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치유받다
2022년, 퇴사라는 두 번째 선택을 한 직후의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낯설고 무거운 공백이었다.
새벽에 눈을 떠도 출근할 회사가 없었고, 거실 시계의 초침 소리는 마치 나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니?”
통장 숫자는 이미 ‘0’을 지나 마이너스로 내려앉았다.
미혼 여성으로 살아오며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 했던 내게, 그 붉은 숫자는 단순한 금융 기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존재의 무게가 증명되지 않는 듯한 공허와 불안의 상징이었다.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텅 빈 이름만 남았다.
오랫동안 불렸던 ‘부장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제는 홀로 남겨진 마흔다섯의 여성, 그저 ‘나 자신’으로 불려야 하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동창 모임에서 던져진 짧은 인사 “요즘 뭐 해?” 는 가벼운 말처럼 들렸지만, 내겐 비수였다.
웃으며 “잠시 쉬고 있어”라고 대답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불안과 고립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마치 세상과 단절된 작은 섬 같았다.
그러나 그 고립의 바다 한가운데서 내 손을 잡아준 것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인연들은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이었다.
C사에서 진행한 ETF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혼자 이끌 수 없는 거대한 작업이었다.
나는 직접 팀원을 추천해 함께하고자 했다. 타사 선배가 내 전화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J, 네가 부른다면 가지.” 그 한마디는 내 불안함을 녹여주었다.
그러나 회사는 그녀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최종 합격을 취소했고, 그녀는 끝내 프로젝트에 합류하지 못했다. 기대가 무너진 순간이었지만, 뜻밖의 선물처럼 IT 외주 인력들이 내 곁에 배치되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계약상의 의무를 넘어, 마치 자신의 일처럼 프로젝트에 몰입해 주었다.
어느 날 장시간 이어진 회의 끝, 결론 없는 논의를 마무리하고 회의실을 빠져나왔을 때, 피곤에 절은 내 얼굴을 본 외주 여자 부장님이 조용히 말했다.
“J부장님, 우리 할 수 있어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면 돼요.”
그 말에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실무적으로는 내가 이끄는 자리였지만, 그날만큼은 오히려 그들의 신뢰 덕분에 내가 끌어올려졌다.
IT 외주 팀원들의 연대는 끊어진 줄 같던 나의 삶을 다시 잇는 실이 되었다.
퇴사 후에도 그들과의 인연은 이어졌다.
백조 생활 속 불안이 몰려올 때마다 “새로운 도전, 잘할 거야”라는 짧은 메시지가 나를 달래주었다.
그들의 신뢰는 내가 ‘애착인형’이 아니라, 여전히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증명해 주었다.
국비교육을 받으며 나는 국토교통부 데이터 활용 경진대회에 도전했다.
주제는 “교통안전 대한민국, 시작하자! 모범 화물차 제도”.
익숙지 않은 분야였지만, 젊은 팀원들과 머리를 맞대는 과정에서 새로운 활력이 솟았다.
주말에도 교육센터에 나와 데이터를 정제하고 PPT 슬라이드를 붙잡고 씨름하던 날들이 이어졌다.
의견이 맞지 않아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고, 갈등 끝에 서로 말을 아끼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침묵을 깨준 건 작은 배려였다. 한 팀원이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오늘 힘드셨죠? 그래도 우리 같이 끝까지 가봐요.”
그 한마디는 긴장으로 굳어 있던 내 어깨를 풀어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발표는 온라인으로 진행돼야 했다. 우리는 늦은 밤까지 녹화와 편집을 반복하며 영상을 완성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작업 속에서 지쳐 있었지만, 마음만은 점점 단단해졌다.
발표 당일, 스터디 카페에서 노트북 화면을 함께 지켜봤다. 손을 맞잡고 결과를 기다리던 순간,
“우수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터져 나온 환호와 박수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성취의 본질은 상패가 아니라, ‘혼자가 아니다’라는 믿음에 있었다.
그날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함께 웃는 기쁨’을 되찾았다.
사회적 고립은 퇴사 후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이었다.
술자리에서 건넨 “요즘 뭐 해?”라는 질문조차 웃으며 넘겼지만, 내 마음속에는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몇몇 친구와 후배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내 앞에 한 후배가 커피 두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선배, 저는 늘 선배한테 배우고 있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 쉽지 않은 길을 도전하는 모습이 멋져요. 선배 덕분에 저도 버틸 힘이 생겨요.”
그 순간,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직함도, 직장도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용기’였다.
또 다른 날, 밤 11시가 넘어 울린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이미 충분히 잘 살아왔어. 잠시 쉬는 거지, 끝난 게 아니야.”
그 말은 어두운 방을 밝히는 조명 같았다.
여전히 불안했지만, 그 목소리는 고립의 그림자를 옅게 만들었다.
미혼인 나에게 가족은 언제나 가장 확실한 울타리이자 뿌리였다.
퇴사 소식을 전했을 때 부모님의 얼굴에는 걱정이 스쳤지만, 끝내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다.
대출 상환 압박에 결국 동생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송금하며 말했다.
“누나, 괜찮아.”
그 한마디에 미안함과 감사가 동시에 밀려왔다.
돈의 액수보다 더 큰 것은, 나를 조건 없이 믿어주는 마음이었다.
명절날 친척들 앞에서 “아직 일 안 하니?”라는 질문에 순간 움츠러든 내 옆에서, 부모님은 단호히 말했다.
“걱정 마, 알아서 잘할 거야.”
그 말은 내게 방패가 되었고, 다시 일어설 힘이 되었다.
가족의 지지는 물질적 도움을 넘어, ‘직함 없는 나’로도 존중받는다는 증거였다.
돌아보면, 백조 생활 222일은 불안과 고립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버티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외주 팀원들의 연대, 공모전 동료들의 동행, 친구와 후배들의 따뜻한 말, 가족의 무조건적인 지지.
그 인연들은 내 삶의 기둥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다시 일어선다.
마흔다섯의 나는 그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당신이, 혹시 지금 고립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면 기억하라.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누군가의 짧은 한마디, 함께 나눈 웃음, 작은 메시지가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마흔다섯의 나에게 그랬듯, 당신에게도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