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낯선 시작, 익숙한 불안

낯선 시작, 익숙한 불안

by 다빈사랑

낯선 평온, 익숙한 불안


백조 생활 1일차 22.02.24(목)

퇴사 첫날 - 낯선 평온, 전율과 결심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20년 만에 맞는 고요한 아침이었다. 늘 지하철 소음과 뉴스 속보 속에서 하루를 여는 대신 오늘은 햇살만이 나를 깨웠다. 창밖 하늘은 더없이 평화로웠지만, 그 평온이 오히려 낯설었다.

오늘부터 나는 ‘백조’다.

20년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첫날,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2년 뒤 은퇴를 계획하며 미뤄둔 일들이 예정보다 빨리 나를 찾아왔다.

일과 연애 중 늘 일을 선택해 온 내가, 갑작스레 마주한 공백은 마치 현실의 버그처럼 어색했다.

하지만 불안만 안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 ADP 시험 준비, 그것이 나를 지탱할 첫 목표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미지의 길이 조금씩 열릴 거라 믿는다.

“이제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
전율을 가슴에 품고, 낯선 평온 속에서 첫발을 내딛었다.

PS. 당신은 낯선 시작 앞에서 어떻게 불안을 이겨냈나요?


백조 생활 03일차 22.02.26(토)

ADP 1차 필기 - 불안 속, 따뜻한 응원의 빛

ADP 1차 필기 시험 날. 아빠가 왕십리 시험장에 데려다 주셨다.

퇴사 후 처음 마주한 도전의 무게가 어깨를 눌렀다. 시험지를 펼치자 차가운 책상과 답안을 긁는 펜 소리만 공기를 갈랐다. “제대로 준비한 걸까?”라는 의심이 불안과 함께 스며들었다. 특히 2·3과목은 낯설고 까다로운 문제들로 가득했다.

실패의 그림자가 머릿속을 서성였다. 한 번 좌절을 겪었던 터라 섣부른 기대는 경계했다.

하지만 펜을 놓지 않았다. 답안지를 끝까지 채우고 나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발걸음에 무게가 실린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짧지만 진심 어린 한 줄 — “시험 잘 봤어요?” C사 파견 팀장님의 카톡이었다. 단 세 단어였지만, 그 안에는 내가 쏟아온 시간과 노력을 묵묵히 바라봐 준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 온기가 차가운 하루를 뚫고 가슴 속 깊이 번져왔다.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 나는 불안을 껴안고도 끝까지 나아간 스스로를 확인했다.

팀장님의 응원은 내 마음에 작은 불씨를 지폈다. 그 불씨는 언젠가 나를 더 큰 빛으로 이끌 것이다.

한 걸음씩, 나는 내 항로를 그려간다.

PS. 당신이 불안 속에서 힘을 낼 수 있었던 한마디는 무엇이었나요?


하늘이 준 휴식: 고립과 성찰


백조 생활 04일차 22.02.27(일)

코로나 확진 - 고립감과 막막함, 예상 밖의 멈춤

어제 집 현관문을 열자, 마스크를 쓴 엄마가 말했다. “나 코로나 확진이야.”

아빠와 나는 곧바로 보건소로 향했다. 열은 없었지만 흉통과 근육통이 있었다.

시험 긴장이 풀리며 오는 평소의 ‘휴일 병치레’라 여겼다. 학창 시절에도 시험이 끝나면, 회사 다닐 때도 주말이나 연휴만 되면 어김없이 앓았던 그 증상이었다. 한 번은 엄마가 농담처럼 말씀하셨다. “시집가면 시댁에서 꾀병이라고 하겠네. 왜 맨날 휴일 때만 아프냐.” 무던한 줄 알았던 나는, 사실 긴장 속에서 온몸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타입이었다.

오전 9시, 문자 한 통. 아빠는 음성, 나는 양성 판정. 퇴사 후 시험까지 마친 시점에 자가격리라니, 씁쓸함이 밀려왔다. 남들은 회사 다니며 병가를 내지만, 나는 백수 신분으로 확진이라니. 그 씁쓸함 속에서, 나는 아파도 티 내지 않고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출근하던 지난 습관을 떠올렸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 ‘하늘이 주는 휴식 신호’일지도 모른다.

