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카페 #어색
엄마와 함께 북촌 카페로 향했다. 입춘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날이 많이 추웠다. 패딩을 다시 여미며, 종종걸음으로 길을 걷는데 엄마가 팔짱을 끼시며 말을 하셨다.
"딸이랑 같이 데이트 가니까 좋~네! 입춘이라 그런지 추워도 봄기운이 느껴지는 추위야"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바람까지 부는 이 날씨가 춥기만 한데도 엄마는 뭐가 그리 좋은 지 옆에서 걷는 발걸음도 나보다 더 가벼운 듯했다.
나는 요새 북촌이 정말 좋다. 주중에는 늘 바쁘고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경복궁 근처를 가면 조용하고 한적한 풍경이 나의 마음에 힐링과 안정을 주곤 했다. 서촌과 북촌에는 여기저기 카페와 편집샵들이 골목골목마다 들어서곤 했는데, 걸으면서 방해받지 않고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늘 감각적인 즐거움을 찾곤 했는데 회사에서는 늘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공간 안에서 업무를 하다 보니 그런 점에 늘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새로운 장소, 공간, 향기, 사람, 물건들을 하나하나 감각적으로 느끼다 보면 어느새 평온 해져 있는 내 모습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와 북촌 한옥 카페를 찾아 나섰다.
들어서는 입구는 좁아 보였는데, 막상 들어가니 디귿자 모양의 한옥을 맞닥 드리게 되자 그 특유의 고즈넉함에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길을 따라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정말 작은 정원에 온 것처럼 나무와 풀들 주위에 테라스가 있었다. 일상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짜 자연의 풀냄새와 한옥 정취를 느끼며 계단을 올라 주문대에 섰다. 엄마가 드실 아메리카노와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라테 그리고 얼그레이 롤을 주문했다. 주문을 한 뒤 돌아보니, 엄마는 벌써 여러 가지 소품과 책들이 놓여 있는 것을 구경하고 계셨다. 두 손을 모으고 조심스레 구경하시는 모습을 보니 새삼 엄마가 참 소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쪼르르 엄마 옆으로 다가가 엄마가 보는 곳으로 눈을 향했다. “필름 카메라도 파나 봐요” 그제야 엄마는 흘긋 나를 보시더니 다시 카메라로 눈을 향하셨다. 내가 필름 카메라를 들자 엄마는 만져도 되는 거냐며 놀라 물으셨다. “그럼, 만져도 되죠~ 이것저것 만지고 구경해도 돼요” 그제야 엄마는 고개를 끄덕거리시며 손을 올려 물건을 찬찬이 살펴보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그르렁 거리는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은 문을 열어 고양이가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였는데, 고양이는 천연덕스럽게 왜 이리 늦게 문을 열었냐는 듯 도도한 걸음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와 햇볕 좋은 곳에 눈을 감고 벌러덩 누웠다.
잠시 뒤, 벨이 울리고 카페와 케이크를 받으러 주문대로 향했다. “엄마, 저쪽 안으로 들어가 봐요”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나무 소리에 이 한옥집의 연륜이 느껴졌다. 안 쪽으로 들어가니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 나왔다. 신발을 벗자 한기가 고스란히 더 느껴지는 듯했다. 다행히 온풍기가 있어 전원을 꼽고 다리 쪽으로 향하도록 방향을 맞추었다. 밖을 내다보며 엄마와 조용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딸 둘과 함께 들어오는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 딸들이 엄마랑 카페 데이트를 많이 하는 모양이다.
“아휴- 얘 무슨 카페를 오자고 해가지고. 커피 값은 왜 이렇게 비싸다니” 아주머니는 카페가 낯선 듯했다. “엄마가 좋아할 만한 한옥 카페로 온 거잖아. 원래 요즘 커피 이 정도 가격 해~” 딸은 맞받아 치며 엄마를 흘깃 쳐다보며 몸을 의자로 밀어 넣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엄마와 처음 카페 데이트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운전을 배워 남양주에 예쁜 카페를 찾아가고 동네 카페도 함께 가며 엄마와 커피를 마셨던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예전에 엄마는 “카페”라는 공간을 많이 어색해하셨다. 엄마 기준으로 밥 값 정도 되는 커피를 마시러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카페에 앉아 뭘 해야 하는 건 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하셨다. 초기에 카페에 들어서면 엄마는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여기저기 살피셨던 기억이 난다. 커피를 받아 자리에 앉아도 그 시간을 편안하게 쉬지 못하시고 구부정한 자세로 편히 앉지도 못한 채 그저 의자에 엉덩이만 붙였을 뿐 뭐가 그리 어색하신 지 연신 나가자고 말씀하셨다.
