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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exxtwo Feb 21. 202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밀러#리뷰#스포일러있음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퇴사와 이직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이 책을 접하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주말 동안 내리읽어 나가면서 내가 고민하고 씨름하며 싸워왔던 나의 물고기를 내려놓는 용기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 주인공은 어렸을 적부터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던 중 아버지로부터 삶은 의미가 없다는 답변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이후 남자 친구가 있음에도 여자를 좋아하는 본인의 모습을 깨닫게 되고 결국 남자 친구와 결별하게 되는 혼란스러운 삶의 여정 속에서, 그 누구보다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집요하게 혼란을 짓밟고 나아갔던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족적을 따라가게 된다. 

 

주인공은 데이비드가 남긴 무수한 회고록과 편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가면서 그가 무수히 많은 시련 속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그것은 특유의 낙천성으로 본인이 걸어가는 길이 옳다고 믿는 것이었는데, 결국 이것은 기만으로 흘러가게 되고 그는 우생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열등한 유전자는 모조리 싹을 없애 버려야 한다는 그의 권위로 포장된 일념 하에 수많은 인간들이 버림받고 불임화 수술을 당하고 천대받게 된다. 그의 기준에 우등하지 못한 부적합하다고 분류된 인간들에게 이러한 만행이 21세기에도 엄연하게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혼란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집요하게 파헤쳤던 데이비드가 결국 우생학자이자 기만자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더욱이 그의 우생학 논리로 인해 유년기를 유린당하고 불임화 수술까지 받게 된 애나와 메리의 삶을 보면서 분노를 느끼게 된다. 아무 가치도 의미도 없는 열등하고 부적합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그 사회적 프레임에 그들의 인권을 거세시켜 버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하면서도 우리는 우주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는 아이러니에 빠져 버리게 된다. 이것을 부인하는 것은 자신이 옳다며 자신의 신념을 포장해 나아갔던 데이비드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분류학에 대해 공부하던 중 가장 최신 이론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우리가 직관적으로 널리 익히 분류해왔던 어류라는 것은 분류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어류를 자신의 일생을 다 바쳐 분류해 내려고 고군분투하며 데이비드는 자신의 생을 다 바쳐 살았던 것이다. 

 

어류라는 단어, 말은 인간이 너무나도 복잡한 분류학을 편하게 편의상 분류하기 위해 부르고 다녔던 것이고, 크게 별반 다르지 않은 실제의 존재에 대해 우리 인간이 그들과 먼 존재라고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물고기’라는 말이 얼마나 편협하고 바보 같으며 기만적인 사회의 프레임인지 여실하게 보여준 것이다. 인간은 자연 앞에 얼마나 더 많은 물고기들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데이비드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다윈도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양성의 찬양이었다. 변이가 있었기에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꿋꿋이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역사상 가장 강한 존재들은 자연의 부름 앞에 가장 먼저 목숨을 빼앗긴 존재들이었다. 인간은 늘 약한 존재였음에도 환경에 맞게 끊임없이 유연하게 변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부적합하다고 프레이밍 하는 모든 것들, 제대로 보고 싶지 않아서, 듣고 싶지 않아서 귀찮아서 우리들끼리 단어로 개념 짓고 무시했던 모든 것들에 우리는 뉘우쳐야 하며 겸손해야 하고 고개 숙여야 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잣대에는 그 잣대를 만들어낸 지배자가 있다는 것을 늘 통찰할 줄 알아야 하며 그것에 희생되어서도 휘둘려서도 안된다. 사회가 단언하며 줄 세우는 모든 편파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잣대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여실히 편파적이며 편협한 사고로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인생이란 것이 그렇듯 사회가 내세우는 목표 저편에 더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나의 물고기는 무엇일까. 사회가 으레 그래야만 한다고 결정지어 버리는 모든 단어들. 그 폭력적이고 편파적이고 편협한 상실적인 잣대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나는 그러한 물고기들에 얼마나 많은 희생과 불완전한 사고로 억눌려 왔던 것일까. 나는 물고기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내게 그럴 용기가 있는 걸까. 

 

물고기 너머의 경이를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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