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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lish Sep 23. 2019

마르셀 뒤샹의 <샘>이 역사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이유

감상으로 경험하기_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 1편


대학입학과 동시에 수강해야 했던 미학강의. 미학은 철학 중에서도 세부적인 부분이라 기본적인 철학사의 흐름에 더해 주축을 이루는 미술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학문이다. 수능과 논술을 위해 철학 공부를 했다 해도 평범한 20살의 지성으로 이해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심지어 교수님이 선택한 교재는 영어로 된 원서였다.


부끄럽지만 강의는 무척 어려웠고 때문에 기억에 남는게 별로 없다. 몇 안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마르셀 뒤샹을 얘기할 때 마다 딴 건 몰라도 되니 이것만은 기억하라는 듯 거의 소리지르는 수준으로 그의 이름을 외치셨다는 것.


‘미술계 대표 컨셉충’, ‘예술판 미다스의 손’


 마르셀 뒤샹






기성품 변기에 사인을 해놓고 <샘>이라는 이름의 예술작품이라고 선언한 것은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샘>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꾸준히 비슷한 작업을 해온 만큼 관객이 받는 충격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이게 예술인가?’라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의문 때문에 뒤샹은 미술사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인물이 됐다. 


수 십세기 동안 예술은 ‘표현’이 중시됐다. 작가의 섬세한 붓 터치, 연주자의 미세한 숨소리, 공연자의 떨리는 손 끝 같이 디테일한 표현이 좋은 예술의 척도가 됐다.


뒤샹은 변기든 삽이든 이미 생산돼 있는 기성품을 활용한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개념(Concept)’을 도입해 좋은 예술 혹은 ‘예술’ 그 자체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것은 표현이 아니라 예술가의 의도와 생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Idea) 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작가의의도와 개념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 원형, 

즉 작품인 것이고 눈 앞에 있는 '사물’은 작가의 이데아를 대변해 주는 그림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단순한 사물에서 예술로 승격된 것이다.


철학과 비슷해 보이는 개념을 들고 나온 이 괴짜 예술가 뒤샹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뒤샹이 표현에서 개념으로 예술의 영역을 넓혔기 때문에 후대 작가들이 과감한 시도를 주저없이 할 수 있게 됐다.



▲ 영상으로 더 친근하게 마르셀뒤샹에게 다가가기



물론, 아직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다면 표현이 아닌 개념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들을 보면 의아함을 느낄 수 있다(익숙해도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지식이나 감상능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빠지지는 말자. 우리는 경험적으로 친절하게 표현된 것에 훨씬 익숙하니 이상하게 느끼고 반감까지 가지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앞으로는 뭘 봐야할지 어떤 예술적 감수성을 느껴야할지 고민하면서 머리를 굴리기보단 당당하게 한 마디 해주고 지나가자.


“삽질하고 있네.”

작가가 듣고 싶은 말도 이 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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