“엄마, 그냥 편하게 앉아서 쉰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같이 얘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할 때마다 엄마는 “으응…” 이라며 말끝을 흐리시곤 했다. 그 모습을 본 뒤 나는 앞으로 엄마와 문화 데이트를 정말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가 카페에서 편하게 앉아 쉬는 것이 익숙해질 때까지 많이 돌아다니고 맛있고 경치 좋은 곳으로 같이 가겠노라고 이상한(?) 다짐을 하곤 했었다. 물론, 지금의 엄마는 예전과 다르게 정말 카페에서 편안해 보이셨다. 나랑 말을 하다가 또 핸드폰도 보시고, 전화 통화도 하시고 소품 구경도 하시고 주변을 멍하니 응시하고 휴식도 취할 줄 아셨다.
“엄마, 커피 어때요?” 둘째 딸이 엄마에게 친근하게 묻는 모습을 보자, 역시 둘째의 사교성과 친근함은 공통적인 특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도 늘 둘째 딸이 엄마한테 아양 섞인 목소리로 말하곤 하는 게 생각이 났다. “으이그, 커피 맛이 다 똑같지 뭐~ 비싸다 비싸. 빨리 먹고 나가자” 아주머니는 연신 커피 가격이 비싸다며 딸들을 보챘다. 첫째 딸은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는 왜 여기까지 나와서 그런 소리를 해요. 이왕 나왔는데!”라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그제야 아주머니는 머쓱해하며 딸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엄마는 고라니 같아요-“ 어려 보이는 둘째 딸 목소리에 갑자기 주위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갑자기 고라니라니, 바로 옆 테이블인지라 너무 대화 소리가 잘 들리는데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은 건가?
“고라니 닮았어. 얼굴도 고라니 과고 맨날 가만히 못 있고 앙상한 다리로 뛰어다니는 고라니. 지금도 카페에서 나가 돌아다니고 싶은 고라니”
순간 웃음이 풉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고개를 돌려 참았다. 엄마 보고 고라니라니.
“잔소리할 때도 고라니 우는 소리랑 비슷해” 대략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딸이었는데 말하는 게 정말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흘긋 옆 테이블에 앉은 두 딸의 얼굴과 아줌마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두 딸들이 참 미인이었다. 목소리도 크지 않은데 또 묻히는 소리는 아니어서 또렷하게 들렸고 조곤조곤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것이 내 동생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Rrrrrrr. 요란한 엄마의 벨소리가 울렸다. 순간 옆 테이블의 아주머니도 핸드폰을 쳐다봤는데 역시 아줌마들의 벨소리는 다 똑같은가 보다.
“으응~ 나 딸하고 데이트 나왔지! 여기? 여기 경복궁 근처 카페에 왔어, 한옥카페. 아 그럼 좋지~ 아이고 아들은 이런 데 엄마랑 안 오지 히히 딸이니까 같이 오는 거지~ 그럼 딸이 좋지!”
갑자기 딸 자랑을 하시는 엄마가 낯설 게 느껴졌다. 일부러 내가 옆에 있어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아 보이셔서 다행이었다. 엄마가 통화를 하는 동안 다시 꺼내 든 책을 읽어 내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핸드폰을 보자 벌써 두 시간이나 시간이 흘러갔다. “딸~ 이제 슬슬 나갈까?” 엄마는 커피잔을 정리하며 나갈 준비를 하셨다. 주문대에 다시 반납을 하고 나가는데, 엄마가 팔짱을 끼며 종종걸음으로 나가시며 말씀하셨다.
“한옥 개조해서 만든 카페라 특이하긴 하다, 그지? 근데 여기 커피는 좀 쓰다~” 엄마의 말을 듣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는 커피 맛이 쓴 지도 비교할 줄 알만큼 카페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셨다는 것이 왠지 뿌듯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왠지 모르게 따듯했다. 물러나지 않으려는 겨울의 끝을 등에 진 채 정말 봄이 오긴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