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희호호(喜喜好好) 마인드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기 위해

by 한써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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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기 위해 애쓴다. ‘좋아하는 걸 그냥 좋아하면 되지 왜 굳이 애를 써?’ 할 수 있겠지만 무언가를 좋아하는 에너지 못지않게 무언가를 귀찮아하는 에너지 또한 만만치 않게 힘이 세다는 걸 말하고 싶다.


무언가를 향한 순수한 설렘과 호기심에 ‘피곤해서, 귀찮아서, 유치해서, 눈치 보여서, 나이가 있어서, 이제 와서?’와 같은 시간과 체면이라는 타성이 붙게 되면 말랑말랑한 첫 마음도 별 수 없이 굳어 버리고 만다. 좋은 게 제 발로 굴러들어 왔어도 그걸 지키는 건 결국 내게 달려 있음을 많은 걸 놓치고 나서 알게 됐다.


후회하기 싫어 좋아하는 걸 꽉 붙잡았다. 자잘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개중에 합이 잘 맞는 것은 내게 남았고 아닌 것은 떨어져 나갔다. 유지하기와 탈락하기를 거듭하며 나는 내게 잘 맞는 ‘좋음’과 ‘기쁨’을 발견할 줄 알게 되었다. 감동의 진입 장벽은 전보다 훨씬 낮아져 울고 웃고 감탄하는 일이 많아졌다.


심오하게 깊이 파고들지도 않는다. 끌리는 게 있으면 가볍게 좋아하고 언제든지 그만 둔다. 잠깐 반짝하고 마는 흥미일지라도 그때만큼은 정말 즐겁게 발을 담갔다가 뺀다. 뒤돌아 봤을 때 나의 한철 발 담그기는 그래서 좋았던 기억이 더 많다.


좋아하다의 뜻 말고도 뭐가 더 있는지 궁금해서 ‘좋을 호(好)’를 한자 사전에 검색했다. 즐기다부터 사랑하다, 아름답다, 반기다, 기뻐하다, 가상히 여기다, 기꺼이, 자주, 참으로, 좋은 일까지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은 표현들이 ‘호’ 자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기쁠 희(喜)’ 자를 호(好) 앞에 슬쩍 붙였더니 ‘희희호호’가 됐다. 희희호호. 소리 내어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다.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기 위해 희희호호(喜喜好好) 마인드로 나의 소중한 기쁨들을 지켜내는 중이다. 사랑할 것도, 반길 것도 아직 많이 남아 있기에 아래의 방법은 한동안 유효할 거다.






① “나 이런 거 좋아해” 하고 대놓고 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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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밋을 좋아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제 할 일 똑부러지게 해내는 월레스의 반려견을 사랑한다. 이 내향형 비글 강아지가 얼마나 야무진지 창문 닦는 청소 일도, 독서도, 뜨개질도, 신문 읽기도 뭐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없다. 착하고 똑똑하고 귀여운데다 눈물도 흘릴 줄 아는, 감수성 넘치는 멍멍이 되겠다.


녀석은 내게 기쁨이자 자랑 같은 존재다. 그로밋 실물(?)에 가장 가까운 키링 인형을 사서 가방에 달고 다녔다. 출근할 때도, 퇴근할 때도, 약속이 있을 때도 언제나 나와 함께할 수 있게. 만나는 사람마다 키링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팔불출 마냥 그로밋을 자랑하곤 했다.


어느 날은 친구와의 약속 자리에서 인형 선물을 받았다. 나의 취향을 잘 아는 친구가 소품샵에 갔다가 내 생각이 났다면서 또 다른 그로밋 인형을 선물해준 것이다. 좋아하는 걸 팍팍 티내고 다녔을 뿐인데 그로밋 1호에게 새로운 형제가 생겼다. 이후로도 그 친구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게 있으면 나를 먼저 떠올리고 챙겨주었다. 이 지면을 빌어 친구 J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② 5분만 더 시간 쏟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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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을 보태면 스스로를 조금 더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을 토스트를 만들며 깨닫는다. 시작은 식빵을 따끈하게 구워 그 위에 치즈를 올리는 일이었다. 단촐하게나마 아침을 해결하니 끼니를 귀찮게 여기는 불량한 마인드를 버리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심플한 토스트 안에 무언가를 더 넣고 싶어졌다. 지단도 처음엔 심심하게 부치다가 파를 다져 넣어 촉촉퐁신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 만든 나의 파계란토스트는 최초의 맛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잠깐의 5분으로 나를 더 살뜰하게 챙기는 기분이다. 다른 것은 또 어떨까. 토스트가 아니어도 모든 영역이 그렇지 않을까. 토스트를 대하는 마음을 이루고 싶은 일에 적용해 봐야겠다.




