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

by 한소선

이곳에 새로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첫 글이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글을 썼고, 또 구겼다.

나에게 글은 평생의 숙제처럼 삶의 숙명처럼

쉽게 쓸 수도 없고 쉬이 버릴 수도 없는 연적이었다.

어째서 글을 쓰면 이런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평생 매달린 채 받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마음처럼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게 된다.


글 쓰는 나는 아주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다가

이따금 깨어나 그 어떤 자아보다도 강하게 중심을 꿰차고 질주한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린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야생의 짐승처럼.


이곳에 새로 둥지를 튼 이유는 사실 별 것 없다.

다양한 나의 모습들이 내 삶의 한 부분들을 차지하며 살아왔고,

그들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뻗어나갈 때

글 쓰는 나는 묵묵히 관찰하고 바라볼 뿐이었다.

내부의 기포가 서서히 끓어오르듯 오랜 태동이 시작된 줄도 모른 채.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분출'하듯 뿜어져 나왔을 뿐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문자화하고 싶은 욕구가.


'글'이 나를 뚫고 뛰쳐나왔다.


나는 글이 이끄는 대로 갈 뿐이다.

내 안의 다른 자아들은 잠시 멈추고

의 격렬한 춤을 바라본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한탄 같은 움직임을.


다른 건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곳이 내 글의 시작이자

글의 춤이 멈추는 무덤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