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퇴사의 의미
2021년, 나는 기묘한 시간의 문턱에 서 있었다. 주민등록상으로는 분명 마흔다섯, 45세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이던 ‘만 나이 통일’ 제도는 나의 시간을 다르게 불러주었다. 연 나이로는 45세, 그러나 만 나이로는 44세. 단순히 숫자 하나 줄어든 것뿐인데도 묘하게 다른 기분이었다. 정부는 전통적 나이 계산의 혼란을 해소하고 글로벌 표준에 맞추려 했지만, 내게는 이 변화가 새 출발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두 살 젊어지네”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내게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그 한 살 차이가 내게는 새로운 가능성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마치 인생이 내게 두 번의 기회를 허락한 듯, 나는 ‘마흔다섯’을 두 번 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한 번은 살아온 무게로서의 45세, 또 하나는 보너스처럼 주어진 새 출발의 시간으로서의 45세.
두 겹의 나이는 내게 속삭였다. “실패해도 괜찮아.”
그리고 나는 결국 두 번의 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직과 퇴사.
그 선택은 단순한 커리어의 이동이 아니라, 내 인생의 페이지를 다시 쓰는 여정이었고, 나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는 통과의례였다.
나는 13년 동안 B사라는 안정적인 회사에 몸담아 왔다. 임원들의 신뢰,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그리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까지.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점점 말라갔다. 반복되는 회의, 새로운 도전을 허락하지 않는 조직 문화, 그리고 나를 ‘교체 불가능한 부품’으로만 바라보는 시선.
“이 부장은 알아서 책임감 있게 잘하잖아.” 칭찬처럼 들렸지만, 그것은 족쇄였다.
나는 늘 조직이 필요로 하는 ‘책임감 있는 부장’으로만 소비되고 있었다.
2021년 4월, C사에서 첫 제안이 왔을 때 나는 거절했다. 기존 업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제·자금·회계 파트를 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변화라기보다는 단순한 이동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거절했다.
하지만 같은 해 7월, 두 번째 제안은 달랐다. IRP 컨설팅 직무로의 전환 가능성.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새로운 성장의 문’이었다.
나는 세 가지 조건을 걸었다.
합당한 처우와 성장에 대한 투자
함께할 동료 충원
프로젝트에 대한 확실한 권한
C사는 이를 받아들였고, 나는 과감히 성과급을 포기했다. 2021년은 증권업계가 기록적인 호황을 맞던 해였다. B사에 남았다면 거액의 보너스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돈보다 ‘살아 있음의 감각’을 택했다.
새 회사에서의 시작은 뜨거웠다. ETF 중개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주도하며,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달렸다. 타사 선배를 추천해 팀을 꾸리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네가 부른다면 가지”라는 말에서 따뜻한 힘을 얻었지만 결국 함께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난관 속에서 함께 땀 흘린 외주 IT 동료들과의 시간은 짜릿했다.
그러나 6개월 만에 시스템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긋났다. 프로젝트는 답 없는 길로 나아갔고, 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처음에 약속된 IRP 전환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구두 약속은 종이조각처럼 흩어졌고, 나는 다시 ‘애착인형’처럼 조직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존재가 되었다.
기대와 설렘은 서서히 좌절의 무게에 짓눌렀다. 밤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내가 바라던 변화였을까?”
“45세의 기회는 이게 전부였단 말인가?”
이직은 설렘의 시작이었지만, 곧 불안의 심연으로 추락했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번아웃’이라는 낯선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C사로 이직하기 전까지, 번아웃은 내 삶과는 먼 단어였다.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문제지, 일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일이 많으면 밤새워 하면 되었고, 버티면 길이 열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C사에 들어간 후, 나는 처음으로 벽에 부딪혔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으나 주변은 움직이지 않았다. 내 말은 회의실에서 공중에 흩어졌고, 제안은 묵살되었으며 보고서는 수정을 거듭하다 사라졌다. 어느새 내 존재는 공기처럼 투명해졌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그 깨달음은 충격이었다. 무가치함이라는 감각은 열정을 소진시켰고, 나는 나의 색깔을 잃어갔다. 존재의 무게조차 느낄 수 없는 노동은 공허했다.