③ 발만 담갔다 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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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호기심을 존중하는 편이다. 궁금한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인지 찍먹 수준의 취미가 많다. 기간도 1분기를 넘기지 않는다. 3개월 동안 최대한 즐겁게 바짝 불태우는 식이다. 일 년에 하나씩 새로운 걸 배우면 좋을 것 같다. 올해는 잘 모르겠지만 작년과 재작년에는 테라코타(조소)와 서예를 수강했다. 둘 다 손끝의 감각이 정말로 중요했던 작업이었다. 흙을 붙이고 다시 깎아내며 작품 하나를 빚었고, 가로 세로 획을 모아 글자 하나를 수놓듯 정성스럽게 완성하는 걸 익혔다. 집중하는 동안 온 기운을 끌어다 쓰느라 수업이 끝났을 때 등이 살짝 축축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몰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개운했다.


발만 담갔던 최애 관심사도 나열해 볼까. 과거형이 되어 버린 야구와 현재형인 시계에 대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야구를 책으로 배웠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구장에 가더라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경기를 재밌게 직관할 수 있었다. 허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데이터가 아예 없는 상태로 경기를 8회 말까지 지켜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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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지금 뭐 때문에 이렇게 환호하고 빡쳐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좌석에 앉아 있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다. 다음날 나는 교보문고 스포츠 서적 코너에 가서 가장 쉽게 야구를 설명해 놓은 것 같은 책 한 권을 구매했다. 그리하여 나의 야구 첫 스승은 <허구연의 여성을 위한 야구 설명서>의 저자인 ‘허구연’ 아저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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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 방송을 혼자 볼 수 있을 정도로 마스터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서 초반에 좀 억지스럽게 파고든 경향도 있다. 책 다음은 <더그아웃>이란 야구 매거진이었다. 야구에 대한 다양한 소식과 정보들이 비처럼 내게 쏟아졌다. 글자만 보니 지루해서 영상으로 넘어갔다. 야구 다큐멘터리! 내가 발견한 건 극히 일부겠지만 야구 다큐를 검색하니 저렇게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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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많이 봐두길 잘한 것 같다. 그 당시의 나는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정도로 미친 사람처럼 야구를 팠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어느 시점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혼자서도 거뜬히 중계 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열 받는 타이밍에 정확히 욕도 날리고 분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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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도 야구와 비슷한 코스다. 다른 액세서리는 안 해도 시계만큼은 꼭 차야하는 인간은 알고 차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올댓워치>라는 시계책을 냉큼 사서 읽기 시작했다. 이제 기본 스펙(내 손목에는 몇 mm 시계 얼굴이 어울리는지/방수는 어디까지 되는지/작동 방식 타입은 무엇인지)은 알고 찬다. 책은 <시간의 명장>이라는 다큐로 이어졌다. 오늘 날의 손목시계가 산업, 문화, 역사가 한데 모여 탄생한 복합적인 산물임을 알게 된 나는 사뭇 비장한 마음도 들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보니 호기심은 꼭 신기루를 닮은 것 같다. 어느날 홀연히 나타나 잠깐 머물고 사라져 버린다. 그저 휘발되기 전에 맘껏 좋아하고 파고들 수밖에. 앞으로 무엇을 또 좋아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게로 오는 것들은 기쁜 맘으로 잘 건사해야지!



④ 셀프 선전포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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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허락 같은 건 필요없지만 가끔씩은 아주 격렬한 응원이 필요하다. 4년 전 내가 나에게 했던 응원이 떠오른다. 올해 꼭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댓글을 남기는 이벤트가 있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직접 꿈을 얘기하는 것도 아닌데 숨겨왔던 야망을 댓글로 드러내는 일은 생각보다 쑥스러웠다. 그 어디에다가도 글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글을 쓰려고 하는 내 자신이 철없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제일 두려웠던 건 무언가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정말로 내게 있는지였다. 작은 댓글창을 대나무숲으로 여기고 속마음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던 중 갑자기 나는 나를 열렬하게 응원해주고 싶었다.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부족하지만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말한 것 같지만 사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동시에 셀프 선전포고이기도 하다. 부지런히 써서 성장하는 한해를 만들고 싶다는 내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잘된 것보다 안 된 것이 더 많았던 시간을 통과하며 완벽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원하던 일에 조금은 가까워져 있다.


좋아한다는 말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해보자 또 한번 내게 선전포고(올해는 좋은 글 많이 써서 출판사에 투고해볼 수 있길!)를 남긴다. 혹시 모른다. 이 글이 훗날 다시 찾아볼 성지글이 될지. 그때까지 격렬한 응원도 틈틈이 해가며 잘 버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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