빼곡히 세운 3월 계획을 뒤로 미루자, 또 전차처럼 목표만 향해 달릴 뻔했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여유를 택하니 주변이 보이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일주일만 아무 생각 말고 쉬자.”

멈춤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숨 고르기였다. 건강한 나를 위해,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PS. 당신은 예상치 못한 멈춤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았나요?


백조 생활 07일차 22.03.02(수)

안부 7통 — 관계가 나를 꺼내는 "줄"

자가격리 방 안, 고요가 마음을 짓눌렀다. 방 안의 적막함에 숨이 막혔다.

‘백조’인 내가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이 스며들 때, 휴대폰이 울렸다. 하루 동안 일곱 지인의 안부. “잘 지내?”라는 메시지에 온기가 담겼다.

무던했던 내가 감정의 물결을 탔다. 고마움이 가슴 깊이 아로새겨졌다.

회사 문을 나섰지만, 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엉망으로 살진 않았구나.” 안도감이 밀려왔다.

후배의 응원, 선배의 조언, 팀장님의 격려. 짧은 인연 속 진심이 빛났다. 그들의 메시지는 고립의 벽을 뚫고 나를 끌어올렸다. 그들과 나누고픈 미래가 선명해졌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전할까. 멋지게 재기해 그들과 기쁨을 나누는 것으로 답하리라.

고마운 이들과 여유롭게 감정을 나누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안부 인사들이 나를 다시 세워주는 "줄"이었다.

PS. 당신을 다시 일으킨 관계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백조 생활 08일차 22.03.03(목)

위로 — 작은 선물이 “너를 잊지 않았다”는 신호가 되다.

자가격리 8일차. 방 안은 고요했고, 뉴스에서는 하루 확진자 20만 명을 넘겼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세상이 멈춘 듯한 그 정적 속에서 마음은 더 깊이 가라앉았다.

‘백조’가 된 나는 마치 떠도는 것 같았다. 그때,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B사 후배에게서 온 기프티콘이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맛난 거 드시고 얼른 나으세요.” 짧은 메시지에 온기가 스며들었다. 그 순간, 무언가 뭉클하게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늘 내가 챙겨야 할 존재라 여겼던 후배였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그들도 조용히 나를 챙기고 있었음을, 지금에야 깨달았다. 회사 안에서는 그들의 진심을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표현에 서툰 나는 “너무 고마워, 덕분에 얼른 나을 것 같아!”라는 단출한 답장을 보냈지만, 그 마음은 오래도록 내 안에 울렸다. 더욱 미안했던 건, 그 후배의 가족 모두가 얼마 전 코로나로 자가격리를 했다는 사실조차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

작은 선물 하나가 말했다. “너를 잊지 않았어.” 그 따뜻한 신호는 고립의 벽을 뚫고 내 마음을 세상과 다시 잇는 "끈"이 되었다.

이제 나도 먼저 손을 내밀고 싶다. 마음을 살피고,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다가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PS. 당신에게 위로가 된 작은 선물은 무엇이었나요?


백조 생활 10일차 22.03.05(토)

불면의 새벽 — 망망대해 위 작은 배, 방향을 찾는 밤.

자가격리 10일째, 새벽의 정적이 마음을 짓눌렀다. 창밖 어둠 속, 심장이 쿵쿵 울렸다.

나는 ‘백조’라는 이름의 작은 배가 되어 망망대해 위를 표류하고 있었다. 잠은 멀리 달아나고, 불안과 상념이 물밀듯 몰려왔다.

백조가 된 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개인 공부를 하고, 8시부터 업무에 돌입하던 질서 있는 리듬은 완전히 깨졌다. 그 빈자리에 낯선 공포가 스며들었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자존감이 바닥난 내가 또다시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한다면, 그 충격을 견딜 수 있을까. 어둠 속에서 나는 여전히 노를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가 어느 항구를 향하고 있는지, 내가 진짜 원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밤의 끝자락에서 창밖 세상이 조용히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잠 못 드는 동안에도 세상은 제 길을 가고 있었다. 그 사실이 서글펐지만, 동시에 마음 한쪽에 작은 확신이 피어올랐다.

