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영화

by 한소선

늦은 밤 영화를 예매했다. 넓은 영화관을 독식할 생각에 혼자 신나 낄낄거리면서.

도착하니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런 보편성을 좋아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나는 주로 E열에 앉는다. 영화 모임을 다닐 때부터 생긴 버릇이다.

어릴 땐 맨 뒤에 앉는 게 제일 좋은 줄 알고 키도 큰데 허리를 숙이며 영화를 보곤 했었다.

커 가면서 나의 취향을 더 알아가게 되고 남들이 정해 놓은 자리가 아닌 내 자리를 찾아가게 됐다.

버스도 맨 뒷자리가 좋은 줄 알았는데 앞자리가 더 좋고, 영화관도 C, D열이 H열보다 낫다.

남이 알려주는 세상과 내가 알아가는 세상은 이렇게나 거리가 있다.

경험하는 것은 결국에 내가 된다.


나는 영화관 앞열에 앉아 고개를 좀 더 들어 올려서 스크린에 압도되듯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영화 속 인물들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감독의 존재가 크게 느껴지며,

좋은 영화를 보면 감동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갈수록 스마트폰이 수족처럼 따라붙는 세상에서

폰을 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공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이 순간이 좋다.

어딘가에 갇혀 모두가 폰을 넣어두고 한 방향을 보는 순간이.

이렇게 말하고 보니 사람 만나면 폰은 보지도 않고,

일 할 때도 폰을 보지 않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아무렴 어떤가.

집에서 영화 볼 땐 폰을 찾게 되니까 영화관이 좋은 게 맞긴 한걸.


영화가 끝나고 당당하게 버스정류장에 왔는데

버스가 17분이나 기다려야 남은 한대가 온다는 게 아닌가.

막차가 원래 이렇게나 일찍 끝났나?

당황하며 다른 차를 찾아봤지만 소용이 없어서 그냥 서서 기다렸다.

따릉이를 탈까 생각도 했지만

체력을 비축하는 게 30대의 삶이다 보니 몸을 아끼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택했다.

차가운 밤공기 사이에 손을 놀리며 글을 쓸 수 있다니.

세상은 빨라졌지만 어딘가에 낭만은 살아있기 마련이다.


영화는 내 입장에선 그다지였다.

어릴 때부터 오즈의 마법사에 미쳐 살았던 나는

몰라도 될 진실을 알아버린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치달을수록 울컥하는 걸 보면

나이 들 수록 눈물도 많아지고 감수성도 풍부해지는 게 맞나 보다.

개연성도 없고 따라가기 힘든 감정선에도

그 순간에는 몰입돼서 일단 동요되고 만다.


말랑해진 감성이 좋다.

폭싹 젖어버린 것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보다

적당히 유연하게 흘러가는 것이 편한 것 같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꼿꼿하게 힘주고 사는 것보다

어지간한 건 보내주면서 흐르듯이 가는 게,

흔히 듣는 가늘고 길게가 나은 것 같다.

남들과 비교해선 여전히 힘주고 열심히 사는 것 같겠지만

적어도 나 하나를 두고 보면

전에 비해 많이 말랑하고 부드러워진 것으로 만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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