편집한 영상이 뮤직비디오인데, 영상과 함께 보시면 그 음악의 매력이 두 배로 느껴질 거에요! 하지만 이렇게 절묘한 편곡은 대체 세 명의 팀원들 중에서 누가 맡고 있는 걸까요? 

 NPR Music Tiny Desk Concert를 비롯한 여러 연주 영상을 보면, 세 사람 모두 기본적으로 메인 악기 이외에 다룰 줄 아는 악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위 표는 멤버 별로 연주하는 악기들을 정리한 것인데, 가장 먼저 모두가 드럼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띄는군요. 다음으로는 밴드 내에 플룻, 클라리넷, 색소폼, 트럼펫 즉 목관와 금관 악기가 고르게 포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 사람은 아주 적절한 순간이 오면 각자의 서브 악기를 들고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는데, 그제야 비로소 그들의 색채를 완성된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물결 지느러미 같이 움직이는 화음의 형태가 무척 독특하기도 하구요. 그러니 밴드 내에서 어느 누가 더 기여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고, 다만 세 사람의 조합이 감사할 뿐이에요.



③ 연약함과 장난스러움 사이

You think your heart needs to hurt for awhile longer
Live all alone till it makes you stronger
Learn who you are without her love
I know, I've been there before but I won't wait
For a love like yours, I can't hesitate
Stay a while and let me change your mind

Moonchild - 'Cure' 중


Silly dancing round the house
Laughing who knows what about
Wine and popcorn before bed
Look to the light

Always craving something sweet
Always doing something for somebody
Every time that I turn around
I look to the light

To see you smiling back at me

Moonchild - 'Every Part (for Linda)' 중


 앰버의 목소리는 새하얀 백사장의 모래 같아요. 손바닥으로 한 움큼을 쥐어 올리면 손 틈새로 솨아-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쏟아지는 모래 말이에요. 그렇다고 그녀의 목소리가 연약하기만 할까요? 그녀가 한 숨에 내뱉는 선율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부서지지만, 여러 숨들이 쌓이고 겹쳐 결국엔 아름다운 화음으로 발전합니다. 그녀는 그걸 이미 알고 있는지, 음악 위를 마치 백사장처럼 마음껏 뛰어 다니죠. 그것이 제가 아는 Moonchild의 매력입니다. 그들은 강렬한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지 않아요. 다만 믿고 있을 뿐이에요. 이 모든 연약한 소리들이 한데 모여 어떤 특정한 시점에는 반드시 거대한 흐름을 이루어낼 거라는 것을 말이에요. 그래서 그들에겐 특유의 여유가 있고, 장난스러움이 있습니다. Moonchild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게 되더라도, 그 힘만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 추천 링크 1 : Moonchild - Back to Me MV 감상하기

+ 추천 링크 2 : Moonchild's NPR Music Tiny Desk Concert 감상하기




## 이 주의 스토리 : 메이킹

 The Dreamers의 '계절이 오면' 감상하기 


 Moonchild와 함께 소개할 책이나 영화를 열심히 고민해보았는데, 결국 발행 직전까지 적절한 것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이번 스토리 섹션에서는 저의 이야기를 전해볼까 합니다. 어쩌면 그게 오히려 솔직한 편이기도 하구요 . 제가 속한 밴드 The Dreamers는 2010년에 '계절이 오면'이라는 곡을 발표했습니다. 코드와 멜로디를 쓰는 일부터 세션 편곡, 녹음, 믹싱, 마스터링 작업까지 어느 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습니다만, 그 오랜 여정 속에서 저희에게 빛이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Moonchild의 [Cure] 앨범이었습니다. 저희 두 멤버 모두 비슷한 시기에 그들의 음악에 깊게 매료되어 있었거든요. The Dreamers를 처음 결성하게 된 순간에도, 작곡이나 편곡 회의를 하는 과정 속에서도, 중간중간 우리의 작업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검토하는 와중에도 Moonchild에 대한 언급은 빠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는 만나면 종종 그들이 음악을 구성하는 방식, 원하는 것을 표현해내는 기술에 대해 토론하며 창작가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해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저희만의 색깔들을 얹어 마침내 '계절이 오면'이라는 4분 45초짜리 여행을 완성시켰죠. 지금 들어보면 아쉬운 점들도 참 많이 들리지만,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들과 그 반짝임들이 그 속에 남아있는 것 같아 기뻐요. 




### 이 주의 발굴 : 장소

 꿈과 세계가 숨어 있는 곳, 신촌 피터캣(Petercat)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의 이름, '피터캣'을 본따 재즈바를 운영한 적이 있었죠. 무려 그가 소설가로 데뷔하기 이전인 20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재즈를 포함한 음악의 세계에 깊게 공감한 그의 글 속에는 음악을 묘사하는 대목이 매우 많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이 너무 좋아서 '하루키 소설 속 음악'이라는 주제로 책이나 논문이 쓰여질 정도이죠. 그리고 오늘날 창천동의 어느 길가에 그러한 하루키의 세계에 깊게 공감하여 생겨난 북카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카페 및 바 테이블이, 다른 한쪽엔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서가가,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엔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 공간이 마련되어 있더군요. 그 안은 무척 조용하지만, 실은 어마어마한 여러 세계들로 가득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 마르셀 프루스트의 세계, 철학과 미학의 세계. 저는 겉보기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런 추상적 세계관들이 수직적으로 그리고 수평적으로 얼마나 웅장하고 광활한지 알아가는 그 과정이 인생의 커다란 행복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행복을 공유할 만한 장소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언젠가 날을 딱 정해서 이곳에서 하루종일 책만 읽어야 겠어요.

 함께 하실 분 있나요?




2022.06.27

글 한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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