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치유를 받으며 나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외주 팀원들의 연대, 공모전 동료들의 동행, 친구와 가족의 무조건적 지지. 그들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너는 조직의 부품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한 사람"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만으로는 부족했다. 다시 조직에 들어가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나는 또다시 '애착인형'이 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20년을 그렇게 살았고, C사에서도 그 패턴이 반복되었다. 패턴을 깨지 않으면, 다음 회사에서도 똑같을 것이 분명했다.
회의실 문이 닫히고, "J부장님,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가 익숙하게 흐를 때마다 나는 조금씩 가벼워지고, 동시에 더 무거워졌다. 칭찬처럼 들리던 그 말은 결국 내 손에 꼭 쥐어진 하나의 물건—애착인형—이었다. 필요할 때만 꺼내 쓰고, 필요 없을 땐 구석에 세워두는 존재. 안정이라는 포장지 속에 감춰진 통제와 의존의 구조였다.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변화는 작은 불편함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회의 중, 타부서 상사가 물었다. "이 건은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습관적으로 대답했다. "저희 팀 입장에서는..." 그 순간, 옆에 앉은 후배가 조용히 물었다. "부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 질문에 나는 멈칫했다. '나'의 생각? 나는 늘 '우리'로만 말해왔다. "저희 입장", "회사 방침", "팀 의견".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그 문장의 주어는 늘 나 아닌 다른 무엇이었다.
그날 밤, 나는 빈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첫 줄에 썼다.
"오늘 내가 선택할 문장: 나는 이렇게 보았다."
다음 날 회의록에 처음으로 "나는 이렇게 판단한다"라고 썼다. 손이 떨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동료가 말했다. "명확하네요. 좋습니다."
언어를 바꾸자, 세계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타인의 판단을 내 입으로 정당화하던 "우리 입장"을 줄이고, 내 이름으로 서는 문장을 늘렸다. 책임은 커졌지만, 그만큼의 자존감을 얻었다. 의견이 부딪힌 뒤에도 내가 서 있는 자리가 흐려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우리'라는 안전한 울타리 뒤에 숨지 않았다.
"부장님,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저녁 9시,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네, 말씀하세요"라고 답장을 보내려다 손을 멈췄다. 이게 맞나? 밤 9시에도, 주말에도, 휴가 중에도 나는 늘 '대기 상태'였다. "책임감있는 부장"이라는 칭찬이 좋았지만, 그 대가로 나는 내 시간을 모두 내어주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결심했다. 메신저 상시 알림을 껐다. 그리고 달력에 붉은 색으로 표시했다. 09:00–11:00, 14:00–16:00. '집중 시간'. 이 시간에는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불안했다. 혹시 급한 일이 있으면? 혹시 나 때문에 일이 지체되면? 그러나 놀랍게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에 집중해서 답변하니 더 정확했고, 동료들도 "예측 가능해서 좋다"고 말했다.
나는 깨달았다. 즉시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때 결과를 들고 오는 사람이 신뢰받는다는 것을.
"항상 즉답"이라는 보이지 않는 미덕을 내려놓자, 내 시간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부장님, 이것도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부장님이 하시면 빠를 것 같아서요."
예전의 나라면 웃으며 "그래"라고 받았을 것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거절하면 미움받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든 일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내 일을 할 시간은 사라졌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냈다.
"이번 주말은 개인 일정으로 어렵습니다. 월요일 10시에 보고 드릴게요."
상대방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요. 월요일이면 충분하니 주말 잘 보내도록 하세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경계를 세운다고 관계가 깨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명확할수록 상대방도 나를 존중했다.
부탁을 받으면 가능 범위를 문서로 명확히 했고, '대신'이 필요한 일엔 대가를 함께 요청했으며, 내 시간과 정서의 한도를 선언했다. 처음엔 미안했지만, 경계를 세우자 오히려 상대방의 존중을 얻었다. 물론 처음엔 어색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내가 명확할수록 상대도 요청할 때 더 신중해졌다.
나는 '좋은 사람'에서 '선이 분명한 사람'이 되었다.
"이번 분기 평가에서 A등급 받으셨네요."
인사팀 메일을 보며 나는 잠시 멍했다. S등급이 아닌 A등급. 나쁘지 않지만, 특별하지도 않은 점수. 예전 같았으면 며칠 동안 자책했을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지? 어디가 부족했지?'
그러나 그날, 나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이번 분기에 성장했는가?"
회사의 평가가 아니라, 내 스스로의 평가. 나는 노트를 펼쳐 적었다. 이번 분기에 내가 한 것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다. 공모전에 도전해 입상했다. 어려운 프로젝트를 끝까지 책임졌다. 후배 한 명에게 멘토링을 해주었다.
그 리스트를 보며 나는 웃었다. 회사는 내게 A를 주었지만, 나는 내게 S를 주고 싶었다.
