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대학동창 M은 그림책 작가다. 벌써 세 권이나 책을 낸 어엿한 출간 작가님이지만, 자신은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말하는 지나치게 겸손한 친구. 그 친구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짧은 안부를 묻고 지난여름부터 준비하던 작업은 잘 되고 있는지 물었다.
"아니, 전혀."라는 단호한 답에 이어 "넌 글쓰기 잘 되고 있어?"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나 역시 "아니, 전혀."라고 대답하고 동시에 깔깔 웃었다. 전화로 긴말할 것 없이 "당장 만나자."라고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오송역에서 KTX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달려갔다.
친구는 만나자마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동안 꽉 막혀있던 마음을 쏟아냈다. 작업 중인 책은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정나미 마저 떨어지고 있고, 시작할 때는 또렷하게 보였던 목표가 흐려지다 못해 그런 게 있었나? 싶다는 거다. 처음에는 '하고 싶다'라는 생각만으로도 배부르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마감에 쫓겨 '어떻게든 하자'라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하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했다. 친구는 말이 뜨는 중간마다 낮은 한숨을 뱉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출간 작가님인 친구와 브런치만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내 글쓰기를 비교하기엔 턱도 없지만,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사실, 너무 이해가 돼서 연신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나도, 내 말이, 내가 그래."라는 추임새까지 넣으며.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던 중, 친구는 나에게 보여줄 게 있다며 휴대폰 사진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거 너랑 나 같다." 친구가 내민 사진은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라는 그림책이었다.
샘과 데이브가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는 게 자신들의 사명이라며 함께 땅을 파기 시작한다. 한 삽만 더 파면 어마어마하게 큰 다이아몬드가 나오는데, 땅 속에 묻혀있으니 샘과 데이브가 그걸 알 리가 없다. 그들은 큰 다이아몬드를 코 앞에 두고 방향을 틀어 다른 곳을 파기 시작한다. 그렇게 요리조리 다이아몬드를 피해 땅을 파던 샘과 데이브는 결국 땅끝(?)까지 파 내려온 후, 처음 땅을 파기 시작했던 곳으로 떨어진다. 두 친구는 부드러운 흙 위에 털석 내려앉아서 동시에 말한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졌어."
꼭 '다이아몬드'를 찾을 필요는 없다. 사실 그런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이아몬드만 피해서 삽질을 하는 샘과 데이브를 안타깝게 바라볼 필요도 없다. 그들의 목표는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찾자!"가 아니었으니까.
비록 보석같이 반짝이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이 '멋졌다'라고 서로 말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을 찾은 게 아닐까. 살아있는 한 땅을 파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삽질 인생'. 같이 할 친구가 있다는 게 그저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