방향을 잃은 배도 언젠가는 바람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불면의 새벽은 나를 꺾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깨우는 시간이었다. 지금은 그 바람을 기다리며, 다시 노를 쥔다. 더디더라도, 언젠가 내 배는 내가 선택한 항로로 나아갈 것이다.

PS. 당신이 불안 속에서 발견한 희미한 빛은 무엇이었나요?


다시 노를 쥐다: 새로운 항로


백조 생활 12일차 22.03.07(월)

격리 해제 - 바람 한 줄기에 희망.

자가격리 12일째, 나태가 어느새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다. 창문 없는 수조 속의 백조처럼, 밥과 약, 잠의 반복 속에서 무의미한 하루들이 흘러갔다. 규칙적인 회사 생활—출근, 공부, 업무—이 무너진 자리에 혼란과 공허만 남았다. 이대로 괜찮을까? 사회적 동물로 살아온 지난날이 문득 떠올랐다.

격리 해제 후 첫 산책, 새벽 공기가 차갑게 뺨을 스쳤다. 그 순간 불어온 바람 한 줄기가 가슴 깊숙이 스며들었다. 조직생활이 나를 지탱해왔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패턴 없이도 나만의 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그 자리에서 결심했다. 도서관으로 ‘출근’하자. 아침 운동으로 몸을 깨우고, 그동안 미뤄왔던 코딩을 시작하리라. 파이썬 첫 줄을 입력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 작은 화면 속 글자가, 언젠가 나를 새로운 무대에 올려줄 열쇠일지도 모른다. 두려움은 여전했지만, 뒤로 물러설 곳은 없었다.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만들어야 했다.

바람이 다시 불었다. ‘넌 할 수 있어.’ 그 속삭임에 발걸음이 힘을 얻었다. 더디더라도, 나만의 항로를 그려 가리라. 오늘의 산책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첫걸음이었다.

PS. 당신에게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준 순간은?


백조 생활 13일차 22.03.08(화)

처음 — 설렘과 불안, 첫걸음의 용기

퇴사 후 13일째, 느슨해진 삶은 창문 없는 수조 같았다. 밥과 잠의 반복 속, 조직 생활의 리듬—출근, 공부, 업무—이 사라진 자리에 혼란이 스며들었다. “이대로 괜찮을까?” 스스로에게 묻던 그때, 제페토 작업은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불러왔다.

갤럭시 폴드로 바꿀 때부터 언젠가 해보리라 마음먹었던 아이템 제작. 펜을 사용하여 원피스 두 벌과 구두 한 켤레를 완성했다. 색을 고르는 순간의 망설임, 디테일을 조정할 때의 집중, 화면 속에서 형태가 살아날 때의 짜릿함. 그러나 결과물은 허점투성이였다. ‘사람들이 좋아해 줄까, 아니면 외면할까’ 기대와 망설임이 뒤섞였다.

묵혀뒀던 제주 도서관 영상을 키네마스터로 편집하며 느낀 것은, 화면 속 컷들이 어설퍼도 그것이 내 발자국이라는 사실이었다. 업로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완벽을 기다리다가는 영원히 시작할 수 없다. 미숙한 첫 시도였지만, 그 안에 담긴 건 나의 결심이었다.

제페토의 가상 세계를 한 조각씩 설계하듯, 내 삶도 정성스럽게 다듬을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의 작은 버튼 클릭이, 언젠가 더 당당히 제주 도서관 투어 영상을 세상에 선보일 발판이 되기를.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이 자리에서,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PS. 당신이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안고 눌렀던 ‘첫 버튼’은 무엇이었나요?


백조 생활 14일차 22.03.09(수)

선택의 무게 — 나를 다잡다

퇴사 후의 나날은 바람 없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같았다. 출근과 업무로 규칙을 지키던 리듬이 사라진 자리에 나태와 혼란이 스며들었다. “이 길이 맞을까?”라는 질문이 마음 한가운데 떠다녔다.

그때, 대통령 선거라는 큰 선택의 날이 찾아왔다.

평소 정치에 무심했던 나는 그저 태평성대의 백성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백조가 된 지금, 작은 결정 하나도 내 삶의 항로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묵직했다. 투표용지 위에 한 후보자를 고르는 일이, 퇴사 후 방황 속에서 다음 길을 고르는 일과 겹쳐 보였다.

