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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Oct 26. 2017

우울증 극복 + 타국에서 맞는 생일

자연이 치유했고 사람들이 축하해주었다

2016년 4월 3일


기분이 너무 우울해서 잠에 들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향수
이 곳 삶의 고난
외로움과 공허함

평소엔 스피커로 노래를 '항상' 틀고 지내는데, (씻으러 들어가서 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언정) 자려고 블라인드를 다 내리고 불을 다 끄고 스피커도 끄고 침대에 누우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아무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 오롯이 나 혼자다. 슬프게도 난 입면하는데 최소 2-30분 최대 1시간이 걸린다. 그 동안의 그 적막함을 너무 버티기가 힘들다. 명치를 후벼파는 공허함이 나를 힘들게 한다. 더욱 잠들기가 어렵다. 온갖 생각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곳, 그것들이 나를 매일밤 괴롭힌다. 그 느낌을 느끼기 싫어 매일 늦게 잠자리에 들고 잠들기전 핸드폰을 한 시간 이상 본다. 그래도 끝내는 그 처참한 순간을 맞이하고 견뎌야만 잠에 들수있고 다음날을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매일 반복된다.

평소에 아무리 한국말을 하고 한국에서 같이 온 언니 동생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하더라도 이방인의 느낌은 떨칠수가 없다. 어쨌든 문밖을 나가면 모두 나와는 다르게 생긴 외국인이 도사리고 있고, 난 긴장해야하고 눈치를 보게된다.

그냥 눈을 뜨면 인천 공항이었으면 좋겠다. 

여기 온 것을 후회하지도, 내가 겪은 안좋은 일들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것들로 인해, 여기서의 삶으로 인해 나는 나를 똑바로 직시할 수 있었고 처음 숨을 고르며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내 미래의 실마리를 조금은 얻었다. 


여기서의 경험이 훗날 나를 단단하게 만드리라는 확신도 든다. 

그렇다고해서 지금이 마냥 행복해질 수는 없다. 그건 사실이다.



2016년 4월 4일


전날 늦게자서 첫 수업을 못갔다. (=안갔다) 

한국이었으면 기를 쓰고 출석을 했겠지만ㅡ대학 입학 후 단 한 번도 수업에 지각하거나 결석한 적이 없다ㅡ여기서 우울증으로 수업을 기피하게 되면서 결석을 한두 번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서워하던 일이었는데, 막상 한 번 해보니 다음부턴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두번째 수업은 가려고 씻고 준비를 다 했다. 그런데 수업듣는 건물로 가던 중에 발길을 돌려서 도서관 옆 벤치에 앉아버렸다.


우울을 견디지 못하고 수업을 또 빠지기로 했다. 

비도 좀 왔는데 그냥 앉아서 생각하고 멍때리고 노래를 들었다. 그냥 이유없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Lana Del Rey의 Born to Die를 한 곡 반복으로 들었다.



멀리 보이는 도서관과 수업듣는 건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만 있었다


비가 더 와서 방안에 들어갔는데 뭘 해도 우울이 가시질 않았다. 점차 밖에 햇빛이 비치길래 오렌지를 까서 도시락통에 넣고, 무작정 밖으로 갔다. 햇빛을 쬐고 싶었다. 그러면 좀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밖에서만 4시간 가량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혼자 앉아있었다. 기적같이 기분이 나아졌다.




다음날, 수업끝나고 원영이와 까르푸에 장을 보러 가기로 했다. 날씨도 좋았지만, 예상치 못한 예쁜 풍경들에 우리는 신이 나서 사진을 찍었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엔 벚꽃마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한국에 없어서 가장 슬픈 일 중에 하나가 벚꽃 놀이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한창 벚꽃이 피고 따뜻할 때 쯤에도 프랑스는 너무 추웠다. 패딩을 입는 날도 많고 매일 전기장판을 틀고 자야 했다) 한 골목에 이렇게나 예쁘게 꽃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한결 맑아진 기분으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하늘도 아름다웠다. 



홍콩 친구가 내 생일에 앙제에 없다고 미리 선물을 줬다 ㅠㅠ 카드 쓴 게 너무 귀엽다. 마음도 너무 예쁨.. 홍콩 친구들 보러 내년 여름에 홍콩에 가기로 했다. 자기 친구가 디즈니랜드에서 일한다며 공짜로 놀수있다고 꼬시던 크리스탈 ㅋㅋ 불어도 한국어도 못하는데 번역기 돌려서 쓰고 꾸민 정성... 눈물 쏟을 뻔했다. 친애하는 한솔은 초등학교 영어 교과서 문장같다



들어있던건 부활절 대왕 계란 :)



2016년 4월 6일


12시가 되자마자 까르푸에서 사온 케이크로 원영이와 단 둘이 내 방에서 축하를 했다.


'검은 숲'

내가 벌써 스물두 살이라니! 


겉 스폰지가 신기했던 케이크. 맛있기도 했는데 너무너무너무너무 달아서 한조각 이상은 못먹는다.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처음 타지에서 맞는 생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좀 공허했다. 원래도 축하를 휘황찬란하게 받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곁에서, 현실속에서 나를 축하해주는 한국인은 한 명 뿐이기에... (보영언니는 며칠전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이곳에서 생일을 맞다니? 그리고 원래 생일에 큰 의미부여를 안하는데 괜히 타지에 있으니 서러워졌다. 당장 다음날 새벽같이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나야되는데 장 상태도 안좋아서 수업도 제대로 못듣고 비실거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전기장판에 배를 지지며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좀 괜찮아지고 나서는 인스턴트 미역국에 참기름과 고기를 넣어 끓여먹었고, 이 두가지 덕분에 인스턴트 미역국에서 수제 미역국맛이 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축하 연락을 해왔고 대학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20분짜리 영상을 정성스레 만들어서 보내왔다. 내가 아는 
사람들, 과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축하영상을 찍고 본인들도 영상편지를 남겼다.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생일이었는데 동시에 가장 감동적이고 따뜻한 생일이었다. 거창한 선물같은것 없이도, 나는 너무 따뜻해서, 다섯 번 쯤 영상을 돌려보고 다섯 번 쯤 울었다. 


그렇게 집에서 쉬다가 오늘의 마지막 수업을 갔는데, 여태껏 다른 친구들 생일 땐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난 말한 적도 없는데 페이스북을 통해서 내 생일임을 안 친구들이 선생님께 알려드렸는지, 수업 후에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줬다. 수업 후 선생님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오늘 공지사항은 첫번째 ~숙제 할 것, 두번째 ~준비해 올 것, 세번째 오늘은 한솔 생일이야! 다들 축하해주자! Joyeux anniversaire!"


옆자리 친구가 준 사탕


마음의 병으로 인한 큰 고비도 넘겼고,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행복한 생일을 보냈다. 

내일은 나 자신을 위해 큰 마음 먹고 계획한 아이슬란드 여행이 시작된다.

나는 정말 감사할게 많은 사람이다. 더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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