차라리 혼자 나와서 무엇이든 시도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번아웃을 겪기 전까지 나는 항상 일이 우선이었다. 회사의 성과, 조직의 목표, 상사의 기대 등이 나의 모든 판단 기준이었다.
하지만 번아웃을 겪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 자신의 행복과 건강이 없다면, 어떤 성과도 의미가 없다.”
이 깨달음은 나의 가치관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일과 삶의 균형, 개인의 성장과 행복, 그리고 진정한 성공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조직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애착인형'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선택, 퇴사를 고민했다.
2022년 2월, 나는 두 번째 결정을 내렸다. 퇴사였다. C사에서의 시간은 해방이 아닌 공허를 안겨주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내 가치를 찾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45세에 내려놓는 퇴사,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가족은 걱정했다. “왜 좋은 직장을 포기해?”라는 질문은 곧 사회적 시선으로 이어졌다. 통장 잔고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부장’이라는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한순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백조 생활이 시작되었다. 겉으로는 우아하게 떠다니는 백조처럼 보였지만, 물밑에서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퇴사 후 첫 아침, 늦잠을 자며 자유를 만끽했지만 곧 불안이 엄습했다. 마이너스 통장 한도가 꽉 차버린 숫자가 내 심장을 조여오는 듯했다.
밤마다 천장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자유는 낯설었지만 새로운 감각을 깨웠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ADP(데이터 분석 전문가) 공부를 시작했다. ADP 문제를 풀다 지쳐 책상에 엎드린 밤, 45세의 나는 다시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엔 통계 문제 하나도 버거웠지만, 한 문제를 풀 때마다 작은 승리가 쌓였다.
제페토에서 ‘한옥 갤러리’ 월드를 기획하고 몰래 드레스룸에 숨어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던 밤들은 숨어있던 내 안의 창의력을 다시 불러냈다. 빅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팀원들과 의견 충돌 후, 합의점을 찾아 공모전에서 웃으며 입상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다시 보았다.
그 뒤로 작은 성취들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고, 잃었던 자존감은 그렇게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왔다.
퇴사는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이직은 약속을 무너뜨렸고, 퇴사는 공허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두 번의 좌절 속에서 성취의 씨앗이 움텄다.
이직은 안정의 환상을 깨뜨렸고, 퇴사는 자기 주도성을 일깨웠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직함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
성취는 거창하지 않았다. ADP 1차 필기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의 가슴 떨림, 공모전에서 입상하며 받은 작은 상패, 후배에게 전한 조언 뒤 돌아온 “정말 고마워요”라는 말. 작은 순간들이 모여 나를 다시 세웠다. 좌절은 나를 무너뜨렸지만, 성취는 나를 다시 일으켰다.
돌아보면, 마흔다섯을 두 번 살았던 시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연 나이로는 45세, 만 나이로는 44세. 윤석열 정부의 제도 변화는 내게 ‘1년의 보너스 시간’을 선물했다. 그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재정의하고, 인생을 다시 설계할 기회였다.
이직과 퇴사는 단순한 커리어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인생의 문장을 다시 쓰는 행위였다.
두 번의 선택은 나에게 좌절을 견디는 힘과 다시 시작할 용기를 가르쳐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언제나 두려움과 함께 찾아온다는 것을.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서 멈추지 않고 선택해야만 새로운 길이 열린다.
내 선택이 완벽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길 위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했는가 하는 '과정의 가치'였다.
마흔다섯의 나는 그렇게 배웠다.
혹시 지금 선택의 문 앞에 서 있다면, 기억하라.
좌절 뒤에는 반드시 성취가 기다리고, 그 성취는 당신을 새로운 페이지로 이끌 것이다.
당신의 마흔다섯은 어떤 페이지든 새로 쓸 수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