어떤 선택이 더 나은 미래로 이끌지, 확신은 없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차악을 택했다. 완벽한 답은 없었지만, 그 순간의 나는 최선을 다해 결정했다. 투표함에 용지를 넣는 순간, 제페토 작업처럼 내 삶도 수많은 작은 선택으로 완성되어 간다는 깨달음이 스쳤다.

한 표의 무게가 가슴에 남았고, 그 무게가 흩어지던 나를 다잡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은 여전히 고요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길을 조금 더 선명하게 열어주길,

그리고 더디더라도 후회 없는 항로를 그려 가길 바랐다.

PS. 당신이 무겁게 내린 선택이 새로운 시작이 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일상 속의 작은 위로


백조 생활 16일차 22.03.11(금)

행정처리 - 엉킨 행정의 실타래

백조 생활 16일째, 코로나 오미크론 확진 후 2주 만에 몸은 회복됐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생활지원금 신청을 위해 엄마와 동사무소를 찾았다. 김포 보건소에서 확진받았으니 본가에서 신청 가능하리라 믿었지만, 창구 직원의 단호한 한마디가 예상을 깨뜨렸다.
“거주지 동사무소로 가셔야 합니다.”

거주지 동사무소에 연락하니 자치구마다 요구 서류가 달랐다. 신분증과 통장 사본을 팩스로 보냈지만, 곧 자가격리 통지서의 이름이 잘못 기재됐다는 연락이 왔다. 친절하게 설명하는 공무원의 목소리 속에도 피로가 묻어났다. 감사 인사를 전하며 보완을 약속했지만, 왜 내 일만 이렇게 꼬이는지 답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수월하게 처리하는데, 나는 마치 하늘의 작은 시험대 위에 있는 듯했다.

코로나 확산으로 보건소는 하루 종일 통화 중이었다. 수십 번 시도하다가 결국 오늘은 포기하고 내일 다시 하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 엉켜버린 실타래가 떠올랐다. 퇴사 후의 내 삶도 이와 비슷했다. 한 번에 풀리지 않는 문제들, 예기치 못한 막힘들.

하지만 실타래도 한 올씩 잡아 풀다 보면 언젠가는 정리가 된다.

오늘의 번거로움도, 내일의 도전도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느려도 괜찮다.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집으로 향했다.

PS. 당신이 겪은 ‘작은 걸림돌’은 무엇이었나요?


백조 생활 17일차 22.03.12(토)

작은 위로 - 따뜻한 어울림

백조 생활 17일째, 부모님의 말 없는 걱정이 눈에 밟혔다. 시집도 안 간 데다 직장까지 잃은 딸을 향한 시선이 밥상 위에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다. 그 무게를 덜어드리고자 결심했다.

주말 하루쯤은 특별한 음식으로 마음을 전하자고.

마침 엄마가 구워 둔 군고구마가 눈에 들어왔다. 간식은 ‘군고구마 크림치즈’, 메인은 달큰한 파김치를 활용한 ‘파김치 스팸찌개’로 정했다. 스팸과 파김치를 볶아 김장김치와 김칫국물로 맛을 더했다. 별다른 간 없이 30분 넘게 끓이니 진한 국물이 완성됐다. 평소 맛없으면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부모님이 “맛있다”며 웃으셨다. 그 한마디가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식사 후에는 군고구마를 반으로 잘라 속을 발라 낸 고구마와 크림치즈·버터·설탕과 함께 으깨고, 껍질에 다시 담아 견과류를 뿌렸다. 에어프라이어에서 노릇하게 구워내니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이 번졌다. 팔이 아플 만큼 힘든 작업이었지만, 엄마의 “도와줄까?”를 거절하고 끝까지 혼자 완성했다.

못난 딸이라 걱정 많으실 텐데, 웃어주시는 부모님을 보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녹아내렸다.

제페토에서 캐릭터를 한 땀 한 땀 완성하듯, 나의 삶도 이렇게 작은 순간들을 모아 정성껏 만들어가고 싶다. 오늘의 달콤함이 내일의 용기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나도 내가 만든 디저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PS. 당신이 지인에게 건넨 ‘작은 위로’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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