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도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
원작보다 그 뒤에 가려진 비하인드 스토리에 흥미를 더 갖는 편이다. 이를테면 영화·드라마 촬영장의 메이킹 영상, 녹음실에서의 아티스트 모습, 책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에필로그 같은 것들. 더 정확히는 ‘앞에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누군가의 뒷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쉽게 볼 수 없었던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의외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게 하거나 내가 겪어 보지 못한 누군가의 생소한 삶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부지런히 눈품을 팔다 보면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는 듯한 연결감도 느낄 수 있다.
여러 비하인드신 중에서 유독 가슴에 콕 박히는 장면을 그때그때마다 기록하거나 정리해 둔다. 에필로그를 읽다 작가의 진솔한 고백이 담긴 구절을 필사하거나 유명 아이돌 멤버들이 어두운 연습실에서 춤추는 장면을 캡쳐해서 프린트해 영감노트에 붙여 놓는 식으로 말이다. 누군가에게 개인적인 힘듦을 털어놓기보다 묵묵히 자기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내게는 더 위로가 된다.
생각해 보면 위기라고 느낄 때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본능적으로 찾아 헤맸다. 거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용기와 힌트가 담겨 있다. 그렇게 만난 장면은 실제로 시의적절하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짓궂은 얘기지만 타인의 마음고생만큼 순도 높은 위안도 없는 것 같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될 때까지 들이받고 매달리는 이에게서 중점적으로 본 것은 ‘외로움’이었다. 여기서의 외로움은 서러움과는 조금 다른 결이다. 스스로와 지난한 싸움을 치르며 끝없이 올라오는 고독을 누구보다 잘 다스리는 사람에게서 고급스럽고 성숙한 분위기가 풍긴다. 외로움을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 아직은 그게 어려워 최종적으로 갖고 싶은 능력 리스트에 올려 두었다.
최애 아티스트인 ‘IU’에게 많이 배우고 있다. 그녀가 본업에서 고군분투하는 영상들을 자주 챙겨 본다. 그중에서도 제일 애정하는 건 ‘홀씨(Holssi) 레코딩 비하인드’. 하도 많이 돌려 봐서 영상이 책이었다면 너덜거렸을 거다. 가수의 녹음 현장을 이렇게 숨죽이며 지켜보는 것도 처음이고 보고 또 본 영상인데도 새로운 데가 있어 신기할 뿐이다.
치이는 구간이 어찌나 많은지. 이 일을 얼마나 잘하고 싶은지가 느껴질 정도로 이글거리던그녀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평소의 앳된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웃음기 싹 빠진 표정으로 녹음에만 집중하는 모습에 홀딱 반했었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거듭 시도하는 태도는 전투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자유로워 보였다. 척하면 척, 디렉팅 파트너와 즉석에서 주고 받은 아이디어를 바로바로 곡에 반영하는 그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하고 타잔처럼 노래하는 코러스 부분이 있는데 여러 버전으로 그녀 혼자 화음을 쌓아서 만든 구간이었다는 걸 알고 나서 신선한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곡 하나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그 날것의 여정에 동참하는 기분이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전체 그림을 그려가며 능숙하게 프로듀싱을 주도하는 그녀의 전문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프로의 남모를 고충을 비추기도 했다. 컨디션 난조로 골골 앓으면서도 음악적인 고뇌는 끝까지 이어졌다. “어른이니까 해야 돼”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며 아픈 걸 잠시 뒤로 미뤄두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 와중에 또 특유의 집요함으로 원하는 정답을 야무지게 얻어낸다. 나중에는 초연해 버린 듯한 경지에 이른 것 같기도 했다. 터널 같은 구간에서조차 어둠을 기꺼이 만끽한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된 거 야광펜이나 쥐고서 하고 싶은 말이나 실컷 쓰지 뭐 하는 기세다. 예쁘고, 멋지고, 당차고, 강하고 아주 혼자서 다 한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목격한 이후로 감춰진 외로움을 먼저 헤아리게 되었다. 음악 한번 끝내주네가 아니라 이렇게 만들기까지 얼마나 고생하고 외로웠을까를 가늠해 보는 것이다. 그녀와 내가 가진 외로움은 애초에 견줄 수 없는, 각각의 다른 것이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한 재질의 감정일 거라 생각한다. 글을 쓰다 보면 막막한 기분에 자주 사로잡힌다. 하고 있어도 헤매고 있다는 느낌에 갇힐 때가 많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쓸쓸함을 어쩌지 못하면 그녀가 나오는 영상으로 도피했다.
나는 내 외로움에 졌다가 비하인드 스토리로 도망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면서 한번씩 삐딱선을 탄다. ‘너는 지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딱히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 글을 쓰려고 하는 거야?’ 이렇게 스스로에게 따지기도 한다. 굳은 살이 생긴 건지 아니면 지친 건지 어느 날부터 외로움 속에 나를 푹 담그는 일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게 다가왔다. 쓰는 일을 정말로 팽개치지 않는 이상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듯한 느낌은 앞으로도 계속될 테니까 그냥 외로움을 와락 껴안아 버리기로 했다.
지긋지긋한 고독도 한번 잘 키워 내보리...! 누군가의 뒷모습에 기대어 잠깐이더라도 마음을 고쳐먹는다. 키보드 위에 다시 손을 얹고서 한 줄만 더, 한 줄만 더 하고 주문을 건다. 꾸역꾸역의 순간을 연장해 나간다. 그렇게 마주한 지면에 최선을 다한다. 혹시 모른다. 누군가 나의 뒷모습을 알아봐 줄 순간이 찾아올지. 오늘의 헤매임은 훗날의 비하인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내 외로움을 껴안을 수 있을까? 현재로선 의심이 앞선다. 일단 뒷모습 킬러로서의 본분을 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