그날부터 나는 새로운 지표를 만들었다. 이전 KPI는 '누가 인정했는가'였다면, 지금의 지표는 '내가 성장했는가'였다. 하루 1문장 일기를 쓰되, 반드시 감정을 나타내는 명사 하나를 포함시켰다. "불안" "기대" "안도"... 내 감정을 명명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하루 1문제, 코딩이든 통계든 업무 기술이든 한 가지는 해결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누군가를 직접 만나 관계를 유지했고, 한 달에 한 번은 제페토 월드든, 영상이든, 에세이든 작은 작품 하나를 완성했다.
이 지표들은 승진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방향을 주었다. 월말에 체크리스트를 닫을 때, 타인의 도장 대신 나의 서명을 받았다. 그 서명이 나를 단단하게 했다.
퇴사 후 가장 두려웠던 것은, 조직 밖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 봐였다. 명함이 사라지면, 월급이 끊기면,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나는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조직 바깥에 '나만의 샌드박스'를 만드는 것. 애착인형은 쥔 손이 주는 놀이터에서만 움직인다. 그 손을 놓았을 때 주저앉지 않으려면, 스스로 만든 놀이터가 있어야 했다.
나의 경우, 그것은 '배움'이었다.
금융과는 거리가 먼 데이터 분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파이썬 코딩을 배우며 밤새 에러 메시지와 씨름했다. 제페토에서 한옥 갤러리 월드를 만들며 3D 공간 설계의 재미를 느꼈다. 이 경험들은 당장의 취업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여전히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유능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과정이었다.
ADP 자격증 1차 필기에 합격했을 때, 나는 가슴이 터질 듯이 벅차올랐다. 합격 통보 문자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해냈다'고 중얼거렸다. 카페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도, 누군가에게 이 기쁨을 전하고 싶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공모전에 입상했을 때, 상패를 받아 들며 손이 떨렸다.
이 작은 성공들이 바로 '내가 나를 스스로 지탱할 수 있다'는 새로운 끈이 되어주었다. 거대한 목표가 아니라 작은 성취의 축적. 그것이 나를 살렸다.
변화의 과정 속에서, 나는 나를 묶고 있던 끈들의 정체를 하나씩 확인했다.
첫 번째 끈은 타이틀(직함)이었다. '부장'이라는 명함이 없으면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나 명함 없이도 후배에게 조언을 건넬 수 있었고, 공모전 팀원들에게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었다. 타이틀이 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타이틀을 만드는 것임을 깨달았다.
두 번째 끈은 인정(월급)이었다. 월급이라는 정기적 보상. 급여가 끊기면 나는 즉시 무너지는가? 마이너스 통장을 보며 나는 공황에 빠졌지만, 동생의 도움과 작은 기타 수입으로 버티며 알았다. 내 가치는 월급명세서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증명된다는 것을.
세 번째 끈은 기대(타인의 요청)였다. 타인의 요청에 "네"라고 대답하는 습관. 역할 밖 요구에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가? 처음 거절했을 때의 두근거림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아니오" 한 마디가 내게 자유를 주었다.
끈의 정체를 알자, 풀 수 있었다.
변화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찾아왔다.
자존감 회복: 타인의 평가가 내 잣대가 아니게 되었다. 회사에서 A나 B등급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 선택의 의미가 내 잣대였다.
관계의 정화: 비위를 맞추기 위해 유지하던 인연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 자리에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만 남았다. 적어졌지만, 깊어졌다.
일하는 태도 전환: 더 이상 '이 회사 부장'이 아니라 '이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일했다. 회사 이름이 아닌 내 이름으로 일했다. 다음 직장이 어디든, 내 이름은 남을 것이었다.
빈 손바닥의 자유
돌아보면, 애착인형은 혼란의 시절을 버티게 한 임시 지지대였다. 나는 오랫동안 그 역할에 익숙해졌고, 안전하다고 믿었다. 다만 '임시'를 '영구'로 오해했던 건 내 몫이었다.
그러니 그 시절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이제 나는 손바닥을 확인한다. 비어 있다. 비어 있기에 움직인다. 잡지 않았기에 만들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손에 들린 인형이 아니다. 내 두 손으로 나를 만드는 사람이다.
지금도 나는 묻는다
중요한 결정 앞에 서면, 나는 두 가지를 묻는다.
"이 결정은 누군가의 기대 충족인가, 나의 가치 확장인가?"
"끝났을 때 기운이 빠지는가, 아니면 기운이 도는가?"
두 질문이 "나" 쪽을 가리키면, 불편하더라도 그 길을 택한다. 불편함은 잠깐이지만, 확장은 오래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도 언제든 그럴 수 있다. 당신을 묶고 있는 '끈' 하나를 메모에 적어보세요.
"이 역할은 여기까지. 다음은 내 이름으로." 그 한 줄이 당신의 첫 선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